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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이경 Feb 12. 2025

새들이 내 창가에서 무료 카지노 게임 때, (9)

#9

보름이 다가오기 며칠 전부터 온 동네는 들떠 있었다. 보름은 어떤 명절보다 더 축제 같았다. 엄마들은 나물을 준비하고 오곡밥을 지을 준비를 했다. 호두나 땅콩, 잣 같은 견과류도 미리 준비했다. 아홉 가지나물과 다섯 가지 곡식을 넣은 오곡밥은 보름이 오기 하루 전에 했다. 견과류와 대추를 넣은 찹쌀에 검은 물을 들인 약밥도 했다. 오곡밥과 나물을 아이들을 시켜서 이웃에 돌렸다.


보름날엔 식은 오곡밥을 먹었으며 밥은 하지 않았다. 불을 때야 하는 국도 끓이지 않았다. 빨래 같은 허드렛일도 하지 않았던 거 같다. 일 년 중 단 하루, 엄마들이 일을 하지 않는 날이었을 것이다. 휴가인 것이다.

내 어린 날 기억엔 보름날보다 하루 전이 더 축제 같았다. 어둠이 몰려온 음력 1월 14일 저녁이면 온 동네는 축제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서양의 핼러윈 같다고나 할까.


마을 청년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누더기 옷을 입고 얼굴을 숯으로 검게 칠한 다음, 손에 바가지를 하나씩 들고 집집이 다녔다. 열린 대문 밖에서 바가지를 숟가락으로 두드리며 노래무료 카지노 게임.

“옛날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얼씨구 씨구 씨구 들어간다. 아줌마 밥 좀 줘요. 네~” 하고 소리쳤다. 거지행색을 한 청년들을 만나는 사람마다 함부로 대하는 말을 무료 카지노 게임. 바가지를 머리에 쓴 청년의 머리는 쥐어박기도 무료 카지노 게임. 그렇게 일 년 먹을 욕을 다 먹고 나면 좋은 일들만 생긴다고 무료 카지노 게임.

청년들이 온갖 구박 속에 대문 앞에 도착하면 엄마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밥과 나물을 들고나가 바가지에 담아줬다. 그러면 청년들은 고맙다고 합창을 한 뒤 다음 집으로 향해 갔다. 아이들의 청년들의 각설이 타령을 흉내 내며 뒤를 따라다녔다. 그렇게 아홉 집에서 밥을 얻어먹어야 그 해 무탈하고 건강하게 지낸다는 풍속이 있다고 했다. 엄마들도 안방 너른 집에 모여 커다란 다라에 밥과 나물을 넣고 비벼서 먹곤 했다.

아이들은 나뭇가지를 가지고 언덕이나 너른 논이나 밭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망우리를 돌리기 위해서였다. 해가 어둑해지면 불을 피웠다. 불이 붙은 나뭇가지를 미리 준비한, 바닥에 구멍을 뚫고 철사로 길게 줄을 만든 깡통에 넣었다. 그것을 빙빙 돌리면 깡통 안의 나무에 불이 붙어서 활활 타올랐다. 멀리서 보면 둥글게 원을 그린 불들이 춤을 췄다. 모두가 알고 있는 쥐불놀이다.


한참 깡통을 돌리다가 휙~하고 집어던지면 땅에 떨어졌고 마른풀에 불이 붙었다. 깡통에서 비어져 나온 불길은 마른 잔풀이 있는 밭이나 논두렁에 옮겨 붙었다. 봄이 오기 전에 마른풀에 몸을 숨기고 번데기나 알로 살고 있는 해충을 태우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산에 눈이 완전히 녹기 전에 하는 행위였기 때문에 산불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았다. 내 어린 기억에 망우리 돌리다 산불이 난 기억은 없었다.

보름날 아침엔 일어나자마자 부럼을 깨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무료 카지노 게임. 나는 이불 안에서 엄마가 머리맡에 미리 갖다 놓은 부럼을 깨물며 일어났다. 이빨이 튼튼해지고 부스럼이 생기지 않을 거라고 엄마가 일러줬다. 그 이후로 만나는 사람에게 더위를 팔기 시작무료 카지노 게임. 나는 엄마에게 팔았다.

“내 더위 사가!”

“야, 아무리 그래도 엄마에게 더위 파는 녀석이 어딨어.”
엄마가 눈을 흘기며 웃었다.


어른이나 애나 만나는 사람에게 첫마디가,

“내 더위 사가!”였다.

먼저 말하는 사람의 더위를 말을 듣는 사람이 겪는다는 것이다. 내 더위도 견디기 힘든데 남의 더위까지 덮어써야 하니 더위를 산 사람은 그 해 여름엔 더위에 쪄 죽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실 그때는 한여름의 더위가 지금과는 달랐다. 아무리 더운 날이라고 해도 그늘에 들어가면 견딜만무료 카지노 게임. 지금처럼 습한 더위가 아니었고 30도를 넘는 더위는 거의 없었다고 엄마는 추억하셨다. 찬물 한 바가지 뒤집어쓰면 가시는 더위라고 하셨다. 그렇기에 부채 하나로 여름을 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침은 전날 미리 해놓은 아홉 가지나물과 다섯 가지 곡식을 넣고 지은 오곡밥을 먹었다. 보름날에는 자극적인 음식은 먹지 않았다. 김치조차 상에 올라오지 않았다. 오곡밥을 구운 김에 싸서도 먹었다. 복을 싸는 것이라고 엄마가 말했다.

아침을 먹고 나면 온 동네에 멍석이 펼쳐졌다. 대항별 윷놀이를 하기 위해서였다. 할아버지, 아저씨들이 모두 한복을 입고 나와서 윷을 던졌다.


