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그런 부분을 가지고 사는 게 윤지 씨를 행복하게 해 줍니까?
지금 윤지 씨가 느끼는 행복은 어제 윤지 씨가 느낀 행복하고 다른 건가요?
그동안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가 나에게 던진 질문들 가운데 8할을 차지하는 게 행복에 관한 질문이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와 함께 지낼 때 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가 행복해지고 싶어서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내 눈에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는 행복이 허상이라 믿는 사람처럼 보였다. 행복을 경멸하거나 부정하지는 않는데 그 실존을 좀처럼 믿지 못하는 사람. 그런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에게 나는 행복이 인간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누누이 말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도 지금 행복 없이 잘 살고 있는 거 아니에요?
저한테 행복이 없어 보입니까?
확실히 있어 보이지는 않아서.
저한테 행복이 조금은 있어 보인다는 말입니까?
글쎄요. 제 눈에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 마음이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지 않나.
그런가요.
진짜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 마음에 뭐가 있느냐가 중요한 거지.
제 마음에 뭐가 있는지 저는 모릅니다.
왜 몰라요? 뭐 하기야 저도 제 마음에 뭐 있는지 잘 몰라요.
왜요?
사람 다 그렇잖아요. 알면서 뭘.
저는 제 마음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 마음도 몰라서.
저도 몰라요, 다른 사람들 마음. 제 마음도 모르는데 남의 마음은 어떻게 알겠어요.
다른 사람들도 타인을 거의 모르면서 사는 걸까요. 그게 인간의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까?
그렇지 않나.
그렇군요.
헛똑똑이야, 가만 보면.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 맨날 방에 처박혀서 책만 봤죠?
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를 진 교수님 방에서 처음 만났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 얼굴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가 우리 과로 편입해 들어올 학생인 줄 알았다. 진 교수님은 내가 만들어 간 생강차를 홀짝거리며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에게 나를 소개했다. “이 친구 우리 과 조교로 있는디 여러 가지로 쓸 만하니 황 교수도 뭐 필요한 거 있음 윤지 쟈 불러다 써요잉.”
진 교수님은 30대 중반도 안 돼 보이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를 황 교수라 부르고 있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는 내 얼굴을 멀거니 바라보더니 하품 하며 진 교수님을 돌아보았다. “딱히 다른 사람들한테 제가 도움 구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어이고 사람 일 어찌 될 줄 알고? 너무 뻣뻣하게 굴지 마쑈. 이 사람 사회 생활 나한테 다시 배워야 쓰겄네. 윤지야 황 교수한테 니 명함 드리고 여 황 교수 명함 받아 가라.”
“네. 그럼 이 분이 다음 학기부터 저희 과….”
“잉. 서울에서 오신 분이네. 윤지 니가 경기도 사람잉게 황 교수하고 말이 좀 통할 것 아니여. 학장님이 직접 모셔 온다는 분이 이 분이네. 니도 놀랐제. 황 교수 니보다 4살밖에 안 많어.”
그때 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가 서너 살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은 영재라 생각했다. 유치원 들어가기도 전에 미적분 풀고 6개 국어쯤 아무렇지 않게 구사하는 수재. 무식하고 무례한 보통 인간들 시기심과 열등감 때문에 그런 이들의 말로가 대개 처참했으므로 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를 별로 부러워하지 않았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는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크게 괘념하지 않는 듯 보였고.
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가 진 교수님하고 별로 친해지지 않았으면 했고 나하고도 자주 왕래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런데 막상 그가 표정 없는 얼굴로 출퇴근하고 점심 시간마다 혼자 어딘가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니 머지않아 그가 신변 비관으로 자살할까 겁났다. 나는 여름 계절 학기가 시작된 날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에게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먹어 보고 싶은 게 있는데 그 집에서 그거 먹으려면 2인분 이상 주문해야 돼서.”
“그렇습니까.”
“혹시 식사 이미 하셨어요?”
“아니요. 거기가 어딥니까.”
“서문 근처에 있는 족발집이거든요. 점심에 족발 드셔도 괜찮아요?”
“전 아무 때나 뭘 먹어도 괜찮습니다. 탈 안 나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핵폭탄 맛 불족발을 먹어치웠다. 내가 불족발을 두 조각만 먹고 계란찜을 퍼먹자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가 냉면과 쿨피스를 주문했다. “매운 걸 잘 드시진 못하네요.”
“네.”
“근데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겁니까.”
“네.”
“왜요?”
