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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재 Feb 28. 2025

카지노 게임 저녁이 맛있었으면 해

마음 홀가분하게 도서관에 가는 엄마가

저녁을 차려두었어. 2월 마지막 날이잖아. 애썼어. 다른 달보다 유난히 짧은 이 한 달을 다른 달만큼 살아내느라 바빴던 우리를 칭찬하자. 다음 주면 너희는 학교로 향하고 나는 낮동안 텅 빈 집에서 혼자로움을 선물처럼받을 테지. 나는 카지노 게임를 생각하고 챙기느라, 카지노 게임는 내가 해 주는 밥과 잔소리를 받아먹고 자라느라 애썼다, 우리 모두, 그렇지?


엄마는 저녁 10시에 집에 돌아갈 거야. 매실액을 넣어 돼지고기 불고기를 해 두었어. 순한 맛을 사랑하는 따님과 매운맛에 열광하는 아드님을 둔 어미이니 간장 불고기를 하되 청양초를 더해두었다. 그러니 청양 고추 분포도를 보면서 사이좋게 취향껏 먹기를 바란다. 굵은 소금을 뿌려 살이 단단해졌을 삼치는, 내일 아빠와 구워 먹기로 하자.


올해는 카지노 게임 둘 다 중학생이 되는 해야. 아마 이 말은 살면서 몇 번 하지 않을 것 같아. 올해 카지노 게임는 모두 초등학생이 되었어, 고등학생이 되었어, 둘 다 대학생이 될까? 그 이후는 잘 모르겠다. 우리 삶의 진로와 방향은 언제 각자 영혼의 나침반을 따라 항로를 달리 할지 모르니 말이다.


이렇게 쪽지를 남겨두고 너희가 밥을 챙겨 먹을 거라 생각할 수 있음이 놀랍다. 나는 너희가 거품 같이 스러지고 바스러질 까봐 목욕도 못 시키던 허당 엄마였다. 다행히 너희는 외가 식구들, 까닭 없이 용감한 아빠 덕에 매일 개운하게 목욕을 하고 잠이 들었지. 내가 잘 못 하는 부분을 채워보려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이야기해주려 애썼고 이제 너희는 스스로 밥을 차려먹고 책을 읽으며 내 말에 따박따박 반박을 하고 취향을 논한다.


3월은 내 탄신월이야, 알지? 이번 3월에 엄마는 매일 저녁 도서관에 출근하려고 해. 너희의 시간에 내가 필요할 때 미리 상의하고 요청해 주렴. 이제 너희는 각자의 언어와 색으로 나에게 책갈피를 건네겠지. 엄마 삶의 페이지에 너희가 자리해야 할 순간이 있다면서 말이다. 내 책은 모서리를 접지 말아 줘. 나는 모서리를 접는 게 싫거든. 너희가 어릴 때 내 책을 그만큼 찢고 말고 접고 오렸으니 이제 내 삶의 책은 내 취향대로 존중해 주렴.


카지노 게임가 말을 할 수 있어, 카지노 게임가 글을 쓸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오로지 울음으로밖에 소통할 수 없어 알아듣지 못하는 나를 탓하며 밤새 안고 함께 울던 시절은 이제 그만 서랍에 넣어두려고 해. 하긴,말이 통한다고 마음이 통하는 법은 아니지.사춘기라는 바다를 지나며 따님, 너와 나는 들리지 않는 아우성으로 한바탕 소란을 겪었으니 이제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거두어 다시 다독다독 정리해 보자. 아드님, 나는 너와의 현명한 사춘기 항해를 위해 별스런 계획을 세우지 않으려 해. 삶이란 게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이거든.


올봄에는 비장해지지 말자. 살아서 지옥을 보겠느냐는 경고가 무감각하게 들리는 시절, 온 지구가 열탕처럼 끓는 시절에도 나무들은 다시 새 순을 밀어내고 연둣빛 살을 올리고 있잖니. 우리도 그냥 그렇게 자라 보자. 카지노 게임는 사춘기, 나는 갱년기의 시절을 지나며 우리 삶이 어떻게 작년과 다른가, 어떻게 내년이 오려나 그냥 한 세월 이야기 나눠보자. 걱정해서 걱정이 사라지면 걱정이 없겠지. 숱한 삶의 사례들이 서로 모범 답안이라 우겨도, 참고는 하되 우리는 우리답게 살아보자.


오늘, 우리의 저녁이 맛있었으면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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