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 카지노 쿠폰 살아도 다르지 않습니다. 봄풀출판, 2021
두 카지노 쿠폰이 있다고 하자.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고 평생 함께 할 것을 다짐했다. 매일매일 꿈같은 날들이 지나가고, 다들 그렇듯이, 사소한 일로 다투는 일이 생겨서 한동안 소원해졌다. 한 카지노 쿠폰이 나서서 사과한다. "이만, 예전처럼 돌아가자." 다른 카지노 쿠폰이 말한다. "절대로, 예전과 같아질 순 없어."
틀린 말은 아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것은 쉼 없이 변해간다. 그들이 싸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들의 내일이 항상 그들의 어제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2019 말부터 몇 년 동안 전 세계를 정지시킨 팬데믹처럼, 우리는 더 이상 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렇더라도 이런 비가역성을 맞닥뜨리게 되면 왠지 뭔가를 잃었다고 아쉬워하게 된다. 커다란 상실감에 잠긴다. 우리에겐 언제나 좋았던 옛날이 '정상'이고, 그날이 지나가면 '비정상'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상적인 삶으로의 회귀를 갈망한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연인들의 사소한 다툼조차 관계의 비가역적인 변화를 만드는데, 이 사람은 삶의 모퉁이에서 갑자기 암과 부딪혔다. 책 제목과는 달리, 암과의 교통사고 이후 그의 삶은 송두리째 달라진다. 암의 어떤 점이 그의 삶을 깊게 휘도록 만들었을까? 질병이 주는 육체적 고통?,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 그리고 2번의 수술 등 치료과정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 '암'이라는 병명의 무게? 죽음에 대한 공포?
막상 카지노 쿠폰 다른 것 투성이었다. 식단이 달랐고, 체력이 달랐고, 몸의 반응이 달랐다. 날 보는 시선이 달랐고, 관계가 달랐고, 일상의 우선순위가 달랐다. 삶의 가치와 기준, 태도가 달랐다. 삶의 형태와 질이 달랐다. Pg.205
저자는 총 3부로 나뉜 구성을 통해 자신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담담하게 서술한다. 그가 전체 암환자의 고통을 대변하려고 한다던가 암 환우의 고충 만을 나열하면서 암 투병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호소하려는 모습은 없다. 단지 한 개인의 투병 생활을 잔잔하고 자세하게 그려나가면서 저자 자신이 맞닥뜨렸던 <표준치료 과정과 그로 인한 자신의 변화를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여기에 자신이 겪었던, 지극히 주관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육체적 / 정신적 고통이 결합되어 있다.
아마도 처음에는 자신에게 암 환우 낙인이 찍히게 되면서 번잡스러워진 자기 주변 모든 카지노 쿠폰들에게 미안해했을지도 모르겠다. 진료나 검사를 받는 날이면 남편은 업무를 하루 빼야 했을 것이고, 아이들의 학업에 관심이 소흘해질 수밖에 없었을 테니. 가뜩이나 정신없이 바쁜 병원 대기실의 하중을 늘렸고, 대한민국 최고 암 권위자들의 바쁜 시간을 쪼개 얻어내는 것에도, 마감시간 맞춰서 주사를 놓아주는 간호사에게도 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비록 암에 걸린 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투병생활 때문에 일상이 일그러지는 주변 가족, 친지들 모두에게 미안함을 가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존감도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후 국내 최고 병원의 <표준치료라고 하는 패키지 프로그램으로 관리를 받게 되면서, 그는 마치 식재료 가공공정 선반 위에 놓인 고깃덩이와 같은 느낌을 받는다. 자신 - 암 환우를 둘러싸고 정신없이 쏟아부어지는 암 치료 서비스 상품들의 융단폭격에 이렇게까지 해서 목숨을 연명해야 할 일인가 하며 자괴감을 느끼게도 된다.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탄 물건처럼 아픈 부위에 따라 몇 개의 진료과를 전전카지노 쿠폰. (중략)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예의 바른 환우였다. 아픈 게 죄는 아니었지만, 고개가 꺾이고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이유 없이 죄인이 되어 스스로 감금시켰다. Pg.10
견딜 수 없는 통증? 그런 건 없었다. 통증은 24시간 지속되지 않았다. 날 망가뜨린 건 그런 게 아니었다. 3개월마다 약 처방 받으며 목숨 구걸하는 게 비위 상카지노 쿠폰. 그 자체가 형벌이었다. Pg.23
그러자 카지노 쿠폰들의 관심이나 걱정도 더 이상 그냥 담백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피상적인 인사치레나 환자의 안부를 걱정하면서 자신의 건강을 확인하고 안도하는 걸 구별하게 되었다.
