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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 드는 방 Apr 09. 2025

김장하 카지노 게임, 어른 고픈 시대에 만난 진짜 어른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보고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내가 내 것을 누구에게 주었다는 생각조차 버리는 것.”
그는 이 말의 의미를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이다.
한결같이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진, 진짜 교육자다.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김장하 카지노 게임 친구의 인터뷰 중-
이런 분이 정말 계시다고?
이렇게 사는 게 정말 가능하다고?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생각이다. “어떻게 이런 분이 계시지? 왜 이제야 알게 된 걸까?”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어느 순간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슬픔이나 안타까움 때문은 아니었다. 감동이라기엔 부족하고, 존경심과 경외심이라 해야 할 그 감정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되어 넘쳐버린 것이다. 진짜 계셨구나, 이런 어른이. 꼰대만 가득하고 어른은 사라졌다고 말하는 이 시대에, 감히 닮을 수는 없지만 닮고자 노력이라도 해보고 싶은, 진짜 어른이 바로 그곳에 계셨다.




1944년 1월 16일, 경상남도 사천군 정동면 장산리 노천마을에서 김장하 카지노 게임은 태어났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를 겨우 졸업한 뒤, 삼천포의 한 한약방에서 '머슴살이'를 시작했다. 낮에는 약을 썰고, 밤에는 책을 읽으며 공부한 끝에 열아홉 살, 최연소로 한약업사 자격을 취득했고, 1963년 사천군 용현면 석거리에 작은 한약방을 열었다. 9년 뒤, 진주시 동성동으로 이전한 남성당한약방은 무려 50년 가까이 운영되다가 2022년 5월 말, 그의 은퇴와 함께 문을 닫았다.


남성당한약방은 입소문만으로 전국 각지에서 찾아와 줄을 서는, 소문난 한약방이었다. 좋은 약재만을 고집하면서도 약값은 쌌고, 무엇보다 약효가 뛰어나니 시골 약방은 새벽부터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한약방 옆 수정다방은 손님들이 번호표를 받아 대기하는 장소였고, 직원을 20명 가까이 써야 할 만큼 약국은 바쁘게 돌아가 전국에서 가장 세금을 많이 내는 한약방이 되었다. 그러나 카지노 게임은 아픈 사람을 상대로 번 돈을 함부로 써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고, 차곡차곡 돈을 모아서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한약방 수익은 모두 지역사회를 위한 나눔으로 돌아갔다.

카지노 게임카지노 게임이 흩어뿌린 거름이 사회 곳곳에서 아름다운 사람꽃을 피워냈다.

그는 평생을 사회운동과 자선사업에 헌신했다. 1983년 학교법인 ‘남성학숙’을 설립하고, 이듬해에는 100억 원이 넘는 사재를 들여 명신고등학교를 세웠다. 학교 운영 10여 년 동안 체육관과 도서관 등 시설을 완비한 후, 1991년에는 학교 전체를 국가에 기부했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과정에서 단 한 번도 본인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2년 전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김장하 카지노 게임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다. 나 역시 며칠 전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어른 김장하 다큐멘터리를 발견하기 전까지 김 카지노 게임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를 보던 중 뜻밖에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지난 4월 4일, 윤석열 전대통령에게 탄핵을 선고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등장한 것이다.문 대행은 고교·대학 시절 김 카지노 게임의 장학금을 받고 공부한 ‘김장하 장학생’이었다. 1986년 사시 합격 후 김 카지노 게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러 갔더니 “줬으면 그만이지 내가 보답 받을 이유가 없다. 갚으려거든 사회에 갚으라”며 식사 대접조차 마다하셨다고 한다.다큐멘터리에 등장한 그는 제자들이 몰래 준비한 김 카지노 게임의 생일 축하 자리에서 카지노 게임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문 대행과 같이 '김장하 장학금' 혜택을 받은 이들은 지금까지 1,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들이 사회 곳곳에서 평범하면서도 성실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며 카지노 게임에 대한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시하는 모습 또한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왔다.

