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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왔어!
어디론가 신이 나서 달려가는 모습은 종종 "택배 왔어!"라는 문구를 달고 유머 게시판의 단골 소재가 되어 퍼졌다. 10-20년 전 온라인 쇼핑족들이 늘어나며 집에서 택배만 기다리고 있던 마음이 남의 일만은 아니었다.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역병이 돌아도 택배 관련업은 매년 역대 최대폭의 활황을 갱신했다. 택배업은 실업자들과 투잡러들을 넉넉히 포용했다. 일이 고돼서 중도에 그만두는 사람은 있어도 택배업이 인력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고단한 업무로 인해 자꾸 빠져나가는 노동력의 속도는 그것의 채워지는 속도보다 빨라 보였다. 로켓 배송을 장담하며 자랑하던 기업도 물류 배송에 종종 차질이 생기곤 했으니까. 뉴스에서는 택배기사의 격무로 인한 불상사가 잊을만하면 한 번씩 흘러나왔다. 그 사이, 택배업 꼭대기에 앉은 업주 개미는 적자의 한참 반대편에서 승리의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택배업과 함께 발달한 업종이 있으니, 그건 바로 포장업이다. 물건을 안전하게 배송하기 위해 완충 포장을 하고, 빗물에 젖지 않게 방수 포장을 해야 했다. 포장이 제품의 얼굴이 되어버리는 주객전도 상황은 자주 일어났다. 제대로 되지 않은 포장에 대해 판매자는 합당한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택배업과 비슷한 물결에 등장한 퀵서비스와 배달 서비스에도 포장은 늘 중심에 있었다. 따뜻한 음료는 은박 보온재로 감싸져 따뜻함까지 배달이 되어야 했고, 보냉이 필요한 음식은 드라이아이스를 이용해 적절한 온도와 함께 배송되어야 했다.
포장을 뜯는 행위가 언박싱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재미로 재탄생한 건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초등학생 시절, 반 친구들을 생일파티에 초대하면 친구들의 손에 담긴 선물 앞에 설레는 가슴을 숨길 수 없었다. 친구에게 집 대문을 열어주러 가던 모습은 '택배 왔어!'의 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선물의 포장이란 것은 기쁨과 기대의 혼합물이었다. 우리는 나와 선물의 중간에 가름막처럼 버티고 있는 종이 한 장을 두고숨을 거칠게 쉬었다. 뜯어지면서 곧장 쓰레기통으로 향할 운명의 포장지는 제 역할의 클라이맥스를 충실히 이행한다. 그 순간, 나는 여행을 앞두고 설렘에 잠 못 이루는여행자의 모습이 된다. 정작 여행지에 도착해서 신이 날지, 실망할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내용물이 주는 기쁨과 실망에 대한 확률이 반반이라면, 포장 앞에서 기쁨은 백 퍼센트였다. 어쩌면 나는 내용보다 포장에 기뻐했는지 모른다. 급하게 오느라 미처 포장하지 못한 선물을 내밀던 친구는 이미 자신이 여러 번 듣고 들어 늘어나버린 동요 카세트테이프를 부끄럽게 내밀었다. 알록달록한 포장 사이에 맨살을 내보이고 있던 카세트테이프가 여태껏 내 기억에 남아있다. 오랜 날 궁리했지만 왜 그걸 기억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가까스로 정리해 보건대, 알록달록한 자극 속에 유일한 무자극으로 기인한 것은 아닐까 섣불리 귀결해버리고 만다. 발기발기 뜯긴 포장지 더미 사이로 내민 맨 몸뚱이들 사이에서 맨살의 카세트테이프는 그제야 안도했다. 포장의 탄생이적어도 택배보다는 빨랐던 것으로 앞뒤 역사를 점쳐본다.
물자가 흔전만전한 세상이다. 더 이상 갖고 싶은 것도 없고, 오랜 시간 끊어진 택배 기사의 발길에 불안하지도 않다. 미니멀리즘을 동경의 대상으로 삼으니 맥시멀리즘은 당연히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었다. 있던 것도 다 버리는 판국에 더 이상 사들이는 것을 그만둔다. 꼭 필요한 것이 생기면 이미 가진 한 가지를 버리고 나서야 채웠으니 물건의 수는 증식하지 않았다. 연필 한 자루, 비닐 팩 한 장까지 손바닥 안에 있었다. 적어도 내가 머무는 공간에서는. 곧, 딸아이의 방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11번가 온라인 샵딸아이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 재료를 사다 날랐다. 그리곤 시도 때도 없이 무엇이든 곱게 온라인 카지노 게임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당하는 흔한 주인공은 대게 걸그룹 멤버의 화려한 얼굴이 찍힌 포토카드였는데, 그것을 각종 프레임에 담고 스티커로 장식했다. 때에 따라 완충제를 담아 비닐 팩에 깨끗하게 넣는 일을 아이는 혼자서도 즐겨했고, 여럿이도 잘했다. 대관절 이 짓을 왜 하고 있느냐 물으면 "재밌잖아!" 하는 대답이 탱탱볼처럼 튕겨 나오곤 했다.
언박싱의 즐거움이 박싱의 희열로 옮겨가고 있었다. 트렌드는 변했다. 선물을 멋지게 포장하는 것 자체가 재밌는 놀이가 되었다. 아이들은 같은 선물이라도 다른 모습으로 포장하는 서로의 센스를 겨루었다. 정성스레 포장된 카드를 선물 받는 것은 친구들 사이에서 자랑거리가 되었다.
자주 남의 포장지가 좋아 보인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다. 포장 재료를 교환해 포장하는 행위는 요즘 여자 초등학생들의 흔한 놀이 방식이 되었다. 이 순간, "이미 한물갔거든!" 하고 외치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한 박자 늦게 글로 쓰는 나의 모습이 상당히 구식처럼 느껴진다. 트렌드가 또 어디로 튈지 모를 일이지만, 받는 기쁨에 치중했던 나의 모습과 주는 기쁨까지 챙기는 오늘날 아이들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그려진다.
1층에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택배기사가 따라 올라타면 똥 밟았다고 생각했다. 고층 거주자에게는 말 못 할 고충이다. 급행열차는 완행열차가 되어 모든 역에 정차했다. 아무리 그들이 눈치껏 날래게 배송을 해도 상행선은 느려도 너무 느렸다. 문명인 얼굴의 가면을 쓴 '나'라는 동승자는조용히 버튼을 잡아준다. 그도 어쩔 길이 없다. 나도 뾰족한 수는 없어서 우리는 천천히 올라갔고, 그는 매일 같은 길을 올랐다.
그의하루는 리셋되지만, 그의걸음은 축적된다. 그가 속한 무리는 축적된 걸음 수만큼 존재감을 높여갔다. 현대인의 삶의 반경에 이들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나 언온라인 카지노 게임, 발송이나 배송, 그 어떤 방식으로도 물리적 거리는 더 이상 심리적 거리와 비례하지 않다.이웃은 늘어나고 물건은 마음을 대신한다. 내가 보내는 물건은 나의 분신이 되었다. 그곳까지 닿지 못하는 나의 육신을 대신해 주야장천 뛰어주는 이들에게 진정 이 시대의 산타클로스라는 타이틀은 더없이 마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