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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Nov 05. 2023

<136호 얼룩들

수습편집위원 한풀

카지노 쿠폰상단에 옷 카지노 쿠폰들이 널려 있다. 무지개빛깔로 '얼룩들'이라고 쓰여있다.


*이 글은 뮤지컬 <카지노 쿠폰를 비평한 글이며, 해당 극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뮤지컬 <카지노 쿠폰 줄거리


서울살이 5년차, 나영

집세와 나이는 늘어가지만 꿈은 닳아 지워진 지 오래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꿈과는 달리, 나영의 직업은 서점 직원.


서울살이 5년차, 몽골청년 솔롱고

꿈을 좇아 한국에 왔지만 이번 달 월급조차 밀릴 위기다.

어느 날, 우연히 바람에 날려 온 나영의 카지노 쿠폰를 계기로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진다.


나영은 직장에서 부당한 일에 맞서다 불이익을 당하고,

솔롱고는 방세를 내지 못해 쫓겨날 위기다.

서로의 아픔을 알게 되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참아야만 하는 두 사람.

희정엄마와 주인할매는 힘 없이 주저앉아 울고있는 나영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위로를 건네고, 나영은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게 되는데…


직장인, 버스기사, 학생, 일용직 노동자,

서울살이 10년차 희정엄마, 그리고

어느덧 서울살이 45년차 주인할매.


각자 마음 속에 아픈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카지노 쿠폰

출처: 인터파크 티켓



뮤지컬 <카지노 쿠폰는 서울에 살지만, 고향이 서울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나영과 솔롱고이다. 이외에도 주인집 할머니, 희정엄마, 빵 사장, 마이클, 구씨, 나영의 서점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 두 명, 슈퍼 주인 아저씨, 나영이와 솔롱고에게 시비를 거는 주인집 사내와 조 씨, 그리고 직접 무대에 나오지 않고 소리로만 등장하는 마흔이 넘은 주인 할머니의 딸인 지체장애자 정둘이가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은 화장실을 함께 쓰며 ‘똥세’까지 꼼꼼히 계산하고, 카지노 쿠폰를 널 때는 마당의 공간이 부족하여 옥상까지 올라가는 수고를 감수해야 하는 단칸방 거주자들이다.

몽골에서 온 이주노동자 솔롱고는 자신의 옥탑방 마당에 카지노 쿠폰를 널다가 옆집 옥상에서 카지노 쿠폰를 짜고 있는 나영에게 반하고, 서툰 발음으로 인사를 건넨다. 나영은 6년 전 강원도에서 상경한 뒤 야간대학을 중퇴하고 비정규직을 전전하면서 이 변두리에서 저 변두리로 옮겨다닌 20대로, 솔롱고와 마주치기 전날에 현재의 동네로 이사를 왔다.

사랑 소재의 뮤지컬이라 하면 흔히 연상할 수 있는 것이 남녀가 사소한 오해로 티격태격하다가 결정적인 계기로 화해하며 해피엔딩을 보여주는 구조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나영과 솔롱고는 서로 싸우거나 화해하는 등의 일은 하지 않으며, 심지어 만나는 횟수도 많지 않다. 이는 작품이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 이들의 연애사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아기자기한 사랑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있지만, ‘각자 마음 속에 아픈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것을 묘사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점에서 순수 로맨틱 장르는 아니다. 그보다 한국 사회에서 소외되고 힘없는 유형적 계층들이 등장하여 사회의 문제들을 건드리며 한국 사회라는 옷감에 얼룩진 사회적 편견과 문제의 잔상들을 드러낸다. 인물들은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로 법의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한다. 솔롱고는 이주노동자를 괄시하는 이들로부터 폭행을 당해도 불법체류자 신분이 발각될까봐 경찰서에도 가지 못하고, 서점 직원 김지숙은 사장에게 올바른 말을 했다가 부당 해고를 당하며, 나영은 지숙의 편을 들다가 매장에서 창고로 근무지 변경을 당한다. 그리고 집주인 할머니의 딸은 사지 절단형 장애인이지만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화려함은 덜하지만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역사를 쓴다. -KBS-

