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얼빈' 리뷰
세상에는 두 종류의 빛이 있다. 태양처럼 스스로 빛나는 것과, 달처럼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 영화 <하얼빈은 후자에 가깝다. 영웅의 눈부신 면모대신,이면에 존재하는 인간의고뇌와 두려움을 응시한다. 짙은 심연 속에서 도달하는 빛의 순간을 통해, 존재의 무게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동시에 그려낸다.
안중근의 모습으로 시작해 끝나는 수미상관의 구조는 거친 수묵화처럼 투박한 여운을 남긴다. 처음에는 뒷모습을, 마지막에는 앞모습을 보여주는 그의 여정은 시대를 건너가는 인간의 흔적이다. 얼어붙은 두만강 속 한 점에 불과한 존재가 품은 거대한 의지는 차갑고 아리다. 시선은 하늘 높이 올라 인간의 나약함을 조망하고, 때로는 지상으로 내려와 영웅의 숨소리를 가까이서 듣는다. 이러한 변주가 안중근의 이중적 층위를 절묘하게 엮어낸다.
"길을 잃었습니다. 나의 믿음으로 인해 많은 동지들이 희생되었으니 더는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절망 속 죽음을 선택하려 했던 안중근의 고백을 들으며, 밀란 쿤데라가 말한 '존재의 가벼움'이 떠올렸다. 쿤데라는 인간의 선택이 단 한 번뿐이기에 그토록 무거우면서도, 그래서 그토록 가벼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안중근 역시 자신의 선택이 가져온 무게를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금세 깨달았다. "내 목숨은 죽은 동지들의 것이라는 것을. 나는 죽은 동지들의 목숨을 대신하여 살고 있다는 것을."
그 빛나는 무게를 받아들임으로써 오히려 가벼워졌다. 자신의 숙명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찾아오는 해방감. 안중근은 자신의 존재가 지고 가야 할 무게를 끌어안으며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그 자유는 그를 하얼빈으로 이끌었다.
존엄이라는 빛이 꺼지는 순간은 의외로 조용하다. 우아하게 나이프와 포크로 고기를 썰어 먹는 일본 장교와, 접시에 던져진 고기를 손으로 움켜쥐며 뜯어 먹는 독립 투사. 이 둘이 한 프레임 안에서 만드는 명암은 참담하다. 날것을 씹는 소리는 절제된 화면과 대조되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존재를 집어 삼키는 듯했다.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고 느끼는 순간의 처절함이 가장 무거운 존엄의 순간이 된다.
모든 무게는 결국 빛이 된다. 영화의 전반을 지배했던 어둠과 달리, 하얼빈역에 선 안중근은 유일하게 빛을 품고 등장한다. 그러나 카메라는 그의 결정적 순간을 정면에서 담지 않는다. 대신 하늘 높이 올라가 전체를 조망하는 시선을 택한다. "하늘 위에서 먼저 떠난 동지들이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담고 싶었다"는 우민호 감독의 말처럼, 이토 히로부미를 향한 총성은 한 영웅의 무거운 선택이 아닌, 수많은 희생이 만들어낸 빛나는 순간으로 기록된다. 그렇게 모든 무게는 가벼워지고, 모든 어둠은 빛이 되어 역사에 새겨진다.
육신의 무게를 내려놓는 순간에도, 안중근의 빛은 꺼지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을 연기하는 현빈의 눈빛에는 두 가지 빛이 교차한다.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결연함이라는 강렬한 빛과, 죽음을 앞둔 서른살 청년의 떨림이라는 희미한 빛이다. 집행용 두건이 그의 얼굴을 덮는 순간, 빛 대신 빚이 번진다. 남은 동지들에게 짐을 넘기고 홀로 떠나야 하는 미안함의 빚. 자신은 이제 모든 무게를 내려놓지만, 광복이라는 십자가를 끝까지 짊어져야 할 동지들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이 그의 마지막 순간을 더욱 빛나게 한다. 그렇게 형장의 이슬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워진 한 영웅의 서사는 "불을 밝혀야 한다"는 독백과 함께 끝난다.
영화 <하얼빈은 신화의 제단 위에 올려진 영웅을 땅으로 내려놓았다. 현빈이 연기한 안중근은 완벽하지 않다. 실수하고, 좌절하며, 두려움에 몸을 떤다. 만국공법을 지향했던 그의 높은 수준은 오히려 동지들의 죽음에 빠뜨렸다. 이로 인해 그는 처절한 고독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했다. 영화가 보여주는 지리한 과정을 통해, 그는 자신의 결점을 마주하고 더 큰 결단을 내린다. 독립운동가로서의 대의는 물론, 자신의 존재를 회피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조선이란 나라는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하는 나라지만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는 이토 히로부미의 말처럼, 우리 민족은 위기 속에서 더 큰 빛을 발했다. 산업화도, 민주화도 그렇게 이루어냈다. 새로운 위기가 드리운 오늘날, 안중근의 마지막 독백은 영화관의 사운드보다 더 크게 울렸다.
어떤 이들은 영화가 지나치게 무겁고 상업영화로서의 쾌감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나는 영화가 가진 차가운 무게감이 지금의 반지성주의 시기에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우민호 감독은 통속적인 카타르시스나 신파, 애국심을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한 인간의 고뇌와 선택이 만들어낸 빛나는 순간을 조용히 비춰주었다. 대본을 더 담백하고 입체적으로 썼다면, 그 순간이 더 격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안중근의 선택은 두만강의 얼음처럼 차갑고 묵직했다. 그 얼음은 봄이 오면 녹아 백두의 물줄기가 될 것이다. 먼 훗날 그 물줄기는 무거운 비극의 잔재가 아닌,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빛이 될 것이다. <하얼빈은 그 빛을 전한다. 얼음 속에 숨겨져 있던 그 빛은, 긴 겨울이 지나고 다시 우리의 심장에서 뜨겁게 흐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