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 시절의 나는 모든 면에서 서툴렀다. 어떤 각도로 봐도 그렇다. 상사와 함께 점심을 같이 먹을 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체할 것 같았다. 선배들과 대화를 나눌 때 조리 있게 내 생각을 말하지 못했다. 회의 카지노 게임에는 무대 공포증으로 전날준비한 아이디어들을 보여주지 못했다. PT발표 카지노 게임에는 염소 목소리로 발표를 힘겹게 이어가더니 아쉽다는 피드백 몇 마디에 꾸역꾸역 눈물을 삼켰다. 마음에 안 드는 상황에 반항해 보겠다고 대놓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하물며 회식에 가서 고기를 굽는 것조차 어렸다. 어떻게 그렇게 맛없게 구울 수가 있는 건지. 한 번 굽고는 대리님이 집게를 가져간 건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였다.
해외 출장 중에도서툴렀다. 2018년, 크리에이터들을 인솔하는 역할로 상하이 출장을 다녀왔다. 영어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지금 생각해 보면 중국에서 영어를 알아봤자지만),중국도 난생처음인 사람이, 모든 것에 쭈뼛쭈뼛 인 사회초년생이 누굴 인솔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찌어찌다녀왔다.누군가를 이끈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뚝딱거리면서 깨달았다. 그리고 상하이가 얼마나 생각했던 것과 다른 곳인지도 깨달았다. 2018년이 2025년이 될 때까지 내내 '상하이 또 가야 하는데....'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을 정도로.
상하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반짝반짝한 대도시였다. 와이탄과 난징동루 거리의 야경은 태어나서 본 야경 중 가장 그 길이가 길었고 진했다. 거리에 있는 모든 건물이 금빛이었던 와이탄은 중국에 대한 기존의 감상을 모두 재건축했다. 낮에는 이국적인 갈색 벽돌로 견고함을 강조했던 건물들이 일몰과 함께황금색 옷을 입었다. 와이탄 거리에 서 있으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현지 마라샹궈의 맛만큼 강렬하게 느껴졌다. '압도'라는 단어가 절로 생각나는 풍경이었다. 공간이 나를 덮칠 것 같은 기분.내가 지금까지 생각한 야경은, 중국은 무엇이었을까.
랜드마크인 동방명주보다 와이탄 거리가 인상적이었던 건 미래의 나는 랜드마크보다 거리 사진 찍는 걸 좋아하게 될 거라는 신호였을지도 모르겠다. 출장 기간 동안 열 곳도 넘는 장소를 갔는데 다녀온 뒤로 남은 건 와이탄 야경밖에 없다(무슨 독립서점과 전망 좋은 바도 갔는데 바는 당시에도 '다시는 올 일이 없겠군. 비싸서.'라고 생각했고, 독립서점은 이름도 위치도 기억나지 않는다).그 야경을 2025년까지 잊지 못하며 골골 앓고 있었다.
상하이에 대한 갈망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외에는 많은 것이 변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예전의 내가 아니야~' 말할 정도로.그 사이에 나는 조금 더 실전에 익숙하고 변수에 잘 대응하는 사람이 됐다. 여전히 내향인이지만 의견을 말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고 가끔은 익숙한 사람들보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자리를 더 편한 사람이 됐다. 아쉽다는 피드백에 할 수 있는 건 다시 하는 것밖에 없음을 잘 아는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이 되었다. 고기도 셰프처럼은 못 구워도 먹는 데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는 굽는다.해외에서 인솔하는 경험도 어떻게 하면 된다는 그림이 나름대로 머릿속에 그려져 있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그럴 필요 없었는데, 아쉬운 순간들 위에 수월함을쌓아 올렸다.
여행자로서도 그 사이에 많은 걸 해냈다. 면접에서 '이 정도면 여행이라는 분야에서 충분히 성공한 것 같은데 굳이 회사에 지원한 이유가 있나요?"라는 질문을 몇 차례 들었다. 성공까지는.... 아무래도 좋게 봐주신 모양이지만,경험적으로나 여행 콘텐츠를 제작하는 크리에이터로나 익숙한 게 많아진 건 사실이다.
익숙함은 언제나 달콤하고 대환영이지만,때때로 손에 쥐고 있던 어떤 것을 스르륵 놓아버리게 한다. 잘 몰라서 더 꽉 쥐고 있었던 주의 깊은 신경과 예민하게 세우는 감각. 긴장할 때 오롯이 100을 채울 수 있는 것들을 놓친다는 게 익숙함의 어두운 부분이다. 지금까지 터득한대로만 한다거나, 이미 아는 거라고 꼰대스러운 자세를 취한다거나, 그리 어렵지 않으니 빨리 해치우자며 성급하게 처리하거나. 그건 아는 고통이 더 무섭다고수고로운 카지노 게임으로 돌아가기 싫은 마음 때문일 거다. 그 마음을 귀찮다고 퉁치고 마는 거다.
그렇게 물에 흠뻑 젖은 수건처럼 익숙함에 축 늘어질 때, 가기 좋은 도시가 중국 상하이였다.상하이는허둥지둥 갈팡질팡이 따로 없었던 과거의 나를 되찾기에 최적화된 곳이었다.
세계여행으로 별별 도시를 다 가 봤지만 유독 상하이에서는 초보 여행자였다. 세 개의 앱때문에.
중국은 주문과 결제를 모두 휴대폰으로 처리한다. 애초에 현금은 비닐에 넣어 비상용으로 보관하는 가게들이 다수였다. 신용카드는 현금보다도 보기 힘들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를 이용해 가게마다 있는 QR코드를 스캔해 메뉴를 확인하고 주문한다. 그리고 결제까지 끝낸다. 한국에서는 영수증 혹은 진동벨로 받는 주문번호도 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국어도 모르는데 한국어 지원도 되지 않는(알리페이는 그나마 이상하게라도 번역을 하긴 한다)앱을 가지고 카지노 게임하는 건 쉽지 않았다. 잘 쓰고 있던 알리페이 계정이 정지됐을 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는 줄 알았다.