“솔직히 매운 거 먹는다고 스트레스 풀리진 않고요. 그냥 머리 터질 거 같을 때 엄청 매운 거 먹으면 머리 비어서 좋아요. 교수님은 매운 거 엄청 잘 드시네요.”
“학교 밖에서는 그냥 이름 불러 주십시오.”
“아니요. 제가 어떻게요.”
“못 하겠습니까.”
“교수님이라는 호칭 불편해요?”
“저를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저하고 친구가 되려 하지 않아서요.”
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가 고독감에 겨워 커터칼을 들고 뜨거운 물 담긴 욕조에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친구 만들고 싶어요?”
“친구를 사귀는 기분을 알고 싶습니다.”
“친구가 한 명도 없었어요?”
“네.”
“아.”
“죄송합니다. 불편해 보이네요.”
“아니 뭐 불편하다기보다는…. 저랑 친구 해도 괜찮아요?”
“무슨 말입니까?”
“저는 교수님을 만족시킬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왜 그렇게 생각해요?”
“그야 전 너무 평범하니까.”
“전 평범하지 않습니까.”
“아니 뭐 그렇다기보다는…. 그럼 학교 밖에서만 친구 해요, 우리. 이름 불러 줄게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라고 부르면 되죠?”
“네.”
나하고 친구가 되고 싶다던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는 그날 이후에도 나에게 먼저 말 걸지 않았다. 나에게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지도 않았고. 그는 내가 뭘 하자고 할 때마다 거기 즉각 응했지만 나에게 먼저 뭘 권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런 행위가 교우 관계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건지 두려움에서 오는 건지 알지 못해 갑갑함을 느꼈다. 어떤 조바심도.
나와 학교 근처에서 밥 먹고 차 마시고 산책 할 때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는 행복에 관해 말했다. 그는 자기 주변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고 자주 말했다. “인간은 행복을 위해 산다고 배웠는데.”
“누가 그렇게 가르쳐 주던데요? 행복 위해 사는 인간 별로 없어요.”
“그럼 대부분의 인간은 뭘 위해 사는데요?”
“목표를 가질 생각 자체를 못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다들 자기한테 닥치는 불행 피하기 바빠서.”
“행복한 인간보다 불행한 인간이 더 많을까요.”
“훨씬.”
“왜 그런 걸까요.”
“행복을 잘못 배워서? 쾌락이나 단순한 풍요로움이 행복이라고 알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럼 진짜 행복은 뭡니까?”
“저도 잘 모르겠어요. 몰라서 이렇게 살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는 언제 행복해요?”
“저는 행복이라는 걸 느껴 본 적 없습니다.”
“느껴 보고 싶긴 하고요?”
“너무.”
원준 씨가 1세대 카지노 게임 사이트라는 걸 알게 된 건 내가 그 학교를 떠나고 2년쯤 지났던 때다. 그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사 투밸류에서 한국 시장 조사를 위해 파견한 로봇, 로봇이었다. 투밸류 한국 지사에서 공중파 방송에 내보낸 광고를 통해 나는 원준 씨 실체를 알았다. 초가을 비 냄새 자욱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저 달 이름이 뭐냐고 나에게 묻던 그가 코스타리카 커피보다는 에티오피아 커피가 좀 더 향기롭게 느껴진다고 말하던 그가 유치원 놀이터에서 미끄럼틀 타며 깔깔대는 아이들을 보며 가만히 웃던 그가 언젠가 래브라도 리트리버를 키워 보고 싶다고 말하던 그가 창원에서 한과 공장을 운영하는 내 부모님 노후를 나와 함께 걱정해 주던 그가 로봇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처음 느낀 감정은 공포였다. 그와 내가 보낸 시간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면서 나는 그에게 조금 기이한 면이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의 곁에 있던 당시 나는 그가 로봇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조금도 해 본 적 없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 정체를 알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로봇과 인간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거나 사라질 일은 없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는 내 눈에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는 다만 황카지노 게임 사이트일 뿐이었다. 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 몸 아니 몸을 닮은 기계 안에 있는 마음 아닌 무엇이 정확히 무엇일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민간인은 출입할 수 없는 거대한 연구실 한편에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 머리가 수백 개 보관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가 소나기 내리던 날 내 팔목을 잡을 때 나에게 전해진 온기를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가 행복을 느껴 보았을지 궁금해 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씨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 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지 의문했다.
그게 벌써 20년 전 일이라니.
최근 휴머노이드 로봇과 인간의 결혼을 승인해 달라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무엇이 정말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는 건지.
