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넘은 남편의 소원
우리 집 아이들은 고양이를 참 좋아한다. 길고양이만 봐도 반갑다. 할머니집에 한동안 단골 길냥이가 매일 놀러 와서 아이들이 할머니집에 맨날 가자고 조르던 때가 있었다. "엄마, 우리도 고양이 키우면 안 돼?" 이렇게 질문할 때마다 고민 1도 없이 "안돼!"라고 말했다.동물이 이뻐서호기심만으로 키울 순없지만,아이들이동물을좋아하는 건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다.
반려동물을 반대한다
나와 남편은 동물을싫어하지 않는다. 작고 귀여운 동물은 너무 이쁘다. 아이들 앞에선 무심한 척 하지만, 둘이서 '너무 귀여워~~~'를 연발하곤 한다. 그러나 반려동물은무거운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부담스럽다.아들 둘키우기도 버겁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그 동물의 의식주를 모두 책임져야 하고, 한 집에 함께 살면서 다양한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나는 아들 둘도힘든데 반려동물까지 챙길 자신이 없다. 그러던 중최근 첫째녀석알레르기가 심해져서피부과 검사를 했다. 고양이, 강아지 알레르기 반응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반려동물 얘기는 쏙 들어갔다.
반려도마뱀
아이들의 동물 사랑은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도마뱀을 분양받게 되었다. 몇 달을 고민하며 도마뱀에 대해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분양을 결정했다. 지금까지 아이들이 밥도 잘 챙겨주고, 집 청소하고 스스로 하며 잘 키우고 있다.도마뱀은 생각보다 손이 덜 가는 동물이었다. 먹이도 심플했고 관리도 쉬웠다. 무엇보다 털 빠질 걱정이 없었다.
집에서 고속도로 타고 차로 1시간거리에서 파충류 박람회가 열린다고 한 달 전부터 가고 싶다고 성화였다. 박람회 당일 날,주말 나들이 삼아 놀러 갔다.다양한 도마뱀 업체들이 도마뱀을 분양하기도 하고 도마뱀 용품들도 판매했다.가기 전부터, 눈으로 구경만 하기로 약속하고꼭 필요한 밀웜과 급수기만 사 오기로 했다.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신이 났고 덩달아 아빠도 신이 났다. 나는 박람회에 들어서자마자 기가 빨리며 어지럽기 시작했다. 나는 최대한 에너지를 아끼며 천천히 따라다녔다.
피그미 다람쥐
그런데 도마뱀 박람회에 왜인지 피그마다람쥐 분양업체가 2곳이나와 있었다. 파충류 박람회인데 왜 포유류가 왔을까. 이상함을 감지하고 불안함이 급습했다. 도마뱀을 보러 왔는데우리 집 남자 셋은다람쥐에게 관심을 뺏겨버렸다. 사실 몇 달 전부터 햄스터 귀엽다고난리였다.햄스터는 냄새가 심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키울 생각이 1도 없었다. 그런데 피그미 다람쥐는 생김새나 크기는 햄스터랑 비슷한데 햄스터보다 냄새도 안 나고 사람 손길도 좋아한다는 설명에 남편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아이들보다 아빠가 더 난리였다. 너무 귀여워를 연발하며 다람쥐 코너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이들은 아빠의 호기심에 희망(?)을 가지며열심히 따라다녔다. 그 모습에 불안함이 커져갔고 체력이 방전된 나는 먼저 박람회 밖으로 나와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한참을 혼자 앉아 있는데 남자 셋이 신나게 뛰어온다. "엄마, 우리 다람쥐 키워도 돼?? 아빠가 너무 키우고 싶데!!" 아들 둘을 말려도 모자랄 판에 아빠가 더 난리가 났다. "여보, 다람쥐 사줘!!"
40대 남성의 감수성
TV강연에서 봤는데 남자는 마흔이 넘으면 남성호르몬이 줄어든다고 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여성호르몬이 많아져 감수성이 풍부해지고 눈물도 많아지고 수다스러워진다는 얘기를 들었다. 요즘 우리 남편에게 자주 보이는 증상들이었다.마흔 넘기고부터 눈물도 많아지고 감동도 잘 받고 귀여운 거에 더 격하게 반응했다.자꾸 아줌마 갬성이 나온다.
다람쥐가 너무 귀엽다고 남자 셋이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사육장만 있으면 키울 수 있고,먹는 것도 간단하고,냄새도 안 나고,사람을 잘 따른다고 한다.아이들이 장화 신은 고양이 눈을 하고 "엄마~다람쥐 사자!"하고 말했지만, 난 싫다고 말했다. "너희 도마뱀이나 열심히 키워!" 그러자 아이들이 말했다. "엄마, 아빠가 어렸을 적부터 다람쥐 키우는 게 소원이었데!"
난 세모눈을 뜨고 남편을 쳐다봤다. 그러자 남편은 입을 쭉 내밀고, 진짜라고 말한다. 갑자기 어릴 적 소원이 다람쥐 키우기라고? 이걸 믿어야 해?! 시큰둥한나의 반응에, 자기 용돈으로 살 꺼라고 허락해 달란다.남편이 직장생활과농사를 겸업하느라고생이 많다. 돈 버느라 고생한 사람이 자기 돈을 쓰고 싶은 데가 있다고 허락해 달라는데 더 이상 반대하지 못했다.
우리 집에 온 다람쥐
결국 다람쥐는 아빠가 잘 돌보기로 약속하고, 피그미 다람쥐 두 마리를 분양받았다. 종류별 먹이랑 밥그릇, 물병까지 구입했다. 처음 들었던 다람쥐 분양가 보다 2배 값을 지불해야 했다. 집에 오는 길에 다이소에 들려 큰 투명보관함과 인두를 샀다. 판매용 사육장은 비싸서 남편이 직접 만들었다. 꽤 그럴싸했다. 다람쥐집에 깔아줄 톱밥과 챗바퀴는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그렇게 피그미 다람쥐는 우리 집 가족이 되었다.
밤새 쳇바퀴 돌리는 소리 때문에 심난하다. 쪼끄만 몸으로 얼마나 먹어대는지 똥도 엄청나게 싼다. 햄스터보다 냄새가 안 난다던데, 똥이랑 섞인 톱밥 냄새는 좀 싫다. 낮에는 아이들이 밥이랑 물을 챙겨주고, 만져주고 놀아준다. 저녁엔 남편이 퇴근하고 와서 집청소를 한다. 귀찮을 만도 한데 다람쥐 챙기기에 열심히다. 그리고 한 번씩 다람쥐를 쳐다보고 너무 귀엽다며 행복해한다. 그런 남편을 보면 웃음이 난다. 어릴 적 소원을 진짜 풀긴 풀었구먼ㅋ
우리 집엔 작고 귀여운 다람쥐와 도마뱀이산다.얘들아, 제발 건강하게 잘 자라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