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리 마음속에 무엇을 채우면 좋을까요?
이 밤, 글을 새로 쓸 계획이 없었지만, 제 마음에한 가지나누고 싶은 마음이올라와자정이 넘은 시간 제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쓰기 시작합니다. 돌아보니, 독자님들께 1년 동안 깊은사랑을참 많이받았습니다. 수많은 작가님들이 계시는 가운데 적잖은 관심과 애정의 말씀을 자주 듣고 있는 지금 제게, 브런치 스토리가 주는유익 그격려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사실 제 마음속에는 쓰고 싶은 주제가 참으로 많습니다. 눈이 아파서 절제하고 있지만, 댓글을 제가 눈이 아프다고 안 주실까 봐 걱정도 때로 할 만큼,여러분들이 좋고 마음이 가면 망설이지 말고 마음그냥남겨 주시면 좋겠다 생각할정도로, 작가님들과의 소통도너무나 좋습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겪었던 어떤 경험을 먼저 나눠야조금이라도 많은 분들께 작은 공감이라도 드릴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건강한 표현이 될까? 스스로 묻고, 기도하고,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자주 가집니다. 가능하면 그 후에 글을 씁니다.
무엇을 먼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순서대로 써야 도움이 될까?
좋을까?
어쩌면 나 혼자 알고 지나갈 일들이 아닐까? 이것을 나눌 만한 가치가 있을까?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실제적인 보탬이 될까? 자문하는 날도 제법 자주 있었습니다. 읽고 바로 휘발되는 글이 아니라, 마음속에 오래 머무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차오를 때면, 저는 가만히 멈추어 한참 생각에 젖어듭니다.
지난 사십 몇 년 동안을 돌아보니, 삶은 참 힘든 것이구나라고 생각했던 첫 해가 열 살 때였습니다.
지금 제 아이보다 어린 10살 때, 그런 마음이 어느 순간 제 마음에 흘러 들어왔습니다. 사실저희 아이는 1살 때부터 힘들다고 느꼈을 겁니다. 삶은 고달픈 것, 어른이 되면 너무나 힘들어지는 것, 공부도 잘해야 하고, 무엇도 잘해야 하는 다 잘해야만 하는 그런 것. 막연하게나마 인생에 대한 스케치를 그렇게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제 인생은 열 살 때부터 힘겨웠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님이 몇 년 터울로 크게 다치고, 사랑하는 할머니를 갑작스럽게 천국으로 떠나보내고,
중학교 때는 심한 비염과 축농증으로 거의 3년 내내 호흡하기 힘들어했습니다.
어린 그 나이에 왕따를 겪으며, 또래 관계에 어려움이 너무나 실제적으로 다가왔고,
학교는 두려움의 장소였습니다. 도저히 부모님에게 말씀을 드리기 어려워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리게 되는 계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어느 날 교회에서 무릎 꿇고 몇 시간이 지난 지도 모르고
기도하는 중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란 존재를 마음으로 만났습니다.
사람들이 거의 인정하지 않는 '도무지 없어 보이는 신'을 인격적으로 만났다고 느꼈습니다.
아주 강렬한.. 이루 말할 수 없는 벅찬 경험과 조우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가족 안에 어려움들을 이해할 수도 풀어낼 재간도 없었는데 그 마음의 목마름을 해갈할 수 있는 기회가 그렇게 찾아왔습니다.
인생은 해석이 전부이잖아요.
그런데 그 해석이 너무나 아픈 게 참 참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가난은 더욱 힘든 그 무엇이 되었습니다. 제 미래를 막아설 것 같은 커다란 장애물로 여겨졌고, 원하는 학원도 다닐 수 없는 형편 속에서 참 괴로웠습니다. 그런 경험이 고착화되어 가는 듯한 느낌에 온몸이 굳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제게있어서 가난은 80년대 판 보릿고개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고등학교에는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국가 학비 지원 제도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저는 매년 학비를 보조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그걸 하나의 사명처럼 받아들이고, 꼭 받아야 하는 숙명이라 여겼던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힘든 부모님께 도움을 드릴 수 있으려면, 반드시 제가 제 자신의 상황을 잘 어필하고 국가 지원 대상자가 필히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학비 보조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국가 학비 보조금을 받기 위해 가정의 경제 상황에 대한 정리를 하고,
반드시 학비 보조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오래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급식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절, 매일 돈 문제로 너무나 힘겹게 가정을 이끌어야 했던 부모님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져 급식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꺼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급식이 시행되었지만, 부모님께는 별다른 말씀을 드리지 않고 열심히 도시락을 싸서 다녔습니다.
