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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Apr 18. 2025

무료 카지노 게임의 거짓말로 얻은 것들

분량 : 200자 원고지 16장


무료 카지노 게임을 처음 본 건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로 이직하기 위해 면접을 볼 때였다. 선한 인상과 어눌한 말투가 특징인 사람이었다. 이직사유는 단 하나,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이전 직장에서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돈을 받는 대가로, 다신 돌아오지 않을 청춘을 오롯이 바치는 께름칙한 느낌이 들어 내린 결단이었다. 기하급수적으로 변하는 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한푼이라도 더 벌고자 젊음을 희생할 게 아니라, 나만의 일을 찾아 서사를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직하는 회사를 물색할 때 따졌던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주 5일제를 준수할 것. 빨간 날도 빠짐없이 다 쉬는 9 to 6 사무직일 것. 그리고 야근이 없을 것. 면접관이었던 팀장님은 연봉체계와 업무개요를 비롯하여 주말과 빨간 날은 다 쉰다고 말했다. 또한 일거리는 계속 있을테니 염려할 거 없으며 육아휴직도 쓸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여 물어볼 건 한 가지밖에 없었다.


"혹시 야근이 있나요?"


그에 팀장님은 야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거의'라는 말이 좀 거슬렸지만, 의외로 연봉과 복지가 괜찮아서 이직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다음 날 바로 입사확정여부를 묻는 전화가 왔다. 그렇게 난 결혼식을 2달 앞둔 시점에 미래를 대비할 만한 시간을 벌고자, 연봉 7천의 직장을 포기하고 지금의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복이 많다 못해 넘치는 내가 하루아침에 칼퇴근의 삶을 누리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야근은 거의 없다'라는 말은 가끔 야근하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을 내포하는 게 아니었던가. 팀장님을 포함한 직원들은 6시가 지났음에도 전혀 퇴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마치 그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양 표정에 일말의 미동도 일지 않았다. 뭔가 잘못됨을 직감할 때쯤 팀장님이 말했다.


"오늘은 첫날이니 이만 퇴근해 봐요."


잘못 들은 거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정확하게 들었다. 이미 퇴근시간을 30분이나 넘겨놓고 내뱉는 말이 저따위라면, 분명 이곳은 야근을 밥 먹듯 일삼는 곳인 게 틀림없어 보였다. 제대로 속은 느낌에 울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기에 일단은 버텨보기로 했다. 애석하게도 불길한 예감은 어긋나지 않았다. 일정이 바쁘단 핑계로 팀장님의 지휘 하에 직원들은 일주일에 4일 이상을 정시보다 2,3시간 늦게 퇴근하곤 했다.


내가 이직한 후 반 년도 채 지나지 않아 팀장님과 나 사이에 있던 직원들은 모두 퇴사해버렸다. 그들은 딱히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기에 야근하는 삶에 순응한 줄 알았더니, 겨우 버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덕분에 사무실엔 팀장님과 나만 남게 되었다(본사는 서울에 있었다). 그럼에도 팀장님은 업무환경을 개선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더군다나 급할 것도 없는 일들을 붙잡고 야근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나도 슬슬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 후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겠단 생각에 큰 맘 먹고 팀장님에게 내질렀다.


"무료 카지노 게임. 더 이상은 이런 식으로 일 못하겠습니다. 대체 퇴근 시간은 왜 있는 겁니까?"


최대한 차분하게 말하려고 했으나, 차오르는 분을 삭히지 못해 온 몸에 열이 오르고 목소리가 떨렸다. 예기치 못한 하극상(?)을 접한 무료 카지노 게임은 몹시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입을 살짝 벌린 채 어쩔 줄을 몰라했다. 사실 어쩔 줄 몰라 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렇게 일할 거면 제가 이직한 이유가 없습니다."라는 말을 남기며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되려 분통이 터지기만 했다.


그날 밤 팀장님은 문자를 보내 더 이상의 야근은 없을 거라며 내게 약속했다. 반가운 내용이었지만 이미 취업사기 수준의 거짓말을 한 이력이 있으니 순순히 믿진 않았다. 그런데 의외로 팀장님은 약속을 지켰다. 그때 이후로 야근은 사라졌다. 일주일에 4일 이상을 야근하다가 일주일에 4일 이상을 정시에 퇴근하니 삶의 질이 훨 나아지는 듯했다. 엄밀히 말해 실제 나아진 건 없고 원래의 궤도로 들어선 것뿐이지만.


비록 야근이슈(?)는 해결됐으나 팀장님이 탐탁지 않은 건 여전했다. 팀장님이 말만 걸어도 신경이 거슬렸고, 업무지시를 내리면 곧이곧대로 따르기 싫을 정도였다. 처음엔 그 부분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그 양상이 오래 가길래 왜 그런지 한 번 곱씹어봤다. 가만 보니 팀장님이 면접 때 언급한 건 모두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육아휴직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못 쓰게 한 것도 그렇고, 일거리는 걱정 말랬으면서 3년도 채 지나지 않아 당장 다음 달에도 할 일이 마땅찮은 상황에 나앉은 것도 그렇고. 난 나름 사활을 걸고 이직을 감행했건만, 당장에 사람이 급하단 이유로 지키지도 못할 말을 남발한 팀장님이 그저 원망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선택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내가 내린 결정의 책임은 내게 있었다. 마음 같아선 하나부터 열까지 무료 카지노 게임 탓을 하고 싶지만 그럴 만한 여지는 없었다. 그건 일종의 책임회피이기도 하고, 무료 카지노 게임도 자기 입장을 우선시하는 인간이니만큼 나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얼마든지 돌려 말할 권리는 있으니까.


실은 무료 카지노 게임의 술수에 넘어간 덕에 얻은 것도 많았다. 새벽기상과 글쓰기를 습관들인 것도 그렇고, 매 주말마다 아내와 오붓하게 시간을 보낸 것도 그렇고. 특히 글쓰기라는 인생의 과업을 발견한 게 컸다. 글쓰기는 시간을 벌기 위한 새벽기상을 작심삼일로 끝내지 않기 위해 블로그에 인증글을 남기면서 시작한 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2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꾸준히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와중에 운 좋게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출간하게 되었고, 한 명의 어엿한 작가가 되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여백의 시간을 좋아하는 일로써 가득 메우는 삶에 진입한 건 그야말로 축복이었다.


여전히 무료 카지노 게임을 생각하면 석연찮은 기분이 들지만 한편으론 그분이 은인이기도 한 셈이 아닐까 싶다. 덕분에 꿈을 찾게 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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