카지노 쿠폰들은 내가 암이라니까 어쩌다 암에 걸렸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지적했다. 너는 네가 잘못해서 아픈 거고 나는 내가 잘해서 건강한 거야. Pg.86
죽음을 목도한 사람들은 일상과 감정, 사유의 파격적 업그레이드를 간증했다. (중략) 난 좀 달랐다. 뭐랄까.. 한 단계 성숙이 아닌 뒤틀린 퇴보였다. 카지노 쿠폰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했지만, 증오와 분노를 버리지 못했다. 용서하지 못한 사람은 기억에서 삭제했다. Pg.20
하지만, 암 환우로서 저자를 가장 절망하게 만든 것은 두 가지. 그중 하나는 불확실한 여생 때문에 미래에 대한 기약을 할 수 없다는 것.
죽음 앞에 실제로 섰을 때, 말처럼 대범해질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느닷없는 팬데믹과 대면했던 세계는 지난 몇 해간 도시봉쇄, 재택근무와 같은 방식으로 일상을 송두리째 멈춤으로써, 인간이 죽음의 공포와 대면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 역설적으로 증명했다. 마찬가지로 저자 역시 암 환우라는 인형껍질이 덮여 씌워짐으로써 당장 1년 후의 미래도 약속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사회에서 수많은 서비스와 상품들이 '지금, 당장'이 아닌 '미래'를 겨냥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보험이나 연금은 물론이고, 사교육, 건강 상품, 계절상품 할인 행사, 최신형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모두, 소비자들의 미래를 저당 잡아 현재를 갉아먹으면서 시장경제구조를 지탱해 간다. 그런 산업구조 안에서 한국 인구의 3분의 1인 암환자는 저들의 시장에 속해있지 않다는 것 역시 발견했다.
이제 늙음은 선택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당연한 늙음이 나에겐 당연하지 않았다. 고작 1년 만기 정기적금도 망설였다. 그때 카지노 쿠폰있을까? 글쎄... 세일가에 여름 바지 하나 사는 일도 주저했다. 그 '여름'이 올까? 자신 없었다. Pg. 17
무엇보다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미래를 그리는 일이 무척 제한적이라는 것에 슬퍼하는 자신을 보고, '나도 어쩔 수 없는 어미였다'라며 뇌까린다.
나 하나 죽는 걸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건 그들 몫이라고 방관하며 이기적으로 굴었다. 남들은 잘도 피해 가는 불운을 받아들이느라 또래 아이들이 겪지 않아도 되는 상처로 아파하는 아이들을 모른 체카지노 쿠폰.(중략) 죽냐고 묻는 열네 살 딸아이 질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봤자 나도 어쩔 수 없는 어미였다. (중략) 죽냐고 묻는 아이에게 그렇지 않다고 당당하게 대답하지 못카지노 쿠폰. 한심카지노 쿠폰. 어미로서 자격미달이었다. Pg.132
2017년 8월에 암 환우가 된 후 내 인생에 2020년 크리스마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 이후 '오늘'이 아닌 '미래'는 판타지였다. 2021년 크리스마스 그날을 희망해 본다. 절망할 거라고? 그래도 어쩔 수 없다. 3년 전, 2020년 크리스마스는 기적이라며 절망했었다. Pg.234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혈관이 '도망'다닌다는 이유로 팔뚝을 난도질당하는 채혈의 순간도, 항암치료 때문에 생기는 호르몬의 변화나 두통, 구토, 탈모 등 모든 부작용도, 죽음에 대한 공포도, 불안정한 미래로 인한 적막함도, 내 안의 암세포도, 이 순간을 참고 견디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암투병으로 인한 외모의 변화도, 관계의 굴절도, 사람들의 인식도, 환자로서 자존감의 하락도, 무너진 일상 모두 암과 싸워 이겨내면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암 선고와 표준치료 시작부터 저자가 겪은 모든 것은 과거로 회복이 아닌 암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그 상태의 생명 유지, 그 상태의 삶의 질 유지가 목적이었다.
