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City Life : 男2 女2 시트콤
사소한 킬러 11화
서울 모처, 산속
카지노 게임 씨는 산속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혼자 헤매는 것보다 더 나쁜 건 둘이서 헤매고 있다는 사실, 왜냐하면 나머지 하나가 전유나이기 때문입니다.
전유나가 누구냐고요? 카지노 게임 씨의 썸녀입니다.
그 있잖아요. 캘러한이 DIY가구 조립을 못해 카지노 게임 씨에게 떠 넘겨서 대신 조립하다가 알게 된.. 네네 맞아요. 그 5만 원!
이 둘이 왜 산속을 헤매는 걸까요? 따지고 보면 이것도 모두 캘러한 때문입니다.
대략 24시간 전, 카지노 게임 씨는 인터넷을 뒤지며 고민에 빠져있었습니다.
“동 치과, 컴퓨터 많이 하면 눈에 안 좋아. 이제 나한테 넘기고 나가서 운동이라도 좀 하지?”
캘러한은 이제 대놓고 카지노 게임 씨의 노트북을 자기 것처럼 애용 중이었죠.
“방해하지 말고 냉큼 꺼져! 그리고 잊었나 본데, 이 노트북은 내 것이거든.”
“어이구, 딱딱하게 왜 이러셔? 무슨 일 있는 거지? 말해봐. 내가 명색이 해결사인데 동 치과 고민 정도는 깨끗하게 해결해 주지.”
카지노 게임 씨도 바보 아닙니다. 캘러한에게 그만큼 당했으면 그의 도움을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죠.
“해결사 같은 소리! 가서 찾던 개나 마저 찾지 그래? 이번 달 월세, 내일까지 주는 거 알지? 이번에도 제때 안 주면 군말 없이 여기서 나가기로 했다. 분명히.”
“알지, 알지. 그래서 내가 노트북이 필요하잖아. 연락 올 데가 있거든.”
애원하는 눈빛의 캘러한, 카지노 게임 씨는 쳐다도 안 봅니다.
“스마트폰은 어따 쓰려고? 그걸로 연락받아.”
“그게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니까 그렇지. 뭘 그리 열심히 하는데…”
캘러한이 카지노 게임 씨의 노트북을 훔쳐보고 카지노 게임 씨는 그걸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뭐야, 불꽃놀이 보러 가려고? 그거 사람 엄청 많은 데 아니야? 동 치과 사람 많은 거 싫어하잖아.”
“내가 언제 불꽃놀이 본다고 했어?”
“그럼 전유나가 보고 싶다고 했구나.”
여튼 눈치 하나는 귀신입니다. 진짜 귀신은 뭐 하고 있을까요? 캘러한 같은 인간 한둘 잡아가도 세상은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갈 텐데 말이죠.
“꼭 그런 게 아니라.”
“그런데 이게 뭐야? 3시간 대여에 50만 원? 오오! 동 치과, 계획이 있구나! 그렇게 안 봤는데 나름 엉큼한 구석도 있고. 좋았어. 그래야 남자지. 그런데 뭘 망설여?”
“아니라니까. 이건 불꽃놀이 잘 보이는 자기 집 아파트를 대여해 주겠다는 광고라고.”
“그래, 나도 알아. 불꽃놀이도 보고, 그것도 하고 말이야. 당연히 침대도 포함이겠지? 50만 원이면 싼 가격도 아니고.”
“그냥 한번 본 거야. 이런 데를 어떻게 가? 유나 씨도 좋아하지 않을 것 같고…”
“하긴, 남의 집에서 그런 걸 하기는 좀 찜찜하지. 갑자기 주인이 돌아올 수도 있고.”
카지노 게임 씨는 콱 죽고 싶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죽이고 싶었죠.
“그냥 제발 좀 모른 척하고 저리 가! 안 그래도 머리 복잡한데.”
“알았어. 같이 불꽃놀이는 보고 싶은데 한강공원에 가자니 사람이 너무 많아서 힘들 것 같고, 조용하게 둘이서만 불꽃놀이를 즐기고 싶다는 거잖아. 내가 해결해 주지.”
절대로 넘어가서는 안 되는 유혹,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속지 않았겠지만 카지노 게임 씨는 결국 바보였습니다.
“믿지는 않지만 들어는 볼게.”
캘러한은 카지노 게임 씨의 노트북을 뺏더니, 지도 사이트를 열었습니다.
“여기를 봐. 이 지점이 불꽃놀이를 하는 곳이야. 맞지?”
“그런데?”
