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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광 Sep 03. 2023

질 온라인 카지노 게임 나서는 이유

노동조합 전임자의 편지 5

질 것을 알면서도 나서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요?


8월 21일 월요일에는 사무실이 아닌 과천으로 출근을 했습니다. 전국언론노조의 집회가 있었거든요. 이름 하여 ‘방송장악위원회 폭주를 멈춰라’. 대통령이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을 면직시킨 이후 방송통신위원회는 2명의 방송통신위원만으로 TV수신료 분리징수, 공영방송 이사 해임 등의 안건을 연속해서 처리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신임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로 이동관씨를 지명했습니다. 월요일 집회의 이름이 절대 과장되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집회는 그 이름대로 방송통신위원회의 폭주를 멈출 수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만일 집회를 보고 생각을 돌이킬 정부였다면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로 이동관씨를 지명하지는 않았을테니까요. 그리고 8월 25일 금요일, 대통령은 이동관씨를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이오공감의 노랫말(곡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은 진리에 가깝습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photo by 금준경(미디어오늘, 2023.8.21.)


그 후 저는 카카오톡 프로필로 삼았던 ‘이동관 OUT'을 지웠습니다. 집회에서 외쳤던 ‘이동관 OUT'은 보기 좋게 구호로만 남았습니다. 진 것이지요. 하지만 예견하지 못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너무나 확실했습니다. 확실시되었던 패배입니다. 저만 그랬던 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한 명 한 명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월요일 집회의 참석 인원은 백 명 내외에 불과했거든요. 아마 모든 사람들이 다가올 패배를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지부장들 중심으로만 참석한 것이 아닐까요? 어차피 지는 싸움인데 조합원들에게 함께 해달라고 하기는 미안했을 겁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질 줄 알았던 싸움, 왜 나섰던 것일까요? 어차피 질 것을, 왜 대책 회의를 하고, 성명서를 쓰고, 집회 신고를 하고, 손팻말을 만들고, 트럭을 빌리고, 뙤약볕에 아스팔트에 앉아 구호를 외쳤던 것일까요?


그 이유를 찾다가 오늘에서야 글을 올립니다. 처음 글을 쓸 때 바로 위 물음에 대한 답을 못 찾았거든요. 이건 전투에서 진 것일 뿐 전쟁에서 진 것은 아니다. 역사는 결국 진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우리가 믿고 붙들어야 희망적 진리임에는 틀림없지만 이유로 삼기에는 억지가 있습니다. “현실주의자가 되라, 하지만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꿔라.” 체게바라의 이 멋진 말 역시 질 온라인 카지노 게임 대한 명분이 되지는 못 합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hieronimus bosch,십자가를 지고가는 그리스도(Christ carrying the Cross)

이렇게 답을 찾아 방황을 하다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죽음을 떠올렸습니다. 패배할 싸움인 것을 알면서도 대차게 부딪혔던 이 중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만한 사람이 있었을까요?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을 알았을 뿐 아니라 자신을 죽음의 절벽으로 밀어넣을 이가 몇 년 간 숙식을 같이 했던 제자라는 것도 미리 알고 있던 사람입니다. 모두의 배신과 비난, 그리고 모욕까지도 미리 알고 있었던 이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입니다.


누군가는 결국 부활하지 않았냐고, 부활을 알고 있기에 죽을 수 있지 않았겠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논리야말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활이 예정되어 있기에 죽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질 싸움임을 알면서도 그 길로 정진했다는 것. 그 지점에 신으로서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빛이 납니다. 죽음으로서 신성이 발현되었고 그로 인해 부활할 수 있었다고 저는 바라봅니다.


어렸을 떄부터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 분의 길을 따라 나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배워왔습니다. 이길만한 싸움만 하는 것으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합니다. 내가 밀알도 되고 겨자씨도 되어 썩어 없어져야 합니다. 어쩌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제자는 패배를 업으로 삼아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승리의 찬가는 내가 아니라 나중의 사람이 불러야 할 수 있습니다. 아니, 듣지도 못 할 승리의 찬가를 위해 패배할 싸움에 나서야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번 일을 통해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얼마나 위대했던 인물이었는지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새롭게 알아갑니다. 이번 싸움에서는 졌지만, 저는 제자도에 대한 힌트를 얻었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덧붙여 안도현의 시가 떠오릅니다. 시인이 모든 것을 알고 우리를 위로하는 것만 같습니다.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드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 나섰다가 지친 너는,
너는 비록 지쳤으나
승리온라인 카지노 게임 못했으나 그러나, 지지는 않았지

-시 <모항으로 가는 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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