새로운 치료를 시작할 때마다 '정상'의 기준은 매번 치료 직전 '상태'로 업데이트 됐다. 이후로 내 몸의 '정상'을 판단하는 기준은 암 이전 '건강한 상태'가 아니었다. 오늘 또 상황이 나빠진다면 회복해서 돌아올 지점은 3년 전 암 이전이 아니라 '지금, 여기 이 몸'이다. Pg.51
조금 올라가다 벤치에 주저앉았다. 더 올라갈 수 없었다. 이건 뭘까 당황카지노 쿠폰. (중략) 이제 다시는 항암치료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그날, 산 밑 그 벤치에서 몸은 무지한 나에게 경고장을 날리며 내가 암 환우라는 걸 분명하고 명확하게 인식시켰다. Pg.55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 과거로의 회귀가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저자는 암세포와의 공존이 아닌 '암 환우'라는 신분과의 공존을 선택했다. 팬데믹 이후 변한 세상에서 정상의 기준을 일컫는 단어 '뉴노멀 (New Normal)'처럼, 저자는 이제 자신의 '뉴노멀'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오롯이 쓰기로 했다. 지금 현재의 삶에 충실하기로 했다. 비(非) 암환자들처럼 미래에 대한 준비와 노후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진 까닭이다. 그렇게 발견한 것이 '글쓰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 말을 달리 표현하면 이전보다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카지노 쿠폰. 이전보다 나은 존재. 울음을 그치고 고민의 방향을 틀었다. 어떤 존재로 살 것인가. 어떤 존재로 살고 싶은가. Pg.61
환우가 되고 나니 남는 게 시간이었다. 통증 없는 날은 암을 잊었다. 걸신들린 카지노 쿠폰처럼 영화 보고 책을 읽었다. 하루에 적게는 한 편, 많게는 서너 편의 영화를 봤다. 한꺼번에 대여섯 권의 책을 돌려가며 읽었다. 그리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Pg.172
사형선고처럼 모든 카지노 쿠폰이 두려워하는 질병에 걸리고 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뭘 하고 싶은 의지는 없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어떤 욕구와 의지가 생겼다는 건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됐다는 걸 의미했다. 어쨌든, 몸이 회복되자 어딘가 날 쏟아놓고 싶었다. 일목요연하게 삶을 정리하고 싶었다. 내 안에 차오른 글이 물처럼 흘러넘쳤다. 받아 적기 급급해 글의 형식이나 완성도는 뒷전이었다. 글은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끌고 가고, 어떻게 마무리할지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아도 저대로 흘러갔다. (중략) 써놓고 보니 무턱대고 쓴 글에 내가 알아채지 못한 생각과 감정이 들어있었다. 글을 쓸수록 마음에 근육이 붙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는데,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근육이 하나둘 생겼다. Pg.150
글쓰기가 암세포로 점령한 몸을 치료할 순 없었지만, 몸 안에 갇힌 불안한 마음은 다독여 주었다. 카지노 쿠폰들이 말하는 '치유의 글쓰기'가 이런 걸까? 그럴지도. Pg.153
저자의 말대로 이제 암은 대중적인 질병이다. 그래서인지 암투병에 대해서는 유난히 전문가들이 많다. 혹자는 산소공급이 제일 중요하니 무조건 숲으로 가라고 하고, 혹자는 암이 아니라 항암치료과정이 사람을 죽인다고 단언한다. 생존율 70%에 빛나는 최신 서구의학 기술과 더불어 수많은 전문가들이 자신의 치료방법을 공식 / 비공식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는 암이다 (26%. 2021년 기준).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심을 매개체로 암 투병 시장도 성장해 간다. WHO의 연구 결과 (2014)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전 세계 암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은 1조 1600억 불이라고 하고 (김동겸, 암 발생자 증가와 민영 보험 시장, KIRI 고령화 리뷰, 2017에서 재인용), 한 매체 보도에 의하면 국내 항암제 시장은 연간 90조 원에 이른다고도 한다 (경향신문, 2017, 12, 14). 이런 상황에서 <표준치료를 감행했던 저자의 선택이 옳았던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암과 마주친 대부분의 암 환우들은 서구 의학에서 정립한 항암 - 수술 - 방사선 - 항암 과정의 <표준치료를 선택한다.