이 작품은 가슴으로 보면 된다. 그러면 ‘희망’이라는 두 글자로 답을 줄 것이다. -민중의 소리-

스스로의 인생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 그렇지 않다고 손을 건네는 ‘카지노 쿠폰’에 어떻게 위안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을까 -BNT뉴스-

서울살이 N년, 그 사이에 있었던 많은 날들, 때로는 눈물들, 웃음들. 지나가버린 그 모든 시간이 떠올랐던 공연이었습니다. -dotk***-

출처: 인터파크 티켓



창작뮤지컬 <카지노 쿠폰는 2003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의 워크숍을 통해 개발되었고, 2005년에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초연되었다. 현재 26차 프로덕션 진행 중이며, 17년동안 5천 회가 넘는 공연을 통해 100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또한, 제6회 예그린 뮤지컬 어워드에서 예그린 대상을 차지했고, 제11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추민주 연출가는 작사, 극본 상, 그리고 제4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극본, 작사, 작곡 상을 수상하여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또 일본과 중국의 라이선스 판권계약은 물론 극작과 작사, 연출을 겸한 추민주 연출가가 두 나라에서 각 나라 배우들의 오디션에서부터 연출까지 도맡아 성공적인 라이선스 공연까지 올렸다. 또한, 국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12년 중학교,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일부 실리게 되었다.

이토록 사회의 불편한 잔상들을 건드리는 작품이 어떻게 오랫동안 사랑받았을까? 수년 간 관객은 어떻게 얼룩들을 받아들였는가? 이글에서는 <카지노 쿠폰의 안일함을 짚어보려고 한다. <카지노 쿠폰가 어떻게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동시에 관객의 웃음을 유도하며 오랫동안 공감을 얻는 작품일 수 있는지, 이를 가능케 하는 <카지노 쿠폰의 비겁함을 포착하고자 한다.


1. 소거

이 작품은 ‘슬플 땐 카지노 쿠폰를 한다’고 희망을 노래한다. 시간이 지나면 카지노 쿠폰가 마르듯 눈물도 마른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은 채 하루하루를 견딘다. 나영은 고된 한주를 마치고 옥상에 올라가 카지노 쿠폰를 널며 노래한다. “난 카지노 쿠폰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덜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요.” 집주인 할머니는 마흔이 된 장애인 딸의 기저귀를 빨면서 되뇐다. “네가 살아 있응게, 카지노 쿠폰를 하는 것이제. 요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잉게.” 그런가 하면 집주인 할머니, 나영, 나영의 옆방에 사는 희정 엄마는 함께 카지노 쿠폰를 하면서 서로의 슬픔을 위로해준다. “카지노 쿠폰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 시간이 흘러, 흘러 카지노 쿠폰가 마르는 것처럼 슬픈 네 눈물도 마를 거야.” 그리고 에필로그에서는 모든 인물들이 등장하여 관객들을 향해 합창을 한다. “바람이 우릴 말려줄 거예요. 당신의 아픈 마음 우리가 말려 줄게요.” 즉, <카지노 쿠폰는 힘든 일을 겪어도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의 절박한 생명력과 희망을 표현한다.

희망을 노래하기 위해서였을까? 뮤지컬 <카지노 쿠폰는 ‘불쾌’한 부분들을 관객의 상상 속에 가둔다. 뮤지컬 특성상 제한된 시간 내에 좁은 무대 위에서 뜻하는 바를 다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무대를 통해 표현되는 것은 제작자의 선택이다. <카지노 쿠폰는 상업적인 뮤지컬과 달리 사회의 문제를 드러낸다는 평을 받지만, 교묘하다. 제기된 몇몇의 사건상황들이 순식간에 인위적으로 마무리되어버린다는 인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그 인위적인 과정에서 얼룩은 대사로만 묘사된다. 작품은 구체적으로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그저 관객의 상상에 맡기며 책임지지 않는다. 비겁하게 치고 빠진다고나 할까.