카지노 게임2019년, 김장하 카지노 게임 생일을 축하하며 감사를 전하다 울컥하는 문대행. 지난 4일, 그는 김장하 카지노 게임께 받은 것을 제대로 우리 사회를 위해 갚았다.


김장하 카지노 게임의 관심과 지원은 교육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사회, 문화, 예술, 역사, 인권 등 진주 지역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 닿아 있다. 그는 지역 문화예술 단체를 조건 없이 지원했고, 시민 언론인 <진주신문의 주주와 이사로도 참여했다. 1995년부터는 ‘진주가을문예’를 27년간 꾸준히 후원했으며, 국립 경상대학교 최초의 기부 건축물인 남명학관 건립에도 앞장섰다. ‘진주문화를 찾아서’ 문고 발간, 형평운동기념사업회와 진주문화연구소 설립 등도 모두 그의 손길에서 비롯되었다. 장학사업은 남성문화재단을 통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는 위기의 지역서점 ‘진주문고’를 두 차례나 살려냈고, 여성평등기금을 조성해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지금도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가정폭력 피해여성들을 위한 쉼터를 이미 20년 전에 큰 돈을 지원하여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정행길 진주 가정폭력 피난시설 이사장은 김장하 카지노 게임에 대한 첫 인상을 '공부가 잘 된 스님 같았고 깊은 호수 같은 분' 이었다고 표현했다. 여성 인권에 대해 말도 못 꺼낼 시대 분위기에 가정 폭력으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의 삶에 관심을 가진 사람. 인간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과 존중이 이러한 따뜻한 시선과 돌봄을 가능케 한 것일까.

그 밖에도 극단 현장의 터전 마련, 진주여성민우회의 창립, 남명학과 진주오광대, 솟대놀이의 재조명 등, 그의 삶은 진주라는 지역의 문화와 사람을 살리는 데 온전히 바쳐졌다. 2000년 설립한 남성문화재단이 2021년 해산되자, 그는 남은 기금 34억 원을 경상국립대학교 발전기금재단에 기탁했다. 재단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의 나눔은 이어졌다. 글로 정리하고 보니, 그 삶이 더욱 경이롭게 다가온다. 한 사람의 훌륭한 어른의 인생이 곧 하나의 역사가 될 수 있음을 새삼 느낀다.


다큐멘터리는 김주완이라는 한 은퇴한 기자가 김장하 카지노 게임의 생애를 책으로 쓰기 위해 카지노 게임을 인터뷰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좀처럼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는 카지노 게임을 취재하기 위해 거의 매일같이 카지노 게임을 찾아간 덕분에 ‘허락 없이 만들어진 다큐멘터리‘가 완성됐다. 그래서 다큐멘터리의 많은 부분이 카지노 게임과 김주완 기자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지만,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사이를 채운 건 말보다 긴 침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인터뷰 질문에 대답하다 보면 그 끝은 당신 자랑이 될 수밖에 없잖아요. 카지노 게임은 그럴 것 같으면 그냥 입을 다물어버리세요.”

김장하 카지노 게임은 그렇게 다큐멘터리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종종 입을 다물었다. 그의 선행을 치하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그의 선의를 곡해하고 제멋대로 해석해 욕되게 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그는 자신의 뜻을 말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카지노 게임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묵묵히 견뎌냈고, 살아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전하는 사람, 그가 바로 ‘어른 김장하’였다.

카지노 게임굽은 등으로, 특유의 종종걸음으로 걷는 카지노 게임의 뒷모습은 유독 보는 내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명신고를 설립하며 이사장이었던 김장하 카지노 게임이 세운 원칙도 그의 침묵만큼이나 그와 닮아있다.

하나, 친척은 단 한 사람도 채용하지 않는다.

둘, 금품을 받고 채용하는 일은 절대 없다.

셋, 어떤 권력에도 굴하지 않는다.

