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신변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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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Feb 11. 2025

어느 날, 카지노 게임 추천의 통장 뭉치가 내 품으로 들어왔다

섬뜩한 통장 분실 사건의 전말


자! 이거!


이 말과 함께 엄마는 묵직한 통장 뭉치를 내 침대 위에 던졌다. 좀 이른 유산 상속쯤이면 대환영이지만 현실은 며칠 전 사건들(!) 때문이었다. 외출 후 꽁꽁 언 몸을 부르르 떨며 집으로 들어오니 거실에 있던 엄마는 평소와 다르게 넋이 나간 채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여쭤보니 ‘그게‘ 감쪽같이 사라졌단다. 금반지 뭉텅이와 함께 모셔뒀던 통장 뭉치가. 잘 놔뒀다고 뒀는데 집안을 홀딱 뒤집었는데도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단다.


비밀번호가 없으면 돈 꺼내지도 못하니 재발급받으면 된다고 엄마를 안심시켰지만 도무지 진정 불가였다. 아빠께 통장 간수 하나 못한다고 불호령을 받을 걱정 때문이었다. 연세도 많고, 귀도 어둡고, 은행 사정도 잘 모르는 아빠께는 통장이 오래돼서 재발급받아야 한다고 은행에 모셔가면 될 거 같다고 엄마를 안심시켰다. 엄마는 귀는 어두워도 눈치 빠른 아빠가 모를 리 없다고 딸의 어수룩한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혹시 도둑이 든 건 아닌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통장이 범죄에 사용되는 건 아닌지 별별 상상하던 엄마를 안심시키려 함께 집안을 뒤졌다. 침대 밑, 매트리스 사이, 서랍, 옷장, 싱크대, 냉장고 위 잡동사니 박스, 빈 김치통까지... 있을 만한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보이지 않았다. 외부 침입 흔적도 없고, 나도 안 가져갔고, 아빠는 모르고...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치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아닌가 불안에 떠는 엄마를 달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당장 통장 쓸 일 있어?”


“아니”


“그럼 한 일주일쯤 눈 딱 감고 잊고 있어봐 봐. 그러면 걔들이 발 달려 도망가지 않은 이상 집 안에 분명 있어. 며칠 지나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튀어나올 거야”

“... 그래”


썩 내키진 않았지만 이렇다 할 대안도 없던 엄마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치매 방지를 위해 평소 습관처럼 외우던 12단(12X12 버전 구구단)이 빼곡히 적힌 너덜너덜한 종이를 다시 쥐고 중얼중얼 외우기 시작했다. 며칠 후, 통장 분실의 비밀을 품고 있느라 얼굴이 핼쑥해진 엄마를 위해 아빠와 함께 점심 외식을 하러 나갔다. 입맛 없을 때 가끔 가던 코다리조림 식당에서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식사 후 혈당을 좀 떨어뜨리려 걸어서 근처 공원으로 향하던 중 엄마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무슨 큰일이라도 났나 싶어 깜짝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물었다.


“왜? 뭐?”


“식당에 모자 놓고 왔나 봐.”


아빠의 잔소리 폭격이 시작되기 전에 상황 수습을 해야 했다. 냅다 식당으로 뛰었다. 뛰면서도 카지노 게임 추천가 오늘 모자를 쓰고 왔었나? 되짚어 봤는데 도무지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집에서 나와 바로 불러둔 택시 앞자리에 내가 앉고, 부모님은 뒷자리에 타셔서 카지노 게임 추천가 모자를 쓰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식당에 들어와 자리에 앉으며 카지노 게임 추천가 겉옷을 벗은 기억은 나는데 모자를 벗은 순간은 기억 속에 없었다. 돌아가 보관된 분실물 중 베이지색 울모자가 있는지 물었다. 자리를 치우던 직원도, 계산대의 사장님도 카지노 게임 추천의 모자는 본 적 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나간 그 짧은 시간 사이에 다른 손님이 사람들 눈을 피해 카지노 게임 추천 모자를 가지고 간 건가? 찜찜했지만 단념하고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갔다. 내가 식당으로 튀어 간 사이 맨날 뭐 놓고 다닌다고 아빠가 잔소리 폭격을 했는지 잔뜩 주눅 들어 있는 눈빛의 카지노 게임 추천. 희소식을 들고 올 딸을 기다렸을 텐데 텅 빈 손을 보여주며 모자가 없다고 말했다. 망연자실한 카지노 게임 추천는 산책할 기분이 아닌지 날이 춥다며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통장 뭉치에 이어 모자까지. 며칠 사이에 벌어진 분실 사건에 엄마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장본 각종 농산물, 마스크, 장갑, 선글라스 등 뭔가 잃어버린 건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통장 분실은 지금까지의 분실과 스케일이 달랐고, 그 사건이 수습되기도 전에 얼마 쓰지도 않은 새 모자를 잃어버렸다. 이런 일이 연이어 벌어지니 정말 엄마에게 치매가 온 게 아닐까? 걱정이 됐다.


