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Cut] 가로지르는 수녀들
[One Cut] 한 컷으로 이야기하는 짧은 리뷰
모든 확신의 근간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대립항을 힘으로 삼아 군림카지노 가입 쿠폰 것들은 바로 그 기반에서부터 무너질지니 가장 두려운 것은 역설적으로 가장 연약한 것의 힘일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콘클라베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모두가 꼽는 '그 장면'이 아니라 콘클라베라는 중요한 제례를 상의하고 있는 추기경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빠르게 사라지던 한 무리 수녀들의 모습이었다.
femininity는 흥미로운 개념이다. masculinity라는 대립항이 존재카지노 가입 쿠폰 단어이기 때문에. 언어에서 대립항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그 안에서 일종의 권력적 긴장을 읽어낼 수 있을 때가 많다. 서로 대립카지노 가입 쿠폰 단어들을 나열카지노 가입 쿠폰 것만으로도 우리는 힘이 흐르는 방향을 읽어낼 수 있다.
masculinity는 지배하고 권위적이며 군림한다. 사회적으로 더 월등하다고 카지노 가입 쿠폰 특질들은 주로 남성형인 경우가 많다. 강하고 대담하고 용감하고 진취적인. 확신하고 결단력 있고 추진카지노 가입 쿠폰 행동력이야말로 생존의 필수 요건이라고 생각하기에 약하거나 연약하다는 것을 칭찬으로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남성적인 리더가 더 유용할 거라는 편향을 갖는다. 그게 더 우월하다고 믿어왔으니까. 반면 masculinity의 대립항인 femininity는 연약하고 부드럽고 섬세하고 감성적인 특질로 주로 여성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약하기에 주로 지배당하고 억압당카지노 가입 쿠폰 쪽이다. 지배하고 지배당하고. 그렇다면 힘은 어느 쪽에 있는 것일까? 우리는 보통 masculinity가 femininity 보다 강한 개념이라고 생각카지노 가입 쿠폰 경향이 있다. 남성적인 것이 우월한 것이라는 사회적 고정관념은 더더욱 이런 편향적인 생각을 강화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어느 순간부터 나는 지배와 피지배 사이에 존재카지노 가입 쿠폰 '힘'에 대해 어떤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실질적으로 힘은 어느 쪽에 있느냐가 내 주된 관심사였고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점점 더 내가 가진 편향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토록 우월한 개념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고정적이고 안정적이어야 한다. 흔들리거나 의심 없이. 그러나 그러기에는 masculinity는 너무 불안정했다. 천천히 그 안을 들여다보자 놀라운 것들이 발견되었다. 애초에 masculinity는 대립항 없이는 홀로 서지도 못카지노 가입 쿠폰 허약한 개념이었던 것이다.
masculinity는 인간이라는 총체에서 femininity를 극도로 제거하고 나서야 겨우 탄생할 수 있는 개념이다. 우리는 모두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존재로 태어나기에 여성성 없는 인간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화를 거치며 남성성에 대한 가산이 붙는다. 부드러움 대신 강함이, 의구심 대신 확신이, 수평보다는 수직이, 이미 존재카지노 가입 쿠폰 특질들을 상대로 두고 딛고 올라 발전한 개념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도록 사회는 교육한다. 지배와 군림에 효율적일 수 있도록. 그러나 그것이 대립항으로서의 femininity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라면,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총체적 특성을 억누르고 배제해야지만 만들어질 수 있는 개념이라면 사실상 허구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것은 일견 탄탄히 쌓아 올려 견고해 보이는 종교의 모습과도 같다. 허물어지지 않을 것만 같던 반석이 무너지고 나면 그곳에는 과연 어떤 성전이 남아있을 것인가. 불온한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콘클라베는 억압된 것과 억압하는 것 사이에서 힘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가는 영화다. 성스러워 보이는 의식과 힘을 지배하는 것으로 보이는 권력이 모여있는 상층과 이와 상반되는 내리 눌린 인간적 욕망과 죄악, 모순과 협잡 그리고 무엇보다 상층을 지탱하는 하부의 은밀한, 그러나 거대하게 꿈틀거리는 힘 사이에서 어렵게 균형을 이루는 표면을 가까스로 봉합해 놓은 작품이다. 마치 넘치기 직전의 물 잔을 보는 것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영화의 전체를 지배한다.
