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키우기 장인을 아세요?
예부터 동방에는 나무를 잘 기르기로 유명한 곽타타가 있었다. 오늘날 그 못지않은 달인이 또 한 명 있으니 나무 심기의 달인과 견주어 뒤지지 않을 그 위인은 바로 우리 엄마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딸 다섯을 기르며 대식구의 살림만으로도 벅찼을 텐데 엄마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수백 개를 돌보며 원예사를 자처했다. 선인장, 다육식물, 난, 벤자민 고무나무, 호야, 관음죽, 행운목과 그 외 이름 모를 수많은 화초들이 우리 집 거실과 마당에서 자랐다. 거실을 반이나 차지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약간의 과장을 더해 아마존 밀림 같았고 깔끔한 성격의 아빠는 내내 못마땅해하며 엄마에게 잔소리를 했지만 엄마는 우이독경의 자세로 자식처럼 지켰다. 적당히 자란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때마다 영양 가득한 새 흙을 섞어 보다 큰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 옮겨 심는 분갈이를 해준다. 새로 이사를 한 만큼 뿌리가 안정감 있게 자리를 잡을 때까지 신경 써서 돌봐야 한다. 비실거리는 화초에는 주사기 모양의 영양제를 흙에 콕 박아주고 입동이 지나 찬바람이 제대로 불기 시작할 쯤엔 마당에 내놓았던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하나씩 거실로 들였다.
김장이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우리 민족의 리추얼이라면 우리 집은 마당에 있던 카지노 게임 사이트들이 월동을 위해 하나 둘 집안으로 들어올 때 비로소 겨울이 시작되는 것이다. 엄마는 아빠의 눈을 피해 평일 오후 대대적인 카지노 게임 사이트 대이동을 시작했다. 고양이손도 빌리고 싶을 만큼 가짓수가 많아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동생까지 나섰다. 우리는 힘을 합쳐도 모자라 낑낑거리며 제 키보다 큰 고무나무를 옮겼다. 실내로 옮긴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통풍이 잘 되지 않아 진딧물이 생기는 경우도 잦았는데 가녀린 연둣빛 줄기에 오동통한 진딧물이 새카맣게 붙어있어 이쑤시개로 하나씩 잡는 것도 일이었다. 햇빛과 물만 있으면 알아서 잘 자랄 거 같은 녀석들이 꽤나 손이 많이 가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어릴 적부터 알았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면 늘 아이스 브레이킹의 주제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었다. 이 시대 SNS 속 밈이 유행하듯이 그 시절 집집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키우는 게 유행이었다. 집 안에 화초 하나 안 키우는 집이 없었는데 개중에서도 그 종류와 가짓수가 어마어마한 우리 집 화초는 아주머니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화초만큼 올망졸망한 아이들도 많은지라 우리가 몰래 이파리를 떼거나 하며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망가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안 아주머니들은 놀라워했고 엄마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어릴 적부터 화초를 봐와서 그러지 않는다.”며 수줍게 말했다. 뜬금없이 고백을 하자면 이파리를 뗀 적은 없지만 넷째가 돌쟁이 시절 흙을 퍼먹은 적은 여러 번 있노라 대나무숲에 외쳐본다.
보기 드문 희귀한 종이거나 탐스럽게 자라는 화초는 아주머니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했고 그럴 때면 인심 쓰듯 화초의 가지를 잘라 꺾꽂이를 하도록 주거나 분갈이를 할 때 포기 나누기를 하며 무상으로 나눠주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비싼 건 아니지만 공들여 키운 반려 식물을 준다는 건 친밀감을 나누는 무언의 표현이자 아주머니들만의 문화였다.
초등학생 주먹만큼 작은 아기 카지노 게임 사이트부터 키가 훌쩍 큰 대형 카지노 게임 사이트까지 골고루 키우는지라 우리 집은 사시사철 잎이 푸르고 창창한 초록식물로 가득했다. 화초도 나무처럼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도 한다는 것을 안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집에 동백을 두고도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 나중에서야 어느 명품 브랜드의 상징이라는 걸 알았고 동양란도 꽃을 피우며 향이 오래도록 그윽하다는 것도, 심지어 선인장도 꽃을 피운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지금은 이파리만 봐도, 흙에 손 한번 올려보고도 물을 주어야 할 시기를 척척 알만큼 도사가 되었지만 그때의 엄마는 미숙한 곽타타였다. -참고로 우리 엄마 이름은 미숙이다- 흙이 조금만 말라도 걱정돼 물을 퍼주어서 뿌리가 상하기 십상이었고, 노심초사하며 분갈이를 하고 영양제를 대령하는 엄마 때문에 화초는 꽃을 피울 생각은 안 하고 잎과 가지만 푸르게 푸르게 자랐다. 손바닥보다 큰 관엽 식물을 무슨 재미로 키우나 했는데 이 모든 게 원예사의 실력에 달렸으니 돌이켜보면 엄마의 푸념과 한숨이 절로 이해된다. 행운목이 잘 자라야 집안이 잘 된다는 데 우리 집은 행운목이 잘 안 된다며 한숨 쉬던 시절도 있었고, 키우기 까다로운 난도 높은 화초들은 미숙한 곽타타에게 죽임을 당해 여러 차례 이 세상을 하직하기 일쑤였다. 아빠의 차가운 눈초리를 피해 가며 화초 키우기에 전념한 지 어언 4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미숙한 곽타타에서 “미숙한”이라는 딱지를 떼어낼 정도가 되었다.
아빠가 퇴직을 하고 시골로 귀농을 하며 엄마는 꿈에 그리던 작은 정원을 꾸리게 됐고 꽃씨를 심고 나무도 삽목 하며 어엿한 원예사가 되었다. 최근에는 동백나무에 꽃이 색깔별로 피었다며 열댓 장의 사진을 보내기도 한다. 게발선인장 접 붙이기 정도는 발로 할 정도가 됐고 엄마의 손만 닿으면 죽어가는 식물도 소생할 정도에 이르렀으니 곽타타 앞에 명함 내밀 정도는 되지 않았는가 싶다. 그래도 아빠의 잔소리는 여전해 엄마는 아빠 몰래 카지노 게임 사이트 택배를 받을 때 가장 신난다며 숨이 넘어가게 웃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 꽃이 피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집에 미숙한 아니 노련한 곽타타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