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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Mar 23. 2025

마지막 장을 넘기기 아까웠던 그 책

박노해 시인의 자전 수필, <눈물꽃 소년을 읽고


시인의 언어가 산문이 되면 평범한 문장도 절로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인가. 전에 고명재 시인의 산문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를 읽으며 책장이 끝나가는 게 그렇게 아쉽더니그런 책을 또 만났다.


카지노 게임 추천박노해, <눈물꽃 소년


시인이자 노동 운동가인 박노해 님의어린 날의 이야기, <눈물꽃 소년말이다. 자전적 성장 이야기라니신비한 탄생 설화처럼 지금의 그를 만든 범상치 않았던 그 시절 어린소년과그를 둘러싼 모든 우주의 영롱한 기운들에 관한 이야기쯤되겠거니... 짐작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특별한것은저자의입을통해가족과 이웃들이 살던 풍진 시대에도절대 훼손되지 않던, 삶의 지혜를 담은 주옥같은'입말'을고스란히 전수받는다는데 있다. 그것도 고향을 떠나면 누구나 입말 방식부터 고치느라상당히 애를 먹는다는 내 고향 전라도 토속말로.


그랬다. 전라도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고향을 떠나면 말의 방식부터 버렸다. 아무도 일러주지 않았지만 본(本)을 버려야 안전하게 살 수 있음을 역사가 알려 주었다. 나고 자란 곳을 떠나 타지로 왔을 때 내가 쓰는 일상어타지사람들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면 불안했다. 귀에 들리는 대로 말의 속도와 톤(피치), 악센트를 연습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면그 시절의 내가섧기도, 딱하기도 하다.


이제는특정고향말을떠올리고 싶어도 가물가물잘 생각이 안 나서 일까.책을 읽으며 고향에서 할머니가 엄마가 선생님이 이웃 친지가 동무들이 들려주는 말에자꾸뭉클해졌다. 모진 세상에 웅크리고 납작해진 나를 발견할 때 어깨 펴고 당당해지도록 힘을 주는 그들의 말들 덕분에 읽는 내내 가슴이 시리고 목이 메었다.


"잘했다, 잘혔어. 그려 그려, 잘 몰라도 괜찮다. 사람이 길인께. 말 잘카지노 게임 추천 사람보다 잘 듣는 사람이 빛나고, 안다 카지노 게임 추천 사람보다 잘 묻는 사람이 귀인인께. 잘 물어 물어 가면은 다아 잘 되니께." (p.12)


'사람이 지도'라는 할머니의 가르침에 그 시절, 초행길도 물어 물어 찾아갈 수 있도록 지도의 역할을 해 준 순하고 정 많은 사람들이 그립다.


"좋은 날은 말이제, 짧아서 좋은 것이여. 귀한 건 희귀하니께 귀한 것이고. 그랑께 감사함이 있고 겸손함이 있는 거제."(p. 14)


너무 멀어서 오가는 게 힘들어 주말에 못 온다던 딸이 갑작스레 다녀 갔다. 며칠 째 밤잠을 푹 자고 자꾸 깬다며"너무 피곤해서잠만 자고 가겠"다고올라온 것이다. 홀로 자신을 돌보며 새 꿈을 향해 스스로를 단련카지노 게임 추천 와신상담의 시간이 꽃길일리가. 집에 오자마자, 딸의 방 침대에 눕더니 "다르다, 달라." 한다. 하룻밤 단잠을 자고 일어나 "내 방이 남향이었어? 아침 햇살이 눈부셔 눈을 뜨는 게 이렇게 좋은 건지 몰랐어." 다.

내 옆에 항상 있을 것 같은 좋은 것들은 공기와 같아서 귀한 줄 모른다. 그랑께 감사하고 겸손히 대해야 쓴다.