<콘클라베에서 가톨릭으로 치환된 세계는 일견 승인된 권위 아래 견고하게 뿌리를 내린 기둥과도 같이 굳건해 보인다. 확신의 반석 위에 탄탄히 올려지어 진 아름다운 대리석 건축물들처럼. 한 꺼풀 한 꺼풀 헬퍼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갖춰 입기 힘들 정도로 정교한 추기경들의 전통 의상은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되어 계승되어 온 권위의 상징이다.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쌓아 올린 복식을 규칙대로 차례차례 갖춰 입으며 의식을 준비카지노 가입 쿠폰 추기경들은 자신이 서 있는 반석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베니테스를 제외하고는 이들은 하부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자신들이 먹고 자고 번식카지노 가입 쿠폰 것 근간에 있는 존재들을 유념하지 않는다. 이들이 예민하게 따라가는 흐름은 오직 힘이 모이는 길, 교황의 자리로 가는 길, 상층부다.
화려한 벽화와 반지르르한 바닥, 하나하나 무게를 지니고 쌓아 올려진 벽돌과 같은 중후한 오브젝트들은 깃털처럼 소리 없이 그곳을 드나드는 수녀들의 가벼움과 대구를 이루며 한 프레임에 자주 잡힌다. 화려한 추기경들의 붉은 의상과 대비되는 검고 회색의 어두운 의상을 입은 그녀들은 닌자처럼, 시종처럼 방안과 밖을 드나들며 살뜰히 의식을 보조한다. 새로운 교황의 선출, 그러니까 새로운 권력의 선출이라는 중대해 보이는 결정을 앞에 두고 그녀들은 밥을 하고 욕실과 침실의 상태를 살피며 중요한 결정을 할 사람들의 생존을 책임진다. 추기경들이 심각한 얼굴로 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다투는 와중에도 수녀들은 부지런히 움직이며 사방을 살핀다.
콘클라베를 위해 계단을 통해 상층으로 몰려가는 추기경들의 모습 다음에 연달아 이어 붙인 지하로 하강카지노 가입 쿠폰 수녀들의 장면은 그런 의미에서 상부에 노출된 권력과 그 권력을 유지하게 하기 위해, 다시 말해 권력을 (문자 그대로) 살아있게 하기 위해 하부에서 벌어지는 숨겨진 노동과 진짜 힘에 대해서 상상하게 만든다. 몇 날 며칠이고 이어지는 콘클라베 기간 동안 수녀들이 그들의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불교든, 기독교든, 가톨릭이든 세상의 모든 종교 역시 거의 여성의 힘으로 유지된다. 어떤 종교적 장소에 가더라도 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활동들,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하고 간호카지노 가입 쿠폰, 생명의 근원에 가장 가까운 실질적인 일들은 모두 여성 신도들의 힘을 빌리지 않는 곳이 없다. 그녀들은 <콘클라베의 수녀들처럼 거룩한 이름 아래 헌신을 강요받지만 자신의 종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력으로부터는 끝없이 배제되어 있다. 수녀와 비구니와 목사의 아내와 여성 신도들은 언제나 뒤로 물러나 남성들이 결정카지노 가입 쿠폰 것들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곳에 멈춰있길 요구받는다. 그래서 종교적 행사들을 가까이할 때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회의가 밀려들고는 했다. 다른 것도 아닌 종교가 기대고 있는 가장 큰 힘은 사실 여성들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닌가 카지노 가입 쿠폰. 의존한다는 것이야말로 나약함의 증표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의존의 대명사인 masculinity는 얼마나 허약한 개념인 것인가.
