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밀라모람 Ficus pumila
오래 전 아이들이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태평양의 열대 휴양지 사이판으로 첫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둘째가 너무 어려서 처가에 맡겨두고 첫째만 데리고 여행을 했다. 그 후 둘째는 몇 차례 이 건에 대해 살짝 섭섭한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그래서 연초에 둘째만 데리고 휴양지 여행을 다녀오기로 하고, 여러 사정을 감안하여 여행지를 소위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휴양지라는 베트남 다낭으로 결정했다. 여행 계획과 각종 예약은 둘째가 담당하기로 해서 나로서는 크게 준비할 것도 없었다. 아내와 둘째는 3월 초 날씨가 좋으면 해수욕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좋아했지만, 내심 나는 풀루메리아(Plumeria) 등 베트남에서 감상할 열대 수목들을 기대하면서 여행을 기다렸다.
다낭의 3월 초 날씨는 아주 좋았다. 섭씨 20~28도 정도로 덥지 않은 날씨인데, 낮에는 해수욕을 즐길 수 있을 정도였고, 또 사철 푸른 남국의 수목과 다채로운 꽃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숙박지 정원의 수목이며 시내의 가로수 등을 눈길과 카메라에 담으며 다니다가, 핑크 성당으로도 불리는 다낭 성당 후원에서 뜻밖에 Ficus pumila를 만났다. Ficus pumila는 <초사에서 은자를 상징하는 무화과나무속의 덩굴식물 벽려薜荔이고, 우리나라에서 푸밀라모람으로 불리기도 한다.
몇 해 전 나는 이 벽려에 대해, “숨은 선비를 상징하는 초사의 벽려薜荔는? - 모람과 왕모람”을 써서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지에 게재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벽려의 근연종으로 우리나라 남도에 자생하는 모람(Ficus oxyphylla), 왕모람(별명 애기모람, Ficus thunbergii)은 여러 번 감상했지만 벽려는 감상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 후 2024년 봄 인천수목원 온실에 자라고 있는 벽려를 감상한 후, 언젠가 한번은 자생지 환경에서 벽려를 감상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다낭 시내 중심가 성당 성모상 위에서 실제로 벽려를 만났으니, 식물애호가로서 큰 행운처럼 느껴졌다.
다음날은 다낭의 대표적 관광지인 마블마운틴(Marble mountain, 五行山)에 갔는데, 곳곳에 동굴이 있고 동굴마다 불교 유적이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곳에서도 링응사(Linh Ung pagoda, 靈應寺)로 가는 입구의 엘리베이터 탑 벽면을 기어오르고 있는 거대한 벽려를 만났다. 이 벽려는 곳곳에 화낭인지 열매인지, 아마도 열매로 보이는 무화과를 달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모람이나 왕모람 열매는 둥근 공 모양인데 반해 벽려 열매는 꼭지 쪽이 넓은 길쭉한 모양이어서 상대적으로 식별하기 쉬웠다. <인천수목원 온실에서는 혹시나 열매가 있을까 이곳 저곳을 들여다보았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핑크 성당 성모상 위에서도 혹시 열매를 볼 수 있을까 기대했으나 덩굴이 멀리 있어서 육안으로는 식별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마블마운틴에서 큰 벽려 덩굴을 만나고 또 주렁 주렁 매달린 열매를 바로 코 앞에서 감상했으니, 내가 얼마나 기뻤겠는가? 들뜬 목소리로 아내와 둘째에게 벽려 열매를 본 기쁨을 온전히 공유하고 싶었으나, 해수욕장이 아니라 산비탈을 더위 속에 걸어야 하는 그네들에게는 식물애호가의 이 기쁨은 저 멀리 달나라 이야기였다.
왕에게 버림받은 슬픔을 알아줄 이 없는 굴원의 근심을 떠올리며, 카지노 가입 쿠폰가 등장하는 <초사의 한 구절을 다시 읽어본다. 구가九歌 산귀山鬼 편의 일부이다.
누군가 있구나! 저 산 언덕에
카지노 가입 쿠폰 옷을 입고 송라 띠 둘렀네
은근한 눈길 주면서 또 정답게 웃으니
그대는 나를 사모하네, 아름다운 모습을!
붉은 표범을 타고 얼룩 너구리가 뒤를 따르며
자목련 수레에 계피나무 엮은 깃발이여
석란(금채석곡)을 걸치고 두형(족도리풀)을 차며
향기로운 화초를 꺽어 그리운 님께 보내네
깊은 대숲에 나 살고 있으니 종일토록 하늘을 볼 수 없고
길마저 험난하여 홀로 늦게 왔다네
若有人兮山之阿被薜荔兮帶女羅
既含睇兮又宜笑子慕予兮善窈窕
乘赤豹兮從文狸辛夷車兮結桂旗
被石蘭兮帶杜衡折芳馨兮遺所思
余處幽篁兮終不見天路險難兮獨後來
굴원은 이 시에서, 은자의 상징으로 “벽려 옷을 입고 송라 띠”를 두른 이를 읊고 있는데, 아마도 자신을 노래한 듯하다. 굴원이 노래한 벽려가 바로 내가 다낭에서 열매까지 감상한 Ficus pumila이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2025.3.12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통권206호, 2023년 9/10월호, pp.72~80 (/@783b51b7172c4fe/21)
** Ficus thunbergii에 대한 국명에는 혼선이 있으며, 왕모람 혹은 애기모람으로 부르는 듯하다. 이 글에서는 <한국의나무와 <한반도자생식물 영어이름목록집등에 의거하여 왕모람으로 칭한다.
*** 조선시대 문인들의 시에도 가끔 풍경을 묘사할 때 벽려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때 벽려는 우리나라 중부지방에도 자생하는 줄사철나무나 담쟁이덩굴일 가능성이 크다. 최세진崔世珍(1468~1542)의 <훈몽자회에서는 벽薜을 “담쟝이 벽”, 려荔 “담쟝이 례, (중국) 속칭 벽려초薜荔草”라고 설명했고, 정태현의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는 모람과 줄사철나무의 한자명으로 벽려薜荔를 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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