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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옥 Mar 16. 2025

카지노 게임 맞고 목표가 생겼다 2편

돈을 모아 건물을 사자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12년 만에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품게 된 꿈이었다.아이 셋을 낳고 12년 동안삼 남매를 돌보며 살림만 하던나였다.그때의 나는12년 동안 육아 경력만 남은전업주부였다.일을 처음 시작할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도 12년 경력단절 전업주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경력단절 주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슬프게도. 당시 12년 경력단절 전업주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마트 캐셔, 식당 주방 보조, 서빙이 전부였다.


성격이 모나서 그런지고리타분해서인지식당, 마트 캐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오랜 고민 끝에 시작한 일은 일일 시험지 돌리기였다. 1990년대, 경제성장으로사람들은 아이들 교육에 온 열정과 성을 쏟기 시작할 때였다. 그 흐름을 따라 방문 일일 시험지 업계에도 돌풍이 일어났다. 일일 시험지 회사에서는 시험지는 있었지만 시험지를 돌릴 인력이턱없이부족했다.


일일 시험지 업계는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전업주부에게 눈을 돌렸다. 그들에게는 매일 집집마다 우유돌리듯 일일 시험지를 돌려줄성실하기도 하고, 거기에엄마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주부사원이 절실했다. 일을 찾던 중 일일 시험지 선생님을 찾는다는 전단을 보았다.괜찮을 것 같아 보였다. 그렇게 육아 12년 차 전업주부였던 나는 일일 시험지 업계에 발을 디뎠다.


일일 시험지 선생님이란 명칭은 좋았지만 매일 같이 무거운 시험지를 자전거에 싣고 100집이 넘는 집을 돌아야 했다.시험지배달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거기에 전집까지 팔아야 수익을 가져올 수 있는 구조였다. 조금이라도 더 돌면 돈을 더 벌 수 있기에 새벽에 나가 밤 12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다.


젊은 나이였지만 원래 태어나기를 통통한 다리는 매일 같이 더퉁퉁 불었고, 발가락 살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피가 났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거기다 셈이 빠른 엄마들을 상대하는 데에는 고도의 기술까지 요구되었기에 새벽에는 교육 관련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다행히 나에게는 성실함이라는강하디 강한무기가 하나 있었다.성실함의 결과로약 일 년이 지나자 동네 사람들에게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가끔 집을 방문해 과외 서비스도 함께 해주었다. 그러자 동네에서 일일 시험지에 대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될 놈될 이라 했던가. 구독자들이 구름 떼같이늘어갔다. 일을 시작한 지 2년이 되었을 때, 나는 일일 시험지 업계의 전설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내 통장에 돈이 수북이 쌓이고 있던 것과는 달리, 남편은 내 일이 영 못마땅한 눈치였다.남편은 술 한잔 걸칠 때면아내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시험지 돌리는 일이 동료들 보기에 민망하기까지 하다고 매몰차게 말하기도 했다.


'누가 어떻게 보든 무슨 상관이람.'


나는 상관없었다. 이미 내 마음에는 큰 꿈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매달 내가 벌 수 있는 돈이 남편 월급의 두 배를 훨씬 넘어섰다. 이렇게만 더 벌면 5년 후, 작은 건물을 하나 사서 사모님이 될 수 있다는 반짝이는 꿈에 매일매일이 신나는 하루였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인생의 장난이란 그런 것이었다.


더운 여름 자전거를 끌고 집집마다 시험지를 배달하던 나는 시험지 일을 정리해야 했다.한 순간에 백화점 사장님으로 변신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사정은 이러했다.


남편이 고향 선배의 꼬임에 넘어가 백화점에입점해 있는가야미 공방 매장을나와한마디 의논도 없이 인수했기 때문이다. 그 일이 벌어지기까지 남편은 나에게 그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사이남편은이미 은행에서 자금을 대출을 받고, 가야미 공방을 인수한다는계약서에당당하게사인을 마쳤다.


남편 말에 따르면남편을 꼬드긴 선배는매일 같이 자전거를 타고 발가락이 쥐가 나도록 5층이면 5층, 옥상이면 옥상까지 오르락내리락하는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야. 철이야. 너 제수씨 너무 고생시키는 거 아니냐. 애들만 키우던 제수씨가 너무 고생한다. 안 되겠다. 나에게 좋은 물건이 하나 있는데, 제수씨가 해보는 거 어떠냐?저기 평촌 백화점 안에 들어간 공방이야. 요즘 인테리어가 뜨잖아. 너도 알지? 내가 특별히 수완이 좋은 매장을 알아봤다고. 이 매장 수완이 장난 아니게 좋으니 인수받아서 제수씨한테 해보라고 해. 이거 수입이워낙에좋아서 하려는 사람이 줄을 섰어. 어서 대출받아서 계약서에 사인해야 해.지금 당장 같이은행가자.


