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기로운 뉴욕의사 Jan 29. 2021

좀 카지노 게임 가도 괜찮아.

멈칫멈칫, 주저주저. 내 인생의 우회로 이야기.

나는 해가 바뀌는 것에 대해 그렇게까지 큰 의미를 두는 편은 아니지만 매 연말과 새해 즈음에 지금까지 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걸어갈 길을 다시 정립해 본다. 이번 해의 테마는 '주저함'이다.


나는 응급의학과 의사답게 칼처럼 내리는 결정도 곧잘 하지만, 뭔가 주저주저하며 마음속 어딘가에 박아놓고 있다 뭉그러뜨려 버리는 수동적인 결정들도 꽤 많다. 새해를 맞아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의 주저함의 순간들과 그것들이 초래한 결과를 되짚어 보았다.




내 인생 최초의 주저함의 순간은 고등학생 때였다.

나는 전교생이 200명이 채 안 되는 작은 학교를 나왔는데, 해마다 바뀌는 대한민국의 입시제도가 내가 대학을 가려던 해 내가 가고 싶어 하던 학교는 백분율로 내신 성적을 반영하겠다고 공표하였다. 그렇게 되면 나 같은 경우는, 원래 200명도 안 되는 전교생을 다시 문과/이과로 나누고 나면 내 전교 석차가 백분율과 비등비등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해서 내가 원하던 학교의 입시 전형에는 절대적으로 불리해지게 된다. 그래서 그 발표와 함께 비슷한 조건에 있는 전국의 고등학교들카지노 게임는 자퇴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나도 자퇴를 해야 하나...? 생각해 보았는데, 그 당시의 나에게는 좋은 학교를 가는 것도 중요했지만, 일반적인 고등학생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두 마음 사이에서 주저주저하는 동안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고 그러다 자퇴를 해야 하는 마지막 날, '대입? 까짓 거 수능 만점 받지 뭐'라고 가비압게 생각하고 결국 자퇴 안 하고 학교를 계속 다녔다. 결국 난 수능 만점을 못 받았고(당연한 것 아닌가 ㅎㅎㅎ), ‘정상적인’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은 대신 원래 가고 싶던 학교의 과를 못 갔을뿐더러 그로 인해 과까지 바꾸면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다.



두 번째 주저함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카지노 게임 수련을 받기 위해 레지던시 지원을 하던 때다.

미국 레지던트 지원을 하려면 일반적으로 스텝 1, 스텝 2 이론, 실기 이렇게 최소 3개의 시험을 봐야 하고, 제일 마지막 관문인 스텝 3이라는 시험은 필수는 아니지만 취업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외국 국적자로 미국카지노 게임 레지던트 수련을 받기 위해서는 취업 비자나 교환 비자 중 한 가지를 받아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취업 비자를 받는 편이 여러모로 용이하다). 그리고 이 마지막 시험은 미국카지노 게임만 볼 수 있다.

나는 무소속으로 있는 기간이 길어지는 것이 싫어서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하는 해의 9월에 시작하는 전미 레지던시 전형에 참가하기 위해서 시험 일정을 빡빡하게 잡아 1월에 한국의사 국가고시를 보고, 연달아 4월, 5월, 9월에 미국 의사 시험을 보았다. 그리고 미국 레지던시 지원 서류는 본인이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굉장히 많고 인터뷰 준비도 많이 해야 하는데, 심지어 언어가 다르고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렇게 낮에는 시험공부하고 밤에는 자소서를 쓰고 하면서 지원해서 다행히도 인터뷰 초청을 원하는 대로 받아 인터뷰를 하러 미국에 오면서 처음에 세운 계획은 틈틈이 공부를 해서 스텝 3까지 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여기까지 달려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진맥진한데 인터뷰하러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는 와중에 더 쥐어짜 내서 시험공부까지 할 힘은 도저히 없었다. 그리고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덜컥 봤다가 떨어지거나 점수가 너무 나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 또 주저주저하다 결국 시험을 안 보고 인터뷰만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다행히 이듬해 3월, 나는 매치가 되었고, 그것도 다 취업 비자를 해 주는 프로그램들카지노 게임 일하게 되었지만 마지막 스텝 3 시험 점수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나는 교환 비자를 받고 레지던시를 시작하게 되었다. 교환 비자를 받던 당시 이미 내가 이렇게 인생에 디투어(detour)를 하게 되면 인생에 분명히 변곡점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그 변곡점이 결코 나쁠 것만 같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 주저함은 레지던시 후 진로를 결정카지노 게임 때였다.