며칠 전 열다섯 살이 된 큰딸 가은이 생일 파티에 참석한 아이들 가운데 절반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였다. 가은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인 세은이와 윤서도 카지노 게임 사이트고. 7년 전 교육부에서는 아이들의 학습 보조와 정서적 지지, 안전 등을 위해 초중고 각 반마다 교육 기관용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3명씩 배정하기로 했다. 현재는 한 반에 수용될 수 있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수에 제한이 없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수용과 관련된 모든 것이 각 학교 재량에 맡겨지면서 학부모들은 더 높은 지능을 가진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자기 자녀와 함께 지내게 해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과열된 사교육 경쟁을 누그러뜨리려면 보통 인간보다 영리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들을 모든 학생들이 충분히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일각에서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도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들일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아이들이 모르는 문제를 함께 고민할 대상으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채택하는 일이 일상화되면서 교권은 또 한 번 무너졌지만 어째서인지 카지노 게임 사이트 교사를 학교에 배치하자는 목소리가 관련 부처에 수용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학교나 학원에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교사, 강사로 채용하는 것은 철저히 불법 행위로 남아 있었다. 남편은 누가 누구한테 어떻게 로비를 해서 일이 이렇게 된 거라고 확신했는데 그날 남편이 열거한 이름들은 내 기억에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지금 가은이 반에 머무르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열세 명. 가은이 반 총원이 스물일곱 명이다. 어쩌면 가은이 반에 있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열세 명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가 인간이고 누가 카지노 게임 사이트인지 심각하게 묻지 않는다. 솔직히 나는 인간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편해졌다. 아직 이런 이야기를 드러내 놓고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아 내 속내를 어디 내놓지는 못하지만.
둘째 채은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무렵 나는 산후 우울증을 앓았다. 남편은 나에게 호르몬 검사를 해 보라고 했다. “그거 약 좀 먹으면 금방 괜찮아진다던데.”
검사 결과 내 호르몬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 이후에도 매일 우울했다. 매일 시도 때도 없이 울었고. 엄마가 보낸 문자 하나를 끝까지 읽는 것도 힘들었다. 주의력이 떨어져서.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젖내 풍기며 가물가물 졸고 있는 채은이가 예뻐 보이지 않았다. 그 무렵 내가 유일하게 하고 싶은 건 잠을 자는 것뿐이었다. 먹는 것도 씻는 것도 뭘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싫은데 잠은 자고 싶었다. 잠만 자고 싶었다.
채은이를 품고 있는 동안 나에게 이렇다 할 부정적인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남편과 내 관계가 유의미하게 나빠진 것도 아니라서 나도 남편도 내 산후 우울증을 두고 적잖이 당혹스러워했다. 남편은 내 우울증의 원인이 자기한테 있지 않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무진 애썼다. 내가 그에게 뭘 책임지라고 한 적도 없는데. 어떤 이유로든 그를 책망한 적이 없는데.
그가 자기 결백을 주장할 때마다 나는 외로웠다. 남편이 내가 가진 문제를 나만 가진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내 우울증을 나만 가진 것이 맞긴 했지만 남편이 내 병을 내 안에만 두고자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에 대한 신뢰를 잃어 갔다. 그는 그런 나를 답답하게 여겼다. “그럼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되는 건데? 잘못도 없는데 자기한테 빌어야 돼?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말을 해 줘. 믿음이 없어지고 있다고만 말하지 말고. 내가 매정한 게 아니라 자기가 나한테 너무 큰 걸 바라는 거 아니야? 아니 나한테 뭘 기대하고 있는 건지 알기는 해? 그냥 있는 짜증 없는 짜증 다 나한테 퍼붓는 건 아니고? 너무한 건 내가 아니라 자기야.”
그 말을 듣고 나는 사흘간 한숨도 못 잤다. 그런 나를 병원에 데려간 건 엄마였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 의사를 내 정신과 주치의로 배정해 달라고 했다. “사람은 안 된다고 했어요.”
“알겠습니다. 혹시 다른 요구 사항이 더 있을까요?”
“사람 의사만 안 만나면 돼요.”
“알겠습니다.”
새하얀 진료실 입구에서 나를 맞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 의사 정신주는 내가 의자에 앉을 때까지 선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오시는 길은 괜찮았나요?”
“네 뭐.”
“아까 제출해 주신 설문지 좀 전에 받아 봤습니다. 혹시 거기 적힌 것들 외에 제가 미리 알아 두면 좋을 부분이 있을까요?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그냥 지금은 제 얘기를 좀 하고 싶은데요.”
정신주가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진료실에서 잘 익은 복숭아 냄새가 났다. 설문지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복숭아라고 적었는데. “제가 지금 산후 우울증을 앓고 있거든요. 혹시 제 우울증 진료 기록 보셨나요?”
