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아비대의 시기를 통과한다. 문제는 그 시기를 벗어나지 못할때이다
2025.4.4. 오전 11시 22분
윤석열이 파면되었습니다.
이대로 넘기기는 어려워 한 번 윤석열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첫번째로는 윤석열이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대해서,
두번째 글은 윤석열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
마지막으로는 앞으로 우리가 꼭 해야 할 것 - 배를 띄우는 물에 대하여 -을 써보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의 행동이나 선택을 예측할 때는 그 사람의 과거를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선택이란 결국 그의 과거 삶, 경험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그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걸어오는 모습을 똑같이 보더라도,
구두수선을 하는 사람은 발걸음을 보고 구두굽이 얼마나 닳았는지를 가늠할 것이고,
스타일리스는 그 사람이 입은 옷과 코디를 보고 재산상황, 패션감각, 여친 유무 등을 볼 것이고,
헤어 디자이너는 그 사람이 한 머리를 보고 어느 곳에서 머리를 했을지를 짐작할 것입니다.
윤석열이 왜 비상계엄을 했는가, 비상계엄 이후에 왜 그렇게도 당당하지 못한 태도로 궤변을 일삼으며 지지세력 결집에만 몰두하였는가?
이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은 그의 과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생각은,
자아비대증인채로 만인지상의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 그게 바로 윤석열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자아비대증’은 병이기보다는 성장과정의 일부입니다.
아이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으며 자랍니다.
그러나 좀 성장하여 말귀를 알아듣고 하게 되면 훈육이 시작됩니다.
질서를 배우고 예절을 배우며 공공장소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 들도 알게 됩니다.
그럼에도 사춘기까지는 천상천아 유아독존과 같이 '나만 옳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요즘 용어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소위 중2병이 나타나는 것도 이 때입니다.
재벌집의 숨겨진 자식이라는 출생의 비밀, 숨겨진 초능력, 사실 나는 남이 모르는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고 지금은 단지 힘을 숨긴채 평범하게 생활하는 것이라는 그런 "나는 남과 달라", "나는 특별한 존재야."같은 생각 말입니다.
우리는 성장하고 살아가며 만나는 모든 만남과 경험을 통해 자아비대증을 자연스레 해소해 나갑니다.
만약 이 과정이 원활하게 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메타인지가 결여되고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되지 않을까요?
그 결과 성인이 되어서도 나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이나 의견을 “나를 비난하거나 방해하는 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저는 윤석열의 문제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는 자아비대의 시기를 지나지 못한 채, 만인지상(萬人之上)에 올라버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의 성장경로, 활동공간, 만나는 사람, 그의 선택 등이 자아비대증을 자연스럽게 조정하기보다는 오히려 강화시키는 쪽으로 작동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처음 윤석열이 사시 9수를 했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미담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끈기와 노력, 고진감래 뭐 그런 의미로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쎄함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보통은 사시건 공무원시험이건 9수까지 가지 않습니다.
스스로 '아, 나는 이 시험은 안되겠구나'를 느껴서이건,
가정형편이 N수 이상 전업공부를 지원해주기 어려워서이건,
친구들 보기 쪽팔리거나 취업으로 돌리기 어려운 나이대로 진입하고 있어서이건,
윤석열처럼 집에서 밀어줄 여력이 되더라도 가족에게 미안해서 스스로 그만두건,
그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결국은 고시를 접게 됩니다.
지금 예로 든 것들이 메타인지의 결과입니다.
나만이 아닌, 내 가족의 상황, 심경을 살피고 동년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고 나의 객관적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역지사지, 메타인지입니다.
재수에서건, 삼수에서건, 사수에서건 그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고 그만두는 이유는 각자 다를지언정 보통 9수까지 고시를 보지 않는 것은 바로 메타인지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9수까지 했다?
물론 끈기의 상징일수는 있지만 동시에 메타인지가 부족했음을 나타내주는 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메타인지를 강제적으로 장착하게 되는 계기가 있습니다.
사회진출입니다.
평범한 사람은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와갑과 을의 위치를 모두 경험합니다.
