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폐관수련 연공실을 나와서...
지난주에 이세벽 작가의 신작 서적인 장편 “먼지처럼 흩날리는 별”이 도착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읽어보고 싶었지만, 책의 두께도 만만치 않기에 휴일에 한꺼번에 읽기 위해 책상 위에 고이 모셔 두었다가 지금 막 읽기를 끝냈다. 책을 읽었으니 보내주신 이세벽 작가님께 감사함을 전하기 위해서라도 책을 소개하는 서평을 써야 할 것 같았다. 결국 이세벽 작가님이 나의 폐관수련을 잠시 중단하게 만든 셈이다. 연공실 문을 빼꼼 열고 서평을 올린 후에 다시 발길을 돌린다.
“아무리 희고 깨끗한 사랑이라도 지나치면 폭력이 될 수 있다.
어쩌면 병들어 있던 탓에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진 건지 모른다. 우리처럼 병들어 있어서…… 사랑은 위대하지만, 인간은 그저 무력할 뿐이다.”
이 소설은 기억을 잃은 아내와 그녀를 돌보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물론 통속적인 소재로 읽힐 수도 있다. 소설의 첫 페이지를 넘기며 나는 이 부부의 이름이 월인과 카지노 게임 추천인 것을 보고는 순간 나는 혹시 부부 이름의 성별이 바뀐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의 예감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보통의 지고지순한 헌신적 사랑을 이야기할 때 주로 남자에 대한 여자의 헌신을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이 소설은 반대로 여자에 대한 남자의 헌신이다. 그래서 남자의 이름인 ‘월인’이 여성의 이름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44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소설이지만 의외로 빨리 읽힌다. 그 이유는 책장의 여백과 넓은 자간과 행간 그리고 일반적인 소설책의 글자치고는 큰 글자의 크기에 있다. 한쪽에 30행이 넘지 않는 넓은 행간은 시인성을 높여주어서 글이 한눈에 들어오기 편하게 해 준다. 읽는 사람의 시각적 피로도를 배려한 최선의 편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이세벽 작가는 단순한 작가 이전에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의 입장을 배려하는 배려심이 깊은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헌신의 끝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일반인의 상상을 작가는 가볍게 뛰어넘는다. 그것도 기억을 잃은 아내 곁에서 묵묵히 기억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최선을 다해 보살피는(?) 남자의 행위는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가? 누구도 간단하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기억을 잃은 사람은 기억을 잃은 대신 새로운 기억을 쌓으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혹시라도 잊힌 기억이 되살아나기라도 한다면 그 새로운 기억은 원래부터 없던 기억처럼 그 사람의 뇌리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을 잃은 사람이 다시 기억을 찾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은 그 사람에 대한 두 가지 기억을 모두 간직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기억을 잃은 사람을 지키는 일은 누구에게라도 선뜻 자처할 수 없는 힘든 일이다.
월인은 아주 작은 것에서도 카지노 게임 추천이 자기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기를 원했지만, 끝내 카지노 게임 추천은 기억을 회복하지 못한다. 두 사람을 이어주는 향수인 롤리타렘피카의 향이 월인을 자극할 때마다 월인은 카지노 게임 추천의 무의식 속에 자기가 자리하고 있음을 확신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기억을 잃은 카지노 게임 추천은 월인의 그런 마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이 상상하는 집을 찾는다. 카지노 게임 추천에게 지금의 집은 단순한 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 그런 행위는 월인이 장동혁에서 월인이 된 것처럼, 카지노 게임 추천 자기가 본래 자기의 이름인 유은진에서 카지노 게임 추천이 된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월인과 카지노 게임 추천은 그 두 명이 처음 만난 이후부터 서로를 부르던 애명(愛名)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을 찾는 행위는 자신이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기억을 잃기 이전의, 아니 결혼하기 전의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려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건의 발단은 월인이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 읍내에 한정식 식당을 개업하면서 일어난다. 카지노 게임 추천은 자전거를 타고 가다 덤프트럭에 치여 쓰러지면서 기억을 잃게 되고, 그때부터 지루한 간병 아닌 간병 생활이 시작되었다. 정직, 공정과 정의를 신념으로 알고 살아온 월인은 한정식 식당 주방에서 조리 기구를 다루는 셰프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그 대가로 카지노 게임 추천의 기억을 바쳤다. 월인이 시골 생활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상황이었기에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의식에 사로잡혀 지내면서도 언젠가는 카지노 게임 추천의 기억이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도 두 사람을 안타까워한다. 누가 보기에도 금실이 좋은 부부였던 두 사람의 모습은 지금에 와서 보면 겉으로만 보이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얼핏 소설의 중반쯤 드러나는 작가의 묘사를 보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의젓하기 짝이 없는 저 호수는 두 얼굴을 가진 짐승인 것이다. 겉모습은 천혜의 경관처럼 보이지만 깊은 속에는 온갖 해악을 저지른 짐승이 살고 있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을 도시로 사지로 내몰았을 테고 수많은 비리가 저질러졌을 것이고 수많은 사람의 고향을 삼켰을 것이다. 그리고 호수의 창자 속엔 아직도 소화되지 않은 수몰민들의 삶이 잔해처럼 흩어져 있을 것이다.”