때때로 사정이 되지 않아, 도시락을 싸가지 못한 날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 날에는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저는 학교 운동장 수돗가에 조용히 나가 눈치를 보다, 수돗물을 콸콸 틀어 쏟아지는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마시고, 대충 빠르게 배를 채우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공부를 이어나가는 날에는, 속으로 커다란 슬픔이 찾아왔습니다. 부끄럽지는 않았는데 참 슬펐습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배정이 되었을 때, 그동안 조금씩 몇 년을 모아 왔던 교복 값을 헌금으로 하나님께 드리자고 말씀하는 어머님 말씀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왜 어머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듣는 순간 이해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어려우시면 저런 결단을 하실까 싶었던 것 같습니다. 대신 제 딴에 기도를열심히 했습니다. 그때도 기적을 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입학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고등학교 졸업식에 찾아가 이제 학교를 졸업하는 선배 형들에게 세 벌의 교복을 얻어 입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간 조금씩 모은 돈을 어머님은 교회에 기쁨으로 헌금으로 드리셨습니다.
제 교복은 형들이 열심히 3년 동안 입은 덕에 광이 날만큼 반짝거렸습니다. 다행히 세 명의 형들에게 교복을 얻을 수 있는 용기가 마음속에 불쑥 솟구쳐 올라 친절한 어머님들의 따뜻한 배려에 깨끗이 다려진 옷을 얻어 입었습니다. 3년 동안 입고 다닐 교복을 그렇게 마련했습니다. 제 자신이 스스로를 많이자랑스럽게 여기며3년을 다녔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로 제 스스로 쓰임 받고자 했고, 그렇게 실제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신앙심', 더 쉬운 표현으로는 '기독교'에 대해 제대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국에서 초청받은 수많은 전도왕이라는 분들의 책과 설교를 읽고 들으며 고등학교 2학년 5월 4주 간 커다란 감화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뭣도 모르고 고등학교 2학년 5월부터 무턱대고 아파트 전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20층 정도가 되는 꼭대기 층부터 1층까지 초인종을 누르고, 사영리라는 작은 책자를 숙지한 상태에서 수많은 어르신들께서 문을 열어 주시면 제가 알고 있는 예수님을 전해 드리고 싶다는 말씀을 간곡히 드렸고, 그 이후로 수백 분의 어머님들께서집문을 열어 주시면 들어가 차를 얻어 마시면서 어르신들을 만나 대화할 기회를 무수히 가졌습니다.
이후에는 동네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주위에 있는 대부분의 시장 장사를 하는 분들 가게에 들어가 허락을 구하고 제가 믿는 예수에 대해 허락을 해주시는 분들에 한해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처음에는 의정부 일대에서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는 고려대 근처로 자리를 옮겨 허락을 해주시는 상가 사장님들에게 전도를 열심히도 했습니다. 그분들은 모두 매번 처음 만난 분들이었고, 허락을 해주시는 분들에게는 두 번, 세 번 찾아가 차도 얻어 마시고 인생이라는 주제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듯 대화를 주고받곤 했습니다.