"열심이 지나치면 욕심이 되지야. 새들도 묵어야 사니께 곡식은 좀 남겨두는 거란다. 갯벌에 꼬막도 저수지에 새뱅이도 씨 마를까 남겨두는 거제이. (중략) 아깝고 좋은 것일수록 남겨두어야 카지노 게임 추천 것이 아니냐. 평아, 사람이 말이다. 할 말 다하고 사는 거 아니란다. 억울함도 분함도 좀 남겨두는 거제. 잘한 일도 선한 일도 다 인정받길 바라믄 안 되제. 하늘이 하실 일도 남겨두는 것이제 하늘은 말없이 다 지켜보고 계시니께."(p. 16)


열심이 지나치면 욕심이 된다는 할머니 말씀에 정신이 번쩍든다. 순수한 마음으로 뭔가를 배우기 시작할 땐 그저 그것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일들이 욕심으로 변하는 순간이 있다. 맑은 열정 대신 비교와 성취 욕구가 앞설 때 오히려 더 나아가지 못카지노 게임 추천 순간. 다음 주 오카리나 지도자 자격 실기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더 그런 걸까. 연주가 깊어지려면 손가락이 아니라 마음이 깊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다독인다.


"산과 들과 바다와 꽃과 나무가 길러준 것들도 다 제 맛이 있지야. 알사탕이 아무리 달고 맛나다 해도 말이다, 그것은 독한 것이제. 유순하고 담박하고 부드러운 맛을 무감하게 가려 버리제. 다른 맛들과 나름의 단맛을 가리고 밀어내 부는 건 좋은 것이 아니제. 알사탕 같이 최고로 달고 맛난 것만 입에 달고 살면은 세상의 소소하고 귀한 것들이 다 멀어져 불고, 네 몸이 상하고 무디어져 분단다. 그리하믄 사는 맛과 얼이 흐려져 사람 베리게 되는 것이제."(p. 33)


세상에서 제일 귀한 내 자식 입에 단 것만 물려주고 싶은 게 어미, 아비의 마음이다. 이때의 '단 것'이란 알사탕처럼 다른 유순하고 담박한 맛들을 밀어내는 단 맛이 아닐 것이다. 세상의 소소하고 귀한 것들을 알아보며 맑은 얼을 지닌, 나름의 . 그런제대로을 잘 구분할 수 있는 카지노 게임 추천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것이다.


"하늘은 중헌 이에게 고생을 내려 단련시키시제. 비구름이건 눈보라건 다 햇님이 가는 길 아닌가. 굽히지 말고 걸어가소. 선령님들이 지켜줄 것이야."(p. 110)
"부귀와 영화를 꿈꾸고 성공과 지위를 좇은 들, 희망이 없으면 살아도 산 게 아니지. 어떤 시대 어떤 처지에서라도 사람이 살게 카지노 게임 추천 건 희망인 게지."(p. 218)
어머니가 내게 좋은 자식이 되어 주기를 바라지 않았기에 나는 나 자신이 되고 나의 길을 찾아갈 수 있었다.(p. 225)


이 말씀들은 힘겨운 시간을 견디는 딸에게 전해주고 싶다. 네가 중헌 사람이라 하늘이 단련시키시는 중이라고. 예전에는 있는 지도 몰랐던 꿈이 생기고 이룰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는 딸의 말이그렇게 눈물 나게좋았다. 그거면 되는 거다. 그거면 사는 거다. 엄마는 우리 딸이 그저 네 자신이 되어 네 길을 밝게 찾아가길 바란다.


서로 나누고 기대는 것이 최고의 효율이고 믿음이라고, 좋을 때 안 쓰면 사람 베리니 도움 주는 일 미루지 말고 있을 때 나눠야 쓴다고, 다 덕분에, 덕분에 살아가는 거라는 고향 어르신의 말씀에 자주 고개를 주억이고 내내 가슴 뭉클하며 아깝게 책을 덮었다.


'박해받는노동자 해방'이라는 말에서 따왔다는 필명에 시인의 정체성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박기평'이라는 본명보다필명이더 널리 알려진 건, 저자가꿈꾸'함께 사는 세상'온몸으로 증거 하며 살아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름값을 하며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걸 가능하게 카지노 게임 추천건, 어린 소년의 얼을 길러주신 기품 있는 말들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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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걷는 독서 중에서(캘리 by 정혜영, 배경 사진 출처: pixabay)



p.s. 책 표지 그림을 포함해 책 곳곳에 저자의 연필 그림을 만날 수 있어요. 이 단출한 그림들이 묘하게 마음을 당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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