이는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라는 생각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보이는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은 아니듯……
월인에게 "형씨는 순정파요, 그렇소 오래전에 사라져 버린 공룡 같은 존재란 말이오.”라고 말하는 재욱의 눈을 통해 우리는 한 여자에게 지고지순한 한 남자의 모습을 읽는다. 아마 요즘에는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는 그런 신파적인 남자를 말이다. 생각해 보자. 아무리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기억이 돌아오지 않는 아내를 단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른 남자에게 보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떻게 보면 지극히 비현실적인 이런 상황도 작가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있다. 이런 자연스러움은 소설의 말미에 이를수록 더욱 염치없이 고개를 쳐든다. 긴 시간 아내를 지켜보던 월인은 느닷없이 아내와 동반 여행을 떠난 남자, 그리고 자신까지 해치겠다는 마음으로 권총을 소지하고 그들을 찾아 나선다. 이 얼마나 어색한 설정인가? 총기소지가 자유로운 미국도 아니고 한국 땅에서 아무리 전직 검사일지언정 일반인이 권총을 소지하다니. 하지만 그런 설정까지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읽힌다. 내가 월인이라도 그랬을지 모르므로……. 이세벽 작가는 그런 설정을 정말 교묘하게 소설 안에 녹여내고 있다.
그렇다고 카지노 게임 추천의 처지에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어머니와 남편과 딸을 자처하고 나서는데 자신은 전혀 기억이 없다.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지만 읽는 사람은 카지노 게임 추천이 즐겨 부르는 김현식의 ‘사랑했어요’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과 같은 노래를 통해 카지노 게임 추천의 마음속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본다. 기타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 카지노 게임 추천은 누군가에게 전화로 노래를 불러 주는 모습에서 월인은 알 수 없는 허탈함과 또 다른 희망을 느낀다. 카지노 게임 추천은 월인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도 전화로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기억을 잃었어도 잠재의식 속에 남은 그 행위는 월인과의 추억이라고 월인은 생각하고 싶었다. 이런 장면들은 상실과 수용, 그리고 성장과 치유의 단계를 거치고 있는 카지노 게임 추천의 마음속에 아직 겉으로는 부인해도 월인과의 인연의 끈이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불쑥 들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은 잠시 시어머니인 월인 어머니의 칠순잔치를 계기로 해주부터 시작해서 주위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아니 아마 혼자만의 짝사랑이었던 기타 교실 연하 선생과의 이별이 그녀에게 심경의 변화를 준 듯하다. 그런 카지노 게임 추천을 보며 월인은 카지노 게임 추천의 정신이 돌아와 주기만 한다면 다른 사람이어도 상관없으리라 생각한다. 마치 새로 카지노 게임 추천과 교제를 시작하는 관계가 되어도 그 당시의 현실에 충실하려는 마음을 보인다. 카지노 게임 추천도 이제는 기억이 온전하게 돌아와서 자신에게 헌신적인 월인에게 돌아가겠다는 마음을 갖는다. 두 번째의 첫사랑(기타 선생과의 짝사랑)이 지나고 나서 비로소 상실과 수용을 지난 성장의 단계로 접어들 마음이 생긴 듯하다. 여전히 옆에서 지켜보는 월인의 마음은 조마조마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내 다시 기타 선생에게 마음이 돌아간 카지노 게임 추천을 보며, 월인은 이제 오히려 카지노 게임 추천의 일방적인 또 다른 사랑이 다행스럽고 마음이 놓였다. 월인은 카지노 게임 추천에게는 지워지고 없는 과거에 자신만 집착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월인은 청강의 행복을 위해 카지노 게임 추천을 기타 선생에게 보내기로 결심한다.
소설에서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부분은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다. "사랑은 위대하나 인간은 무력한 존재"라는 의미로 보면 월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천강을 보내는 일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은 편지만 남기고 자신을 찾겠다며 가출한다. 카지노 게임 추천은 백지의 기억 위에 새로운 사랑을 쓰고 싶었던 것이다. 단지 상대가 월인이 아닌 다른 남자였을 뿐이다. 자동차 캠프장에 둘이 있는 모습을 본 월인이 카지노 게임 추천과 동반자살을 시도하려는 월인을 제지한 것은 해주의 목소리였다. 카지노 게임 추천이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되더라도 월인이 카지노 게임 추천을 죽이지 말아 줄 것을 부탁했던 그 목소리가 월인의 발길을 붙잡았다. 결국 기억을 찾지 못한 카지노 게임 추천에게 기타 선생은 첫사랑이 되었다. 그리고 카지노 게임 추천을 보낸 월인은 욕조에 누워 손목을 긋는다. ‘사랑은 위대하나 인간은 무력한 존재’ 임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운명의 장난처럼 해주가 대학생이 되었을 무렵 카지노 게임 추천이 기억을 찾지만, 이번에는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건진 월인이 자살 후유증으로 사람을 못 알아보고 소리도 듣지 못한다. 역시 사람은 무력한 존재일 뿐이다. 카지노 게임 추천은 휠체어에 앉은 월인의 무릎에 엎드려 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역시 카지노 게임 추천도 무력한 인간일 뿐이었기에.
소설을 끝까지 읽으며 이세벽 작가에게 무엇인가 코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울컥울컥 올라왔다. 제발 해피엔딩으로 끝내달라고 말이다. 제발 천강의 기억이 돌아와서 그동안 기울였던 월인의 헌신을 가치 있는 행위로 마무리 지어 줄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작가는 결국 무력한 인간과 그런 인간을 통하여 작가가 생각하는 사랑하는 법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헌신적인 사랑의 모습을 보았다.
이세벽 작가의 끊임없는 창작열을 부러워하는 마음으로 나는 이제 연공실로 다시 돌아간다.이 글은 짧게 편집해서 교보문고 리뷰에도 올린 글이다. 그리고 이름만 남은 블로그이지만 나의 블로그에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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