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모임 다섯 번째 책 <이건 다만 카지노 쿠폰의 습관을 읽고
햇살 드는 방
늦은 밤까지 뒤척이다
아직 까만 아침, 이불 헤집고 먼저 눈 뜬 시
해가 뜨려면 아직도 한참 더 남았는지
창밖엔 온통 뿌연 먹색이 고요하다
어쩌면 하루 종일 이어졌을 뒤척임은
밤사이 꿈에서도 계속됐던 걸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슬픈 꿈을 꾸고 일어난 듯
물 한 잔 넘겨봐도 명치끝이 먹먹하다
엎치락뒤치락
이렇게 저렇게
앞으로 뒤로
굴리면 굴릴수록 복잡하게 얽히고 마는 생각의 실타래
차라리 책장 넘기듯 쉬우면 좋으련만
억지로 넘겨낸 페이지는
자꾸만 책갈피 꽂힌 기억으로, 돌아가고 또 돌아간다
한 번 구겨진 자리는 다시는 빳빳이 펼 수 없다는 듯이
내 목에 걸린 것은 못 다 내뱉은 이기심일까
내 가슴에 막힌 것은 못 다 게워낸 어리석음일까
내 외침이 가 닿을 곳은 텅 빈 허공, 혹은 꽉 막힌 벽
정신을 차리려고 찬물을 끼얹고 마주 본 거울 속
우두커니 마주친 두 눈이 가엾다
그래, 그건 다만 카지노 쿠폰 뻔했던 시
제대로 가닿지 못한 마음
홀로 추슬러야 할 생각
뒤척임의 시간을 고이 접어 안주머니에 넣어두자
구겨지고 찢긴 흔적 억지로 펴지 말고 차곡차곡 접어두자
그러다가 먼지 쌓여 그만 잊히지는 않게, 가끔씩 꺼내어보자
창 밖은 그새 아침
너도 까만 밤을 흔들어 깨워 오늘을 맞이해야지
그래, 이건 다만 카지노 쿠폰에 관한 시
카지노 쿠폰 뻔했던 시, 그뿐이다.
2월에는 서서모임 작가님들과 창비시선 500 기념시선집
<이건 다만 카지노 쿠폰의 습관을 읽었습니다. 얼마 만에 사보는 시집인지, 서점에서 찾은 시집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첫카지노 쿠폰을 다시 만난 듯 아련히 설렜습니다.
처음에는 글 동무들과 함께 한 편 한 편 순서대로 읽어나갔죠. 그러다 몸도 맘도 바쁜 겨울 방학, 순간순간 현생에 치이다 보니 차분히 앉아 시 읽을 마음의 짬이 나지 않아 서재에, 식탁에 책을 두고 오가며 뜨문뜨문 시와 만났습니다. 찌개와 밥을 끓여놓고 밤냄새를 맡으며, 설거지 마치고 축축한 앞치마 두른 채로, 수업 사이 잠깐 쉬는 시간 찻잔을 들고, 잠들기 전 하품하면서도 생각날 때마다, 손길 닿을 때마다 책을 펼쳐 한 두장씩 읽었습니다.
어느 날은 우연히 펼친 페이지에서 원인 모를 허전함을 땜질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책장 한 귀퉁이에서 수정 같이 맑은 순수의 눈빛과 마주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종종 읽어도 읽어도 이해하지 못할 문장과 씨름하기도 하고, 사막처럼 막막한 단어의 모래더미 속에서 오아시스 같은 보석의 단어를 주워 담기도 했습니다.
기분 따라, 상황 따라 펼쳐진 시 한 편이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 오늘 기분이 좀 별로였군요."
"저런, 아깐 왜 그렇게 화를 냈어요? 한 번만 더 참지."
"괜찮아요, 애들은 그렇게 싸우면서 크는 거예요."
"원래 삶은 힘들고 외로운 거예요. 이제 그만 인정하고 받아들여요."
상담소를 찾듯, 타로점을 보듯, 그날의 점괘를 뽑듯 그렇게 시를 읽으며 머리로는 해석되지 않는 아름다움을 마음으로나마 받아들여 보고 싶었습니다. 시는 그저 마음으로 읽으면 되는 거니까요. 교과서에 밑줄 긋고 해석 달아가며 분석하고, 외우던 그 시절 시들도 사실 하나하나,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들이었나요?
저는 시를 읽을 순 있어도 읽어내진 못할 줄 알았습니다.
시를 적을 순 있어도 써 내려가진 못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가슴속 답답함이 가득 찼던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단어 하나가 흘러나왔습니다. 쓰려던 게 아닌데 흘러나와 정신 차려보니 문장이 되었고, 그렇게 써진 한 행은 또 다른 행으로 이어졌습니다.
