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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Apr 18. 2025

뭐 하여간 씁니다 2

황진이 황진이 진이 진이야

경공업 기반 단순노동의 반복은 으레실존적 위기를 불러오곤 한다. 다시 말해, 일하다 보면 문득문득 의문이 치솟는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뭐 하긴 뭐 해 돈 벌고 있지. 그러나노력이나 태극기 같은 것이 그렇듯 돈이라는 단어 또한 오염된 시대이기 때문에 좀 더 풀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내게 괜찮은 방식은 '난 지금 창작의 연료를 구하는 중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장 본부장 부장 세 명의 상전을 모시고 있다. 죄다 오다와 가르침이 제각각이다. 자기가 안 가르친 건 다른 이가 가르쳤을 거라 여기기에 늘 생전 해본 적 없는 걸 해야 한다. 뭐 이런 종류의 일은 체계가 없긴 마련이지만,일일이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거라면왜 들어온 애들이 금방금방 나가는 거냐 불평 또한 삼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봐이봐 부장이 최우선으로 하란 일을 하고 있었는데 사장과 본부장이 또 날 끌고 나왔다. 본부장이 바람 쐬니까 좋지? 하는데 상사를 위한 엔터테이닝 제2식 리액션이 고장 났다. 조수석에는 사장이 타고 있다. 삼춘도 많이 늙었다.


시청에 도착했는데 공무원은 지네들차에 사이렌 올리는 작업을 위한 공간조차 확보를 안 해놔서 30분가량을 낭비했다. 어쩜 저렇게 일을 못할까? 이 또한 탄핵 정국의 여파일까? 상상력의 부족일까? 아님 그냥 일부러 저러나?

직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늘 처음 들어온 신입이라도충분히 알아먹도록 친절하면서도 주절주절 상세하게 서술했다가다시 읽어보니 너무나 찌질해서 지우고 말았다. 간단히 다시 말하면 사장의 실수를 뒤집어써 본부장에게 욕을 먹었고 그동안 사장은 멀찍이 서서 빈 핸드폰을 붙들고 통화하는 척을 했다.


진심으로 관두려고 마음먹었다. 영화 엣지오브투모로우처럼 계속해서 시간을 과거로 되돌린다면 10번 중 8번은 관뒀을 것이다. 근처에 범계역이 있으니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겠지.마트에 들러 최근 300원이 올라 7800원이 된 고량주를 사다가 소고기를 담뿍 추가한 마라샹궈와 함께 먹고 까무룩 잠들 수 있다면. 불안의 경련을 애써 가라앉히고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다면. 감히, 감히 나도 행복하다 말할 수 있을 텐데.유감스럽게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우주는 10번 중 2번 안 관둔 우주이다.


돌아오는 길 사장과 본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처음엔 원래 그렇다고 열심히 날 달래고 중국집에 들어 짬뽕을, 그것도 삼선짬뽕을 사주는 바람에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마음이 풀렸다.난 최근에 종교에 귀의했는데 핵심교리가 저탄고지다. 저탄고지는 신이다. 그러나 이단의 면발은 너무나 쫄깃하다.


짬뽕에는 훔볼트 오징어가 들어 있다. 훔볼트는 독일의학자고 그의 이름을 딴 칠레 해역의 해류 이름이 훔볼트 해류고 그 이름을 딴 오징어가 훔볼트 오징어다. 그러니까 원숭이 엉덩이는 빨갛고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으니까 원숭이 엉덩이가 맛있듯이, 독일의 학자 훔볼트는 오징어인 것이다.


본부장이 뜻밖에 몸을 잽싸게 놀려 막 떠나려는 엘리베이터를 잡는다. 난 눈을 크게 뜨고 감탄한다. 와, 정말 민첩하십니다! (여기서부터는 혼잣말처럼) 못 잡고 다음 거 타야 할 줄 알았는데... 본부장은 자뭇 자랑스러워한다. 제3식 아부가 잘 작동하고 있다.


엊그제 회식을 했는데 또 소규모 비공식 회식을 한다. 이번에는 막국수를 먹지 않고 내 종교의 교리를 지켰다. 살 아래 과장도 취하니 엔터테이닝이 제법이다. 전반적으로 나보다는 한 수 아래지만, 나라면 입이 찢어져도 '본부장님이 O형이시라 리더십이 있으신가 보다'와 같은 발언은 못한다.


염병도 가지가지 노래방까지간다고 한다.과장이 취해서 자꾸 말했다. 오해하지 마세요. 여기 이상한데 아니에요! 노래방의 이름은 황진이 노래방이다.내일 지각을 하지 않으려면 지금 가야 온라인 카지노 게임고 본온라인 카지노 게임님은 당연 너그러우시지만 사장이자 사적으로는 삼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고 입을 털어서 택시비를 받아 집으로 다. 받은 돈의 절반은 택시비로, 절반은 내 창작의 연료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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