원칙을 어기려는 시도에 대해서 카지노 게임은 언제나 단호했다. 어느 국회의원이 추천한 교사를 단 하루 만에 채용 취소한 일화는 특히 인상 깊었다. 채용이 취소되고 며칠 후, 교육청에서 감사가 내려왔고 연이어 세무 조사가 시작됐다.

“그리 나오면 난 쉬워요. 왜냐하면 잘못한 게 없거든.”

갑작스럽게 세무조사와 감사를 당해도, 아무것도 나온 게 없었다. 깨끗하게 살아온 삶 자체가 카지노 게임을 지켜주는 가장 큰 방패였던 것이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카지노 게임은 작고 고요하다. 그러나 또한 한없이 맑고 깊고 크다. 어른을 한자로 쓰면 대인(大人), 큰 사람이다. 이 말이 카지노 게임처럼 잘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어른의 넓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큰 뜻은 또 다른 좋은 어른들을 길러냈다. 카지노 게임의 장학금을 받고도 해야할 공부는 재쳐두고 학생운동에 뛰어든 것을 죄송하다고 말한 제자에게 카지노 게임은 이렇게 말했다.

“공부나 데모나, 국가를 위한 봉사라는 점에선 똑같다. 공과를 따지자면 나는 오히려 후자를 택하겠다.”

그 한마디가 제자의 마음을 얼마나 가볍게 해 줬을까. 진짜 어른의 말은, 판단이 아니라 지지에서 시작된다.


스스로를 김장하 키즈라 칭한 한 제자가 한 말도 기억에 남는다.

“무언가를 직접 가르쳐주기보다, 카지노 게임의 삶 그 자체가 지표였습니다.”

그가 만든 길 위를, 수많은 장학생들이 따라 걸어왔다. 그가 일생을 통해 보여준 '어른'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배우고 싶고, 닮고 싶은 본보기가 되었다.

말보다 삶으로 가르친 사람.

나눔을 조건 없이 실천한 사람.

언제나 내가 아닌 이웃을 위해 산 사람.

이렇게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와 같이 살아갈 진짜 어른 김장하 카지노 게임. 그 존재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어른'이라는 단어 앞에 조금은 덜 자조적이고, 냉소적일 수 있지 않을까.


어른이란 무엇일까.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누구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이렇게 훌륭할 삶을 살고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부지런히 노력해왔습니다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세월은 정말 부끄럽지 않도록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김장하 카지노 게임을 보며 생각하게 된다. 어른이란, 말보다 삶으로 보여주고 가르치는 사람, 남을 돕는 일이 곧 나를 위한 일임을 아는 사람, 내가 가진 것을 다 내어주고도 부족하진 않았나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요즘은 ‘어른’이라는 말이 종종 조롱당하거나, 아예 사라져 버린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특히 뉴스에 매일 등장하는 부끄러운 어른들의 모습을 볼 때, 나에게도 그들과 닮은 모습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될 때면 더욱 그렇다. 그런 시대에 김장하 카지노 게임 같은 분을 늦게나마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참 고맙고도 다행스럽다. 카지노 게임의 조용한 걸음이 남긴 큰 울림 앞에서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 사람은 진정 어른이었다”라고 기억될 수 있을까.


닮고 싶지만 감히 닮을 수 없는 그 삶 앞에서, 나는 다만 작게나마 다짐해 본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자. 누군가의 인생에 아주 작은 따뜻한 온기라도 전해줄 줄 아는 어른이 되자. 카지노 게임은 다큐멘터리의 끝자락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가라. 그렇게 계속 가면 된다.”

그 말처럼 나도 조급해하지 않고, 내 삶을 어른답게 살아내기 위해 한 걸음씩 걸어가고 싶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그렇게 계속 걸어가고 싶다. 내가 바라고 꿈꾸는 어른의 모습을 향하여.

수백억 자산가인 그는 평생을 자가용 없이 사부작사부작 걸어다녔다. 자켓은 안감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입었으며 자신을 위해서는 부자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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