구글맵으로 길 찾기가 불가한 중국에서는 어쩔 수 없이 현지인들이 쓰는 고덕지도 앱을 함께 써야 한다. 문제는 어설픈 한국어 번역도 안 해주기 때문에 검색도 중국어도 해야 한다는 거다. 한국에서 즐겨찾기로 모든 카지노 게임지의 지명을 지도에 저장한 게 다행이었다. 하나하나 지명을 번역 앱을 통해 알아보고 지도 앱에 붙여 넣어서 검색하는 건 고된 일이었을 것 같다. 이런 팁을 일치감치 알려준 유튜브 채널에 감사하다.
스마트폰의 중요도가 이보다 높은 나라가 또 있을까. 지하철역이나 쇼핑센터에 보조배터리 대여 서비스 기기들이 자주 보인 게 이를 또 한 번 증명한다.
의사소통도 힘들었다. 심지어 중동도 영어는 통했던 것 같은데 중국은 얄짤 없다. 영어로 물어보면 중국어로 답한다. 음식점에서도 번역 앱 없이는 어떤 말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언어를 몰라도 눈치껏 어찌어찌 주문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실감했다. 미지의 행성을 카지노 게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중국의 룰을 적극 수용하며 여행한 3박 4일이었다. 오랜만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여행이었다. 쓰는 지도 앱조차 처음이었던 여행은 누가 봐도 두 번째 여행하는 곳이라고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지만, 그래서 더 꼼꼼하게 상하이를 경험할 수 있었다. 상당한 열의를 더해 도착한 목적지를 자세히 눈에 담았고 또 카메라 셔터 소리와 함께 저장했다. 특히 첫 번째 상하이를 카메라 없이 간 게 두고두고 아쉬웠는데 드디어 속이 시원해졌다. 한을 제대로 푼다고 꼼꼼하게 구도를 발견하고 셔터를 눌렀다. 가는 장소마다 카메라를 집어드는 걸 잊지 않았다.
선명하게 기억하는 유일한 풍경이었던 와이탄은 여전히 강렬한 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과거에는 찾아보지도 않았는데 와이탄 거리에 있는 건물들은 애초에 부유한 건물들이었다. 땅을 다루거나 돈을 다루거나. 생각해 보니 이만큼 많은 조명을 쏘는 건물들이 평범할 리가 없다.와이탄 거리와 동방명주 야경을 모두 볼 수 있는 광장은 과거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건물도 사람도 규모가 대단했다.
역사에서 비롯된 장소들을 찾아다니는 것도 와닿는 경험이었다. 우캉루와 대한민국임시정부 등 중국에 있으나 다른 나라의 역사와 교집합 된 장소들.스토리가 있는 공간들에 쉽게 마음이 가는데 그런 취향에 딱 부합하는 공간들이었다.
그때의 나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한국에서도 파우더를 구입해서 타 먹었을 정도로 좋아하는 밀크티를 매일 마신 것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잘 다루지도 못하는 앱으로 어렵사리 원하는 메뉴를 찾아 주문해 마신 밀크티는 한 잔 한 잔이 등산 끝에 오른 정상에서 마시는 물 맛과 결이 같았다. 행복해지는 맛이야! 양껏 기뻐하면서 밀크티의 나라를 실컷 누볐다.첫 번째 상하이에서는 본토의 마라샹궈에 충격을 받았는데 이번 상하이에서는 밀크티가 그 역할을 해줬다.밀크티도 나라마다 이렇게나 맛이 다르구나. 중국의 밀크티는우유보다는 티에 집중한다.티를 이렇게 저렇게 블렌딩하는 것이 커피 원두를 다루는 것만큼 중요하게 여겨지는 듯했다. 밀크티도 일반 티도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마시는 사람으로서 그런 중국의 음료 문화가 퍽 마음에 들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상하이에서 딱 3일만 더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싶게 하는 호기심의도시였다.
오랜만에 서툴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7년 만의 상하이를 마주했다. 길 찾기 기능 하나도 능숙하게 못 쓰고 버벅거리지만 잘못 찾아가는 일 한 번 없이 여행하려고 집중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원하는 음식을 기어코 주문해서 현지의 맛을 경험했다. 구역마다 건축 스타일이 다른 상하이의 매력을 다각도로 카메라에 담으려고 부지런히 손과 발을 움직였다. 하루에 3만보를 걸으며. 최선을 다한 시간들이었다.
덕분에 여전히 상하이에 대해 빠삭하게 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조식 문화가 중국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상의 한 조각인지. 티를 즐겨 마시는 문화 속에서 태어난 카페 브랜드들의 힘은 해외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스마트폰 하나로 어디까지 해결할 수 있는지. 그 덕분에 성장한 사업 분야는 무엇인지. 중국 미식 세계가 얼마나 독창적인지.이제는 와이탄 외에도 기억하는 게 많을 것 같다.
상하이에서 서툰 나를 발견했고 한층 단단해진 나도 확인했다. 서툴렀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가는 초보 여행자의 여행이었지만 결론적으로과거보다 더 많은 걸 얻어 뿌듯한 여행이었다.상하이는 해외카지노 게임이 처음이었던 것처럼긴장하거나 당황하게 만들었지만처음이라서 더 간절했던 순간들의 가치도 함께 만들어줬다.
언젠가 세 번째 여행을간다고 해도, 또 알게 될 거다. 익숙함과 서툼 사이, 그 경계를 기꺼이 넘나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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