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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극배우 B씨 Jan 30. 2025

카지노 쿠폰 설날

이혼 후 이야기 #. 76



아이들은 아빠와 가까이 살 땐 명절에 아빠네 가곤 했다. 사촌 언니들을 만나는 기쁨과 큰아빠, 고모들에게 받는 용돈이 쏠쏠했기 때문이다.


나는 '친척들한테 수금하러 가는구나'하고 장난치듯 놀렸지만 아이들이 카지노 쿠폰집과 외갓집을 자유롭게 다니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비록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어른들 술자리와왁자지껄 정신없는 카지노 쿠폰집안 풍경일지라도 외가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느끼고 그쪽 친지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좋다고 여겼다.



점점 발길을 끊기 시작해 명절에도 아빠네 가지 않으려는 작은애와는 달리 큰애는 기숙사에서 그나마 가까운아빠집에 명절을 쇠러 갔었는데 이번 설에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취업 후 원룸을 얻어 독립했기에 편히 지낼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이 좋다고는 하지만 긴 연휴 내내 명절 음식도 못 먹고 혼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제 직장인이라 학생 때처럼 세뱃돈을 못 받아서 안 가는 거지? 조카들 용돈 주려니 그것도 부담이고^^ 너 머리 좋은데~


"안 갈 거야. 고모들 카지노 쿠폰에 오자마자 나한테 질문 퍼부을 텐데 그걸 어떻게 다 감당해?"


-무슨 질문?




"엄마.

고모들은 지금까지 1년 365일 중에 언제 나를 만나도 꼭 하는 질문들이 있어. 그것도 지금까지 10년 넘게 말이야."



고모들이 잊지 않고 묻는 건 엄마의 재혼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엄마 만나는 사람 없대? 재혼 안 한대? 나이가 아직도 한창인데 계속 그러고 혼자 살아서야 되겠니? 이제 너희들도 다 컸겠다 엄마가 좋은 사람 만나서..."


"엄마 아직도 약 먹지? 병원은 잘 다니고 있니? 수술했던 거 재발은 없는 거지?"



큰애는 그런 질문이 짜증이 난다고 했다.


'나는 잘 몰라'라는 대답으로 시큰둥하게 대응하는 큰애 앞에서 고모들의 질문 공세는 결국 똑같은 한탄으로 끝난다고 했다.


"우리가 그때는 젊어서... 몰랐어. 니 엄마 마음을 몰라줬어. 그냥 우리 엄마만 걱정되고 우리 엄마만 보였지, 올케가 힘든 거는 못 봤어."


"외할머니는 잘 계시니? 외할머니한테도 참 미안해... 네 엄마아빠 결혼식날 외할머니가 아직 어린 딸 시집보낸다고 우시길래 어린 만큼 우리 동생이라 생각하고 잘 보살피고 도와줄게요라고 말씀드렸는데 이렇게 돼버려서..."



예전 시누들은 왜 나의 재혼여부를 궁금해할까.

왜 이제 와서 큰애에게 저런 말을 할까.

그렇게 말하면 자기들의 잘못이 회개받는다고 생각할까.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하는 고모들은 다 독실한 기독교인들이다.


좋겠다.

지난 잘못을 말로 회개해서 싹 없어질 수 있다면 말이다.




엄마의 재혼 가능성에 대해 항상 궁금해하는 고모들의 심리가 무엇일까 진지하게 아이들과 대화해 본 적이 있다.

"내가 생각했을 땐 아빠가 바로 재혼해서 애 낳고 살다가 또 이혼했잖아. 고모들은 아빠가 재혼에 실패해서 혼자 애 키우고 사니까 엄마도 한 번쯤 재혼해서 실패해야 아빠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안심을 하고 싶어 했던 것 아닐까. 엄마는 재혼 안 하고 10년도 넘게 우리만 키우고 조용히 살고 있는데 아빠만 저렇게 난리법석을 떨면서 또 이혼하고 그러니까 고모들이 자존심이 상하나 봐."


나는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다.

애들이 그렇게 유추한다니 더 놀랍다.