그 예로 정둘이의 문제는 사회문제로서의 인식만을 던져줄 뿐 가볍게 마무리된다. 사지절단형 장애를 가진 주인집 딸, 정둘이는 소리로만 등장하고, 다른 인물의 대사로 묘사된다. 다음은 둘이의 장애가 묘사되는 장면이다.


주인할매: (들고 온 빈 박스로 공익요원을 때리며) 반 토막이라니, 반 토막이라니 이놈아! 네놈이 이러구 살아가는 사람 맴을 알면 이 눔아 고로코롬 말 못 한다.

공익요원: 아니 내가 뭐 말 잘못 했어요?

주인할매: 뚫린 주둥아리라고 아무 말이나 지껄이면 되는 줄 알어, 이놈아.

공익요원: 그럼, 멀쩡히 사는 사람 방문은 왜 잠그고 다녀요? 장애인 재등록 기간이에요. 할머니, 정둘이 씨 안에 계시죠?

주인할매: 니 말대로 반 토막 반송장 못 뒈져서 산다 이놈아!

공익요원: 확인할 수 있게 방문 좀 열어주세요.


장애인 재등록 기간인 것이다. 주인 할머니의 딸 정둘이 씨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이 주민 센터에 확인되어야만 나라에서 주는 장애인수급수당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분노와 화가 가득하던 주인할매는 이내 화가 누그러져 공익근무요원의 서류에 지장을 찍는다. 공익근무 요원은 미안한지 황급히 나가버린다. 주인할매는 정둘이의 방으로 들어가고, 한동안 정둘이와 엄마와의 대화가 이어진다. 정둘이는 말을 정확히 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부분의 대화는 대본에 명시되어있진 않다. 하지만 두 모녀의 애틋한 대화가 이어진다. 마흔이 넘은 딸은 일흔에 가까운 노모에게 이런저런 넋두리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미안한 마음에 화라도 내는 것일까? 주인할매는 어떤 마음일까? 그리고 주인할매의 솔로곡 ‘내 딸 둘아’ 가 이어진다.


지겨운 기저귀, 벌써 사십 년째여

마흔이 다 되도록 기저귀 신세를 못 면헌

내 딸 둘아, 너도 건너방 처자처럼 알록달록 치마도 입고 구두도 신고 싶것지

내 딸 둘아, 너도 희정엄마처럼 남자 만나 아이 낳고 아웅다웅 살고 싶것지

그러나 어쩌것냐, 이것이 인생인 것을

얼룩 같은 슬픔일랑 빨아서 헹궈 버리자

먼지 같은 걱정일랑 털어서 날려버리자

네가 살아 있응게 카지노 쿠폰를 하는 것이제

내가 아직 살아 있응게 카지노 쿠폰를 하는 것이제

요것이 살아있다는 증거잉게 암씨랑도 안허다

요것이 살아있다는 증거잉게 암씨랑도 안허다.


마흔이 넘은 사지 절단형 장애인 딸의 기저귀를 손으로 직접 빨고, 널어 말리기를 40년. 그래도 항상 살아있기에 카지노 쿠폰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얼룩 같은 슬픔을 빨아서 헹궈 버리고, 먼지 같은 걱정들은 털어서 날려버리면서 또 살아내는 것, 이 작품은 그게 인생이라고 말한다. 장애인이 이동하지 못한 채 방안에서 무대로 등장하지 못하는 점이나 장애인을 ‘등록’한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장애인이 ‘알록달록한 치마도 입고 구두도 신고 싶을 것’이라는 추측성 연민을 전제하며,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솔롱고)

