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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Dec 27. 2024

카지노 게임 사이트 어떻게 읽을 것인가?

리디아 데이비스, 버지니아 울프

눈을 뜨니 새벽 3시 30분. 일어나기도 다시 잠들기도 애매한 시간, 무엇보다 다시 잠들기가 쉽지는 않을 터이므로 며칠째 들고 있는 리디아 데이비스의 [이야기의 끝]을 읽기로 했다. 빨간색 표지에 금박으로 제목과 작가의 이름이 박혀있다. 단순한 만큼 강렬한 이미지의 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 작가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라고 했다.


연하의 남자를 만났다가 헤어졌고 지금은 다른 남자와 살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여자가 지난 시간을 되집는다. 장소와 때를 어지러울 만큼 오가며 곱씹는다. 지나쳤다가 돌아가서 다시 보고 미덥지 못해 한 번 더 돌아보고, 완벽하게 정리했다고 여긴 순간 다시 돌아가는 여자가 어느 순간에는 징그럽기까지 하다. 책을 다 읽은 느낌은 뭐랄까, 문장부호를 빌려 말하자면 느낌표가 더해진 물음표? 그러니까 뭔가 있기는 한데 그게 뭔지 콕 집어 말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글을 읽는 내내 ‘그래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다는 건데?’라고 물으며 따라다니다가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유를 알게 되어서가 아니라 이유가 없어서 그렇다. 모든 이야기는 시작할 때부터 이미 끝을 향한다는, 어쩌면 진부하기조차 한 진실이 과거를 그리고 지금의 조각난 일상을 한층 도드라지게 만든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정해진 길은 없고 옳고 그름을 가르는 기준 또한 수시로 바뀐다. 게다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야기 하나가 더 끼어든다. 연애와 글쓰기가 나란히 간다. 화자는 연애사건의 당사자인 동시에 그 사건을 소재로 삼아 소설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주인공이면서도 자신의 이야기에서 철저히 분리된 셈이다. 당연히 의심이 끼어든다. 기억이 정확할까? 잘못 생각한 건 아닐까? 그 일이 정말 일어나긴 했을까?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정말 실재하는 것일까? 이것보다 저것이 더 중요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중반을 넘어서서도 화자는 계속 휘청거린다. 나는 마지막 몇 페이지를 남겨놓고서야 겨우 알아챈다. 연애소설도 아니고 글쓰기 소설도 아닌, 한 인간의 생존기(?) 정도라고 해야 하나? 삶이 이런 거지 싶은. 책을 읽다가 창문 밖을 바라보던 순간들이 얼마나 좋았는지. 문장들이 나를 괴롭힐수록 눈에 들어오는 모습들이 새삼스러웠다. 키 큰 나무들, 가지를 옮겨 다니는 새들과 바람이 불 때마다 흩날리던 눈송이들, ‘카지노 게임 사이트와는 무관한 그 무의식적이고 끊임없는 움직임이’ 경이로웠다.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버지니아 울프는 평생 동안 다양한 형태로 이 질문을 던졌다. 1926년에 발표한 같은 제목의 에세이에서 그녀는 ‘읽고 있는 책의 저자에게 그가 해야 할 말을 불러 주지 말고, 그가 되려고 해 보라’고 충고한다. ‘그의 공저자, 공범이 되는’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 자신에게 일어난 어떤 사건을 직접 써보는 것이다. ‘전체적인 장면을, 그 순간에 담긴 인상 전체를’ 글로 써보려는 시도를 통해 실제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된다고, 그 이후에 읽는 작품에서 거장들의 솜씨를 음미할 수 있게 된다고 말이다. 굳이 리디아 데이비스가 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아도 글 한 줄 쓰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알고 있는(비록 제대로 쓰지는 못한다 해도 말이다) 내가 마침 읽은 책이 동시에 두 개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었다니!


울프는 계속해서 우리가 위대한 작품을 읽는 것은 ‘전혀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것이며 뿌리 뽑혀 내동댕이쳐지는 일’이라고 쓴다. 소설을 읽는 것은 어렵고 복잡한 기술이라 섬세한 지각과 대담한 상상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읽고 그 작품이 주는 인상을 온전히 받아들였다면 그때가 전체 읽기의 중간 정도에 다다른 것이라고 할 만큼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복잡하다는 게 버지니아 울프의 주장이다(엊그제 책장을 덮었으니 나는 지금 절반 온 셈이다). 온전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 이르려면 독자는 마지막 책장을 덮고 기다려야 한다고. ‘걷고, 말하고, 장미에서 죽은 꽃잎을 떼어 내고, 잠드는 거다(친구를 만나고, 장에 가고, 설거지를 하고, 잠들어야지). 그러면 갑자기 책이 돌아오되 다르게 돌아와 하나의 전체로서 정신의 꼭대기로 떠오를 것이라고(그러니까 언제? 어떤 모습으로?).’ 독자들은 이제 ‘판단하고, 비교하고, 무수한 인상들에 마음을 열 수 있다.’ 책에서 받은 인상을 내 주변의 일상에 비추어보고 그 둘을 비교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쉽지는 않다. 폭넓은 이해와 깊은 통찰, 상상력과 창조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능력이 없다고 해도 실망할 일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어떤 취향을 가진 독자로서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문학비평을 하지 않더라도 읽을 책을 선택할 수 있으므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 관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은 아무 조언도 따르지 말고 자신의 본능에 따라,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여, 자신의 결론에 이르라는 것뿐이다.
버지니아 울프, <카지노 게임 사이트 어떻게 읽을 것인가?중에서

혼자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함께 읽기도 한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모임이나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 관한 책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우리 자신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자기를 관찰하는 일이자 자기만의 기억에 빠져드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성적이거나 독단적일 필요는 없다. 공동의 관심사를 이야기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핵심은 책을 집어 드는 바로 그 순간에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다.

리디아 데이비스의 이 빨간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내가 기대한 건 상식을 뛰어넘는 글쓰기였다. 글의 분량이 파격적이고(한 문장으로 된 소설도 있었다),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지만(눈치를 보거나 아부를 하지 않는다. 설명도 없다) 무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파격이 즐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에 이리도 두서없는 중얼거림이라니.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기다릴 것이다. 새로 맞춘 안경에 익숙해지듯이 리디아 데이비스에 익숙해질 날이 올 것이다.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음에도 끊임없이 의심하며 거듭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가능한, 끝에서부터 시작하는 어떤 이야기는 그때부터 가능할 것이다.

눈은 아직도 녹지 않았다. 시장에 갈 때마다 지난번 눈에 꺾이거나 찢어진 나뭇가지들을 지나친다. 골목 초입에 있는 집 울타리가 부서졌다. 눈이 무릎까지 쌓인 날, 눈길을 내려가던 자동차가 들이받았다고 했다. 며칠 전 작은 트럭을 보았다. 긴 고무장화를 신은 남자들이 울타리를 수리했다. 한파주의보가 내렸다는데 해도 안 드는 북쪽 언덕길 골목에서 끼나마나한 목장갑을 끼고 작은 동산처럼 쌓인 눈을 걷어내고 언 땅을 파헤치던 모습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밀어놓고 들여놓은 화분에 물을 주고 청소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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