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잊지 못할 분기점 같은 카지노 게임
설 연휴 전. 국립현대미술관에 갔다가 광화문에 가면 으레 떠오르는 평양냉면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갔더니 공간도 이전, 내부도 싹 바뀌어서 당혹스러웠다. 혼자 1만4천원 짜리 냉면을 룸에 앉아 먹는 사치라니. 세상 호사스럽다는 생각에 민망해졌고, ‘집 가서 노후계획이나 짜자’는 저만치 나아간 반성에 사로잡혔다.
그날. 새벽부터 장이 뒤틀렸다. 더는 토해낼 것도 카지노 게임데 헛구역질만 올라와 <서브스턴스의 한 장면처럼 등을 들썩였다. 누런 국물을 배출해내고 진이 다 빠져 침대에 돌아오기를 2회차. 며칠 전 아침 방송에서 봤던 대장균 감염 증세가 기억이 났다. ‘내 몸이 세균이 위력을 발휘하는 놀이터가 됐구나.’
이 같은 관점 뒤에는 지난해 연말에 들었던 <메두사의 웃음으로 수업 덕이 컸다. 그중에서도 「내 식탁 위의 개」와 「떠오르는 숨」이. 최근 유튜브에서 본 EBS 다큐멘터리의 애벌레 용화 장면도 힘을 보탰다. 대다수 번데기들은 나비가 되지 못한 채 용화 상태에서 기생충에 잠식당한다. 나비 시점에서 보면 잔인한 일이지만, 동시에 어떤 것도 무화되지 않는다. 내 몸이 타인의 몸이 되고, 타인이 내 몸이 되기. 수업 이후 ‘나’라는 개체 너머 우주를 본다. 구토가 한창 진행형인 와중에 이런 생각이라니.
지난해에는 ‘돌이킬 수 카지노 게임 사건들’이 세 번 있었다. <메두사의 웃음으로를 들은 일. 미술 웹진에 아티스트 한 명에 집중한 원고를 썼던 일. 49일 만난 애인과 영화 한 편을 붙들고 에둘러 간 일. 경험하면 결코 후퇴할 수 카지노 게임 어떤 순간들이다. 진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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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를 하자마자 눈독 들였던 여성적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여성 작가의 문학을 읽고, 매회 선생님이 던져주는 질문에 대한 글을 쓰고, 또 서로의 글을 나누는 수업을. 그곳에서 읽었던 아홉권의 책들은 텍스트의, 아니 세계를 향한 지평을 넓혀주었다. 정신적인 구속 상태에 놓인 여성의 심리를 스릴러적 이미지로 구현한 「누런 벽지」, 한 부인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의식을 세포의 연결처럼 이어낸 「등대로」, 봉숭아물이 터지듯 문장이 발산되어 나가는 「아구아 비바」, 특정할 수 카지노 게임 그리움을 파도의 포말처럼 펼쳐낸 「사랑」, 한 흑인 가정에 일어난 비극을 시선 돌림 한 번 없이 서늘하게 그려낸 「가장 파란 눈」, 두려움과 공포의 한복판에서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의 처연함을 꽉찬 문장에 숨차게 담아낸 「황니가」, 자연과 살아가며 느낀 세계를 향한 애정을 적정의 습도와 풍향으로 풀어놓은 「내 식탁 위의 개」, 무슨 말인지 모를 낯선 말을 생경한 화법으로 늘어놓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아린 「딕테」, 바다에서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해양생명체 고래에 대한 이해와 상상과 존중어린 사랑을 담은 「떠오르는 숨」까지. 선생님이 소개한 텍스트는 매번 한 번도 맞지 않은 세찬 바람 가운데 날 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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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부터 미술 매거진의 SNS 채널에 글을 쓴다. 돌연 프리랜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퇴근 후 밤마다 포트폴리오를 정비한 것이 계기였다. 이후 혈안이 된 눈으로 할 수 있는 일을 갖가지 키워드를 넣어 찾아다녔다. 콘텐츠 기획, 콘텐츠 에디팅, 객원 에디터, 원고 기고, 원고 모집. 우물을 찾을 때까지 돌아다니면 우물을 발견하는 법. 약 1년 전 한 매거진이 낸 객원 모집글을 발견했다. 모집공고에 기재된 메일에 포트폴리오를 첨부한 메일을 썼다. 당장의 기대없이 그저 언젠가 손이 필요할 때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그리고 돌아온 회신. 반복되는 야근 가운데 정규 근무시간이 끝난 때 카페로 나가 화상 미팅을 했다. 그렇게 외주를 시작했다.
