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은권 Jan 03. 2025

[은행원이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한숨 카지노 게임

직장편 네 번째 이야기

직장편 세 번째 이야기

최팀장은 김선배와 함께 스크린 골프를 다녀오는 길이다. 게임 후 먼저 카운터로 온 최팀장이 두명 치를 함께 계산하려는데 김선배가 뒤에서 말렸다.


"최팀장. 각자 계산해. 우리 오래 만날 사이잖아"


친해서 따로 계산하는게 더 어색하다. 하지만 앞으로 누가 냈는지, 누가 낼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편하게 느껴졌다.


이에 반해 최팀장은 팀원들이 못마땅하다. 팀원들과 점심을 마치고 카지노 게임를 마시러 가는 이 길이 말이다. 또다시 카지노 게임를 사야만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최팀장은 카지노 게임를 그리 즐기지 않는다. 카페에서 5천 원, 6천 원이 넘는 카지노 게임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굳이 사무실에 있는 일회용 카지노 게임를 마다하고 비싼 카지노 게임를 고집할 생각도 없다. 더구나 최근 들어 카페인 때문인지 카지노 게임를 한잔이라도 먹은 날에는 저녁에 쉽사리 잠들기가 어렵다.


이런 생각도 잠시.

카지노 게임를 주문하고 난 뒤 멀뚱멀뚱 서 있는 팀원들을 보고 있으면 서둘러 지갑을 꺼낼 수밖에 없다. 단지 직급이 높다는 이유로 떠밀려 계산을 하니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새로운 세대라고 일컫는 MZ에게 더치페이가 디폴트라고 하던데 회사에서는 달리 적용되는 것 같다.

카지노 게임

그래 뭐. 한두 번은 그럴 수 있다. 내가 가장 고참이고 연장자이니까. 하지만 하루이틀도 아니고 사는 횟수가 쌓이다 보니 이제 제법 경제적으로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더구나 오늘처럼 밥값과 함께 카지노 게임까지 계산할 때면 금세 지갑이 가벼워진다.


혼자 생각만 하지 말고 그냥 솔직히 팀원들한테 각자 계산하자고 이야기해 보라고 조언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최팀장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느껴질 어색함을 견딜 자신이 없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아도 쪼잔한 팀장이라고 팀원들이 비웃을 것만 같다. 돈이 아까운 건 사실이지만 짠돌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긴 싫다.


한참 나이 어린 후배 직원이 "팀장님! 카지노 게임는 제가 사겠습니다"라고 먼저 말하면 어떨까. 내심 후배 직원의 센스 있는 멘트에 감탄할 것 같다. 하지만 어린 직원이 카드를 꺼내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볼 자신이 없다. 결국 "됐습니다. 팀장인 제가 살게요."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사는 것도 불편하고 그렇다고 얻어먹는 것도 편치 않은 딜레마에 빠져 버렸다.


최팀장은 불현듯 즐거워야 할 점심시간에 이런 생각하는 게 억울해진다. 그래서 속으로 다짐한다.


'그냥 내가 계산하고 말란다.'


'김선배. 이번 주에 스크린 골프 갑시다'




(은행원이 딸에게 3줄 요약)

1. 내가 사기 싫으면 남들도 사기 싫다.

2. 쏘지 못할 거면 쏘라고 쉽게 말하지 말자.

3. 얻어먹으면 꼭 기억하고 나중에 갚어라. 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