“아니요. 제가 그 기록을 좀 봐도 될까요?”
“네.”
정신주가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하더니 “네.” 했다. “윤지 씨 우울증 관련 진료 기록 모두 열람했습니다.”
“우울증 때문에 오늘 제가 여기 온 건 아니고요. 아닌가. 뭐 아무튼…. 남편하고 제 사이가 지금 좀 나쁘거든요.”
“두 분 사이가 어떻게 나쁜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정신주는 내 모든 말을 침착하게 들었고 함부로 나를 판단하지 않았다. 성급한 태도로 나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건네지도 않았고 자기가 가진 학식을 자랑하느라 내 발언 기회를 가로채지도 않았다. 그는 나에 대한 남편의 태도 때문에 내가 고독감을 느끼는 것이 합리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결혼 생활 안에서 생긴 일 전부가 부부 공동의 문제가 될 수 있어요. 공동의 문제들을 각자의 문제들로 굳이 분류하는 배우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정녕 이 사람과 내가 함께하고 있는 건지 의문하게 되죠.”
“그죠? 게다가 제가 겪는 건 산후 우울증이라고요. 그냥 우울증이 아니라. 산후 우울증이요. 애를 무슨 제가 혼자 낳았어요?”
“아니죠.”
그해 나는 세진 병원 정신과 전문의 정신주를 서른아홉 번 만났다. 남편은 점점 밝아지는 내 안색을 보며 서둘러 안도했고 나는 정신주와 서른아홉 번 만난 후 남편과 이혼하기로 결심했다. 1월 첫째 주였다.
남편은 이혼하자는 내 말을 듣고 내가 미쳤다고 했다. “그 로봇 의사가 이혼하라더냐?”
“내 결정이야.”
“헛소리하고 있네. 그 병원 어디야? 그 로봇 의사 있는 병원 어디냐고.”
“그 사람이 나한테 이혼 권유한 거 아니라고 했잖아.”
“사람? 사람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그놈이 사람이야?”
“아 왜 이래, 진짜? 쪽팔려서 이래?”
“내가 쪽팔릴 게 뭐 있어?”
“없으면 조용히 물러나. 무식하게 굴지 말고.”
“참나 지랄도. 그래 니 유식한 로봇 의사 만나더니 나는 병신처럼 보이지?”
“애들 들어. 그만해.”
“내가 뭘 어쨌다고 이러냐, 너는. 너 때문에 나까지 정신병 걸리겠어. 그렇게 죽고 싶으면 내가 죽여 줘?”
정신주는 이런 상황까지 예견하고 나에게 유사시 대응책도 알려 주었다. “혹시 남편분이 폭언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려 하면 윤지 씨 핸드폰 액정 왼쪽 아래에 엄지를 갖다 대고 계십시오. 그럼 녹음 기능이 켜지면서 녹음 내역이 저한테 실시간으로 전달될 겁니다. 바이탈 체크 기능도 켜질 거고요. 그 상태에서 윤지 씨가 엄지를 핸드폰 액정에서 조금 떼었다 다시 붙이면 제가 경찰 측에 모든 자료를 넘기고 출동을 요구하겠습니다. 어때요.”
나는 정신주 그리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변호사인 송명인의 도움을 받으며 이혼 소송 절차를 밟았다. 우리의 이혼이 가은이, 채은이에게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해 법원 측에서는 가은이, 채은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남편 형상을 가진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우리 집에 있는 게 어떠냐고 했다.
나는 가짜 남편과 지내는 생활이 인간 남편과 지내던 생활보다 즐겁고 평안하다는 사실에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몰랐다. 아이들은 갑자기 너그럽고 자상해진 남편 존재에 금세 적응했다. 우리의 이혼 후 채은이의 야뇨증이 씻은 듯이 나았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개발한 투밸류 대표 루크 파웰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해탈을 의미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나nirvana에서 따온 말이라고 했다. “추악한 본성을 다스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간들 사이에 수승하고 깨끗한 존재인 카지노 게임 사이트들을 섞어 놓음으로 저는 이 세계의 어둠을 조금이라도 몰아내고자 했습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인간의 도구가 아니라 계단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통해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고 그래야 합니다.”
나는 가짜 남편과 더없이 화평한 가정을 꾸리게 되고 루크 파웰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 제작 의도를 조금 이해했는데 그렇다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인간보다 뛰어나다고 믿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보다 더 현명하고 유능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나오길 바라지도 않았고.
