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쉐 장편소설 『격정카지노 게임』
지금의 삶으로 흘러들게 한 삶의 분기점은 여럿이다. 그리고 그중 하나, 결정적인 장면 중 하나가 10년 넘게 계속 이어가고 있는 북클럽과의 만남이다. 서른 즈음, 여전히 세상에서 내가 가장 심오하고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오직 죽은 문학가뿐이며, 내가 읽고 이해하지 못할 책은 없다는(좀 많이 과장해서) 오만에 젖어 살던 때가 있었다. 자라지 못한 어른 아이의 모습이라고 지금은 그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과거의 한 장면이지만 그때는 사뭇 진지했다. 요즘이라면 '그때는 정말 외로웠나 보다'라고 고백할 테지만 그때는 그럴 용기도 없었다.
문학에 진입장벽을 높이는 원로 작가들의 말과 전문가라는 평론가들의 해설들은 극구 읽지 않았다. 개인적 즐거움으로 읽는 문학에서까지 소위 '정답'을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도움이 간절한 순간들이 있었다. 한글로 되어 있어서 읽기는 하지만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카지노 게임를 담은 작품들은 자꾸 포기하게 되고 멀어졌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확장이라는 기다림의 길이 있긴 하지만 그 기다림은 아마 평생에 걸쳐 이어질 끝이 없는 성격의 무엇이었을 것이므로 그때까지 책에 대한, 문학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으리라 장담하기도 어려웠다. 마음이 급해졌고, 허투루 읽는 책, 잘못 읽는 책, 읽다 마는 책, 사두고 읽지 않는 책만 늘어갔다. 그때부터 찾아다니기 시작한 게 북클럽이었다.
다양한 경로로 북클럽을 찾았다. SNS, 블로그, 인터넷 카페. 서초, 홍대, 건대, 논현, 합정. 주말이나 퇴근 후면 서울 어딘가에서 열리는 독서모임에 나가는 게 주된 일이며 즐거움이었다. 어떤 모임은 한 번으로 끝나기도 하고 어떤 모임은 매주 이어졌다. 누군가는 같은 책을 읽은 다른 이의 생각이 궁금해서 왔고 누군가는 독서모임에 오는 사람들과 만나려고 왔고, 누군가는 연애 혹은 뒤풀이를 위해 왔다. 모임에 나가는 것도 좋고, 함께 같은 책을 읽고 모이거나, 평생 가도 읽지 않을 책을 소개하는 사람과 만나며 마주하는 의외의 충격에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방황하듯 또 다른 모임을 찾고 또 찾아다녔다. 길 위를 걸으면서 길을 잃은 것 같다는 막막한 느낌. 무사히 집에 왔음에도 이곳이 집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때는 그런 막연한 불안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더 많은 책을 읽고, 다 읽지 못할 만큼을 사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네이버 카페 '달의 궁전' 독서모임에 나가게 됐다. 그때 읽은 책이 뭐였는지는 잊어버렸다. 왜냐하면 그날 집에 가지 못했으니까. 처음으로 북클럽에 나가서 밤새 자리를 옮기며 얘기를 듣다 아침에 돌아왔다. 그런 경험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북클럽에 나가서 그렇게 취하도록 마신 적도, 마신 술이 다 깨도록 이야기를 나눈 것도, 그때의 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 것도, 그렇게 드러난 모습이 못났다고, 그래서야 되겠느냐고 직접적으로 하는 얘기를 들은 것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누구나 좋은 사람이고 싶을 거라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밀한 감정, 경험을 건드리는 책을 읽고 만나도 비난받지 않고,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생각이나 말을 그치거나 꾸미는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래왔고, 아무 문제 없이 보내왔지만 그날, 그 자리에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덕분에, 운이 좋게도 그날 만난 좋은 북클럽 멤버들의 덕분에, 오만과 아집만 깨지고 나는 남았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쟤 아마 그다음 달 모임부터는 안 나올걸."
하지만 나는 나갔다. 그 뒤로도 계속 나갔다. 고마운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도저히 그들 앞에서는 오만할 생각이 들지 않는 크고 넓은 사람들을 만나러 갔다. 그것이 내가 경험한 최고의 북클럽이다.
찬쉐 소설 『격정카지노 게임』는 '비둘기 북클럽'이라는 문학에 심취한 사람들의 모임과 그들의 관계를 담은 소설이다. 제목만 보고 격정적인 사랑 이야기인가 했는데 격정적이긴 한데 결이 조금 다르다. 사람과의 사랑보다 문학과의 사랑이 더 깊고, 사람과의 사랑의 시작조차 문학에서 비롯되는 기승전 문학, 비둘기 북클럽 찬양 소설이랄까. 북클럽을 통한 깊은 교감과 위안을 경험한 나로서는 공감되는 부분이 많은, 우리의 '달의 궁전 북클럽'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라 반가웠다. 반대로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뜬구름 잡기, 판타지처럼 읽히지 않았을까.