“여기 바로 앞에 △△산 보이지? 서울 시내 모든 뒷동산이 그렇듯 등산로가 있겠지. 등산로를 따라 정상에 올라가면 불꽃놀이 공짜 VIP석이 나온다 이 말이지. 사람도 없고, 한적하고, 공기도 맑고, 얼마나 좋아.”
“올라가기 힘들지 않을까?”
“해발 2백 미터밖에 안되네. 아무리 저질체력 동 치과라도 30분이면 충분해. 걱정 마.”
캘러한이 카지노 게임 씨의 등을 탁 쳤습니다. 그게 무슨 마법처럼 카지노 게임 씨의 자신감을 업 시켰죠.
그리하여 이 사달이 난 겁니다. 등산로는 있었으나 정상까지 가는 길은 찾을 수 없고, 날은 어두워져서 내려가는 길도 보이지 않는 총체적 난국.
불꽃놀이는 밤에 하고, 가을철에는 생각보다 해가 빨리 진다는 간단한 사실을 간과했던 거죠.
무엇보다 정상에서 방향만 맞다고 불꽃놀이가 보일 것이라는 나이브한 생각을 왜 믿었던 것일까요?
“동훈 씨 이미 불꽃놀이 시작한 것 같은데 그냥 내려가면 안 돼요.”
“그게 조금만 더 가면 나올 것 같은데..”
사실 카지노 게임 씨는 내려가는 길을 찾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이러다 길 잃는 건 아니겠죠.”
전유나의 목소리에 먹구름처럼 걱정이 잔뜩 끼었죠.
“길을 잃다니요? 처음 오긴 했지만 제가 얼마나 길눈이 밝은데.”
사실이었어요. 카지노 게임 씨는 길눈이 밝죠. 다만 방향감각 제로에 야맹증 있어서 해가 지면 그 길눈이 아무짝에도 소용없다는 것만 빼면.
“휴대폰은 터지는데 119에 전화해 볼까요?”
아, 이런 망신이 어디 있겠습니까? 동네 뒷산에서 조난을 당해 119를 부르다니요.
“잠시만요. 저쪽으로 가면 될 것 같아요.”
그때 카지노 게임 씨의 귀에 불꽃놀이 화약 터지는 소리가 쿵쿵하고 들렸던 것입니다.
급한 마음에 카지노 게임 씨는 전유나의 손을 꽉 잡고 정상을 향해 줄달음 쳤더랍니다.
전유나는 그런 카지노 게임 씨의 대범함에 조금 놀랐죠.
그리고 정상입니다. 그 하늘에는, 우박 같은 불꽃이 정말.. 빨갛고 파랗게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와.”
카지노 게임 씨와 전유나, 둘 다, ‘와!'라는 감탄사 이외에는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죠.
한 시간 가까이 산속에서 헤맸던 기억들은 순삭 사라지고, 로맨틱한 감정만이 충만했습니다.
그때서야 카지노 게임 씨는 아직도 전유나의 손을 잡고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놓을까 했지만, 전유나도 손을 뺄 생각이 없어 보였어요.
‘그럼 당길까? 당겨서 뭐 하지?‘
그런 건 당겨봐야 아는 거 아니겠어요. 카지노 게임 씨는 전유나의 손을 가볍게 당겼고 그녀는 조금 더 가까이 왔습니다.
그래서 또 당기고, 더 가까이 오고, 마침내 둘은 마주 보게 되었죠.
불꽃은 뻥뻥 터지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등산하느라 체온도 조금은 올라 있었죠.
완벽해요. 카지노 게임타임입니다.
김동훈 씨에게는 사실상 첫 카지노 게임나 다름없는 순간이었어요.
잠깐 치과 예과 시절 처절했던 실패의 흑역사가 떠올랐지만 극복했어요.
자, 그럼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그녀의 얼굴에 다가갑니다.
전유나는 눈을 감았죠. 모든 게 순조로워요.
넉넉잡고 2초 뒤면 카지노 게임 씨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안정적으로 착지할 예정이었죠.
그때 카지노 게임 씨의 휴대폰이 맹렬하게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진동이긴 했지만 속주머니에 넣어둔 탓에 정확히 카지노 게임 씨와 전유나의 가슴이 밀착된 지점에서 60hz의 진동음을 발산했죠.
카지노 게임 씨는 무시하고 싶었지만 그건 이미 불가능했어요. 로맨스의 여신이 콧방귀를 뀌고 산밑으로 내려가 버렸거든요.
전유나는 한걸음 뒤로, 카지노 게임의 손에는 휴대폰이.. 전화한 인간은 캘러한이었습니다.
달리 누구겠어요?
