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앞집 벽의 조그만 구멍에 먹이를 물어 나르는 조그만 새가 있었는데 앙증맞게 생긴 것이, 인터넷 조류도감을 찾아보니 '카지노 게임'라는 이름의 텃새였다. 가족들과 매일 오가며 둥지에서 무럭무럭 크고 있을 아기카지노 게임들을 상상해 보는 재미가 좋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6월 29일, 카지노 게임네 가족에게 정말 대형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퇴근을 하다 습관처럼 벽을 쳐다보니 평소와 뭔가 다른 것이 느껴졌다. 어미들이 머리 위를 분주히 맴돌고 있는데 '나 때문에 못 들어가나?' 싶어 구멍쪽을 봤는데, 세상에나! 누군가 온 벽을 스트로폼으로 덮어버린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앞집 주인이 집을 수리하면서 인부들을 불러다 외벽 공사를 하고 계신 것이었다. 순간 머리 속이 하얘졌다. 못을 박고 곳곳에 시멘트도 발라 놓았던데 그럼 저 안의 새끼들은 어떻게 되는거지? 아내에게, 저런 공사를 하고 있으면 주인한테 이야기 좀 하지 그랬느냐고 핀잔을 줬다. 사태를 알아차린 아이들이 더 몸이 달았다.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새들을 구해 달라고 난리다. 난감한 상황에 내가 직접 앞집 주인 할아버지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씀드려 보았다. 이러이러해서 저 안에 카지노 게임들이 크고 있으니, 구멍이라도 조그많게 내 주시면 안 되겠느냐고.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완강한 거절이었다. 돈 들여서 하는 공사인데 무슨 새 같은 것 때문에 중단하느냐고. 사소한 데까지 신경쓰면 되는 일 하나도 없으니 더니 이야기하지 말라신다. 하지만 아이들의 압박 수위도 점점 높아져갔다. 엉엉 울면서, 자기들이 돈 낼 테니 당장 저 스티로폼을 떼어 달란다. 할 수 없이 이번엔 인부 아저씨를 찾아가 통사정을 했다. 잠시만 떼내어 주시면 내가 새끼들을 꺼내 보겠다고. 남시 난감한 표정을 짓던 아저씨가 다행히도 우는 아이들과 벽을 번갈아 보시더니, 구멍이 있던 부분의 스티로폼을 걷어내 주셨다. 탁자를 놓고 올라가 들여다 보니 처음엔 두 마리쯤이 보였는데, 억지로 손을 쑤셔 넣어 조심조심 꺼내보는데 웬걸, 다섯 마리나 되었다. 임시변통으로 곤충을 키우던 통에다 마른 걸레를 깔고, 녀석들을 넣어주었다. 둥지를 밖에다 두자니 지나다니는 고양이들 때문에 걱정되어 창문을 열고 창가에 놓아두고 어미의 반응을 살펴 보기로 했다. 사람 손을 탄 새끼들이라고 비정하게 버릴까봐 내심 걱정이 됏지만 곧 기우임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다가오지 않던 어미가 용감하게 날아와 먹이를 먹여주더니 재빨리 날아간다. 우려와는 달리 딱새 어미들은 사람이 가까이에 없으면 제 새끼들을 굶기진 않았다. 수컷은 대범하게 통 안에까지 들어와 먹이를 먹여주고, 암컷은 소심하게 통 위에서 주고 갔다. 곤충, 벌레, 열매까지 온갖 먹이를 다 물어다 먹이는데 하룻밤 새 녀석들이 싸 놓는 똥이 너무 많아 걸레를 갈아줘야 했다. 때아닌 아기 카지노 게임 구출 작전에 우리 가족의 저녁일과가 모두 틀어져 버렸다. 아이들은 숙제 할 생각도 안 하고 녀석들만 바라보고, 나도 그 녀석들 잘 자라고 컴퓨터랑 불도 켜지 못하고 숨죽이며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벽속에 생매장될 뻔 했던 다섯 생명을 구해줬다는 사실에 마음이 뿌듯했다. 다음날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 줬더니 다들 놀라워하며, 카지노 게임가 나중에 박씨 물고 오는 거 아니냐며 즐거운 농담을 건넸다. 천적들에게서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한밤중에는 창문을 닫았지만, 이른 새벽부터 날아와 애처롭게 날개를 파닥이며 울어대는 어미 때문에 아침잠을 설치곤 했다. 