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우성 변호사 Mar 02. 2025

카지노 게임 시간


[카지노 게임 시간]


가을 정원에서 마주한 카지노 게임의 순간이다. 늘어진 가지들 사이로 햇살이 제대로 닿지 못하는 나무를 바라보며 가위를 든다. 필요 없는 가지를 잘라내는 일은 언제나 망설임을 동반한다. 그러나 이 가지를 남겨둔다면, 나무는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병들어갈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엮이지 말아야 할 사람과 맺은 관계는 영혼의


양분을 빼앗아가는 불필요한 카지노 게임와 같다.


우리는 종종 이미 말라버린 관계의 카지노 게임를 붙들고 있다. 그 카지노 게임에 매달려 있는 기억의 열매들이 아까워서, 혹은 자르는 순간의 통증이 두려워서.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안다. 이 관계가 나를 옥죄고 있음을. 숨 쉴 공간을 허락하지 않고, it's me 가 아닌 it's you 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그 목소리가 나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음을.


창밖으로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본다. 나무는 스스로 놓아야 할 것을 알고 있다. 미련 없이 낙엽을 떨구고 겨울을 준비한다.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은 후에야 봄의 새싹이 움트는 법이다. 관계의 단절은 상실이 아닌 선택이며, 끝이 아닌 시작이다. 아니라고 느낀 순간, 더 이상의 망설임은 자신을 소모하는 일일 뿐.


한때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 했다. 나의 불편함은 참아내고, 그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감싸안으려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 영혼의 모서리가 닳아 무뎌지고 있음을. 손을 베어도 아픔을 느끼지 못할 만큼 감각이 무디어졌음을. 그제야 알았다. 이것은 사랑이 아닌 소모였다는 것을.


겨울 정원에 홀로 선 나무는 외롭지만 당당하다. 불필요한 모든 것을 내려놓은 그 모습은 오히려 강인함을 품고 있다. 관계를 정리한다는 것은 때로는 가장 큰 자기애의 표현이다. 내게 생기를 불어넣지 않는 관계, 나의 성장을 방해하는 관계, 나를 나답게 존중하지 않는 관계. 그것들을 과감히 잘라내는 가위질은 아픔 뒤에 찾아올 봄을 위한 준비이다.


바람이 불어오고, 창가에 새롭게 틔운 화분의 새싹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이제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다. 카지노 게임 시간을 지나 비로소 찾아온 나만의 봄. 나는 이제 알고 있다. 때로는 놓아야만 새로운 것을 붙잡을 수 있다는 것을. 엮이지 말아야 할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한 후에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진짜 나 자신이 있다는 것을.


"나무가 스스로를 비우는 동안, 봄은 그 빈자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 김행숙, 「비움과 채움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