두 번째 주저함으로 인해 교환 비자를 받아 수련을 했기 때문에 나는 수련이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미국의 의사 부족 지역에서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재난 의학 전문가가 되려고 미국까지 왔는데 임상 레지던트만 하고 돌아가기에는 너무 부족한 것 같아서 좀 더 경험을 쌓고 싶어 고민하던 중, 미국 군대에서 의사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나 응급의학과는 내가 졸업하던 즈음에는 수요가 공급을 절대적으로 초과하는 과였고 군대에서도 많이 필요로 하는 과이기 때문에 재난의학 전문가를 꿈꾸던 나에게(대부분의 큰 재난 관리는 국가 규모에서 이루어지며 그래서 군대 의학이 관련이 되어 많은 기회가 있다) 이보다 더 최적의 환경은 없다고 생각했고, 원하면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한국으로 갈 수도 있었다. 이성적으로는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지는데 마음 한 구석에서 무언가 자꾸 망설여졌다. 그 망설임을 더듬어 올라가 본 결과, 나는 내가 사는 곳을 내가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서 군대 가지 않고 간 첫 직장이 지역적으로 결코 더 나았던 것 같지는 않지만, 아무튼 그래서 결국 평범하게 비교적 일반적인 직장에서 정해진 기간을 일하다 보니 원래 하고 싶어 하던 재난의학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졌고, 그러면서 새로 생긴 관심으로 비록 시기는 늦어졌지만 지금은 행복하게 호스피스 완화의학을 공부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의 나의 지난 브런치 '나는야 펠로우 2편' 에서!(/@jeunloves/14)




단칼에성큼성큼곧잘결정도잘내리는내가이렇게뭉기적뭉기적결정을하지않고뭉개는결정을할때는, 내머리와마음간에거리가있을때이다. 이성적으로는말이되지만마음이미처거기까지못갔을때, 나는일단멈추고내마음이머리를따라잡기까지기다린다. 그러다보면어떤때는마음이머리를따라잡고, 또어떤때는그냥그자리에계속저만치떨어져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용단을 내려 자퇴를 했으면 그 당시 내가 원카지노 게임 학교 원카지노 게임 과에 들어가서 그림 같은 삶을 살고 있을까? 100미터 달리기 하듯이 숨을 헐떡이며 미국 레지던시 지원 준비를 하던 그때, 마지막 한 방울의 힘까지 다 짜 내어 스텝 3을 보고 취업비자를 받았으면, 혹은 그래, 결심했어하고 졸업하며 과감히 군대에 지원했으면, 지금 내가 원하던 재난의학 전문가가 되어 세계를 누비고 있을까?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당시의 내가 원했던 삶이 알고 보니 나한테 잘 맞지 않는 옷이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지금의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안 그래도 빠르게 변하는데, 더욱더 빨리 정확하게 의사 결정해서 착착착 밑물깔기부터 선작업을 하지 않으면 대실패자가 될 것만 같이 말하지만 살아보니 딱히 그런 것만 같지도 않다. 중요한 건, 방향을 잘 잡은 다음, 꾸준히 멈추지 않고 계속 가는 게 아닐까.


새해에는 좀 더 내 마음의 세밀한 소리를 잘 들으면서, 보다 좋은 결정을 내리면서 살아가고 싶다. 좀 카지노 게임 가도 괜찮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