:: 여어, 동 치과! 카지노 게임했어?
캘러한이 어찌나 크게 말했는지 전유나의 귀에도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들렸습니다.
카지노 게임 씨의 얼굴이 빨개졌어요. 밤이라 볼 수는 없었지만.
미치는 시간 3초.
카지노 게임 씨가 서둘러 전화를 끊으려는데 전유나가 돌진해 옵니다.
너무 화가 난 것일까요?
아니었어요.
전유나는 김동훈 씨의 입술에 카지노 게임했어요. 짧지만 거칠게.
예비동작이 없었기 때문에 완벽할 수 없었지만 둘 다 충분히 만족했습니다.
“말해요. 어서.”
“뭘 말입니까?”
카지노 게임를 마친 김동훈 씨가 쑥스럽게 물었죠.
“캘러한이죠? 카지노 게임했다고 해요.”
너무 다행이었습니다. 전유나는 카지노 게임 씨 보다 훨씬 나은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 동 치과, 내 말 안 들려? 했냐니까?
“했으니까 끊어!”
휴대폰을 집어넣고 카지노 게임 씨는 다시 전유나의 어깨를 잡았습니다. 미진했던 부분에 대한 복습을 하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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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간, 조안나는 꿈을 이뤘습니다.
“쯔쯧, 니가 기어코 일을 치는구나.”
저녁 약속을 위해 온갖 꾸미기에 열일하는 조안나를 보며 박서우가 혀를 찹니다.
“일을 치다니, 그냥 일의 연장이야. 의뢰를 무사히 마치고 의뢰인이 수고했다고 밥 한 끼 먹자는 건데 그걸 거절해? 니가 이 바닥을 몰라서 그러는 건데, 여기까지 마쳐야 의뢰가 제대로 끝난 거라고.”
“그 밥 한 끼를 왜 하필 호텔에서 먹을까? 너 좋아하는 소고기집도 많은데.”
“저녁이 저녁만이겠어? 미국에서 오래 살았다던데, 아메리칸 스타일인가 보지. 번거롭게 이동할 것 없이 바로 방으로 직행! 캬캬.”
조안나의 입이 튿어집니다. 지난번 삼성동 피트니스 클럽에서 사고 친 후에 조신하게 살아왔던 노력(?)이 드디어 보상받는 순간이니까요.
“난 진짜 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 넌 왜 꼭 나이 든 남자니?”
“나이 든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고, 고르다 보면 우연히 나이가 많은 거야. 봐봐. 내가 제일 싫어하는 타입이 뭐야? 자기 돈도 아니면서 아빠 돈, 엄마 돈으로 돈지랄하는 X들이지?”
“돈 없으면 돈 없다고 혐오하면서.”
“그러니까. 엄빠 돈이 아니라 자기가 번 돈으로 풍족하게 쓸 수 있는 남자를 고르다 보니 이렇게 되는 거라구. 그리고 예진이 아빠가 어때서? 완전 핸썸가이에, 돌씽에, 돈도 많아, 성격 젠틀해..”
“날라리 한예진도 있지.”
기세 좋던 조안나가 잠시 주춤,
“고것이 문제긴 한데, 괜찮아. 내가 걔 엄마 될 것도 아니고 걔 아빠랑 사귀는 것뿐이니까.”
“사람 일 모른다. (조안나를 다시 보고) 하긴 그럴 일은 없겠다.”
“그 눈! 무슨 뜻이지?”
“니가 어딜 봐서 엄마를 하겠니. 엄마가 하나 더 생기는 게 빠르지.”
“지금 우리 엄마 얘기 한 거야? 너, 선 넘은 거 알아?”
“......”
엄마 얘기만 나오면 조안나도 박서우도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무슨 비밀이 있는 걸까요?
“박서우! 사과해!”
“......”
“박서우, 어서 말해!”
“미안. 내가 심했어.”
“말로만?”
“그럼 어떡해? 이미 말했는데.”
“돈 줘!”
박서우가 조안나를 쳐다봅니다. 조안나는 여전히 화난 얼굴. 박서우는 하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뒤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줍니다.
“돌아올 때 택시 타고 오라고 주는 거야. 차비 없다고, 호텔에서 자고 오지 마! 원나잇 끝나고 치대면 그거 진짜 촌스러운 거 알지?”
“걱정 마. 나도 그 정도 가오는 있다구.”
조안나가 나가고 박서우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런 실수도 돈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요.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습니다. 세상은 결코 좋지도 않고 관대하지도 않지만, 조안나가 그나마 좋게 해주고 있다는 것을.
최소한 그녀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