참아요, 외로워도. 나를 기다리는 가족 때문에

참다 보면 가끔 잊어요, 우리도 사람이란 사실을

반말하고 욕하는 사람들 앞에 주먹 쥐고, 일어서고 싶지만

고향 형제 때문에, 한국 오느라 진 빚 때문에

참아요, 참다 보면 사람들은 잊어요. 우리도 사람이란 사실을

우리도 때리면 아프고, 슬프면 눈물 나는 사람인데

(나영)

참았어요, 외로워도 달리 기댈 곳이 없기에

잊었어요, 참다 보면 나도 사람이란 사실을

반말하고 쉽게 욕하고 찝쩍대고, 쉽게 해고하는 사람들 앞에

큰소리치고 욕하고 싶었지만 이번 달 방값 때문에,

어딜 가도 마찬가지란 생각 때문에

참았어요, 참다 보면 잊어요. 나도 꿈을 가진 여자 란걸

잊는 게, 잊는 게 두려워요 꿈을 잊고 사는 게

(나영, 솔롱고)

우리도 때리면 아프고, 슬프면 눈물 나는 사람인데

사람들은 모른 척 살죠, 모른 척 눈감고 살죠

모른 척 눈감고 귀 막아도 우리 숨 쉬며 살죠

같은 하늘 아래 아프고 눈물 흘리며 살아가요


위 노래는 ‘아프고 눈물 나는 사람’이라는 곡이다. <카지노 쿠폰의 두 주인공인 나영과 솔롱고가 부르는 듀엣곡인데 두 사람의 상황과 감정이 잘 드러나는 노래이다. 일하던 공장에서 쫓겨나고 남은 임금을 받지 못한 채, 공장에서 다친 룸메이트 마이클의 병원비를 대느라 동대문에서 짐을 나르고 있는 솔롱고와, 직장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한 선배 언니를 위해 사장에게 바른말을 하다가 파주창고로 강제 발령이 내려진 나영이 동네 불량배들과 말싸움을 하다가 실랑이를 벌인 뒤 솔롱고가 불량배들에게 폭력을 당하면서 둘이서 부르는 노래이다. 이 사건과 노래를 기점으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이 노래는 나영이가 여자로서 직장생활에서 겪는 어려움, 이번 달 방값 때문에 부당한 일들 앞에 큰소리치지 못하는 본인의 상황이 솔롱고와 맞닿아 있다는 걸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한, 솔롱고는 이주노동자로서의 상황과 본인의 처지를 깨닫는다. 불행한 처지를 통해 공감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며, 나영과 솔롱고는 결혼한다. 희정엄마는 나영에게 “너는 좋겠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살 용기 있어서.”라고 말하며 나영과 솔롱고의 결혼을 행복한 결말로 묘사한다.

그런데 갑자기 왠 결혼일까? 나영은 법 바깥에 오묘히 자리잡은 비정규직과 여성의 삶을, 솔롱고는 이주노동자가 부조리를 겪어도 저항하지 못하는 구조를 드러내는데, 왜 그 마무리가 둘의 결혼이란 말인가? <카지노 쿠폰는 제기한 문제를 다른 층위로 가져와 비겁하게 마무리한다. 많은 사회 문제를 제시하고 해결과 성찰의 과정 없이 다급하게 마무리하는 것은 되려 문제의식을 소거한다. ‘여러 시련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살아내는’ 삶의 의지로 마무리함으로써, <카지노 쿠폰는 한 발짝 더 나아가지 않음으로써 관객에게 짐을 주지 않는다. 관객에게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거리를 둘 여지를 주는 것이다. 이는 관객이 적극적으로 문제의식을 고찰하거나 이면을 상상할 기회를 소거한다. 주인공이 성 소수자였다면? 등장인물들이 순응하지 않고 투쟁한다면? 사회에 결혼 제도가 없다면? 동거 문화가 없었다면? 국가가 사라진다면?

