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태 작가의 책 [어떤 동사의 멸종]을 읽고 있다. 누가 지었는지 제목이 기가 막히다. 한승태 작가를 아는 사람이라면 새삼스럽지 않을 정도로 내용 역시 기가 막히다.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5년 전, 일거리때문에 방문한 직업소개소에서 강단있어 보이고 다부진 50대 여성 사장을 만났다. 그 당시는 일하던 보조원도 있었고 사람들도 바글바글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지나고 꽤 많은 것들이 디지털로 이동하고 난 지금, 그 직업소개소를 다시 찾았을 땐 바글바글했던 사람도, 보조원도, 활기를 띈 사무실도 없었다. 쓸쓸한 사무실에 남루한 차림으로 혼자 남은 여사장이 하나의 일거리를 소개하며 소개비를 요구했다.(그 직업소개소의 벽면엔 ‘소개비를 요청하지 않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한승태 작가는 5년 전에는 소개비를 받지 않았던 기억과 벽에 걸린 간판을 한 번 쳐다보며 ‘왜 5년 전과 다른지’를 물어볼까 했지만 그 질문 대신 “얼마 드리면 될까요?”라고 했단다. 오늘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데 뒷문으로 행색이 남루한(우리가 보통 노숙자라 여길만한) 승객이 승차했다. 버스카드는 찍지 않았다. 맨 뒷좌석에 가서 앉았다가 5정거장쯤 지나서 내렸다. 기사님은 아무 말씀 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 장면이 마치 한승태 작가가 보여준 ‘알면서도 모른 척‘의 사회적 허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때때로 알면서도 모른 척 할 필요가 있다. 그게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할지라도 사람이 사는 곳에 필요한 모른 척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