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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간호사 Sophia Mar 03. 2025

미국에서 안 했으면 하는 간호사 업무

우리나라 만세다!

비록 미국에서 간호사로 돈 벌며 살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싫다거나 단지 미국병이 걸려서 이 곳에 온 것은 아니기에 이번에는 다른 시각으로 간호사의 업무를 보려 한다.


그렇게 좋아 보이는 미국 간호사가 정말 그렇게 좋기만 한 건지 말이다. 처음에도 놀라웠고 일하면 할수록 이건 아니다 싶은 일들을 하소연해 볼까.




1. 내 환자는 오롯이 내가 책임지기

- 니는 내가 책임진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모든 병동이 내가 맡은 환자들의 모든 것을 확인하고 관리해야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주치의처럼 일하는 것이다. 환자가 자신의 치료와 약, 또는 병원생활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가장 먼저 담당간호사에게 문의를 한다. 보호자들이 환자 업데이트를 원하는 것도, 다른 의료진들이 환자에 대해 문의하는 것도 무조건 담당간호사에게 연락이 온다. 그렇기에 처음 환자를 담당하게 될 때(어사인 assign 받는다고 표현한다) 환자가 어떤 문제로 와서 무슨 검사나 치료를 진행하는지 파악해야만 정확하고 빠르게 일처리를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액팅만 해본 간호사들은 업무자체가 많이 어렵고 힘들 수 있다. 적어도 차치정도는 해봐야 이곳에 와서 인계를 할 수 있는데 미국에서 간호사들 간의 1:1 인계는 정말 당연한 일상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임상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여기와 서도 적응하기 수월하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규모가 작은 병원은 차지와 액팅으로 나누어 일하는 곳이 많고(인원대비 효율이 좋기 때문에) 그러다 보니 액팅 간호사는 이유도 모르고 오더에 따라 일하기 바빠서 환자의 상태나 케어플랜은 아예 모르고 업무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적어도 종합병원 정도는 되어야 팀간호를 하면서 인계를 할 기회가 오는데 이때도 대부분 말은 팀간호이지만 연차가 높은 간호사가 차지를 보고 상대적으로 연차가 낮은 간호사가 액팅을 하는 식으로 일하면서 환자는 같이 파악하고 의견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일하는 것으로 나는 경험했다(다른 경험 있으면 공유해 주세요)


또 미국에선 내 환자에게 필요한 오더를 의사가 냈다고 해도, 필요도나 가능한 상황을 판단하여 다른 의견을 내거나 환자와 의료진 각자의 입장을 들어보고 중간에서 조율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으며 이때 의사들도 담당 간호사의 의견에 많이 의지하고 존중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책임감이 크다는 말이다


2. 대소변 치워주기

- 나는 멀티플레이어, 간호사와 간병인 그 사이 어딘가


미국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덩치가 산만한 환자들을 이리저리 침대에서 밀고 당기며 주기적으로 자세를 변경해 주고 소변, 대변을 치워주는 것이었다. 다행히 나는 비위가 나쁘지는 않은지 대소변을 치우는 것 자체는 거부감이 없다. 아마도 내 직업에선 당연한 일이라고 받아들인 것 같다. 하지만 근무시간 동안 2시간마다 한 번씩 자세를 바꿔주는 것과 예상치 못한 시간에 대변을 치워주는 것은 참 벅차다. 일단 체력이 너무 달린다.

나는 이곳에선 아주 작고 말라빠진 사람으로 보이는 편인데(당연히 실제론 아님) 적어도 최소 내 두 배는 되는 덩치의 사람들이 힘없이 누워서 내가 해주는 케어를 받기 때문에 아무리 힘이 장사라도 쉽지는 않다. 거기다 심각한 질병으로 병원에 온 사람들이기에 거동을 못할 지경이면 간이나 신장, 암이나 만성질환은 당연하게 가지고 있기에 정상적으로 대변을 보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더욱 치우기 힘들고 한겨울에도 땀범벅이 될 정도이다. 미국에서 일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


3. 식사주문받기

-음료는 뭘로 하시겠어요?


