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시간에 아슬아슬하다. 출근 시간이라 버스가 정류장마다 서는 바람에 내 마음도 조급해진다. 큰 대로변의 신호는 오래 걸리기에 녹색 신호를 받아 쌩쌩 달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앞에 보이는 구급차. 구급차가 지나가도록 차들이 일제히 멈췄고 버스는 신호에 딱 걸렸다. ‘그래, 사람 목숨이 먼저지.’ 내가 속한 차선은 멈춤에 걸렸지만 반대편에서 오는 차선은 이제 녹색이다. 차들이 신나게 달리는데 90도로 가로지르는 차선에서 소방차가 “삐용삐용“ 하며 지나가려고 한다. 달리던 차들은 멈출 수가 없다. 아마 어디선가 불이 난 모양이다. 많이 다치지 않았기를 바라며 차들이 언제쯤 양보할지 지켜봤다. 많은 차들이 지나가고 지나가고 또 지나갔다. 소방차는 직진하지 못했다. 기다리면서 ‘삐용삐용’ 할 뿐이었다. 차들은 뒤차가 기다려주겠지라고 생각했을까? 다들 서행을 하는 듯 했지만 멈출 듯 멈출 듯 멈추지 않고 차들은 계속 지나갔고 결국 신호가 바뀌고서야 소방차는 갈 수 있었다. 궁금했다. 만약 달리고 있는 와중에 가로지르는 소방차나 구급차가 있다면 어떤 식으로 멈추고 양보해야 하는지. 그런 매뉴얼이 있을까? 아마 사람들에게 평소에 그런 매뉴얼이 각인되어 있다면 서행 후 잘 멈추고 소방차는 무사히 지나가지 않았을까? 운전자들의 마음에는 섣불리 섰다가 뒤차가 와서 박기라도 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나라는 선행으로 인한 유익함보다 선행으로 인한 불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나라이므로 무조건 운전자들을 나무라기도 어려웠다. 양보를 잘 하려면 양보하는 문화가 잘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 양보하는 문화가 생기려면 어릴 적부터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 하냐는 매뉴얼적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운전은 안 하지만 앞의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매뉴얼이 있나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