6개월 되던 시점, 우연한 기회로 작가 한 명의 작품세계를 깊게 파는 꼭지를 담당하게 됐다. 평소 할애하던 시간의 2배를 쏟으며 작가의 자료를 살폈다. 원고 작성을 위해 기본 재료를 손질하고, 다듬은 재료를 배치하고, 적당한 표현을 헤매며 조리하는 시간을 거쳤다. 원고를 완성할 시점에는 처음에도 좋았던 작가의 작품세계에 순도 높은 애정이 싹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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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는 언젠가 영화를 찍고 싶어카지노 게임, 영화를 좋아카지노 게임 PD였다. 한날은 강남역 인근의 예술영화관을 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이 목적이었다. 나는 첫 회차, 그는 무려 7회차 관람이었다. 영화관 밖으로 나왔을 때 그는 내게 “어땠어요?”라고 물었고, 상대의 감상을 망치고 싶지 않아 “말해도 돼요?”라고 되물었다. 빈약한 감상 가운데 내가 기억한 장면은 극중 사오리가 차를 주차하면서 아무리 주변을 살펴도 필연적으로 생기는 사각지대에 관한 장면이었고, W는 그 장면을 포함해 모든 장면에 대한 감상을 펼쳐놨다. 볼 때마다 울고 말았다는 그는 물기 어린 눈망울로 애정에 기반한 이야기를 알알이 늘어놨다.
강남역에서 출발해 신도림역에서 환승해야 했던 나는 헤어지기 싫은 마음에 역 이름을 말하는 안내방송에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어떤 사정인지 몰라도 내 환승역에 반응하지 않았고, 홍대입구역에 와서야 몸을 일으켰다. 2호선 강남역에서 출발해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내려 다시 홍대입구역 공항철도로 가는 우스움을 그는 몰랐다. 그리고 난 깨달았다. 좋아하는 남자와 맘에 드는 영화 한 편을 보고 이렇게 얘기를 나눠본 것은 연애 경력 15년 만에 처음이라는 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 전을 본다. 차학경의 이름을 발견한다. 낯선 언어가 설원처럼 펼쳐지던 「딕테」를 떠올린다. 만난 적 있는 세계와 다시 마주친다. 영화 <서브스턴스를 본다. 엘리자베스의 최후가 된 메두사의 머리를 본다. 수업에서 읽은 엘렌 식수의 마지막 텍스트가 떠오른다. 또 다른 날에는 <오늘의 작가상 2024에서 윤지영 작가의 ‘레다와 백조’를 만난다. ‘탐할 수밖에 카지노 게임’ 레다의 아름다움에서 그녀를 강간하려는 제우스의 탐욕으로 시선이 옮겨간다. 탐욕스레 늘어진 백조의 목은 제 욕망을 가눌 줄 모르는 남성의 어리석은 성기. 모가지를 움켜진 투명한 손은 강간 가해자를 응징하는 용기 있는 익명의 여성들의 응집체. 수업을 통해 얻게 된 단어들과 시야들이 세상과 만나 언어를 얻는다.
예술 매거진에서 한 작가를 깊게 파는 글을 작성한 뒤에는 작가들의 지난 행보와 현 주소에 눈길이 간다. 지금의 작품을 낳기 전 그가 발표해온 작품은 무엇이었는지. 무심하게 지나친 붓터치와 재료를 다루는 방식 하나하나가 그의 세계를 구성한다는 사실을 조금은 알게 됐다.
연애 시작 15년 만에 문화적 토양이 비슷한 남자와 작품을 보고 생각을 나눴다. 그 경험이 미칠 듯이 짜릿하다는 것을, 이런 경험은 독서모임이나 영화모임이 아니고서야 20년 지기 친구 두엇과 해본 일이 전부라는 것을, 그리고 이젠 이것이 불가능한 사람과는 만날 수 없음을 느낀다.
글쓰기 수업은 12월 초에 끝났다. 작가의 작품세계를 다룬 꼭지는 일회성 과제였다. 49일 만난 애인은 떠났다. 이제 나는 돌이킬 수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이 있음을 안다.여성 작가들의 말하기가 깃든 문학은 시야를 넓혀줬다. 미술관을 포함해 어디를 가도 그녀들의 글이 맘속에 찰랑인다.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잠시나마 깊숙이 들어갔다 나온 일은 한 세계를 감각하는 기쁨을 심어줬다. 남자와 문화를 공유한 경험은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게다가 그게 몹시 좋은 감각임을 알려줬다. 불과 3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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