선배의 말을 들은 남편은 좋은 자리를 뺏길까 싶어선배를 만난 다음날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았다. 그리고 나에게 한마디도 의논도 하지 않고 일을 일사천리로 계약서에 사인을 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사정을 알고 보니 남편이 인수하기로 한가야미 매장은 매출이 전혀 없어 백화점에서 나가라는 압박을 받고 있는 골칫덩어리 매장이었다.


남편은 계약서에서 사인하고 온 다음날 통보하듯 나에게 말했다. 구질 구질한 시험지 배달을 그만두고 백화점으로 출근하라고. 하지만 한창 물이 올라 잘 나가는 시험지 배달을 그만둘 수 없었다. 나는 절대로 백화점에 가서 장사를 하지 않겠다고 4개월을 버티고 버티었다.내가 출근을 하지 않자,가야미 매장에오는사람이 없었고, 결국 백화점에서 가야미공방 매출이 4개월 동안0원이었다. 백화점으로부터 이렇게 장사할 예정이라면 물건과 자리를 모두 빼라는 통보가돌아왔다.


이제껏새벽부터 나가 밤 12시가 될 때까지 시험지를 돌리면서앞으로5년만 고생하자는계획을 세웠는데 결국5년 계획을 접어야 했다.


5년만 더 열심히 시험지 배달을 하면 빌딩을 사고 사모님 소리를 듣고 살 거야 ‘


하지만이 계획은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결국 나는 일일 시험지를 정리했다. 그리고 1992년 6월경부터 백화점 6층 가야미 공방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이제 동네에서 빨간 반바지차림에 빨간 운동화를 신고, 빨간 자전거 위에서 일일 시험지를배달해 주는 시험지아줌마가 아니었다. 멋진 옷과 구두를 신고 거기에 자가용을 직접 운전을 하며 출근하는 평촌뉴코아백화점 가야미공방 사장으로 한 순간에 변신했다.



평촌 뉴코아 백화점에 첫날 출근하자 매출팀 부장이 나를 호출했다.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앞으로 매출이 없으면 백화점에서 매장을 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가지고 있던 물건을 50% 할인해서라도 매출을 올리라는 명령을 받고 매장으로 돌아와야 했다.


가야미 공방 매장으로 돌와서 물건마다 50% 세일 딱지를 더덕더덕 붙였다. 평소 가야미 공방 작가의 작품을 좋아했던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손해를 보든 말든 우선 손님들이 많이 몰려오자 기분이 매우 좋았지. 그 모습을 보면서 새롭게 결심했다.


‘그래, 5개년 계획을바꾸자.우선 백화점 운영을 잘해봐야겠다 ‘


그렇게 나는 인생 목표를 다시 바꾸었다.


1992년 6월 18일 다음날 새벽, 서울 고속터미널 꽃시장으로 달려가 생화 장미꽃 백송이를 샀다. 가야미공방 개업식을 위한 꽃이었다.1992년 6월 19일 가야미공방 물건을 사가지고 가는 백사람 손님들에게 붉은 장미를 선물로 건넸다.


‘오늘 손님 백 명은 가야미 공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겠구나.'


손님 중에는 본인이 가지려고 사는 분도 있고, 선물을 하려고 사는 사람도 있었다. 가야미 공방 제품은 유명한 작가님들이 손수 만든 작품으로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방 제품과 결이 달랐다. 그 가치를 알게 되자나 역시이 일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좋은 물건을 판다는 자부심과 함께.



이렇게 자부심을 가지고 4년 6개월 동안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매일 같이 일했다. 무거운 조각상을 사가는 손님에게는 배달 서비스도 해드렸다. 영업이 끝나고 백화점 문이 닫히면 그때부터 구입한 물건을 하나하나 배달했고, 자연히 단골손님들이 한아름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6층에서 가장 매출이 좋은 가게로 성장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 순간에 부도를 맞게 된 것이다.


남편은 부도 소식을 전해 듣고 나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목소리 큰 남편은 소리도 지르지 않았다. 나 역시이미 우리 손을 떠난 돈을 붙잡고자 남편을 원망하지못했다. 이미 사라져 버린 돈이었다.

카지노 게임 소식을 접한 저녁,집으로 돌아온우리 부부는 울고불고하지않았다.한숨도 쉬지않았다.

나는 TV가 크게 틀어져 있는 방 안에멍 때리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집안이 냉기가 돌고폭삭 망한절에 온 기분이었다.


그때 내 머릿속으로 하나의 생각이 스쳤다.


‘그래 남도 내 돈을이렇게 마구쓰는데 내가 내 돈을 못쓰는 것은 바보지, 그래 이제는 나도 나를 위해 돈을 쓸 거야.’


*메인화면: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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