90년대에만 하더라도,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그렇게 심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2025년에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서로를 믿지 못하는 위험한 세상이 되었고, 그 방법이 더 이상 지혜로운 방법이 아니게 되어 이제는 특별한 기회를 통해서만 기꺼이 허락을 해주시는 분들에게 기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당시 만났던 분들은 제게 커다란 거부감이 없이 대부분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경청해서 많이들 들어주셨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지하철로 나가 양해를 구하고 허락을 해주시는 분들께 또다시 예수를 전했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의자에 앉아 계신 분들에게 제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 전할 수 있도록 허락을 해주신다면, 말씀을 20-30분가량 나누고 싶다는 말씀을 드리고, 다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전혀 들어줄 것 같지 않았던 천 명도 넘는 분들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셨습니다. 함께 교회에 모시고 갔던 분들도 상당수가 되었고 때로는 심한 면박을 당한 경우도 있었지만, 서른이 넘을 때까지 습관 같이 이런 삶을 지속했습니다.직장이 바빠지고 자정에 가깝게 퇴근하는 게 지속이 되고 오리온 공장으로 발령을 받기전까지 바깥으로 나가 전했습니다.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에, 점을 보시는 할아버지가 더 이상 점을 보는 걸 중단하고, 기독교로 종교를 개종하는 일도 있었고, 어느 중국인 누님은 공산당임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자기 것으로 삼아, 3년 넘게 신앙을 제대로 배운 날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20대 초반 그 분과 의남매를 맺을 수 있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렇게 헌신을 하고 신앙생활을 했지만, 결혼 후에 첫 3년은 난임이, 그 후 11년째 재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 가운데 믿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믿음을 통해 얻으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오래 고민했습니다.
짧게 정리한다면, 신앙생활의 과정과 결론은 한 가지를 향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과의 "관계" 바로 맺음을 통해 내 곁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 것에 초점이 있었습니다. 그런 와 중에 브런치를 통해 벌써 이렇게 1년이 넘는 시간을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모두 다 여러분들의 덕분입니다.
가치관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그렇게 가졌습니다. 비록 제가 최선을 다해 열다섯부터 마흔다섯까지 하나님을 믿어 왔지만, 제가 원하던 <복 있는 사람의 첫 개념과 지금의 개념은 사뭇 다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성경의 말씀처럼 불시험을 당할 수 있음을 직접 겪고 있습니다. 너무나 아프고 힘든 일을 너무나 오래 겪고 있습니다. 다만 그 과정을 통해 저는 수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너무나 깊게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가슴이 터질 만큼 벅찬 것을 넘어 여한이 없다는 고백이 터져 나올 만큼 매일매일이 기념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무엇이든 믿는 존재입니다. 나의 가치관, 나의 신념, 지향하는 바를 한 사람의 예외 없이 모두 가지고 삶을 살아갑니다.우리는 자신의 신념 체계에 맞게 일상 속에서 저마다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하고 삽니다. 그리고 그 자유의지는 존중받아야 할 가장 소중한 기본 권리이기도 하고, 그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는 순리에 놓여 있기도 합니다.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쓰고 나면, 여러 구독자 분들이 제 곁을 떠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하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신앙에 대한 글을 참 많이 올렸고 그때마다 많은 구독자 분들이 바로바로 떠나셨기 때문에 그때마다 그 사실은 제게 속상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 글을 읽으시고 그런 결정을 누군가 내리신다면 그분들의 의사를 진심으로 존중해 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읽고 싶은 글, 나에게 도움이 되는 글, 내게 필요가 있고 뭔가 도움이 되는 글을 읽는 건 독자로서 권리라는 점을 제 스스로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난임기 3년 반을 빼고 이은 11년째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아이 한 명을 재활 치료하고 있는 한 가정의 아빠입니다. 그리고 결혼 15년 차 남편이 되었습니다. 제가 한때는 68kg까지 나가던 건장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11년째 재활 생활을 하며 고민할 일이 많아서 그랬는지 지금은 56킬로의 경량 체중을 유지하고 있습카지노 게임 추천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몸 관리 좀 더 신경 써서 잘해 봐"
"안 아팠으면 좋겠어. 일찍 자. 수면을 오래 하면 좋겠어. "
모두 맞는 너무나 고마운 말씀입니다. 때로는 어떤 말은 상처가 되고, 다른 말은 격려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두 따뜻한 관심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항상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좀처럼 좋은 결과로 쉽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너무나 현실적인 문제가 많이 따라오다 보니, 사실 많이 버거울 때도 있습니다. 사랑을 한다는 것, 누군가를 진정으로 위한다는 것, 거기에는 엄청난 에너지와 집중적인 마음씀, 땀 흘리는 수고가 따른다는 걸 여전히 매일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점점 아픈 곳도 늘어가겠지요. 가슴이 아프면서도, 그만큼 최선을 다해 온 아내와 제게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인에 대한 인식이 그릇된 신앙의 말과 행동을 통해, 점점 성경에서 말하는 향해야 할 본질과 상이하게 나타나면서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빠진 상태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바가있다면, 우리 많은 크리스천들이 잘못 드러내고 있는 하나님이란 존재는 실제로 한 생명을 사랑하시는 사랑 그 자체이시며 여전히 살아 계셔서그분을 간절히 찾는 모든 자녀들에게 각자의 타이밍에 따라 반드시 만나 주시는 약속을 지키는 하나님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단 한 분이라도 제 글을 통해 누군가가 예수를 만나시고, 그 사실을 제게 알려주시는 날이 꼭 오면 좋겠습니다.
