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리는 퇴사한 지 석 달 만에 이름 석 자가 선명하게 찍힌 부고장이 되어 회사로 돌아왔다. 그의 죽음에 크게 슬퍼하는 사람은 없었다. 너 역시 ‘결국’이라고 마음속으로 우물거리며 옅은 한숨을 한 번 내쉬었을 뿐이었다. 장례식장의 위치가 집으로 가는 방향과 정반대라는 걸 확인하고는 아주 잠시 조문을 망설이기도 했다. 퇴근 시간이 되자 직원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너는 일부러 그들과 시차를 두고 천천히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이런 날, 새새거리는 사람들의 수다를 견디기는 힘들 것 같았다. 황혼이 깃든 거리에 점을 찍듯이 천천히 걸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땐 어둠이 발밑까지 밀려와 서서히 몸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어둠에 온몸이 붙들려버리기 전에 서둘러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빈소는 조촐하고 쓸쓸했다. 노총각이던 이 대리에게 가족이라곤 사장인 형 하나뿐이었다. 사장은 주름이 쭈글쭈글한 상복을 입고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밤새 한숨도 못 잤는지 얼굴이 마른 진흙처럼 푸석거렸다. 너는 최대한 조용히 영정사진 앞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 대리는 지금보다 이십 년쯤은 앳된 얼굴로 가지런한 치아를 잔뜩 드러낸 채 웃고 있었다. 치아가 물감을 부어놓은 듯 희었다. 대학생 때 찍은 사진인 걸까? 무엇을 희망하여 저리도 밝게 웃고 있는 것일까? 너는 갑자기 망연해져서 그의 두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연못에 비친 보름달같이 명징한 눈동자가 이 대리가 이미 죽어 없어진 카지노 쿠폰이라는 사실을 거짓말처럼 느껴지게 했다.
사장이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너는 최대한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맞절을 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사람에게 건네는 인사는 언제나 불편하고 어려웠다. 그 순간의 압박감을 감당할 수 없어서 장례식장에 가기를 꺼리곤 했다. 몸을 굽히고 손을 바닥에 붙이고 고개를 숙이고 고개를 다시 드는 동안 시간이 초 단위로 아주 천천히 늘어지고 있었다. 사장의 움푹 파인 눈두덩이를 들여다보다가 처음으로 이 대리와 똑 닮은 눈이란 생각을 했다. 둘에게도 구슬치기를 하며 티격태격하던 철없던 때가 있었겠지. 호빵 하나를 반으로 쪼개 먹으며 무람없이 웃던 시절이 있었겠지. 삶이 아득하고 시간은 느리기만 하다고 징징거리던 어린 날이 있었겠지. 너는 사장에게 할 말을 찾지 못해 주춤거리다 그냥 고개를 떨구었다.
너는 오빠와 다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빠는 언제나 어린 너에게 양보만 했다. 엄마에게도 오빠는 아들이라기보다 남편 같은 존재였다. 아빠가 집을 나가기 전이나 후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빠는 그런 자신의 운명을 알았던 건지 스스로 빨리 어른이 되기를 자처했다. 중학생 때는 이미 성인이 되었고 고등학생 때는 인생을 다 산 카지노 쿠폰처럼 늙어 버렸다. 카지노 쿠폰들과 다른 속도로 생을 달려가느라 혼자서 노상 헉헉거렸다. 오빠가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았던 것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가 마지막이었다. 아직은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인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오빠의 시간은 그렇게 빨리 흐르지 않았다. 너와 오빠는 다정히 손을 맞잡고 아침부터 해가 질 무렵까지 느릿느릿 동네를 걸어 다니곤 했다.
