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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Feb 28. 2025

카지노 게임치기

뒷자리에 딸아이가 너무 조용하여 룸미러로 뒤편을 바라보다 운전 중 내 얼굴을 마주쳤다. 상당히 낯이 익으면서 동시에 좀 생경한그런 인상. 어디서 봤더라.


운전 중 내얼굴은 아빠의 얼굴을 똑같이 닮았다. 웃음기 없이 작게 뜬 눈, 살짝 쳐진 입꼬리가 노화와 팔자주름으로 더 내려앉은 모양, 반쪽 눈썹 그리고 윤기 없고 노란 피부가 그것이다. 딸은 크면 엄마를닮는다는데, 나는 영락없이아빠의판화다. 뭔가 말 붙이면 혼날 것 같은 얼굴.먼저 아는척해오기 전에 아는 척하기 어려운 얼굴.아빠의 특성들은이목구비에 속속들이 박혀 내 얼굴에 달팍 엎어져있다.


평소에 탤런트 신애라의 행보를 눈여겨본다. 그녀의 인간 됨됨이와 신앙, 그리고 삶에 부여하는 가치와 이상향 등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그녀가 나오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자연히 웃음이 난다. 웃음이 나면 줄곧 마음이 느긋해지고 사람은 조금착해지는쪽이 된다.나쁜 사람만 되지 말잔 생각이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기분으로 살짝 돌아서서,괜히 누군가에게 잘해주고 싶은 그런 심정이 이따금 들기 때문이다.그녀를 모니터 하던 중 나는 특별한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카메라가 다른 패널을 향하고 있을 때에도 입을 헤 벌리고 있는 것이다. 인생이 편안하면 자연히 저런 표정이 되는가 싶다가도 그녀 나름의 굴곡을 알기에 그것이 대체 어떻게 얻어져 굳어진 것인지 궁금하기 시작했다.


궁금한 것이 생긴다는 것은 좋아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의미가 된다. 난 그런 것을 발견할 때마다 유튜브에 물어보곤 한다. 검색창에 이름 세 글자를 넣으니 길고 짧은 영상들이 마구잡이로 화면에 달려든다. 긴 것은 볼 시간은 없고, 쇼츠 몇 개를 돌리다 만난 한 장면에 오래 멈췄다. 재생 시간이 끝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쇼츠는 그렇게 몇 차례 자동 재생을 했다. 신애라의 산행을 함께 한PD와의 대화 장면이었는데, 그녀는 산행 중 숨이 꼴깍하는 순간에도 광대를 올려 특유의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면 보이지 않는 실 같은 것이 눈꼬리와 광대, 그리고 광대와 입꼬리를 연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순간을 포착한 피디가 물었다. 왜 그렇게 웃고 계세요?

그녀의 대답은 다소 뻔했다. 웃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래서 일부러 웃어요.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온다. 남편의 기사 노릇을 해주는 차 안이었다. 쉭 지나간 룸미러 얼굴에 다시 아빠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신애라의 미소를 떠올렸다. 광대를 올리니 입꼬리가 자연히 따라 올라왔다. 비염으로 종종 구강호흡을 하는 나는 입도 조금 벌렸다. 윗잇몸과 딱 붙어있던 광대뼈 밑의 공간에 바람이 들면서 숨을 쉴 때마다 이뿌리가 시큰하면서 시원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운동 부족이던 광대 근육이 몇 분 지나지 않아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광대의 얼얼함이 관자놀이를 타고 두통으로 발전하는 것 같았다. 치과에 가면 으레 의사 선생님이 입술과 잇몸 사이에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넣어주던 담배꽁초 같은 것이 있었으면 했다. 그렇게 근육을 바짝 고정해 두고 얼굴엔 힘을 좀 빼고 싶었다.


입을 헤 벌린 채로 말도 없이 운전하는 내내 옆자리 남편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는 한동안 나를 좀 빤히 바라봤다. 분명, 쟤가 왜 이럴까, 했을 것이기에 조금 무안하기도 했다. 그는 처음엔 어떻게 면박을 줄까 궁리하는 것 같더니 이내 마음을 접은 듯했다.


주말에 시내를 벗어나 비교적 한적한 곳의 찻집에 앉아 오후를 보냈다. 구석구석 주인의 섬세한 손끝이 스쳐간 장소는 한 톨의 먼지도 용납하지 않았다. 등에 받치고 있던 쿠션의 커버가 방금 말린 듯 바스락거렸고, 유리창엔 지문 하나 얼룩 하나 볼 수 없었다. 곳곳의 아기자기함을 눈으로 감상하는 사이, 나도 좀 봐달라는 듯 무심히 지나가는 고양이가 발등에 스르륵하고 느껴지다 사라졌다. 9개월 된 고양이는 나이에 비해 덩치가 좀 비대했다. 누가 봐도 그 나이로는 안 보이는 외모.


고양이는 창밖을 바라보며 앉곤 했다. 그런 고양이의 등이 잘 보이는 곳에 나도 앉았다. 창밖에 뭐가 있길래... 고양이의 시선을 따라간 곳에 길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고양이들은 소리로 교감하지 않고 무의식으로 통한다던데... 창 안쪽의 고양이는 창밖의 고양이가 반갑고 좋은가 보다. 요지부종로 몇십 분을 앉아있는 사이에도 꼬리는 쉼 없이 좌우로 움직였다. 개처럼 기분이 좋아 흔드는 것인지, 아니면 먼저 흔들고 보는 것인지, 그래서 살랑대는 꼬리를 통제할 도리가 없는 것인지 궁금했다. 고양이를 세 마리나 키우는 집사 친구에게 즉시 물어보았다. 그는 오랜 집사 생활에도 그런 건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다. 하긴 그렇다. 고양이가 답해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설령 답할 줄 알아도 그 성격에 쉬이 답하지 않았을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는꼬리가 고양이의 의지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나는 그 반대다. 카지노 게임를 살랑살랑 이쪽저쪽 흔들고 있으니 기분도 덩달아 좋아져 저 자리에 꿈쩍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끼워 맞춘 감이 있지만, 광대에 바람을 넣는 일은 좀 중요해 보인다. 웃을 일을 만들어 웃지 않으면 정말 웃을 일이 없는 날들이 우리 일상에 얼마나 많은가. 꼬리를 흔드니 기분이 좋아졌을 수 있다. 광대가 '흥'하면 분위기가 흥할 수도 있다.


너를 어떻게 설명해. 귀여우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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