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가 됐는데도 시당숙모는 아직 오시지 않았다. 언제나 제일 일찍 오신 분이라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했다. 시아버지 기일은 무슨 일을 제쳐두고서라도 참석한 분인데 설사 못 오신다 해도 아무런 연락 없이 오지 않을 분이라 자리에 모인 집안 친척들은 모두 좌불 안석이다. 집에 전화를 해도 신호만 갈 뿐 받지 않았다. 집에 혼자 계실 분이 아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기만 들었다 놨다 했다. 추모예배로 드려지는 기일은 꼭 오 실 분이 오시지 않자 그렇게 정신없이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고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다음날 일요일에 무료 카지노 게임과 사촌 동생 제종 형과 동생들은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사고를 염려하여 당숙모를 찾으러 다녔다. 당숙모 집 주변 병원을 샅샅이 뒤기 시작했다. 두사람씩 조를 짜서 병원 응급실을 확인하고 다녔다. 오후 5시쯤 무료 카지노 게임한테 전화가 왔다. 당숙모 집 주변 병원 영안실에 싸늘한 주검으로 누워있다는 말을 듣자 수화기를 잡았던 손에 맥이 풀려버렸다.
결혼 한지 60여 년, 무료 카지노 게임과 10년을 함께한 세월이 결혼생활의 전부였다. 무료 카지노 게임과 사이에 아이를 출산할 수 없는 여자로서는 치명적인 사실에 무료 카지노 게임은 자식을 보겠다며 일찍이 별거생활로 들어갔다. 여성은자녀생산의 수단으로만 여겼던 그 옛날의 풍습대로 무료 카지노 게임은 딴살림을차렸다. 상대는 어린 딸을 데리고 혼자 사는 한국전쟁미망인이었다.무료 카지노 게임은 새살림 차린 동거녀와 거기서 낳은 아들 3형제를 데리고 고향에 본처를 남겨두고 서울로 떠나 버렸다. 시골에서 홀로 농사지으며 떠나버린 무료 카지노 게임이 언젠가는 돌아올 것을 믿고 기다린 세월이 50년이 넘었다.
새로 살림 차린 사람과 세 아들을 낳고 함께 살고 있는 무료 카지노 게임이 돌아온다는 것은 또 다른 이산가족을 만드는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되는 상황이 돼 버렸다. 한 해 한 해를 손꼽던 햇수가 더해 갈수록 힘든 삶의 무게를 종교에 의지해야 했고 가파른 인생길을 홀로 가야 하는 길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홀아비인 줄만 알고 만났던 동거녀는 아이를 낳은 후에 엄연히 본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아버지가 없는 딸의 아픔을 새로 태어난 아들에게 또다시 물려주고 싶진 않았다. 아픔을 안고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 하는 동거녀도 가슴 아픈 삶을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었다. 집안 경조사에 참석해도 떳떳지 못한 아웃사이더의 신분이라 가슴에 차오르는 분노를 혼자서 삭혀야 했다. 혼자서 외롭고 긴 세월의 무게를 견뎌 내야 하는 본처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분도 오랜 세월을 편치 못한 삶을 살아왔다. 당숙모도 시골 살림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오셨지만 누구에게 경제적 지원은 없었다. 비록 무료 카지노 게임과 같이 살지는 않지만 집안 경조사에는 항상 앞장서서 기쁨과 슬픔을 같이했다. 생명처럼 붙들고 있는 신앙의 힘 때문인지 항상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마음의 평강은 어떤 환경이나 금전보다는 그 사람의 사고에서 나온 것 같다.
언젠가는 돌아올 거라 믿고 그렇게 기다린 세월을 살았건만 무료 카지노 게임과는 끝내 재회하지 못하고 갑작스러운 무료 카지노 게임의 부음 소식을 듣고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당숙아저씨는 사실혼관계에 있는 동거녀와 살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함께 살고 있는 동거녀의 충격도 컸지만 드러내놓고 슬픔을 표현하지 못한 본처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이었다. 살아있을 때도 같이 생활하지 못했지만 갑작스레 가신무료 카지노 게임의 마지막 임종도 지키지 못해서 마음의 아픔이 더했을 것이다. 하루 이틀 기다린 60여 년의 세월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고 절망하는 시간이었다.
집안친척들이 장례에 참석해서 모든 일을 맡아서 했지만 당신 무료 카지노 게임의 장례엔 역할이 없었다. 화장하러 화장터로 관이 이송되자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려는 듯 화구 앞으로 관이 들어가는 곳을 보려고 서성이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렸지만 속으로 슬픔을 삼켜야 하는 처지의 당숙모나 평생 음지에서 살아온 사실혼 관계의 당숙모나 가슴에 쌓이고 맺힌 정도는 비슷할 것이다. 두 사람은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가 아니라 두 사람 모두가 피해자였다. 비록 마음 터놓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상대도 피해자라는 공통심리가 있었는지 서로 드러내놓고 비방하지는 않았다.
우리 시아버지 기일과 돌아가신 시작은아버지 49제가 겹쳤다. 당숙모는 시골에 49제 지내러 가는 사촌 동서에게 현지 못 따간다고 잘 다녀오라고 얘기하러 새벽에 사촌 동서 집에 가다가 사고를 당했다. 겨울이라 아침 6시여도 컴컴한 시간에 검은 외투를 입어서 건널목을 건너는 당숙모를 못 보고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는 승용차에 치였다.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해서 중환자실에 있을 때까지 의식이 있었다. 간호사가 이름을 묻자 윤0례라고 말한 것을 윤 0희라고 들었다. 병원 주변에서 산다는 것까지 알았지만 틀린 이름으로 환자 집까지 소식 이 가지 못했다. 병원원무과마다 환자의 이름을 대며 찾아다니다가 비슷한 이름의 환자가 병원중환자실에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입원한 친지들 병상 앞에서 위로해 주고 기도해 준 분이었지만 싸늘한 시신으로 홀로 누워있는 것을 확인한 조카들은 망연자실했다.
평생 당신을 위한 삶은 없었고 문제 있는 곳엔 달려가서 문제의 중심에서 지혜로운 중재자가 되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흔히 자식을 위해 산다고 하지만 그분은 당신의 사적인 삶이 아닌 주변에 봉사하는 정신이 강했던 것 같다. 친척들 간에 문제가 있는 곳엔 항상 당숙모가 있었고 해결하는 중재역을 해왔다. 정작 당신의 인생사는 제대로 풀지 못하고, 당신이 중재를 해서 사건의 실마리를 풀듯이 누군가가 중재하지 못하는 인생의 석양에서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한 번쯤 되돌아봤을 법 한데 해결되지 못한 채로1인가구의 외로운 삶을 정리하고 그리던 무료 카지노 게임의 곁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