오늘 제 글은 구독자를 잃어버릴 각오를 하고 쓰는 글입니다.
제 글이 불편하신 분들이 구독을 취소를 하시게 되면 마음은 아프겠지만
언젠간 제 진심이 전해질 거라 믿고, 그동안 감사했다는 마음의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과거 죽음으로 저를 몰아갔던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신앙이 저를 살려 주었고 오늘까지 제 삶의 안식처가되어 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한국 기독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기독교의 부족한 모습에 많이 실망하셨지요. 믿는 한 사람으로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말씀하는 예수님은 우리가 잘못 보여주고 있는 그런 이중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가장 기쁜 소식 자체로이 땅에 오셨고, 독자님들 모두에게 가장 건강한 가치관, 행복으로의 여정을 떠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실제적인 능력을 가지고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꼭 예수님을 믿으시기를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11년 동안 아들의 재활과 수술, 화상, 오랜 시련의 불합리한 상황을 두루 겪으면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단 몇 분께라도 저의 삶으로 올바로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계신 어머님들과 참 오랜 시간 많은 대화를 나눴었고요. 그리고 그 기간을 통해 굳은확신을 했습니다. 제가 믿는 예수님을 소개해 드리는 것이 제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 될 거라는 걸요. 이제 여러분의 선택의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쓰고 싶은 주제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제가 몸이 많이 약해져 있는관계로 가능한 만큼 쓰고, 피곤하면 멈추고, 답글은 마음을 모아 천천히 계속 드릴 생각입니다. 늘 제게 건네주시는 댓글은 제게 큰 위로가 되고 있어요. 거짓말 같지만 저는 실제적으로 최소 2-3시간을 기도하는 데 시간을 들이고 있습니다. 올리시는 모든 분들의 글을 바로바로 읽지 못하지만, 많이 늦어지더라도 조금씩 읽어 나가고 있어요. 그러니 제가 무관심하다 생각하진 말아 주세요. 아이를 돌봐야 하고, 막힌 담을 뚫어야 하는 숙제가 제게 남아 있답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 가치관을 가지고 삽니다.
그리고 그 가치관에 따라 인생은 달라지게 집니다.
내 마음속에 어떤 가치관이 있을 때 우리 마음이 행복해질까요?
우리의 방향이 하나로 모아지고, 그 안에 강력한 힘이 생기려면 우리는 어떠한 지향점을 가져야 할까요?
깊게 한 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벌써 새벽 3시가 되었네요. 오늘은 무리했는데 그래도 이 말씀을 간곡히 드리고 싶었습니다.
끝으로 너무 시간이 늦어 오늘 글은 제대로 된 수정 없이 그대로 올라가는 만큼 조금 두서가 없더라도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토요일일요일 모두 편안한 시간되시고 기력을 회복하고 새롭게 한 주 시작하는 쉼의 날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새벽 3시 반 간곡한 마음을 모든분께 남겨 놓습카지노 게임 추천. 부디 제 마음이 잘 전달되기를 바라면서요.
3.22 새벽 아헤브 드림
추신: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긴 시간이 걸리지만, 이 브런치 북을 하나하나 끝까지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내용은 기독교 출판사를 통해 종이책으로 만들어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상단 이미지 : 카카오톡으로 전달받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