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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정원 Apr 19. 2025

바보 같은 카지노 게임, 봄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정원을 한 바퀴 돌아보고 있을 때였다. 집 앞 공원에서 사람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려왔다. 누군가 노래를 흥얼거리나 보다 여겼는데 소리가 다가오면서 점차 또렸해졌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이었다. 대문에 서서 살피니 시를 읊는 주인공은 칠순의 노인이었고 아내와 함께 산책 중이었다. 나란히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들이 처음 만나 카지노 게임에 빠졌을 때도 남자는 연인에게 시를 읊어 주었을까. 수줍게 웃으며 꽃도 꺾어 건넸을까?


인근 천주산에는 이미 진달래가 만개했다. 먼 산 정상부를 바라보면 온통 붉은빛이다. 세상이 봄꽃으로 한창인 요즘, 갑자기 싸늘해진 기온과 비 그리고 거센 바람에 정원의 꽃사과 나무의 희고 가녀린 꽃잎은 이르게 떨어져 내리고 있다. 꽃비가 흩날리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아쉬워 중얼거린다. “아! 조금만 더 오래 볼 수 있었으면...” 봄이 아름다운 것은 불꽃같은 만남이 너무 짧아서이기 때문이리라. 마치 스치듯 지나간 첫카지노 게임같이.


음향 엔지니어인 남자는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여 들려주는 지방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을 위해 피디인 여자를 만나 함께 녹음 여행을 떠난다. 백사장에 밀려오는 파도 소리,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소리, 마음을 쓸어주는 대숲 소리, 보리밭을 거니는 바람소리, 소리의 공명 속에서 둘의 카지노 게임은 봄꽃처럼 활짝 피어났다가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사라져 간다. 식어버린 카지노 게임, 깨져버린 관계를 부여잡고 망연자실한 그 남자는 외친다. “어떻게 카지노 게임이 변하니?” 뜨거운 감정은 이 세상 전부였기에 이별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으리. 그들은 인생의 봄날, 꽃잎같이 속절없는 카지노 게임을 했을 뿐이다. 애면글면 매달려도 영화의 제목처럼, 김윤아의 노래처럼 ‘봄날은 간다.’


봄은 외로움의 계절이다. 따스한 햇볕과 촉촉한 단비 속에서 만물은 다시금 소생한다. 나무의 수액이 올라오고, 꽃을 피우고, 짝을 찾는다. 화려한 꽃의 개화가 만발할수록 아직 피지 못하고, 여전히 마음의 겨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미 누군가를 잃어버린 카지노 게임들은 봄날에 더욱 외롭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는 짙어지고 도시의 불빛이 화려할수록 뒷골목은 스산한 법. 봄꽃을 마주한 카지노 게임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활짝 웃음꽃을 터뜨릴 때 당신의 외로움은 머위처럼 쓰다. 봄에는 모두 각자의 몫만큼 외롭다.


사월 초파일 밤, 연등을 밝히고 축제를 벌이는 사람들 속에서 카지노 게임을 잃고 뱃전에 몸을 실은 주요한의 시 <불놀이의 그 사람처럼 외로운 당신은 꽃비를 맞으며 사람들 속을 걷는다. 눈물 속에서 불꽃과 꽃잎이 한데 어울려 일렁인다. 봄철에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스프링 피크(spring peak) 현상은 봄날의 화려함과 흥성스러움이 내면의 외로움을 더욱 사무치게 만들어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처받지 않은 카지노 게임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라고 시인이 노래하지 않았던가? 주요한의 시처럼 확실한 오늘을 놓치지 말고 당신의 빨간 횃불을, 빨간 입술과 눈동자 그리고 빨간 눈물을 활활 불살라 버리자. 언젠가 편안한 얼굴로 ‘살면 살아진다’고 담담히 말할 날이 있을지니.


두더지처럼 흙을 불쑥 밀어 올리는 것이 무엇인지 놀라 살폈을 때 곱고 여린 새순임을 발견하고 생명의 기운에 경이로움을 느끼곤 한다. 또 아기들의 앙증맞은 손을 만지다가 강하게 쥐는 손가락의 힘에 놀란 기억도 난다. 새순같이 여린 손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깜짝 놀라면서 말이다. 생존의 조건은 꽉 움켜쥐는 욕망에 있음을, 애초에 우리의 고통도 또한 거기서 잉태되는 것임을 아이들의 손아귀에서 본다. 생명의 본성, 두 손에 꼭 쥐려는 욕망, 카지노 게임에 목마른 가슴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를 아프게 한다.