간호사가 되기 이전에 서비스직종에서 일을 했던 경력이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원하는 것을 잘 캐치하며, 적절한 때에 무언갈 해주는 것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있다. 그 덕에 이곳에서도 환자들에게 뭔가를 해주는 것은 그리 어렵게 느껴지진 않는다.

하지만 이런 나도 힘들 때가 있다면, 환자들이 자신이 병원이 아니라 호텔에 와있는 착각을 하는 것처럼 보일 때이다. 얼음물 달라, 탄산음료 달라, 약은 애플소스랑 먹겠다, 크래커 없냐 등등 바라는 것도 참으로 다양하다. 그리고 이미 병원에 와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환자들에게 어떤 것들을 무료로 제공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주문하고 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기도 한다. 가끔 홈리스들도 겨울에 밖에서 쓰러져있다가 실려오기도 했는데 따뜻하고 안전한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음식까지 챙겨주니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최대한 많은 음식과 음료를 먹으려고 애쓴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은 안쓰러워서 더 챙겨주기는 한다. 탄산음료도 콜라, 과일맛음료, 진저에일에다가 오렌지, 사과, 포도, 크랜베리, 푸룬주스까지 없는 게 없고 시리얼도 종류별로 구비되어 있는 데다 피넛버터,치즈,짭짤이,달달이 크래커도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다. 아침점심저녁식사메뉴도 요일마다 이미 정해져 있긴 한데 원하면 추가하거나 빼고 주문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메뉴판을 주고 먹고 싶은 것을 주문받아서 간호사 이름으로 키친에 오더를 넣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아예 더 보태서 “음료는 뭘로 할래?”라고 물어보고 이왕 해주는 거 호텔은 아니지만 환자와의 원활한 정서적 유대를 유지하기 위해 흉내는 내주려고 한다. 요즘엔 약 주고 내 할 일 다 하고 나오는 길에 “뭐 더해줘야 하는 거 있어?”라고 물어보고 한 번에 다 갖다 준다. 차라리 그게 일을 덜어준다. 그러면 두 번 세 번 부르지는 않거든 ㅎㅎ


4. 약 하나하나 챙겨주기

- 그 많은 약들 이름을 어찌 다 알까


처음 일하며 굉장히 신기했던 부분인데 미국사람들은 자기가 아무리 많은 가짓수의 약을 먹어도 이름이 뭔지, 용량이 얼마인지 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뭐에 먹는 약이다 혈압약이다 당뇨약이다 정도만 알지 약봉지 하나에 가득 담겨서 그냥 털어 넣는 것이 약 아니던가! 여기서는 대부분 자기가 먹는 약의 브랜드네임이나 성분명(제너럴네임)을 다 알고 먹는다. 그래서 약을 주러 갈 때에도 무슨 무슨 약이 있다 다 불러줘야 하고 환자들은 먹겠다 안 먹겠다 선택할 수 있다. 특히,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는 모든 약을 스캐너로 다 스캔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안 먹으면 사유를 적고 하나하나 기록해야 하는 것이 참 번거롭다. 그렇지만 덕분에 내과에서 주로 처방하는 약들은 많이 배웠다. 처음 미국병동에서 일할 때는 약이름을 노트에 적어가며 외우고 환자방에 들어갔는데 이제는 많이 늘어서 대부분 아는 약이고, 모르는 약은 환자방에

들어가서 스캔하면서 약정보가 있는 사이트를 열어보면서 말해준다. 요즘은 더 뻔뻔해져서 “나는 이약 처음 보는데, 무슨 약인지 좀 찾아볼게”라고 하면서 모르는 걸 당당하게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건 좀 다른 내용인데 마약성 진통제를 정말 많이 쓴다. 한국에서는 암환자 이외에는 특별히 통증이 있다고 해서 마약성 진통제를 쓰는 경우가 드물었다. 통증을 아무리 참아도 참지 못할 때가 오면 마지막으로 써보는 개념이랄까. 그런데 여기는 어떤 병으로 오든지 너무 쉽게 마약성진통제를 쓴다. 대부분 알약이나 저용량의 주사제를 쓰고, 정말 심한 진통이 있는 경우에는 패치나 PCA라고 불리는 지속적 마약통증주사를 사용한다.

