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주어지면 고요한 곳을 찾는다. 책을 들고 연필과 아이패드를 챙겨서. 책을 들여다보고 나를 들여다보고 끼적거린 문장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멍하니 생각 속에 머문다. 바깥세상에 있던 나를 빼내어 홀로 두는 시간. 귓바퀴 주변에 맴돌던 소리가 잦아들고 소용돌이치던 마음이 잠잠해진다. 어지러이 떠다니던 부유물이 바닥에 가라앉아 흙탕물이 맑아지듯, 마음속 가시거리가 길어진다. 자신과 내밀한 대화를 통해 에너지를 채우는 이들을 내향적이라고 하던가. 외향적인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한국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되는 나의 내향성이다.
그래도 뼛속까지 내향적이진 못해서 사람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소곤소곤 조잘조잘 수다를 떨다 들어오면 내 안에 기쁨이 차오른다. 강의장에서 만난 새로운 이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마주하고 낯선 그들과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동안 그들과 나 사이에 조금씩 친밀감이 자란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작은 이야깃거리에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벌려 웃다 보면 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것만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낯빛에 생기가 돈다. 그들의 말, 표정이 하나하나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러다가도 그와 내가, 그녀와 내가, 그들과 내가 다르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 있다. 동일한 상황 속에 있었지만 마치 다른 일을 겪었던 것처럼.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의아하고 당황스러웠던 일련의 사건을 거듭 곱씹다가 깨달았다.우린 각자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태생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쌓아온 서사가 다르다. 그러니 같은 사안을 두고 다른 색깔 렌즈를 끼고 바라본다. 초록빛 안경을 낀 사람에게 세상이 노랗다고 말한들 소용없다. 그가 안경을 벗을 의향이 없는 이상 그의 세상은 초록빛이고, 내가 렌즈를 바꿔 낄 생각이 없는 이상 내 세상은 노랗다. 절대적인 옳고 그름을 옆으로 밀어낸 틈 사이로, 세상 모든 사람들의 다양한 견해가 각자의 이익과 선호에 맞물려 드러난다. 고스란히, 적나라하게.
너른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려 하지만 그건 쉽지 않다. 나 외에 다른 사람을 온전히 헤아릴 수 있다는 건 착각이자 오만이다. 생긴 모양이 다르듯, 생각의 모양도 다르다. 생각은 형체가 없어 쉬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예측도 어렵다.상대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 같아 편하게 던진 말에 의외의반응을 맞닥뜨릴 때도 있다. 심심치 않게 놀라지만 어쩌겠는가. 다른 생각이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는 것을. 그저 카지노 게임 기쁘고 즐거웠던 만큼, 슬프고 괴로웠던 만큼, 카지노 게임 경험했던 만큼만그들을 헤아릴 수있을 뿐이다.
모두 다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고 산다. '나 자신을 알라'는 말이 수천 년에 걸쳐 회자되는 건 작은 생각에 갇힌 내가세상의 전부라는 오판을 부수기 위함이아닐까 싶다. 남을 위하는 척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뻔하다. 여전히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지 못한 이기적인 나와 조금은 이타적이고 싶어서 발버둥 치는 나 사이에서 애쓸 뿐이다.
올해 타인들의 문제를 자주, 깊이 들여다볼 일이 의도치 않게 많았다. 적당히 객관적인 위치에서 누군가를 이해하고 위로하려 노력하기도 했고,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의 아귀가 도무지 맞지 않아 혼란스럽기도 했다. 선택적 외향성을 띄는 내향인은 그럴 때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되뇌었다. 진실은 저 너머, 오직 신만 아시겠구나.카지노 게임 아는 사실은 우리는전부 각자 다르다는 것뿐. 그리고자신이 보고 느끼고 카지노 게임하는 게 맞다고 믿는다는 것뿐. 마흔 중반에 접어든 올해 값지게 깨달은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