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엄마는 요리를 자주 해주셨어요. 요리하는 걸 좋아하셨어요. 매일 아침이면 출근하는 아빠를 위해 식탁에 찌개가 올라가 있었어요. 저녁이면 퇴근하는 아빠를 위해 술안주가 준비되어 있었고요. 아빠는 특히 동태찌개를 좋아하셨어요. 국물 있는 음식을 원체 '시원하다'며 잘 드셨어요. 뜨거운 걸 시원하다고 표현하는 아빠가 이해되지는 않았어요.다만 하루 내 신었던 양말을 벗고 온수로 발을 닦듯, 풀어지는 표정과 목소리의 아빠를 흉내 내며 집안의 웃음을 자아내던 저는 초등학생이었어요.
엄마는저를 위한 음식도 준비하셨어요. 초등학생 때는 편식이 심했어요. 물론, 여전히 안 먹는 음식이 많지만요. 그때는 더더욱 심하여 소시지나 계란 프라이 같은 반찬이 있어야만 밥을 먹으려 했어요. 앞선 문장이 쉽게 적히지 않는 걸 보니제가 반찬 투정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가 봐요. 칼집을 내어 기름에 볶은 비엔나소시지를 특히 좋아했어요. 그래서 케첩을 듬뿍 찍어 흰쌀밥과 함께 먹을 때가 많았어요.
"만약, 내일 죽는 게 예정되어 있고, 지금 단 한 끼를 마지막으로 먹을 수 있다면 뭘 드시고 싶은가요?"
컨디션이 좋았던(?) 어느 날, 동료 선생님들께 물었어요.두근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던 선생님들은 일순간 침묵에 빠졌어요. "저부터 얘기해 볼까요?"라고 말했던 선생님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어요.
선생님은 고기를 먹고 싶다고 했어요. 여러 고기 종류를 언급하던 선생님은 대뜸 "한 가지 음식만 먹을 수 있나요?" 물어보았고, 대답할 말을 정리해 두었던 저는 "한두 가지 정도 먹을 수 있다면요?" 되물었어요.
선생님은 김치찌개와 소고기를 먹겠다고 했어요. 두툼하게 썬 목살이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와 다양한 부위의 소고기를 배 터지게먹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어요. 과거에는 김치찌개를 먹으면 여러 식구가 함께 먹다 보니 고기의 양이 늘 부족했다고 했어요. 그래서 고기가 넘치도록 들어간 김치찌개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고 했어요. 성인이 되며 그 목마름을 풀어가던 때가 문득생각난다고 했어요. 소고기는 늘 좋아하지만, 자주 먹기가 어려워 꼽았다고 했고요,
"혹시, 혼자서만 먹어야 하나요?" 선생님은 물었어요. 저의 기대보다 심취하여 대답하는 선생님을 보며 뒤통수를 긁적이다 "누구와 함께 먹는다면요?" 되물었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가족과 먹고 싶다고 했어요. 김치찌개에 고기가 부족하지 않게, 오빠나 동생들과 화기애애하게 나누어 먹고 싶다고 했어요. 그리고 소고기를 가족에게 대접하며 그간 자신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양보하고, 사랑으로 견뎌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고 했어요.
다른 선생님의 진지한 대답까지 듣고 나자 양 팔의 소매를 걷지 않을 수 없었어요."그.. 저는.." 특유의 어눌하고 소소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어요.
"저는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요. 제가 그렇게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에요. 여전히 소시지나 고기를 더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마지막 식사라고 하니 된장찌개가 떠올랐어요. 정확하게는 된장찌개를 먹던 식탁이 생각났어요. 자그마한 뚝배기에 보글보글 소리가 퍼지는 아침이에요. 출근하는 아빠를 위해 엄마가 된장찌개를 자주 끓여주셨거든요.
저는 아침이면 세수만 대충 하고 나와 식탁으로 갔어요.사실 식탁이라고 해봐야 네 가족이 앉기에는 비좁은 좌식 탁자였어요. 동그랗게 생긴 그곳에 넷이 모여 앉아먹었어요. 된장찌개가 나오는 날이면 두부만 건져서 밥에 넣고 으깨어 비벼 먹곤 했어요. 계란 프라이가 있으면 그것에 집중하고, 김에 밥을 싸 먹던가 했고요.
소풍 가는 날이면 엄마가 김밥을 싸주셨었어요. 그날은 저만을 위한 식탁이 완성되는 날이었어요. 저는 김밥과 된장찌개를 함께 먹는 걸 좋아했거든요. 엄마가 싸주신 김밥에는 당근이 들어가지 않았어요. 햄과 맛살, 지단, 시금치로 만든 단출한 김밥이었어요. 김과 밥, 재료들을 단단하게 말고, 참기름을 바르는 것이 포인트였어요. 입에 넣었을 때 쉽게 퍼지지 않고, 주먹밥을 먹듯 서서히 풀어지는 맛을 참 좋아했어요. 뜨끈한 된장찌개가 으깨지던 김밥을 더욱 부드럽게 해 주었으므로 김밥 한 개에 된장찌개 한 숟가락이 저의 공식이었어요.
소풍가는 아침, 엄마가 싸주신 김밥과 된장찌개를 함께 먹는 날이면 일찍부터 엄마를 보챘어요. 그런 저를 위해 엄마는 김밥을 한두 줄씩 말다가 이내 썰어서 저에게 주시곤 하셨어요. 김밥과 된장찌개와 번갈아 먹던, 소풍 잘 다녀오라는 말과 마음이 머물던 그 식탁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만약초등학생 때로, 그 식탁으로 돌아간 상황이라면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기쁘고 들뜬 행동으로 더 잘 표현하고 싶어요. 제가 좋아하면, 부모님도 좋아하지 않으셨을까요?"
두 선생님과 저의 공통점은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고 싶다는 데 있었어요. 돌아보면, 과거에는 자주같이 먹어서 감흥이 없었어요. 하지만, 독립하여 지내다 보니 한 끼 식사를 차리기 위해서는 커다란 노고와 정성이 들어간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특히, 자신만을 위한 식탁이 아니라면요.
둘러앉은 식탁에서 느꼈던 편안함, 안정감 같은, 부모님께서 제게 말로 주시지는 않았지만, 주고 싶어 했던 서툰 사랑을 이제는 알 것 같아요.
봄비가 내린다. 얼마 전에는 눈이 내리거나, 한 겨울에 맞을 듯한 칼바람이 불어왔다. 봄은 소풍의 계절이다. 그래서일까. 김밥이 생각난다. 된장카지노 쿠폰가 먹고 싶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이제는 맛볼 수 없는 그 순간이 오늘 내게는 간절히 필요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