아이들은 연을 날렸다. 하늘 높이 연들이 날아올라서 바람을 타는 광경 또한 볼만무료 카지노 게임. 길게 꼬리를 흔들며 가오리연, 방패연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서 오래오래 흔들렸다.


조금 큰 오빠들은 연싸움도 무료 카지노 게임. 내 친구네 오빠는 며칠 전부터 연싸움을 하기 위해 연줄에 풀을 먹이고 유리를 잘게 부숴서 발랐다. 상대방의 연줄을 쉽게 끊어내기 위해서라고 무료 카지노 게임. 연싸움에서 연을 끊어 멀리 날려버리는 것은 그 해에 다가 올 나쁜 일들을 미리 끊어 없애는 것이라고 무료 카지노 게임.

큰언니들과 젊은 새댁들은 널뛰기를 무료 카지노 게임. 어른들이 미리 널빤지 밑에 둘둘만 가마니 같은 것을 받치고 뛸 널을 만들어 주셨다. 그땐 명절엔 모두 한복을 입었기에 한복의 치마를 끈으로 동여맸다. 흩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언니들이 꿍덕~ 소리를 내며 뛰어오르고 내리는 소리와 깔깔거리는 소리가 멀리까지 퍼졌다.

한낮이 되면 마을 어귀에서부터 농악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소리가 나는 곳을 보면 높이 솟은 여러 가지 깃발이 먼저 보였다. 그 깃발에 쓰인 글자가 〈농자천하지대본〉이었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 학교에서 배웠다.


북과 꽹과리, 징, 소고, 태평소, 장구 등을 치며 요란한 행진을 하며 왔다. 머리엔 고깔모자를 쓰고 알록달록한 색동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대열을 지어 왔다. 그들은 이 동네 저 동네에 돌며 풍년을 기원해 준다고 무료 카지노 게임. 그들이 멀리서 소리를 내면 동네는 일제히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흥에 겨워졌다. 그들이 동네 가운데에 있는 너른 마당으로 징과 꽹과리와 소고를 치며 들어서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일만한 너른 마당이 딱히 없었던 우리 동네에서는 제일 가까이 있는 밭으로 들어갔다. 농악대가 밭 가운데에 서서 한 바탕 판을 벌리기 시작무료 카지노 게임. 동네사람들은 밭의 가장자리의 바깥으로 둘러섰다.


상모를 돌리는 사람이 먼저 나와 긴 줄을 돌리고, 여럿의 짧은 줄의 상모가 사람들이 주위를 돌며 머리를 흔들었다. 날 듯이 춤을 추며 모인 동네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원을 돌고 또 돌았다. 그들의 발이 공중에 떠 있는 듯무료 카지노 게임.

악기 소리에 맞춰 어른들은 춤을 덩실덩실 췄고 엄마들이 술상을 차려서 그들에게 돌려마시게 해 줬다.


나는 엄마와 함께 보름 때면 동네로 내려와 놀았다. 밥도 먹고 구경도 무료 카지노 게임. 그러다가 밤이 늦어서야 집으로 올라갔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엔 너른 목화밭이 있었다. 때가 되면 매해 그곳엔 목화를 심었다. 그러나 겨울엔 비어 있었다. 빈 밭에 내린 눈이 봄이 올 때까지 하얗게 펼쳐져 있었다. 그곳까지는 걸음 하는 이가 없었는지 봄이 와서 따뜻한 기운이 눈을 녹일 때까지는 사람의 발자국 하나 없이 설야 그대로였다. 그 옆길로 우리는 동네를 오갔다.

그날도 엄마는 동생을 등에 업고 내 손을 잡고 집으로 갔다. 머리에 모자를 쓰고 손에는 벙어리장갑을 꼈지만 밤의 공기는 차가웠다. 커다란 보름달이 머리 위에 커다랗게 떠 있었다. 하얀 눈 위에 뜬 보름달은 유난히 컸고 밝았다.


멀리 누워있는 산과 나무와 돌담들이 대낮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그날따라 밤 짐승들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달빛에 녹아버렸고 눈 속에 침잠해 버린 듯무료 카지노 게임. 온통 고요만이 있었다. 그 고요가 엄마에게는 공포로 다가왔는지 엄마가 내게 말무료 카지노 게임.

“경아, 노래, 하나 해봐.”

나는 엄마를 올려다봤다. 엄마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내게 다시 말무료 카지노 게임.

“왜, 너 잘하는 바다가 육지라면 한 번 해봐.”


나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노래를 하기 시작무료 카지노 게임.

“얼마나 멀고 먼지 그리운 서울은, 파도가 길을 막아 가고파도 못 갑니다. 바다가 육지라면, 바다가 육지라면, 배 떠난 부두에서 울고 있지 않을 것을. 아~~ 바다가 육지라면 눈물은 없었을 것을…”


사실 지금은 가사의 전부가 기억나진 않지만 나는 ‘바다가 육지라면’을 아주 잘 불렀다고 한다. 혀도 잘 돌지 않는 조그만 아이가 노래를 하는 게 재밌어서 나를 보면 사람들이 ‘경아, 바다가 육지라면 한 번 해봐.’라고 말무료 카지노 게임. 그러면 나는 흠흠, 헛기침을 한 후에 서툰 발음으로 바다가 육지라면을 노래무료 카지노 게임.

적막한 달빛 아래 나와 엄마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아래에서 눈을 밟는 소리가 조심스럽게 뽀드득, 거리며 따라왔다.

그 소리와 함께 나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바다가 육지라면을 부르고 또 불렀다.


그것은 엄마의 무서움을 물리치기 위한 주문이었고, 엄마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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