현재 루크 파웰은 인공 지능이 개발한 인공 수정란에서 나온 인간을 세상에 내놓으려 한다. 인공 인간의 수가 많아지면 가까운 미래에 진짜 인간이 소수자가 될 거라는 비관론이 득세하는 요즘 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처음 출시되기 전 이 세계를 떠들썩하게 흔든 인공 지능 휴머노이드 로봇 비관론을 생각한다. 지금은 어디에나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있다. 수십 년 뒤 어디에나 인공 인간이 있을까. 그때 우리 가은이, 채은이는 어디에서 뭘 할까.
덧붙이는 말
이 단편은 제가 2년전 여름 글쓰기 수업 할 때 수강생들과 공유하기 위해 쓴 소설입니다. 2년 전에도 인공 지능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들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인공 지능이 생활 전반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모처럼 초고 파일을 열어 이 소설을 다시 읽어 보는데 소설 속에서 일어난 상황이 그리 먼 미래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곧 특이점이 올 것 같습니다. 그럼 세계가 한 번 크게 출렁이겠죠.우리가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진폭으로요. 그건 퍼스널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등장으로일어난 충격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공할 충격일지도 모릅니다. 부디 그 새 시대에서도 인간의 가치와 쓰임이 무궁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최근 저는 본업의 경계를 재점검하며 앞으로 인문서 쓰기와 상담 치료에매진하기로 했습니다. 글쓰기 모임도 있고 일기도 쓰고 하니 산문이야 가끔씩쓸 것 같은데한동안 (어쩌면 영영) 소설은 쓰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 소설의 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내 소설이 잘 된 적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소설 쓰기를 단념하기가 참 어렵더라고요. 그동안 햇수로 15년쯤 소설을 썼습니다. 발표하지 않은 것들까지 모조리 합하면 이야기를 천 개쯤 만든 것 같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대단한 이익이 있는 일도 아니었는데 소설 쓰기를멈출 수 없었습니다. 무해한 허구 속에서 저는 저를 만나고 저와 불화하거나 화해하고 나쁜 기억으로 인한 감정들을 차분히 희석하고 더 나은 사회를 궁리했습니다. 제게 소설 쓰기는 계단을 쌓는 일이었습니다. 소설을 쓰면서 시야를 획기적으로 넓힐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저는참 오랜 시간 동안 문학에 열광했습니다. 일기를 쓰지 않으면 도무지 견딜 수 없었던 10대와 미치광이처럼 책 읽기와 글쓰기에 빠져 있던 20대를 지나 저는 어느덧30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활자 숲 속에 파묻혀 있었을 뿐인데 벌써 30대 중반이 되었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글자 밖 세상들을 많이 놓친 것 같아아쉽기도 두렵기도 합니다.
입으로 한 번도 발설해 본 적 없지만 제가 평생 꿈꿔 온 성공은 문학인으로서의 성공이었던 것 같습니다. 밥벌이 되지 않는 문학을 30대 중반까지 붙들고 있다 이만 좀 내려놓으려 하니 내면의 심해에 묻혀 있던 진심이 솟아 나오더라고요. 내가 정말 갈구한 건 문학인로서의 성공이었구나.
너무 바라는 일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치를 알면서도 왜 그렇게 문학에 집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반쯤은 오기로 문학에 발붙이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재능이 없어서 내가 더는 문학을 할 수 없단 생각을 두고 몇 년간 고심도 하고 자학도 했는데요. 그런 무용한 일은 이만 그만두고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것,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앞으로의 시간을 보내려 합니다.
브런치 공간은 제가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성공 경험을 한 곳입니다. 브런치를 통해 인터넷 홈페이지 첫 화면에 제 글이 여러 번 실리기도 하고 여러 명의 독자분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기도 했네요. 그간 슬럼프를 겪을 때마다 운영하던 블로그나 SNS 계정을 삭제하곤 했는데 브런치 계정은 감히 건들지 못했습니다. 이것마저 지워 버리면 제가 글 쓰는 사람이란 걸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글을 썼을 때처럼 오늘날에도작가 되기를 간곡히 지망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디어와 기술 발달로 글쓰기나 출판업계가 사장되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합니다. 제가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던 때에도 사람들은 이 일에 미래가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때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혼자만의 이야기를 상상합니다.인간이 인간인 이상 기록과 기록 공유의 문화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지금 글쓰기에 사활을 걸고 계시는 모든 분들을 결연히 응원합니다. 먼 과거 제가 과분하게 받았던 응원들을 이렇게나마 돌려 드립니다. 부디 모두 평안하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