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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Apr 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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괸당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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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사람들의 괸당은 하나의 문화적 전통이다. 괸당은 한자어 眷黨의(권당) 제주식 발음이다. 줄여 말하면 眷은 가권, 친속, 친척, 문중종씨를 말하고, 黨은 뜻을 같이하는 무리들이다. 그러니까 집안친척과 가까운 이웃이다. 일종의 집성촌, 공동체 같은 것인데 ‘수눌음’이라는 노동문화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육지로 말하면 두레, 품앗이와 유사하다. 괸당은 어느 사회조직이나 있을 법한 일이나 제주도라는 섬 특유의 집단의식문화라고 할 것이다. 사회공간이 넓은 곳에서는 집단의식도 분산되기 마련이지만 제주도라는 폐쇄적 섬 사회에서는 집단의식이 더 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없으면 외세에 맞서기 어렵고, 거기에 끼지 못하면 바다 외에는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 특유의 괸당문화가 형성되었다.

괸당의식은 일종의 파당의식이다. 육지의 간섭과 지배를 받았던 제주인들은 그에 대항하기 위한 끈끈한 집단의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제주도인들의 괸당의식은 매우 견고하다. 제주인들은 일찍이 육지, 일본에 진출해서도 제주괸당을 이루었다. 성공한 제주인들은 객지에서도 고향 괸당을 잊지않는다. 지금도 일본, 육지괸당들이 기부한 사회시설을 자주 볼 수 있다. 제주도에는 도둑과 거지가 없다는데 괸당의식이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친척 이웃의 재물을 탐하는 일은 드물 것이며, 괸당이 굶어죽게 되었는데 그냥 둘 수 없었을 것이다.

괸당은 공동체의식인 동시에 파벌의식, 배타주의, 텃세로 작용하기도 한다. 제주인들은 육지인들에 대하여 매우 배타적이다. 그래서 육지에서 온 사람들은 제주의 텃세를 호소하는 이가 많다. 그러나 제주인들의 배타성에는 그럴 만한 내력이 있다. 제주인들은 고려에 복속된 이후로 육지의 핍박과 수탈을 많이 당해왔다. 4.3때에는 육지인들한테 일방적으로 집단살륙을 당했다. 일제 때에도 없었던 끔찍한 일을 조국의 정부로부터 당했으니 제주인들의 심경이 어땠을 것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80년이 가깝지만 아직도 그 한과 상처는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육지인들은 제주도민의 한을 잘 알지 못한다. 많은 국민들이 제주도민을 얕잡아보고, 4.3을 공산당이 일으킨 폭동으로 알고 있다. 근래 일부 지각없는 극우유투버들은 이를 공산당의 소행으로 날조하여 유포시키고 있으니 제주인들의 한을 더 키우고 있다. 그 후로도 육지자본에 수탈당하고, 경제주도권을 빼앗겨 육지인들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강하다. 근래 제주도의 바가지 사태도 대개는 육지인들의 소행으로 보인다. 텃세가 심하지만 제주인들은 고향에서 그런 모진 짓을 하지 않는다. 2공항건설도 외지인들이 주도하고 있다. 정작 제주인들은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 제주인들은 눈앞의 이익보다는 제주도의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넓은 섬이다 보니 제주인들끼리 경쟁이 없을 수 없어 분파적인 괸당이 형성되었다. 문중괸당, 지역괸당, 이익괸당, 직업괸당, 학벌괸당 등이 형성되어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소속 괸당의 명예와 성과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 조금이라도 자랑스러운 일이 있으면 내세우기를 좋아한다. 각종 매체를 활용하는데 그중에서도 길거리에 플래카드를 거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매우 제주스럽다. 육지에도 좋은 일이 있으면 현수막 걸기를 좋아하지만 제주사람들의 자랑은 매우 소박해서 재미있다.


선생님의 교장승진을 축하합니다.00학교 00회 졸업생 일동.


은사님의 교장승진 축하드리는 것인데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순박한 스승공경의 모습이라서 감동적이다. 길거리에서까지 제자들의 축하를 받는 교장선생님이 얼마나 기쁘실까? 제주도 교장선생님이나 누릴 수 있는 호사이다.


00학교 00회 000 장관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00학교 총동창회.

육지에서도 사법고시 합격은 동창회의 자랑이지만 장관상 받는 공무원은 적지 않아서 본인 말고는 기억하지 못한다. 제주도에서는 장관상도 동창회의 영예가 된다. 당사자보다는 모교의 기쁨이 더 클 것 같다.


000 00학교 합격. 000 7급 공무원 합격. 사촌 일동.


출신 고등학교가 아니라면 대학합격 현수막이 걸려있는 일은 매우 드물다. 제주도에서는 관권의 힘이 더 세다. 그래서 7급공무원이면 보통 경사가 아니다. 특히 사촌 일동이라는 현수막을 거는 일은 처음 보는 일이라서 절로 미소짓게 만든다. 뿌리깊은 괸당문화의 소산이다.


000 00대학교 00과 합격. 00포교당 신자일동.

종교인 아들이 대학입시 합격을 신도들이 축하하는 현수막도 처음 보았다. 종교의 괸당정신이다. 그러나 스님으로서 아들을 두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몇 달을 포교당 앞에 걸려있는 것을 보면 아들의 합격이 자신의 지위보다 더 기뻤나보다.


000 박사학위 취득을 축하합니다. 00동 주민일동.

지금은 박사가 흔해서 현수막을 걸 사건이 아니지만 제주도에서는 아직도 볼 수 있다. 박사 실업자가 즐비하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00대학교 교수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주민일동.

교수라면 한번쯤 해봄직한 자리인지라 현수막을 거는 제주도민들의 소박한 심성을 볼 수 있어 재미있다.

남제주의 중심도시 서귀포시의 사정이 이렇다면 시골에 가면 더 재미있는 현수막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시대에 뒤진 모습일 수도 있지만 제주인들의 끈끈한 괸당정신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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