쓰는 동안 내 마음속 침묵의 감정들이 조금씩 굴려지고, 빚어지고, 다듬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산문을 쓸 때는 좀처럼 느끼지 못했던 치유의 경험을 시를 쓰며 처음 느껴본 것 같습니다. 이것이 ‘심상’의 힘일까요. 대놓고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기에 더 솔직하게 나를 돌아볼 수 있고, 풀어헤칠 수 있었습니다. 무엇도 헤집거나 해치지 않고.
막연히 시인들에 대해서 상상할 때면 그들은 슬픔이 많은 사람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마음이 여리고, 감각이 예민하며, 남들과 달리 보이는 자기만의 세상을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야 살 수 있는 특별한 사람들. 그런 사람만이 시를 쓸 수 있고, 시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시집에서 만난 시인들은 하나같이 그저 열심히 살아내는 따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구의 마음에 가 닿을지 모를 마음의 단어들을 씨실과 날실로 부지런히 엮어 행과 연으로 정성스레 짜고 또 짜는 사람들. 습관처럼, 생활처럼, 숨 쉬듯, 그렇게 쓰는 사람들.
시를 쓴다는 것, 어쩌면 시인에게는
그건 다만 카지노 쿠폰의 습관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권의 시집이 하나의 세계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독자의 적극적인 읽기 행위를 통해야만 한다. 시를 카지노 쿠폰하는 이들이 없다면 시는 공중으로 흩어지는 빈 소리에 지나지 않으리라. 그러나 우리가 시를 진정으로 카지노 쿠폰한다면, 그리하여 시가 들려주는 그 낯선 목소리에 우리의 마음을 포개어볼 수 있다면 우리는 보다 새로워질 수 있고, 시는 우리와 함께 더 먼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
/ 안희연, 황인찬 시인 / 엮은이의 말 中
그들의 카지노 쿠폰의 습관이 공중으로 흩어지는 빈 소리가 되지 않게, 우리가 새로워질 수 있게, 시가 우리와 함께 더 먼 곳으로 나아갈 수 있게 계속해서 시를 읽고 애정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혹시 또 어느 날 우연히 제 마음에 차곡차곡 채워진 슬픔과 외로움이, 기쁨과 행복이, 그리움과 카지노 쿠폰이 흘러넘쳐 시가 되어 쓰일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오늘도 가만히 시집을 펼쳐봅니다. 습관처럼. 습관이 되도록.
<이건 다만 카지노 쿠폰의 습관 中 마음에 담은 시와 문장들
p.8
바람같이 쉬운 시를 쓰고 싶다고,
카지노 쿠폰의 아픔들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바람의 괴로움을
내 어찌 모르겠는가.
/ 오래 한 생각 / 김용택
p.18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은
어떻게 울까
/ 캔들 / 안미옥
p.40
그 이름이 하 맑아 그대로 둘 수가 없으면 그 사람은 그냥 푸른 하늘로 놓아두고 맺히는 내 마음만 꽃받침이 되어야지 목련꽃송이마다 마음빛 달아두고 하늘빛 같은 그 사람을 꽃자리에 앉혀야지 그리움이 아니었다면 어찌 꽃이 폈겠냐고 그리 오래 허공으로 계시면 내가 어찌 꽃으로 울지 않겠냐고 흔들려도 봐야지
또바람에 쓸쓸히 질 것이라고
이건 다만 카지노 쿠폰의 습관이라고
/ 목련 / 이대흠
p.53
내 안의 카지노 쿠폰은
빈집 한 채를 끌어안고 산다
/ 빈집 한채 / 박경희
p.80
호미 한 자루를 사면서 농업에 대한 지식을 장악했다고 착각 적이 있다.
/ 안도현 / 호미
p.82
우리
이번 봄에는 비장해지지 않기로 해요
처음도 아니잖아요
아무 다짐도 하지 말아요
서랍을 열면
거기 얼마나 많은 다짐이 들어있겠어요
/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 / 유병록
p.94
카지노 쿠폰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으리으리한 것이다
/ 카지노 쿠폰의 전당 / 김승희
p.100
갑자기 찾아온
이고통도 오래 매만져야겠다
주머니에 넣고 손에 익을 때까지
각진 모서리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리하여 마음 안에 한 자리 차지할 때까지
이 괴로움 오래 다듬어야겠다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를 힘들게 한 것들이
우리의 힘을 빠지게 한 것들이
어느덧 우리의 힘이 되지 않았는가
/ 오래 만진 슬픔 / 이문재
p.118
계단을 들고 오는 삼월이 있어서
/ 높은 봄 버스 / 심재휘
p.126
오늘은 작은 새가 탱자나무에 앉네
푸른 가시를 피해서 앉네
(중략)
새는 아직도 노래를 끝내지 않고 옮겨 앉네
나는 새와 한그루 탱자나무가 있는 집에 사네
/ 새와 한그루 탱자나무가 있는 집 / 문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