통증의 역치가 낮은 것인지, 아니면 죽을 만큼 아파야 병원에 올 수 있으니 진짜 아픈 것인지는 알 수 없다. 0-10까지 통증의 범위를 정해서 지금 통증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말해달라고 하면, 죽도록 아픈 10이라고 말하면서 웃고 떠들고 먹고 놀고는 다 한다. 속는 기분이지만 그렇다고 하니까 그러려니 하고 약 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통증에 확실히 엄격하고 강한 편이라고 느낀다.


5. 모두를 만족시켜야 카지노 게임 사이트 고객센터

- 환자보다 더 진상인 보호자들


처음에 오리엔테이션을 하면서는 계속 데이근무를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일하고 저녁에 잠을 자니 생체리듬에는 참 좋은 근무형태이지만 출근하면 거짓말 보탬 없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퇴근하면 정신이 쏙 빠져서 멍해지기 일쑤다. 시끄럽고 바쁘고 북적이는 분위기가 나랑은 너무 안 맞다. 그럼에도 많은 인력들이 함께 일하고, 도움을 받을 리소스가 있다는 것은 너무 좋은데 문제는 낮시간은 환자의 보호자나 지인들이 언제든 올 수 있는 면회시간이라서 오만사람들이 오고 간다. 우리 병원 면회시간은 9-20시인데 보통 9시부터 오기 시작해서 데이근무가 끝날 무렵까지 주야장창 사람들이 상주하다시피한다. 그러다 보니 여러 보호자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줘야 하기도 하고, 똑같은 내용의 업데이트를 여러 번 하게 되기도 한다. 직접 못 오는 보호자들은 전화로 담당 간호사를 찾고 업데이트를 요구하는데 처음 일하면서 영어에 어느 정도 자신이 붙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데다 예상할 수 없는 질문을 하는 경우도 많았어서 정말 진땀을 많이 흘렸다. 오티기간이어서 프리셉터에게 전화를 넘겨준 것도 부지기수였다.


나이트근무를 시작하고 나니, 보호자들은 면회시간이 끝나 슬슬 집으로 돌아가고 환자들만 잘 지켜주면(?) 내 업무가 끝나므로 비록 밤을 새우더라도 정신적으로는 덜 힘든 근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밤에도 누군가는 담당간호사를 찾는 전화를 해서 뭔가를 물어보기도 하고, 밤에도 입원환자는 언제든 있기에 낮보다 사람이 덜 붐빌 뿐이지 방심할 수 없는 것이 병동간호사의 운명이다.


나도 진상보호자를 만난 경험이 몇 번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나마 귀여운 수준이었다. 넓은 땅덩어리에 그 많은 인구가 살다 보니 얼마나 다양하고 창의로운 사람들이 사는지를 보게 되었다. 대놓고 진상짓을 하면 주변에서 눈치채고 위로라도 받지, 아무도 없는데서 교묘하게 사람 깔보는 보호자도 있고 환자에게 제공카지노 게임 사이트 음식이나 음료를 당당히 요구카지노 게임 사이트 보호자도 있다. 그거 싸가는 사람도 봤다. 살림살이 나아지나 보지 뭐.




그럼에도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

지금 배운 것들은 의미 없는 고된 노동일까 끝없이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사실 그런 경험들은 나를 더 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아직은 이곳에 좀 더 있어야겠다는 마음이다.


힘들고 고생카지노 게임 사이트데 무슨 소리냐 그냥 정신승리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일을 점점 익숙하게 하면서 내가 매일 느끼는 사실이고 현실이다.


미국에서의 사회생활, 돈 버는 경제활동이 한국보다 수월하거나 여유롭다거나 혹은 환경이 너그러운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의 몫을 하고 더 나은 나의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으로 본다면 앞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 미래의 직업과 업무들로 맞닥뜨릴 일들을 좀 더 자신감 있고 확실하게 해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시간이라 믿는다.


이 정도면 미국 안 와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할 것도 같은데 제일 힘들고 특기가 없는 일반병동이라서 그럴 수도 있답니다. 전문분야가 있는 간호사들은 그냥 보기에도 일단 멋있거든요 ㅎㅎ 아직은 그런 분야까지 가기엔 먼 길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해온 만큼만 잘 유지해도 훌륭하다 여기고 지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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