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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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Apr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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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오랜 인연이다.오랜 인연을 묵혀두고 잊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으나, A는 그렇지 않다. A와 통화를 하고 밥을 먹는 일은 언제나 유쾌해서, A를 안지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그 중간 한 번도 A가 싫었던 적이 없었다. A는 나에게는 그 자체로 어떤 '캐릭터'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부분을 가지고 있는 A를 질투해 본 적 없는, 그 자체로 A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한 번도 놓은 적이 없다. 심성이 그리 곱지 않은 나로서 뾰족한 마음이 발동하지 않고 무장해제되기란 쉽지 않은데도 말이다. 그래서 A의 소중함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짙어진다. 어떤 심리적 간격보다 우리에겐 거리의 간격도 있어서, 어떤 기간 동안은 몇 년을 못 만났다. 어떤 기간은 전화 연락조차 못 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A를 기억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A와 나는 생활이 같지 않다. A가 어떤 모습으로 삶을 살고 있는지 다 알 수는 없다. 내가 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모두 짐작일 것이다. 그래서 A는 나에게 자신의 모습 중에 나에게 선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조차도 좋다. A는 나에게 어떤 예의를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일까. 가깝지만 누구에게든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A가 얼마나 섬세한 사람인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A는 밝고 명랑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나보다 큰 소리로 먼저 웃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A가 구김을 숨기려 한다는 것을 대충 눈치챌 수 있었다. 나는 단체 사진을 찍을 때 그 모든 사람들보다 항상 가장 환하게 웃음 지을 수 있는 사람이다.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의 그림자가 얼마나 짙은지 아는 사람은 비슷한 부류밖에 없다. 나는 그래서 A의 웃음을 사랑한다. A는 정말로 웃는 모습이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A는 삶을 진실로 살고자 발버둥 치는 사람이다. 현실이 호락하지 않아 고통받을 때에도 강하게 버텨내는 사람이다. A는 스스로 밝고 따스하다는 것은 알지만 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 생각이 A를 순수하게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A는 분명 강하다. 내가 A를 좋아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기도 하다. A는 그대로 삶에 잡아먹히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여 자신을 밝힐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감정에 놀라는 일이 잦지만 A는 이내 자신의 감정을 분석하고 따르고 또 기뻐하며 슬퍼한다. 그리고 그 기쁨을 훼손하지 않으며 슬픔으로 걸어들어가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A가 가지고 있는 그 아름다운 면은 다른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서 아마도 더 빛이 날 것이다. 모두가 A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고, A를 거부하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A가 애쓰고 있는 세상에서 A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인격이 되어 A의 유니버스가 형성되어 있으리라 나는 상상하곤 한다.