그 집안에서 나온 후고모들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아이들은 사춘기를 거쳐오고 지금까지 고모들과 자주 만나왔으니 그들이 하는 말의 뉘앙스와 의도를 나보다는 더 잘 캐치할 것이다.



"아빠네 가면 결국 명절 술상 밥상 차리는 것도 나야. 아무리 친한 고모들이지만 그래도 아빠집에 온 건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 아빠는 이미 낮부터 술 마셔서 상차릴 생각도 안 해. 그럼 내가 주방에 가서 뭐라도 해야 할 거 아냐. 몇 번 해보니까 그게 너무 싫어."



내가 23살에 결혼해서부터 겪었던 것을 22살인 내 딸이 하고 있었다.


-그래, 가지 말어. 너 아빠집에 가서 명절에 술상 밥상 차리고 설거지나 하라고 엄마가 키운 줄 아니?

갑자기 속에서 불이 확 올라온다.



명절 증후군이 거의 사라진나도 그때 기억이 다시금 떠올라서 몸서리 쳐진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22평 좁은 신혼집에 명절이면 한가득 모였던 시댁 사람들.

시조카의 아이들까지 도대체 몇 명인가 싶어 28명까지 세다가 그 이후로는 점점 더 불어나서 세어 볼 생각도 안 했었지.



전남편은 모른다.

형, 누나들, 조카들이 한가득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흥에 겨워 술잔을 부딪히며 하하 호호하는 시간에 주방에서 누가 어떤 고생을 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음식을 내오고 뒷정리를 하고 늘 마지막까지 손에 물을 묻히다 부엌 구석에서 잠들던 사람을.


8년간의 명절을 맡아 하다가 암수술을 했던 해에'한 번만 이번 한 번만' 가까운 고모집에서 모이면 안 되냐고, 대신 내가 음식은 다 해가겠다고 부탁했는데도 전남편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보란 듯이 형님, 누나들 가족을우리 집으로 다 모이라고 했다.


내가 하는 말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명절에 가족들이 다 모여서 이렇게 즐거운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싫은 거냐고, 가족이 소중하지도 않냐고 말이다.

그가 정의하는 가족과 내가 생각하는 가족은 구성원 자체가 이미 달랐다.




-지금도 카지노 쿠폰 다 모이면 명절에 먹을 음식은 누가 하니?


"... 고모들이 명절 전날에 아빠네 와서 갈비 재워놓고 뭐 이것저것 해놓고 가."



참 정성이다.

그들은 그렇게 세팅이 된 사람들이다.

"우리 가족은 이래, 우리 형제들은 이렇게 끈끈해."가 기본이 된 사람들이고 한결같이 그것을 위해 모인다




"큰카지노 쿠폰만 오시지 이제 큰엄마는 명절에도 안 오셔.

큰엄마는 명절 되면 친정에 가신대."


한때 나의 시댁형님이었던 그분도 늦게나마 명절의 자유를 찾으신 것 같다.

15년 전 '저는 이 집에서 나갑니다.'라고 마지막 인사를 드렸던 내 심정을 이제는 아실까.

다들 그렇게 산다고, 나도 이때껏 그렇게 살았다고 부부가 몇 번 싸운 걸 가지고 애들 데리고 나가네마네 해서 되겠냐고 큰며느리의 입장에서 조언하셨었다.



효도도 셀프이고

명절도 셀프였으면 한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혹은 지우려고 하지 않는 '그들만 편한' 명절 풍경이 애들 아빠집에는 아직도 남아 있다.

큰 며느리는 그들의 명절에 더 이상 함께 하지 않고, 막내며느리는 이혼해서 나갔다.



"이제 고모들 만나면 묻기 전에 미리 말할까 봐. 엄마는 올해도 재혼생각이 없고 약은 잘 먹고 있고 병원에도 추적검사 잘 다녀서 재발도 없고 직장도 잘 다니고 있다고. 엄마 근황인데 매일 나한테 물어봐서 나도 지겨워. 진짜 어쩌라는 거야?"



큰아이의 투덜거림이 귀에 맴돈다.

결혼을 했으면

가정을 이루었으면

누가 진짜 가족인지, 찐 식구인지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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