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 이해하는 것
<드라마의 내용이 조금 등장하지만,스포일러는 최대한 조심했습니다!
저는 밥을 먹을 때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경우가 많아요. 어제 점심에도 떡볶이, 순대,튀김을 시켜 TV앞에 자리를 잡았죠. 하지만 겨우 떡볶이 세 점, 순대 한 점을 먹었을 때 젓가락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어요. 맛이 없었냐고요? 아뇨, 맛은 있었는데 도무지 목이 메어서 삼킬 수가 있어야 말이죠.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이야기예요.
이 드라마가 슬프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슬픔을 강요하는 신파적인 요소는 없는 편이죠. 그런데도 자꾸 목이 메는 이유는 아마도 드라마가 보여주는 '정(情)' 때문인 것 같아요. 그 정은 부부간의 정이기도 하고, 이웃 간의 정이기도 하고, 부모와 자식 간의 정이기도 해요.
서로에게 피난처가 되어주는 아내와 남편,딱한 사정에 발 벗고 나서주는 동네 아줌마들, 굶기지 않으려고아이를 쫓아내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따라다니는 딸. 궁핍한 삶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주는 모습들에 벅차오른다고 할까요? 그러니까 목이 메는 건 슬픔 때문만은 아닐 거예요. 고루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따뜻함, 설움과 희망, 고루함과 만족의 단차에서 생겨나는 마음의 진폭 때문이겠죠.
그런데 그중에서도 유독 제 마음을 쿡쿡 카지노 게임 추천 게 있었어요.제가 외면하고 있던 것을 바라보게끔 자꾸 제 고개를 돌리는 것 같았죠. '정(情)'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그게 뭘까?생각해 보니 다른 사람의 사정을 이해할 때의 먹먹함인 것 같았어요.
이 드라마는 캐스팅이 특이해요. 아이유가 1인 2역을 하거든요.
51년 생 오애순과 그의 딸인 69년생 양금명 두 역할 모두 아이유가 맡고 있어요.
드라마는 두 시대를 넘나드는 데, 70년대 제주를 배경으로 할 때는 아이유가 오애순(엄마의 어릴 적)을 연기하고, 9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할 때는 문소리가 오애순 역할을 하고, 아이유가 양금명(딸)을 연기하죠.
처음에는 헷갈리게 왜 굳이 이런 캐스팅을 했을까 싶었는데, 순대를 입에 넣고눈물을 참으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어요.
엄마 오애순은 어릴 때(아이유)너무 궁핍하게 살았어요. 부모를 모두 잃고 오갈 때 없던 시기부터 결혼을 카지노 게임 추천 아이들 먹일 쌀이 없어 눈물짓던 시절도 있었죠. 더 안타까운 건 오애순이 총명한 아이였다는 거예요. 시를 써 백일장에서 상을 받기도 카지노 게임 추천, 부급장이 되기도 하죠. 시인이 되고 싶어 대학교에 들어가려는 꿈이 있기도 했죠. 하지만 60~70년대 제주에서 여자아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것도 부모 모두를 잃고 살아간다는 것은 꿈은 커녕 그저 살아남는 것도 불가능할 것처럼 만들었어요.그럼에도 자신의 자식들만은 꿈을 이룰 수 있게 해 주겠노라고 생각하죠.
시간은 현재로 돌아와 딸 금명(아이유)의 허름한 자취방에서 청소를 카지노 게임 추천 있는 애순(문소리)의 모습이 보입니다. 금명한테는 안 좋은 일이 있었었요. 없이 커서 성격이 모났다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그때 신발을 왜 이렇게 많이 샀냐는 엄마의 잔소리가 들려요.금명은 짜증을 참지 못카지노 게임 추천 엄마에게 말해버리죠.
"어릴 때 없이 커서 지금이라도 많이 사고 싶은가 보지"
이 장면이 잊혀지지 않더라고요. 그 말이 얼마나 비수가 될지 저는 봤으니까요. 아이유의 얼굴을 한 엄마의 어려웠던 시절에 대해, 그리고 그 가난에서 벗어나게끔 해주고자 눈물 흘렸던 모습을 봤으니까요. 마치 본인이 본인에게 비수를 던지는 모습처럼 보였어요. (다행히 이 드라마는 뻔하게 흘러가지는 않아요. 이런 장면도 꽤나 덤덤하게 넘기고 다시 나아가죠.)
동시에 부모님과 떡볶이를 먹을 때가 떠올랐어요. 나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한 적이 있나? 어렸을 때 꿈은 무엇이었는지, 무엇이 가장 서러웠는지, 기뻤는지, 그들의 인생에서 내가 주인공이 아닐 때, 그러니까 본인들이 주인공일 때의 이야기를 물어본 적이 있나 싶었어요.무심코 내뱉은 말이 깊은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들고요. 어쩌면 '어른이니까', '부모님이니까'라는 말로 한 인간을 뭉뚱그려 생각한 거 아닌가 하는 반성도 했어요.
제 마음을 쿡쿡 찌르던 것의 정체는 애써 외면했던 다른 사람의 사정,특히 내 부모님의 사정과 이야기가 아니었을까요.
이 드라마의 제목인 '폭싹 속았수다', 제주 방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뜻이래요.
아직 드라마의 초반밖에 보지 못했지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이 드라마는각자의 사정을 견디고 살아내 온 이들에게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위로를 건네고 싶은 게 아닐지.
얼마 전 읽었던 책의 한 문장이 생각납니다.
자기의 생각과 모순되는 견해를 마주한다는 것은 언제나 개인의 실존적 위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다른 버전을 상상카지노 게임 추천 자신의 본래 모습을 의문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자미라 엘 우아실
다른 사람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힘들고 불편한 일이겠죠. 내 삶을 살기도 벅차니까요. 하지만 그런 이해 속에서 삶이 더 살만한 것이 되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조금 더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겠다는,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지만 어쩌면 가장 모르고 있던 가족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 이 드라마는 김원석 PD와 임상춘 작가의 작품이에요.
김원석 PD의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와 임상춘 작가의 '동백꽃 필 무렵'도 기억에 오래도록 남은 좋은 작품이자, 비슷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꼭 추천하고 싶은 드라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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