문제는 어떤 치료 방법을 선택했든지 간에, 자신에게 주어져 남아있는 삶의 악보를 어떻게 변주해 나갈 것인가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암 이전의 생활 만을 추억하고 열심히 투병생활을 헤쳐나가면 언젠가는 과거로 회귀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저자는 암에게 선사받은 새로운 삶을 새롭게 꾸려나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암 이후의 삶을 즐기고 매 순간의 행복을 찾는다. 비가역적인 삶의 변화에서 절망을 뿌리치고 새로운 자아를 찾은 저자. 어쩌면 비로소 자신의 온전한 정체성을 찾은 저자는 충분히 아름답다.
결혼 후 난 결혼제도의 최대 피해자인 양 살았다. 날 존중하지 않는다며 그들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멀리했다. 내가 불행한 이유는 모두 그들 때문이라고 단정지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을 무시했다. 나와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고 그들을 경멸했다. (중략) 쓰면서 알았다. 그들과 나는 달랐을 뿐 틀린 카지노 쿠폰은 없었다는 걸 말이다. 날 괴롭힌 건 그들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 자신이기도 했다. Pg.152
'치열'까진 아니어도 나름 분주하게 살았다. (중략) 내가 원한 삶이 이런 건 아닌데... 왜 내 삶의 기준이 다은 사람의 삶이고 행복일까.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이 삶의 형태를 왜 기를 쓰고 따라 할까.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다들 이렇게 카지노 쿠폰. 그러니까 왜.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우리 모두 불행을 자처하는 거냐고? 암환우가 되자 일상의 모든 의무에서 면제되었다. Pg.222
암 환우로 산 3년은 슬프고 우울하고 두렵고 고통스러웠지만, 사회가, 가정이, 세상이 나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들과 멀어지면 홀가분했다. '쓸데없는 짓'만 일삼던 이십 대 초반, 내 본질이 살아있던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갔다. 카지노 쿠폰 함께한 몇 년은 내 인생에서 최고의 시간이었다. 죽음을 앞둔 지금 가장 후회되는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난 주저 없이 대답한다 - 더 쓸데없이 살 걸 그랬어. Pg.174
나의 본질은 글쓰기다. 글 쓰고 있을 때 호흡이 돌아오고 맥박이 뛰며 생명의 징후들이 보이고 영혼이 깨어난다. 그 순간 행복과 불행은 감정의 하위 개념이다. 글쓰기는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몰입과 희열로 나를 달군다. 내 안의 암세포와 공존하며 글 쓰며 살고 싶다. 그게 죽음 앞에서 만난 나의 본질이고, 정체성이다. Pg.247
암은 게으른 회의론자인 내게 끝없이 용기를 요구하며 성가시게 굴었다. 이 글은 거기에 부응하는 작은 성의다. Pg. 8
그동안 저자가 맞닥뜨린 암투병 증상의 비가역성을 제 탈모의 비가역성과 견주어가며 웃기지 않는 농담을 던진 것에 대한 심심한 사과문입니다. 그래도 뭐, 저라고 뭐, 맨날 맨날 웃길 수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