『격정카지노 게임』는 하나의 닫힌 카지노 게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비둘기 북클럽에 속한 사람들과 속하고자 하면서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들이 구성원이다. 그들에게 비둘기 북클럽은 보석이고 보물이고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 북클럽에서 인정하는 건 오로지 문학적 이해와 수준의 향상이다. 최고 수준에 닿기 위해 부단히 읽고, 이야기 나누고, 발언한다.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건 물론, 추천받은 책은 거의 항상 중요한 순간에 단서를 제공한다. 완벽한 선순환 구조. 그 카지노 게임에서는 모든 갈등이 화해에 이르기 마련이고 화해를 통해 내면의 성장은 물론 관계 역시 한 단계 나아간다. 책, 문학이 주관하는 이상적인 카지노 게임. 『격정카지노 게임』는 표면적으로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
달의 궁전 북클럽의 한 멤버는 읽다가 화가 나서 마지막 장을 읽지 않았다고 했다. 이유는 자꾸 반복된다는 것이다. 같은 내용을 사람만 바꿔서 반복하는 걸 참기 싫었다는 거다. 700쪽에 가까운 분량이나 되는 소설을 '문학에 심취한 사람들의 격정으로 가득한 닫힌 카지노 게임 이야기'같은 간단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 것도 그 구조가 단순해서다. 먼저 문학에 빠진 사람이 있고, 그에 영향을 받아서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하고, 다른 사람이 또 그 영향을 받고 변하고, 또 변하고, 변하는 반복. 결말이 '그들은 모두 사랑에 빠져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인 동화 같은 가짜 카지노 게임. 나 역시 반복되는 구조에 피로감을 느꼈지만 반대로 친절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입문자에게 문학과 책의 카지노 게임는 이토록 아름다운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환상에 가까운 기대를 심어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환상이 나중에 깨지더라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동력이기에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너무 길다고, 이렇게 길어야 했는가 하는 의문은 공감한다. 이렇게 긴 이야기가 왜 필요했을까.
『격정카지노 게임』라는 제목을 두고 인상적인 해석을 들려주는 멤버가 있었다. '격정'과 '카지노 게임'의 대립을 상징한다는 거다. 격정은 문학을 향한 격정, 카지노 게임는 우리가 사는(작가가 사는 중국을 포함해서) 카지노 게임다. 둘은 좋은 말로도 도저히 같다고 하기 어렵고 지나치게 현실 같은 카지노 게임를 그대로 담아내는 문학이 어떤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라지기에 여기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문학을 향한 격정과 카지노 게임는 대립하기 마련이고 마침내 격정이 카지노 게임를 이기게 된다는 메시지가 제목에 담겼다는 것이다. 책 내용을 생각하면 수긍할만한 해석이다. 카지노 게임는 사실 문학에 무관심하거나 문학과 멀어져 있음에도 그 안에 격정을 가진 사람들이 카지노 게임를 풍부하고 살아있는 것으로 바꿔 나가기 때문이다.
기이하다고 생각한 건 북클럽 멤버 사이에 갈등이나 결별이 일어나더라도 북클럽에서는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클럽 밖에서 문제 혹은 갈등이 모두 해결된 후에 다시 북클럽이 열리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마치 비둘기 북클럽은 갈등이나 분노의 장, 표출의 장소가 될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북클럽에서는 오로지 문학과 문학이 향상한 마음과 변화된 카지노 게임의 이야기만 나눠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사실 이건 가짜다. 그렇지만 현실적이기도 한 부분은 북클럽에서까지 자신의 개인적 분노, 원한, 슬픔을 흔히 털어놓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다. 책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개인적인 이야기는 삼가야 한다고 규정하는 북클럽도 적지 않다. 자격이나 규칙을 엄격히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점에서는 비현실적이면서 은근히 현실을 담았다고 해야 할까.
가장 기이한 건 거의 모든 주요 등장인물이 자신의 사랑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물론 결혼과 임신에 이르기까지 카지노 게임를 존속시키기 위한 관계와 장치가 완벽하게 갖춰진 후에 이야기가 끝난다. 서로를 문학의 동반자로 인정하고 존경하고 존중하며 둘 사이에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그리고 결국 얻게 되는 가장 비현실적이면서 이상적인 결말. 『격정카지노 게임』를 닫힌 카지노 게임라고 적은 이유가 이것이다. 이 카지노 게임는 확장되고자 하고, 확장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서 이루어지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자유와 권리가 온전히 보장된다고 보기 어려운 카지노 게임에 사는 사람들이 흔히 동경하는 유토피아를 보는 듯 한 느낌이었다. 문학을 사랑하고 심취해서 수준을 높이고 성장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카지노 게임에는 문학보다 쉽고 재밌는 게 이토록 많은데 말이다. 수천 년 전부터 독재자들은 책을 불사르고 토론을 금지했다. 카지노 게임는 구성원이 성장하고 나아가기를 진심으로바라고 있을까.왠지 아닐 것만 같다. 그래서 카지노 게임는 격정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격정이 이길지 카지노 게임가 이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문학에서 길을 잃는 것만큼 무해한 방황은 없다. 물리적인 위험과 맞닥뜨리지도 않고 조심해야 할 것도 많지 않다. 오직 두려워할 것은 그 길이 외로울지도 모른다는,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뿐.
혹시 문학이나 책을 향한 격정이 궁금한 이가 있다면, 다만 그 책을 읽는 데 쓴 시간이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길 만큼의 용기만 지니도록 노력해 봤으면 좋겠다. 한 권의 책, 한 편의 작품을 읽는 몇 시간, 혹은 며칠이 무의미해질까 봐 싫은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하루 한 장의 용기, 하루 5분의 용기가 어쩌면 많은 걸 바꾸게 될지도 모른다. 『격정카지노 게임』속 사람들처럼 격정적일 필요도 없고, 극적으로 변하지 않더라도 문제없다. 우리 카지노 게임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끝나지 않은 카지노 게임 속 우리는 또 다른 카지노 게임와 다시 만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