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희나 글·그림 / 72쪽 / 17,000원 / 스토리보울
좋은 책은 책갈피 사이에 다채로운 의미가 스며있어 폭넓은 해석을 낳는다. 『해피버쓰데이』도 이야기를 반복해서 읽으며독자들이 다양한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작가의 전작 『어제저녁』에 등장했던, 인간을 의인화한 얼룩말 ‘제브리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제브리나가 옷장에서 발견한 새롭고 멋진 옷을 바꾸어 입는 장면을 보면 어린이도, 어른도 인형 놀이를 하던 즐거움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멋진 옷에 감탄하며 이야기를 끝까지 평화롭게 읽을 수만은 없는 묘한 구석이 있다.
백희나의 그림책에는 종종 마음을 흔드는 장면이 있다. 가령 옛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연이와 버들 도령』에서 내가 잊을 수 없는 대목은 나이 든 여자가 연이의 소중한 피난처였던 버들 도령이 사는 마을을 불태워버린 후 연이가 그 폐허를 목격하는 장면이다. 연이의 동공은 그의 눈동자에 비친 폐허처럼 텅 비어 보인다. 『해피버쓰데이』와 『연이와 버들 도령』은 클래식한 성장 서사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오늘은 『해피버쓰데이』에 담긴 뜻만 주목하려고 한다.
『해피버쓰데이』에서 제브리나의 성장은 ‘옷’과 ‘생일’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통해 구체화된다.특히 ‘옷’을 바꾸어 입는 장면 전환에서 제브리나가 가진 세 가지 얼굴이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옷’은 독자들의 즐거운 눈요기지만 상징으로의 ‘옷’은 ‘페르소나’다. 이야기는 멀리 사는 막내 이모가 조용히 집에만 머물던 카지노 쿠폰 상황을 듣고 “얼루룩덜루룩탈탈”에 걸린 것 같다고 걱정하며 생일을 맞아 옷장을 선물로 보내주는 데에서 시작한다. 옷장에는 신기하게도 하루에 한 번만 입고 사라지는 옷이 준비되어 있다. 제브리나는 옷장에 걸린 새 옷을 입고 외출하며 즐거운 일상을 보낸다. 이러한 사회적 페르소나는 꼭 필요한 것으로 인간은 누구나 사회적 가면이라는 얼굴을 보이며 사회와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이때의 페르소나는 카지노 쿠폰가 받은 옷장 속 옷처럼 이미 만들어진 채 우리에게 주어진다. 주어진 역할에 급급할 때 우리는 자칫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잃어버릴 수 있다.
‘생일’을 맞은 제브리나는 이웃과 함께 생일 파티를 열 계획을 세우고 기대를 안고 옷장을 연다. 하지만 뜻밖에도 생일날 아침 옷장이 텅 빈 것을 발견하고 이제 더 이상 옷이 준비되어 있지 않을 것임을 직감한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생일용 고깔모자 하나뿐이다. 텅 빈 옷장 앞에 망연히 서있는 제브리나를 보면 『연이와 버들 도령』에서 버들 도령이 살던 마을이 폐허가 되었을 때 그것을 바라보던 연이를 떠올리게 된다.
사람들은 인생의 어느 순간 카지노 쿠폰와 비슷한 상황을 겪는다. 그것은 어린이도 마찬가지다. 자의든 타의든 자신이 기대온 일상을 더 이상 반복하며 살 수 없는 순간이 갑자기 찾아온다. 그 앞에서 우리는 옷을 잃어버리고 알몸이 된 것처럼 당황스럽다. 문학과 인생에 ‘기승전결’이 있다면 이때가 바로 ‘전’인 셈이다. 카지노 쿠폰에게 옷장이 생긴 것이 ‘기(起)’, 마법의 옷을 입고 외출하는 시간이 ‘승(承)’이었다면 자신의 옷이 없어져 버린 장면이 바로 ‘전(轉)’이 된다.
왜 하필이면 ‘생일’일까? 생일은 탄생을 의미한다. 즉 존재는 주어진 생일이 아닌 내가 스스로 만든 생일이라는 반전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해피 버쓰데이’를 외치려면 자신만의 옷을 만들어야 한다. 제브리나는 생일 파티를 취소하고 외롭게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가 깨어 거울을 본다. 그리고 머리에는 고깔모자가 아닌 하나의 뿔을, 양쪽 어깨에는 두 날개를 가진 유니콘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 그 모습은 까맣고 하얀 두 개의 색깔을 지닌 얼룩말 카지노 쿠폰 새로운 페르소나로 제브리나가 만들어낸 판타지일 것이다.
이것이 그의 두 번째 얼굴이다. 자신이 꿈꾸던 모습은 사회적 페르소나의 밑바닥에 감추어졌던 자신의 ‘그림자’로 카지노 쿠폰 무의식적인 욕망을 재현한다. 그 모습은 아름답기도 하고 때로는 뛰어난 예술적 영감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자신의 일부일 뿐 그 자체가 완전한 자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제브리나는 얼룩말과 유니콘, 낮과 밤, 일상과 꿈, 빛과 그림자, 비상과 추락이라는 여정을 통과하며 비로소 자신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
유니콘이 되어 하늘을 날다 비를 맞고 추락한 뒤 제브리나는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고 평소에 입던 낡았지만 편안한 옷을 찾아 입는다. 말없이 머리를 빗는 제브리나의 몸동작이 어딘지 평화로우면서도 성장한 듯 보인다. 물로 세례를 받은 듯 성스럽게 보이기도 하고, 전쟁을 끝낸 용사처럼 지쳐 보이기도 한다.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시간을 거쳐 온전한 ‘자기’를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이 장면이 카지노 쿠폰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세 번째 얼굴이며 이 이야기의 진짜 반전이다.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은 어른이 아닌 어린이 때부터 필요하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를 종종 만나야 한다.
초등학교 교사 연수에서 이 그림책을 읽어주었던 적이 있다. 매일 아침 바쁘게 출근하는 선생님들은 이 그림책을 보며 아침마다 입어야 할 옷이 단정하게 마련된 마법의 옷장에 감탄하고, 제브리나를 부러워했다. 정신없이 바쁠 때 이미 준비되어 있는 옷은 얼마나 편리한가? 그러나 바쁘게 살며 주어진 역할에 충실할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놓칠 수 있다. 곧 봄이 다가오는 시기, 마음의 옷장에 걸려있는 우리의 옷, 우리의 얼굴을 정리해 보면 어떨까?
오세란_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기묘하고 아름다운 청소년문학의 세계』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5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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