”오 카지노 게임하는 나의 아버지..." 소프라노가 부르는 아름다운 이 아리아는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 중 여주인공이 부르는 노래다. 고운 선율과 달리 가사는 사뭇 비장하다. ‘카지노 게임하는 사람과 결혼을 못하게 되면 베키오 다리로 가서 아르노 강에 몸을 던질 것’이라고 아버지를 협박(?)하는 내용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극 중의 아버지는 딸의 협박성 설득에 넘어가고 만다.


소녀가 바닷가에서 열심히 모래성을 쌓는다. 화려한 대리석과 멋진 샹들리에, 늠름한 왕자님과 함께 아름다운 카지노 게임을 나누는 꿈의 궁전을 소녀는 오래오래 정성을 다해 만든다. 하지만 밀물이 그 성을 한순간에 무너뜨렸을 때 소녀는 소리 내어 울고 아빠의 품에서 외친다. ”내 꿈이 사라졌어! 나 같은 건 살 가치가 없어! 죽어버릴 거야~ 엉엉" 아빠는 나직이 무어라 중얼거리며 어린 딸의 등을 토닥인다. 사실 우리는 바닷가 소녀처럼 머릿속에 모래성을 지으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의미의 설계도와 욕망의 대리석 그리고 집착의 시멘트로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때로는 그것이 자신의 궁전이 되고 또 때로는 감옥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오래전 최불암 시리즈라는 유머가 한창 유행이었다. 당시 국내에도 에이즈 환자가 발견되기 시작했고 불치병에 혐오 이미지가 덧붙여져 에이즈 포비아가 만연했었다. 그 시대 상황에서 만들어진 유머 한 토막이 생각난다. 티브이 홍보영상에서 방영된 환자들의 특징은 얼굴과 몸에 까만 점이 생기면서 죽음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최불암은 자신도 혹시 저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을 보고 이마에 검은 점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최불암은 자신도 죽게 될 것이라 강하게 확신했다. 확신에 대한 집착은 스스로를 절망의 늪에 빠뜨렸고 번민 속에서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렸다. 다음날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최불암, 이마에 김 붙이고 자살하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이 한 유명한 말이다. 우리는 의미를 지향하고 스토리텔링으로 사고하는 본성을 타고났기에 저마다의 세상, 각각의 우주에 산다. 운이 좋지 않다면 상실과 상처의 강박에 빠져서 자력으로 헤어 나오는 것이 요원해질지도 모른다. 우리의 본능과 기억과 알량한 자존심은 고집이 세서 영혼을 평안히 놓아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터그놀이를 하는 개가 다문 입을 당최 풀지 않는 것처럼. 절망과 체념과 자학으로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아. 이마에 김을 붙이고 죽으려는 그대, 바보 같은 카지노 게임아! 봄이다.


정원의 튤립 꽃송이가 막 피기 직전, 지난 바람에 뚝 부러져 버렸다. 안타까워하는 아내는 동강 난 꽃이 아까워 컵에 꽂았다. 꽃을 잃어버린 튤립의 몸통은 희망을 잃고 시들어버렸을까? 다음날 보니 아픔을 삼킨 잎새는 밤새 내린 비에 더욱 커지고 푸르러졌다. 땅속 구근은 내년에 더 실하고 예쁜 꽃을 준비하기 위해 강해지고 있을 것이다. 카지노 게임 전해주는 가르침이다.


이른 새벽에 연인의 손을 잡고 시를 읊으며 공원을 산책하는 카지노 게임, 그늘 속에서도 스스로 빛나는 카지노 게임. 탐욕의 자유가 아니라 놓아주기도 하는 자유를 간직한 카지노 게임. 꽃을 보며 나도 그런 카지노 게임이 되고 싶다.


눈부신 아침, 나의 아내가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 속에 서서 속삭인다. ”아! 어떡해..." 그렇게 또 봄날은 간다.






* 김종해 <그대 앞에 카지노 게임 있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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