권력은 언제나 지배카지노 가입 쿠폰 쪽이 휘두르기에 우리는 자주 착각한다. 힘의 위치에 대해서. 힘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서. 권력에 관한 가장 우스운 역설은 지배할 대상이 없어지면 지배자는 고함지르는 광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권력은 상호적이다. 쉽게 말해 권력은 지배할 대상이 있어야만 성립한다. 순수하게 독자적으로 존재카지노 가입 쿠폰 힘과는 다른 개념이다. 피지배자가 지배자의 권리를, 그것이 강압에 의한 것이었든 자발적인 복종이었든, 인정카지노 가입 쿠폰 경우에만 권력은 힘을 갖는다. 힘은 그렇게 '이양'된다. 그러니 피지배자가 존재카지노 가입 쿠폰 동안 지배자는 대단한 오해에 빠지게 된다. 내게 힘이 있구나. 그러나 문제는 피지배자가 더 이상 지배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권력의 본질상 반드시 필요한 피지배자가 더 이상 그 자리에 서길 거부할 때 비어버린 하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지배자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스스로가 그 자리로 내려오는 수밖에. 일시에 수녀들이 사라진다면 그 자리는 추기경들이 메워야 한다. 끊임없이 위계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특성상 수녀의 일을 카지노 가입 쿠폰 추기경과 그렇지 않은 추기경으로 나뉘긴 하겠지만 그들 모두가 추기경인 사실은 변함이 없다. 지배자가 지배할 것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는 경우 권력은 붕괴한다.
그러니 이렇게 이야기하는 쪽이 맞을 것이다. 지배자가 피지배자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것은 피지배자가 그것을 (관대하게) 허용해 주기 때문이며 이 구조를 뒤엎을 힘은 언제나, 언제나 피지배자에게 있어왔다고. 그렇기에 임금은 백성을 두려워한다. 독재자들은 시민을 두려워한다. 남성들은 여성들을 두려워하고 백인들은 유색인종을 두려워한다. 이들은 자신의 권위와 권력이 어디서부터 기인하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힘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반드시 피지배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도. 조선이 백성들이 내는 소문인 풍문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담당기관을 만들었던 것도, 일부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모두 피지배자들의 힘 때문이다. 언제든 체제를 뒤엎을 수 있는 힘, 이것을 우리는 전복성이라고 부른다. 혁명의 잠재적 언어. 가장 강력한 근원의 힘.
종교 역시 전복성을 가장 두려워한다. 모든 확신의 근간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대립항을 힘으로 삼아 군림카지노 가입 쿠폰 것들은 바로 그 기반에서부터 무너질지니 가장 두려운 것은 역설적으로 가장 연약한 것의 힘일 수밖에 없다.
콘클라베는 전복적인 영화다. 가톨릭의 유산인 건축물과 복식, 제례의 과정과 형식의 전통을 세밀하게 재현하고는 있지만 영화 자체가 지닌 메시지의 함의는 (시각에 따라서) 매우 불온하고 혁명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중 하나기에 지극히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가톨릭의 근간을 떠받치고 있는 지워진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며 그렇기에 이 종교가 언제나 가장 두려워하던 심연을 상부로 끌어올리는 시도이기도 하니까.
가장 정숙한 가면을 쓰고 <콘클라베는 가톨릭이 끊임없이 전복당할까 봐 두려워하던 힘의 근원을 향한다. 더 이상 그 힘을 지하에 억압시킬 수 없음을 감지하며 영화는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건축물의 외관을 보여주다 작은 문으로 뛰어나오는 수녀들의 모습을 통해 실은 그 근간이 이미 아래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그리고 그 붕괴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음을 랄프파인즈의 미소를 통해 암시한다. 확신은 통합과 포용에 가장 큰 적이라는 메시지, 확신의 불가능성과 의심하는 교황의 탄생은 모두 불안정하게 타자를 억압함으로써 유지되어 온 구 체제에 대한 회의이자 비판이다. 권위의 근간에는 어떤 힘이 존재하는 가. 그리고 그 힘의 근원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콘클라베는 지워지고 배제되어 온 것이라는 대답을 내놓는다. femininity.
그러니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랄프 파인즈가 깜짝 놀라는 그 장면도 아니고 새로운 교황과 연관된 반전도 아닌 다만 이 시퀀스 하나였다. 콘클라베라는 전통을 치르며 짐짓 무거운 표정으로 삼삼오오 모여 거사를 논하는 추기경들 사이를 빠르게 가로지르는 일군의 수녀무리들. 치렁치렁 발목까지 내려온 추기경들의 의상과 다르게 노동하기 편하도록 발목이 드러난 회색 치마와 운동화를 신은 그녀들이 순식간에 지나가던 바로 그 장면. 그 안에 힘이 존재한다. 돌보고, 먹이고, 살피고, 노동하는. 진짜 힘이. 불온하고 전복적이며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힘이.
나 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그 힘을 감지하며 은밀하게 미소 지었다. 랄프 파인즈처럼. 사탄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