등장인물이 사회문제를 내면화하고 개인적 차원에서 문제를 마무리함으로써 관객에게 안심을 주는 <카지노 쿠폰의 안일함은 캐릭터 설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카지노 쿠폰의 남자 주인공은 솔롱고라는 이름을 가진 몽골에서 온 이주노동자이다. 그는 몽골에서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 솔롱고는 몽골어로 무지개라는 뜻이다. 가사에서 볼 수 있듯이 몽골사람들은 한국을 솔롱고 즉 무지개라고 부르는데, 몽골사람들이 한국을 기회의 땅, 무지개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 중에서의 솔롱고의 현실은 무지개라는 이름 뜻과 많이 다르다. 그는 월급을 받지 못해 공장장에게 전화를 걸어 “돈 주세요”라는 어리숙한 한국말로 고작 한 두어 마디밖에 할 수 없으며, 끊어진 수화기 너머로 한국에서 배운 욕 한마디 하고 속으로 눈물을 삭힌다. 그럼에도 동생의 학비를 보태야 하고, 몸이 건강하지 못한 부모님의 치료비를 벌어야 한다. 그의 대사처럼 하늘과 친하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작은 옥탑방에 살고 있고, 일한 만큼의 대우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 솔롱고는 늘 밝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렇게 그는 이름 뜻처럼 소나기 후 펼쳐질 무지개를 꿈꾸며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2. 안전

따라서 <카지노 쿠폰의 얼룩은 우리에게 안전하다. <카지노 쿠폰는 멈춘다.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인권을 억압하는 권력과 제도에 대해 적극적으로 투쟁하기보다는 한바탕 눈물을 흘리고, 서로를 위로하며 기운을 차린다. 그리고 극은 실질적으로 해결된 바가 없지만 인물들이 희망을 노래하는 가운데 끝을 맺는다. 나영은 부당하게 불이익을 당한 것이 억울하지만, 당장 그만두면 재취업 교육도 받을 수 없는 실정이라 참고 견디기로 한다. 그리고 솔롱고는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한 채 해고되지만,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수밖에 없다.


작품에서 ‘고맙습니다’라는 대사는 두 번 등장한다. 한 번은 솔롱고가 주인집 사내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자신을 도와준 주인집 할머니에게 전하는 대사이고, 다른 한 번은 나영이가 직장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집에 돌아와 한창 울다 털어놓는 마음이다. 단 두 번의 ‘고맙습니다’는 정적 속에 등장하며 강조된다. 그러나 이는 정말로 ‘고마운’ 상황인가? 등장인물에게 감정을 이입한 채 작품 내에서 본다면 선의를 베푸는 이웃들에게 전하는 진솔한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를 멀리서 지켜보는 관객은 그들이 안전하게 상황을 마무리하였다는 데에 안심하게 된다. 여기서도 <카지노 쿠폰는 불쾌하고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을 주저한다. 우리 사회에 고맙다며 정을 나눌 이웃은 얼마나 존재하는가? 우리 사회의 공동체 의식과 유대감은 얼마나 공고한가?

제도를 보다 적극적으로 고발할 수는 없었을까? 등장인물들에겐 힘이 없다. 체제를 변화시킬 힘이 있거나, 제도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저 대상화되고 밖의 시선에서 보여지는 사람들이다. 스스로 목소리를 갖고 발화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이야기하는 능동적인 주체가 아니다. 타자화된 상태에서 묘사되는 이야기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시금 타자화하고, 이들은 여전히 외부에 주어진 힘에 의해서 작동되고 있다.


소수자는 체계에 의해 정의된다. 소수자가 수적인 소수를 넘어 소수자성을 강요받는 데에는 권력과 제도가 작동한다. 권력이 만든 제도 속에, 사람이 정의된다. 그러나 <카지노 쿠폰는 소수자의 문제를 고발하는 듯하면서도 권력이 만든 제도에 안착해 있다. 특히나 <카지노 쿠폰가 공고히 하는 것은 국민됨의 구성요소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어떤 사람을 국민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우선 ‘한국인’이,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라야’ 한다. 단, 서양인은 괜찮으나 동양, 특히 동남아시아 출신은 배척한다. 그리고 최저시급이라도 받는 직장에서 비정규직으로라도 '일'하며, 장애가 없고, 심지어 이성 간 '결혼'에 이를 수 있는 자여야 한다.

