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마흔셋, 국민학교 마지막 졸업생이다. 학교급식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먹을 수 있었다. 귀밑 3센티미터 단발머리 여중생인 시절엔 숫기가 없어 어디서나 조용조용. 학교 다니며 가장 신나는 점심시간에도 그러했다.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열며 내 반찬은 무엇인지? 친구반찬은 무엇인지? 훑어보는 게 학교생활에 큰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그날만은 점심시간 전부터 심장이 콩닥콩닥했다. 엄마가 도시락 반찬으로 비닐봉지에 상추쌈을 싸주신 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이다. 수줍은 여중생은 비닐봉지에 담긴 상추쌈과 쌈장을 친구들 앞에 도저히 올려두지 못했다. 맨손에 상추를 올려 크게 한쌈을 싸서 입속에 욱여넣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상추쌈을 길가에 버렸다. 엄마가 상추쌈을 안 먹은 것을 알고 속상해하실 것 같았다. 태연히 상추쌈을 먹은 것으로 하고 싱크대에 도시락 설거지를 올려두었다.
수줍던 여중생이 엄마가 되었다. 걸음마를 떼기 전부터 어린이집에 다닌 아이는 일하는 엄마로 인해 점심, 저녁을 어린이집에서 먹었다. 때에 맞춰 밥을 먹으니 마음이 놓이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했다. 일 년에 한두 번 소풍으로 도시락을 싸서 보내야 하는 날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없는 솜씨를 쥐어짜 김밥도 싸고, 과일도 싸고,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도 두루 챙겨 보냈다. 뿌듯한 마음으로. 아이가 초등학교에 갔다. 마찬가지로 도시락은 싸지 않는다. 소풍날 싸던 도시락 마저 없다. 감사해할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아이와 한 달 살기에서 걱정이 되면서도 기대가 된 것은 바로 카지노 게임 추천이다. 과연 내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의 카지노 게임 추천를 쌀 수 있을 것인가? 해보지 않던 일이라 자신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귀여운 카지노 게임 추천를 싸서 보내줘야지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한 달 살기를 떠나기 전 다이소에 가서 도시락을 꾸미는 모양틀도 샀다.
시드니 한 달 살기, 오클랜드 한 달 살기에서 매일 카지노 게임 추천와 모닝티를 준비했다. 매일 밤, 아이와 침대에 누워 카지노 게임 추천와 모닝티 메뉴를 정하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아이 하교 후에는 함께 마트에 가서 내일 가져갈 카지노 게임 추천와 모닝티 장을 보는 게 일과였다. 먹는 것에 진심인 아이와 나는 그 일상이 참 즐거웠다.
시드니에서는 주로 김밥과 볶음밥을 쌌다. 아이는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카지노 게임 추천를 먹는다고 했다. 어느 날은 컵라면을 싸달라고 해서 한인마트에 가서 진라면 순한 맛 작은 컵을 사서 가지고 갔다. 친구들과 나눠 먹는데 작은 컵은 너무 작다며 다음에는 큰 컵을 사가야겠다고 말하는 아이가 귀여웠다.
오클랜드에서는 첫날 김밥을 싸줬다. 같은 반에 한국인이 없어 현지 아이들과 카지노 게임 추천를 먹은 아이는 다음부터 샌드위치와 파스타를 싸달라고 했다. 친구들을 의식해서 도시락 메뉴가 걱정되는 것은 지 어미를 닮았다지. 다음날부터는 샌드위치도 싸고 크림파스타도 싸고 토마토파스타도 싸고 점점 메뉴가 글로벌해졌다. 어느 날은 뉴질랜드 친구가 조미김을 모닝티로 싸와서 먹었다며 신이 나서 이야기를 했다. 다음날 울월쓰(마트)에 가니 스낵코너에 조미김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얘네는 김을 간식으로 먹네"라며 키득키득 웃어댔다.
아이와 한 달 살기가 편하고 즐거운 이유는 단출한 살림 덕분이다. 작은 냉장고엔 하루이틀 치 식재료만 채우고 얼른 다 먹어 치운다. 그럼 마음이 가볍다. 점점 노하우가 생긴다고 해야 할지 꾀가 는다고 해야 할지. 한 가지 식재료로 삼시 세 끼를 차려낸다. 가령 닭 한 마리를 사서 저녁엔 닭다리를 구워 먹고, 아침엔 삼계탕을 해 먹고, 점심엔 닭가슴살로 볶음밥을 싸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비싸서 못 먹는 과일을 실컷 먹는 것도 좋다. 망고, 블루베리, 사과도 실컷 먹는다. 모닝티를 핑계 삼아 평소엔 사주지 않는 과자를 사 먹는 것도 아이에게 큰 즐거움이다. 매일 먹는 모닝티(라고 쓰고 과자라고 읽는다)가 얼마나 좋겠는가?
도시락 까먹던 여중생 시절, IMF가 우리 집을 덮쳤다. 그전에도 우리 집은 가난했고 부모님 사이는 안 좋았다. 그러나 부모님은 더 자주, 더 격렬히 싸우신 걸로 보아 IMF가 분명 우리 집에 영향을 줬다. 엄마는 새벽까지 이어지는 부부싸움을 끝내고 도시락을 싸고 일을 하러 갔다. 한 번도 도시락을 놓치지 않았다. 새벽까지 이어진 부부싸움 후에 딸내미 도시락을 싸던 그 마음이 어땠을까? 무슨 반찬을 싸는 게 중할 리가 있나. 쌍꺼풀에 큰 눈, 지 아빠 빼다 박은 딸내미 굶기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아이와 한 달 살기를 하는 동안 엄마라는 이름으로 해야 하는 일은 고작 카지노 게임 추천를 싸는 일뿐이다. 밥이야 나 먹을 때 먹고 빨래는 내 옷 빨 때 같이 빤다. 아이를 위해 따로 해야 할 일이 카지노 게임 추천 싸는 일뿐임에 마음도 몸도 참 가볍다.
힘든 생활에도 꼬박꼬박 도시락 싸주시던 엄마
전투력 제로인 순딩이 남편
뭐든 잘 먹는 우리 딸
한 달 살기에서 생각의 끝엔 언제나 감사함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