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퇴하고 집에 오니 밤 8시였다. 집에 와서는 대파스프 이유식을 만들었다. 대파와 양파는 볶은 다음 믹서에 갈고, 고구마는 삶은 다음 으깨서 아몬드 우유와 섞었다. 집에 있는 재료로 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다 만들고 먹어 보니 생각보다 대파가 입에 남았다. 아기가 먹기 힘들 것 같아서 고운 체에 다섯 번 정도 갈아주었다. 30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이유식 만들기는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유식을 만들고 집안일을 하고 분리수거 쓰레기까지 버리고 나니 밤 11시다. 저녁 식사는, 썰어놓은 양배추 몇 점하고 유통기한 임박한 요거트, 검게 변한 바나나를 먹었는데 먹다가 맛이 없어서 버렸다. 나는 왜 이유식을 만들었을까? 판매 중인 이유식은 얼마든지 많다. 그러나 집에 오면 잠들어 있는 아기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래서 이유식이라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엄마 노릇을 무언가는 하고 싶어서. 혹은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이유식을 직접 만드는 열정적인 엄마라는 역할에 취하고 싶었는지 모르지.
언제나 앞으로의 무언가를 기대하며 살았다. 임신을 준비하면서는 아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임신한 뒤로는 아기와 만날 설렘에 행복했었다. 그리고 이제 아기를 낳은 지 8개월이 지나 회사로 복귀했고,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고 아기를 돌보고 있다. 이제 나는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평일엔 아기 얼굴을 보기 힘드니 주말을 기다리며 지내야 할까?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고 그날만 손꼽아 기다려야 할까?
지금을 살지 않고 견디고만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카지노 게임 사이트 삶의 반복이라면, 지금의 현실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늘 퇴근길에는 이런 비관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출근길 여의도공원의 햇살에 감사하고, 벚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었는데 말이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늘은 희망적인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이것은 순전히 날씨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