어미들이, 어미 하나는 정말 부지런히 물어 날랐다. 다행히 어느 정도 자란 녀석들이었는지, 둘째 날부터는 한 마리씩 어미를 따라 날아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한 마리 한 마리 이름까지 붙여줘 가며 정을 붙이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다가온 이별에 또 울음을 터뜨렸다. "쟤네들은 저렇게 자기 힘으로 날아가야 잘 살 수 있는거야"라고 달래 주었지만 나도 아이처럼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 날아가지 전에 추억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아기 카지노 게임를 손 위에 올려놓고 휴대폰과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보았다. 어찌나 얌전하게 앉아 똘망똘망하게 쳐다보는 지 그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남은 녀석들에게도 어미의 모정은 대단했다. 남의 둥지에 알만 낳고 내뺀다는 뻐꾸기를 떠올리니 정말 비교가 되었다. 전깃줄에 앉아 새끼를 바라보며 꽁지를 까딱까딱하면서 "딱딱딱딱"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 때문에 이름도 카지노 게임로 붙여진건지. 입으로 내는 소리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뭏든 나중에 조류 전문가에게라도 꼭 물어보고 싶다. 5일 동안을 그렇게 우린 아기 카지노 게임들을 지켜보았는데 마지막 2마리까지 모두 날아가는 걸 보며, 아무쪼록 잘 자라서 어미처럼 우리집 근처에 와서 다시 둥지를 틀어주길 기원했다. 빈 둥지에 남은 새똥과 깃털. 허전함이 밀려왔지만 한편으론 카지노 게임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돈 주고도 얻지 못할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줘서 너무 고마웠다. 나도 더 나이 들면 삭막해지는 건 아닐까 싶은 마음에, 우리 아이들은 커서도 그런 마음씨를 계속 가져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기 카지노 게임들이 다행히 한 마리도 죽지 않고 모두 날아갔지만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온갖 자연의 시험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을까 걱정이다. 연약한 날갯짓을 하며 포르르 날아가는 모습은 앙증맞고 귀엽기만 했는데... 해마다 이맘때가 새들이 새끼를 키우는 시절인가보다. 평소 별로 관심 갖지 않았는데 요즘은 출퇴근할 때 아기 새들이 유난히 자주 눈에 띈다. 일렬로 어미 따라 종종걸음 치는 꺼병이들, 시끄럽게 쫓아다니는 어미들과 날기 연습중인 직박구리 새끼들, 덩치 큰 산비둘기 새끼까지. 카지노 게임와의 며칠 인연으로 새를 바라보는 나의 시야가 한층 넓고 부드러워진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아기새들이 탈없이 무럭무럭 자라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아기 카지노 게임들이 오늘은 어디에서 날갯짓을 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지는 저녁이다.
================================= 강화도에 살 때는 시골답게 추억이 참 많았다. 함께 살던 발발이 '초롱군', 낚시바늘을 삼켜 죽어가던 석모도의 부리 잘린 갈매기, 그리고 이 아기 카지노 게임들이 기억에 가장 남는다. 딱 요맘때였던 것 같다. 아직도 그 똘망똘망했던 눈망울과 마지막 한마리가 날아갈 때의 시원섭섭했던 기분이 잊혀지질 않는다.
모두들 무사했을까? 강화 고려궁지 뒷편 북산 숲에서 또 다른 가정을 이루어 잘 살고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