그때의 카지노 쿠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두려움보다 어디로든 너를 데려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다. 카지노 쿠폰 기차가 오는 방향을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굴렀다. 하지만 오빠 손에 이끌려 올라탄 기차에는 먹을 것이 턱 없이 부족했고 제대로 앉을자리가 없었고 끊임없이 덜컹거려서 멀미가 났다. 오빠는 부대끼는 인파 속에서도 너의 손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오빠의 손에 흐르는 땀이 물컹하고 끈적했다. 오빠가 너의 손을 놓아버리던 날에야 깨달았다. 이 모든 게 지나치게 가혹하고 잔인한 일이었다는 것을. 오빠는 이십 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모든 삶을 다 살아버려서 더는 살아갈 아무런 힘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오빠의 주검을 바라보면서 카지노 쿠폰 손바닥에 흐르는 땀을 교복 치마에 닦고 또 닦았다. 이제는 아무도 너의 손을 잡아주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접객실 안으로 들어가자 회사 동료 몇 명이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다. 구겨진 신문지처럼 모서리에 쑤셔 박혀 있는 재이의 얼굴도 보였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여러 개의 소주병들이 놓여 있었다. 카지노 쿠폰 재이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재이의 눈동자에 검붉은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불투명해진 눈동자에서는 아무런 빛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문득 오빠의 눈이 떠올랐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깊은 우물 안에 박혀 있는 오래된 그림자 같기만 하던 눈이.
"재이 씨, 술 많이 마셨어요?"
"대리님, 오셨어요?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 대리님 너무 허망하지 않아요?"
"그래요, 생각보다 너무 빨리 떠나셨어요."
"이 대리님이 퇴사하던 날 제게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저보고 카지노 쿠폰 얼굴이 참 보기 좋다고 하셨어요. 자기는 웃지 않은 지 오래돼서 카지노 쿠폰 법도 잃어버린 것 같다면서."
"재이 씨가 잘 웃긴 하죠. 늘 행복에 겨운 카지노 쿠폰처럼."
"왜 다들 행복하면 웃는다고 생각할까요? 슬퍼서 웃는 카지노 쿠폰도 있을 건데."
"슬퍼서 카지노 쿠폰다고요? 왜요?"
순간 재이의 눈꺼풀이 눈동자를 덮어 버렸다. 몸을 가누기 힘들어하는 재이를 동료 몇 명이 부축해서 길가로 나왔다. 하지만 아무도 재이의 집이 어딘지 알지 못했다. 재이와 가깝게 지내는 카지노 쿠폰은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난감해하는 카지노 쿠폰들을 밀어내고 네가 나서서 택시에 먼저 올라탔다. 집이 같은 방향이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택시기사에게 네가 사는 원룸의 주소를 말했다. 몸이 작고 마른 재이를 질질 끌다시피 하여 방으로 데리고 와 눕혔다. 재이는 세상모르고 잠이 들었다.
너의 공간에 들어온 카지노 쿠폰은 재이가 처음이었다. 너는 잠든 재이의 얼굴을 한 번씩 들여다보면서 천천히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재이와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이불을 깔고 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재이의 숨소리가 쏟아져 내리는 어둠이 바닥에 한 줌도 내려앉지 못하게 쉼 없이 공기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너는 재이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밤새도록 어두워지지 않는 방을 오도카니 지켰다.
슬퍼서 웃는 카지노 쿠폰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그러고 보면 너는 정말로 슬펐던 적은 없었다. 늘 누군가에게 혹은 무언가에 화가 나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차라리 슬퍼했더라면 울기도 웃기도 편했을까? 사라져 버린 남자들을 미워하지도 않고 미안해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슬퍼하기만 했더라면 이렇게 너의 삶이 고장 난 대관람차처럼 공중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춰 서버리진 않았을지도 몰랐다. 너는 재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가 지었던 투명한 표정과 동그라미 같던 웃음소리를 떠올렸다. 순간 서늘한 공허가 밀물처럼 가슴을 덮쳐왔다.
슬픈 사람의 웃음은 속이 텅 비어 있어서 메아리도 없이 공기 중으로 흩어지기만 한다는 것을 너는 눈치채지 못했다. 단지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웃음으로 하루를 덮는 재이의 안간힘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문득 너는 재이가 더는 낯설지도 불편하지도 않았다. 웃지 않는 너와 웃는 재이는 어쩌면 똑같은 사람들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