<카지노 쿠폰는 그저 안정적인 체계의 변화에 대해 논하지 않은 채로 사람들이 받는 혐오의 표현 문제가 ‘도덕적으로’ 이러면 안 되는 것이라는 수준에서 멈춘다. 이것은 윤리적인 인권의 문제라고 포섭해버리기만 한다. 모든 것을 평평하게 만들어서 그저 표현의 문제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카지노 쿠폰가 정녕 사회를 적극적으로 고발하고자 했다면 국민됨을 구성하는 것들이 변화해서 더 다양한 국민됨을 포섭하거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이를 해체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관객이 느끼는 것은 감동이 아니라 불안일 것이다. 기존에 안착해 있는 제도와 구조가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불안을 느낄 때 고발과 변화의 의미가 미학적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카지노 쿠폰의 오랜 시간동안, 관객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것은,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구조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감각에서 기인한다. 나의 체계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감동이 가능하다. 관객의 카타르시스는 <카지노 쿠폰가 구조를 고발하였을지는 몰라도, 그 근간을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카지노 쿠폰는 최고급 삼성 세탁기에 다우니 세제를 쓴다. 다시 말해, 정석의, 고성능의 것만 사용한다. 제도가 만들어낸 사람은 무시하고, 사람이 만들어낸 제도에 또다시 사람을 끼워 넣는다. 물론 카지노 쿠폰가 여느 상업적 뮤지컬과는 달리,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분명하나, 결국 <카지노 쿠폰는 약자를 끊임없이 국가 안으로 편입하고 체제를 재생산하고 있을 뿐이다. 소수자를 정상성에 굴복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혐오를 용인하며, 국민됨을 공고히 한다.

<카지노 쿠폰가 그 평에 걸맞게 사회의 구조를 고발하는 데에서 나아가 그 이면까지 드러내는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국민됨을 걸고 넘어가기 위해서는, 체제 자체를 변화시키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관객에게 희망이 아니라 불안을 선물해야 한다. 내가 안착해 있는 구조의 부조리함을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불안, 체제의 불완전함을 깨닫고 언젠가는 이것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사람이 쌓아 올린 제도가 등장인물의 삶을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는 불안, 그 제도에 나도 동참하고 있었다는 불안을 말이다. 등장인물들이 얼룩 같은 슬픔을 탈탈 털어 날려버리려고 할 때 그 얼룩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질문하게끔 하고, 등장인물들을 억압하고 있는 것은 <카지노 쿠폰가 묘사하는 이면의 것이라는 사실을 안겨주어야 한다.

나영과 솔롱고가 세상의 부조리한 메커니즘을 뒤집어엎기는 힘들더라도, 문제의식을 다른 층위로 가져와 해결된 것 마냥 덮어버리는 것은 비겁하다. <카지노 쿠폰의 메시지가 한 발짝 더 나가, 불안을 선물하기를, <카지노 쿠폰가 사회의 얼룩을 드러내고 빨아버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카지노 쿠폰의 얼룩이 세상에 던져지는 질문이 되기를 바란다.


참고 문헌

이원현. (2006). [발제] 뮤지컬 〈카지노 쿠폰가 보인 얼룩진 카지노 쿠폰감. 공연과이론, (22), 9-14.

윤성원. (2017). 창작뮤지컬 <카지노 쿠폰에 나타난 리얼리즘 연구. 공연예술연구, 5(0), 50-79.

현수정. (2010). [공연 리뷰] 카지노 쿠폰, 쓰릴 미 - 창작자의 의지가 반영된 진정성 있는 소극장 뮤지컬. 공연과이론, (39), 23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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