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있다. ‘나는 나’라는 단순한 명제. 하지만 만약 나와 똑같이 생긴 존재가 나타난다면, 그것도 내가 가진 모든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그는 과연 나일까? 아니면 또 다른 존재일까?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17은 이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 단순한 SF 영화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깊이 있는 작품이다.
영화 속 주인공 ‘미키’는 우주 개척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 사망한다. 하지만 그 죽음은 끝이 아니다. 새로운 ‘미키’가 태어나고, 그는 이전의 미키가 경험했던 모든 기억을 그대로 갖고 있다. 문제는, 원래대로라면 죽었어야 할 기존의 미키7이 살아남으면서 시작된다. 두 개의 ‘미키’, 하나의 존재. 이들은 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전혀 다른 개체일까?
나는 영화를 보며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라는 존재는 무엇으로 정의될까? 만약 기억이 곧 나라면, 나의 복제본도 나일까? 하지만 그 복제본이 나와는 다른 선택을 한다면, 그는 결국 나와 다른 존재가 아닐까? 결국 자아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만 정의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 중 하나가 ‘마샬’이다. 그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 인간을 통제하는 시스템의 관리자이며,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이름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샬(Marshall)’은 바로 ‘마샬 로(Martial Law, 계엄령)’에서 따온 이름이다. 즉, 이 캐릭터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결정하는 거대한 권력의 메타포다.
놀라운 점은 봉준호 감독이 이 영화를 오래전에 기획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미국과 한국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권력은 언제나 인간을 통제하려 하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영화 속에서 복제 인간이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 현실에서도 인간을 숫자로만 취급하는 사회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어느새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잊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나는 여전히 그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 나의 기억이 다른 존재에게 옮겨진다면, 나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존재가 탄생한 것일까?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와 동일한 존재일까? 우리는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하며, 조금씩 변화한다. 어쩌면 정체성이란 흐름 속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집착하는 ‘자아’라는 개념 자체가 허상은 아닐까.
미키17은 단순한 SF 블록버스터가 아니다. 그것은 거울과도 같다.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했던 ‘나’라는 개념을 흔들어 놓으며, 그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그것이야말로 봉준호 감독이 관객들에게 던지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질문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