며칠 내내 아빠한테는 말도 못 하고 잠도 못 주무시고 끙끙거렸던 엄마. 자꾸만 누워만 있고 울적해하는 엄마를 달래려 시도해 봤지만, 도무지 회복되지 않았다. 그러다 나도 폭발해 T형 인간이라도 된 듯 “그러고 있는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니 통장 재발급받고, 받으면 나한테 맡기라”라고 빽 소리를 질렀다. 더 의기소침해진 엄마를 위로하려 다음 날 잃어버렸던 모자와 똑같은 모자를 사 들고 집에 왔다. 엄마가 잃어버린 ’그 모자’가 식탁 위에 떡 하니 놓여 있었다. 코다리조림을 먹으러 가던 날, 식당에 가기 전 집 앞으로 부른 택시가 올 때까지 동생 방에 들어가 정리를 하던 엄마. 택시 도착 소식에 서둘러 나오느라 모자를 동생 방에 그대로 둔 채 식당에 갔고 분명 식당에 모자를 쓰고 왔다고 착각하고 있던 거였다. 며칠째 일 때문에 집에 들어오지 못해 영문을 모르는 동생은 갑자기 자기 방에 놓인 엄마 모자를 식탁에 가져다 뒀을 뿐이다.


집 밖을 나가지 않았던 모자가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온 지 며칠 후, 외출했던 내게 엄마의 카톡이 도착했다. “통장 찾았어! 걱정 말아” 짧은 메시지였지만 그간 글자 하나하나마다 마음 졸였던 엄마의 날아갈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통장 분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통장 보관 위치를 주기적으로 옮겨두던 엄마. 작고 소중한 통장을 잘 둔다고 사람들이 잘 들여다보지 않을 만한 곳을 찾았다. 그날 엄마의 레이더망에 들어온 곳은 냉장고 옆 하부 싱크대. 주로 채, 절구, 밀대 등 냄비나 그릇에 비해 사용 횟수가 현저히 적은 주방기기를 보관하는 곳이다. 그곳 깊숙이 통장+금반지가 든 꾸러미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까맣게 잊었다. 외부의 도둑도, 내부의 적도 없는 엄마 혼자만의 보물찾기 게임이 그렇게 끝났다.


엄마도 나도 통장(+금반지)을 잃어버렸다는 사실보다 두려웠던 건 치매가 아닐까 하는 걱정이었다. 이제 남의 일이 아닌 흔한 치매라는 질병이 어쩌면 우리 가족에게도 시작됐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통장이야 재발급받으면 되고 금반지야 돈 벌어서 또 사면되지만 시작된 치매는 무를 수 없으니까. 다행히 엄마의 며칠간 속앓이로 끝난 우당탕 통장 분실 사건은 이제 자신의 기억력을 믿지 못하게 된 엄마가 내게 통장을 통째로 넘기는 것으로 끝났다. (내가 통장을 가지고 있어도 비밀번호를 모르니 쓰지 못한다. 내게는 통장 뭉치나 휴지 뭉치나 매한가지다.) 또 통장을 잃어버려도 괜찮고, 모자를 분실해도 된다. 엄마가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치매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점점 짐이 되는 인간이 된다는 걱정에 휩싸여 남은 삶을 위축된 채 사는 게 더 큰 공포였다. 딸에겐 물건을 분실하고, 길을 헤매고, 기억을 잊고, 결국 자신을 잃어버리는 엄마를 상상하는 게 그 어떤 공포 영화 보다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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