B를 알게 된 지 10년이 다 되어간다.B는 분명 나와는 다른 결의 사람이었다. 나보다 말도 행동도 느리고, 어떤 부분에서는 분명하게 행동하는 일이 많지 않다. B의 책상엔 책과 짐과 정리되지 않은 노트들이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일이 많았다. B는 깡마른 체격에 티셔츠 안에 티셔츠, 그 위에 셔츠, 그 위에 베스트를 입을 정도로 옷을 겹쳐 입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오뉴월이 되어도 그렇게 입는다. 느릿하게 걷는 사람이고 귀엽게 말하는 것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물론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한다. 나는 B에게 나의 취향을 말해본 적이 있다. B에게는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공기가 떠다닌다. 말해놓고 이내 후회했지만, B는 그 뒤에도 나에게 행동이나 말이 달라지지 않았다. 그 점이 나를 민망함으로부터 지켜줬다. 나는 B의 고요함을 좋아한다. B는 상대의 어떤 말과 행동으로 이전과 이후가 쉽게 바뀌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이후 B는 나에게 책을 권해주기도 하고, 자신의 과거에 대해 혹은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 준 적도 있다. 그럼에도 옆자리에 앉아있는 동료로서 B는 나에게는 동료 그 이상도 아니었다, B가 나에게 책을 같이 읽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기 전까지는. 나는 B가 속해있는 어느 모임이 직감적으로 내 생활에 변화가 필요하다 생각했던 그 순간에 걸맞은 활동이라 생각했다. 나는 B에게 흔쾌히 함께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소개받은 사람들은 모두 당연히 직장동료들이었고, 그 사람들 모두 내겐 좋은 인상으로 기억되고 있는 이들이었다. 직장에서는 무색무취이길 바랐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았던 나를 누군가가 받아준다는 그 마음은 언제나 경계에 살고 있다 생각하는 내게 큰 응원 같은 것이었다. 나는 직장에서는 내 삶의 절반도 실현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늘 한 발만 넣고 있는, 다른 곳으로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는 경계인에게 소속감을 갖게 하는 것은 직장이 아니라 직장 사람들이라는 것을 B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던 것 같다. B와 둘이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문학에 대해 혹은 세상에 대해 이야기 한 시간들이 있었다. 제법 그 시간은 이어지기도 했고, 우리는 함께 제법 긴 여행을 떠나기도 했으나, B와의 간격이 좁혀지진 않았다. 나는 그게 B와 내가 다른 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B와 가까워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B와 더 가까워지지 못했다고 크게 아쉬워하지는 않았다. 삶을 완벽하게 포갤 수 있는 타인은 없으므로. 직장동료로서 내가 하는 말의 한계를 B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직장동료를 넘어서는 만남이라는 것은 쉽지도 않지만, 그와 상관없이 B는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나와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일이 있지만 그것은 한정적이었다. 나 역시 B가 원하는 일을 모두 하고 싶지는 않으므로. 그러나 나는 B의 사랑스러움을 알고 있다. B는 매우 합리적인 사람이고, 따뜻한 사람이다. 그리고 주위에 대한 비판의식이 좋은 사람이다. 아주 작은 부분에서도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으려는 힘을 B는 가지고 있다. B는 의식하지 못한 부분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는 아이디어가 좋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B를 보며 배운 것이 많다. 느리고 조용하지만 B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는 단정함이 있었고,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늘 배우려는 자세가 남다른 사람이었다.



A와 B가 간혹 만나며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부러 만나기에는 어려운 거리였지만 아예 가능성 없을 만남은 아닌 터라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제법 놀랐다. 나는 A와 B 각각에게 서로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말한 A와 B가 서로였는지는 둘 다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나 혼자만의 놀라움에 반나절 정도는 들떴다. 그들의 유니버스에 탄복하면서도 A에게는 B를, B에게는 A에 대해 나에게 있어 A와 B에 대해 들려주었다. 나는 이런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실은 아니다. 관계는 미묘해서 누군가를 알고 있더라도 타인에게 알고 있는 나의 다른 관계를 부러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흥분하며 A와 B에게 서로에 대해 알려주며 평소보다 혼자 더 들떴다. 나에게는 A가 더 오래되고 내밀한 인연이지만. 비교적 더 자주 만나는 현재의 인연은 B이다.


"A는 제게는 오래된 인연이고, 친구예요."

"A는 한결같이 사랑이 넘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죠!"

"맞아요! A는 그런 카지노 게임 사이트죠!"


"B는 늘 배우려는 자세가 좋은 사람이죠! 단단해 보이는 사람이고요."

"맞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B는 참 좋은 사람이에요!"


A와 B가 당장 연락해서 서로에게 나에 대해서 알은체를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들은 그런 사람들이다.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사람들, 누군가에 대해 쉽게 말을 잇지 않는 사람들, 나처럼 흥분해서 떠들고 다닐 사람들이 아니다. 다음 그들의 모임에서 잠깐 지나는 말로 이야기할까. 그렇지만 그들은 또 그들의 유니버스가 있지. 나와 A, 나와 B의 유니버스가 있듯이. A와 B는 어떤 모습의 유니버스일까. 헐겁고 연약한 실로 연결되어 있는 가느다란 관계 일지라도 이건 유니버스다. 우리는 셋이 함께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나와 A, 나와 B가 만드는 유니버스는 A와 B가 만드는유니버스와 같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가까이 있다는 것으로 조금은 더 단단해진 것 같다. 조금은 이 세상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만 같다. 연대의 힘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걸까. 유니버스 안에서 각자의 삶으로 각자가 흔들리더라도, 내가 그들을 응원하고 또한 그들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연둣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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