갑의 위치에 더 많이 서게 되느냐, 을의 위치에 더 많이 서게 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항상 갑으로 있거나 을로만 있는 경우는 생각해보면 잘 없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사회에서 항상 갑으로 살아가는데 익숙한, 그리고 갑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이 바로 검사입니다.
변호사는 법조 3륜에서 기본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습니다.
판사와 검사를 상대로 의뢰인의 이익을 보호하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구조상 절대 갑이 될 수 없습니다.
대형로펌이라 하더라도 페이와 소득이 쎄고 고객영업을 더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 대형로펌이나 개인 개업 변호사나 기본적으로 판사, 검사에 대하여을입니다.
그런데 검사는 다릅니다.
기소독점권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검사가 죄가 있다고 공소를 제기하면 그 사람이 정말로 무죄라 하더라도 온 집안가세를 기울여서 방어해야 하고, 진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검사가 공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아무리 판사가 벌하고 싶어도 벌할 수가 없습니다.
윤석열은 2002년 검찰을 떠나 한 대형로펌에서 1년간 변호사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검찰로 돌아갔고그 이후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입니다.
저는 이 점을 주목합니다.
결과적으로 윤석열은 사회에 나와 을의 입장에 서 봄으로써 메타인지를 강제적(?)으로라도 장착할 기회를 다시 한 번 놓쳐버렸습니다.
어쩌면 을이 되어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비위를 맞추고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인생에서 겪는 어려움의 상당수는 돈으로 해결 가능합니다.
그래서 돈이 많고 거기다 사회적 지위까지 있는 사람은 인생이 참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으로도어떻게 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부부관계, 자식문제입니다.
모든 결혼생활이, 모든 부모가 자녀양육을 통해성숙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부모들은 결혼생활과 자녀 출산, 양육을 통해 그 전보다 조금이라도 더성숙한 인간이 됩니다.
다들 잘 아시는 것처럼 윤석열은 결혼이 매우 늦었습니다.
2012년 52세의 나이로 김건희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보도된 김건희의 통화들을 보면 남편에 대한 존중, 존경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기사나 유튜브에 나온 내용들만으로 봤을 때, 두 사람은 대등한 부부관계라기보다는 윤석열이 일방적으로 김건희에게 맞추고 있거나 아니면 주도권을 완전히 포기한 듯한 모습입니다.
이건 빈말로라도 건강한 관계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심리학자가 아닐뿐더러 언론이나 유튜브에 나온 단편적인 사실만을 갖고는 도대체 왜 윤석열이 부인에게 그렇게까지 저자세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뇌피셜을 돌려본다면 윤석열이 검찰생활을 오래 한 것이 힌트가 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윤석열은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에서 의견을 주고받기보다는, 수직적이고 위아래가 확실한 관계를 편해하거나 선호했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윗사람, 내가 못하다라고 생각하는 상대에게는 확실히 자세를 낮추고, 반대로 내가 인정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어쩌면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을 지지한 사람들은 이런 면을 보고 착각한 것이 아닐까싶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지점은 두 사람 사이에 자녀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아기를 한 번이라도 키워본 부모는 모두 공감하실텐데...
아기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특히 신생아는 내가 쉬고 싶은 시간, 다른 것을 해야하는 사정 아무것도 고려해주지 않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사랑으로 돌봅니다.
과거에 서울대를 나와 사시를 패스하고 검사가 된 사람은 한, 둘이 아닙니다.
그들이 윤석열이 되지 않았던 것은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강제적으로라도 메타인지를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 몰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윤석열이 2003년 검찰로 복귀하지 않고 계속 변호사로 활동했더라면?
만약 윤석열이 52살이 아니고 좀 더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았더라면?
만약 52세에 결혼을 하더라도 배우자가 김건희가 아니었다면?
물론 그랬다면 윤석열은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이 될 일 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만약 제20대 대통령이 되었더라도 최소한 '25.4.4.의 탄핵인용은 없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비판은 받고 박한 평가를 받을지언정 어쨌건 임기는 마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