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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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Jan 07. 2025

멀리 카지노 가입 쿠폰 고통과 살아가기

<139호 편집위원 선우

어느 날 나는 어두운 방에서 일어나 물을 마시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시집을 뒤적이다가 시계를 보니 오후 4시였다. 창문을 여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약 8시간 동안 나는 바깥에서 비가 내리고,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걸어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로 방 안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밤이 될 때까지 창문을 열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어쩌면 땅이 모두 말랐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날 비가 내렸다는 것을 영영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는 며칠 후 이것이 엄청나게 큰 통찰인 것처럼 친구 b에게 ‘창문에 커튼을 친 날’에 대해 열심히 떠들었다. 커튼이 바깥을 완전히 차단한다는 걸 알아차린 순간 내 방의 공기가 서늘하게 느껴졌고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보지 않을 수 있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이 내 목을 조르는 듯했다는 것도.

나는 이어서 b에게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핀란드 헬싱키의 노동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담은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특이하다고 생각한 것은 플롯과는 전혀 무관한 라디오 소리가 오디오를 빈번하게 침투한다는 것이다. 여자 주인공 ‘안사'의 부엌에서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발발과 사상자에 대한 소식이 전파를 탄다. ‘안사'는 뉴스를 듣다가 라디오를 꺼버리거나 분노에 차 몇 마디를 읊조리는 것이 전부이다. 나는 영화관을 나오면서 내가 안사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고 되뇌었다.

어떤 고통과 죽음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 우리의 시간대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실은 우리와 단절되어 있다. 우리가 인식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을 논하는 게 아니다. 인식이 가능하지만 단지 ‘알아차림'으로 끝나거나, 불쾌하고 찝찝하지만 어떻게든 소화가 되는 -실은 목구멍 뒤로 삼킬 수 없어야 하는 것들인데도- 영역이 존재한다. 매일 어딘가에서 공습이 일어나고 누군가 집과 가족을 잃으며 어떤 이는 다른 인간을 죽이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뉴스나 영상을 끈다면, 창에 커튼을 친다면, 눈을 감는다면 아예 같은 세계를 공유한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 고통과 폭력이 있다.

신문을 읽을 때면 누가 날 때리거나 욕한 게 아닌데도 가슴이 아프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었다. 급기야 내 삶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피로해져서 아무것도 읽거나 보고 싶지 않다고, 누군가와 만나 나의 바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감히 듣고 싶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삶을 유기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글은 어떻게 가깝고 멀리 있는 타인들의 고통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골몰한 기록이다. 어떻게 눈을 뜨고 커튼을 열고 창 바깥에 있는 것들을 들여다보려고 했는지, 내 방 안으로 들이려 했는지, 이런 시도들이 어떤 실패를 맞았는지, 끊임없이 실패하면서도 지속할 수 있을지. 그래서 이것들과 함께 살아간다고 말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해질지…


시를 쓴 날(5월 12일)


어느 날은 잠에서 깨 시를 썼다.


내가 중앙도서관 2층 자료실 해외 문학 코너에서 동시대 팔레스타인 출신 작가들의 소설을 찾아 읽기 시작하였을 때는 팔레스타인 긴급 행동에서 주최하는 시위와 토론회를 기웃거리던 때와 맞물린다. 나는 문학 전공 수업에서 주어진 텍스트를 읽거나 서점, 도서관에서 새로운 시나 소설을 마주치는 걸 즐겨왔고, 늘 정신을 빼앗겨 집중할 수 있는 시와 소설이 있다면 내가 계속해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텍스트를 읽고 분석해 내 시선 속에서 이뤄진 해석을 제시하고 한 편의 완성된 글을 공유하는 것도, 쉽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즐거운 과정이자 결과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또는 동시대가 아니더라도 현실에 가장 맞닿은, 극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언어로 쓰인) 멀리 있는 이들의 고통을 읽는 것은 내게 답을 알 수 없는 수많은 회의적인 질문과 혼란만을 남겼다.


아다니아 쉬블리라는 팔레스타인 출신 작가의 소설을 읽고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던 적이 기억난다. ‘먼지’라는 제목의 글이다. 그녀에게 라말라에서의 삶은 끊임없는 먼지가 휘몰아쳐 결국 자신을 삼키는 것과 같다. 어딜 가든 위압적인 검문소 앞에서 줄을 서서 몸수색과 신분 확인을 기다리고, 이동과 언어와 심지어 친구들과의 관계 맺음 속에서도 억압이 존재를 휘감고 있다. 억압의 현실은 돌풍이나 억센 파도의 이미지가 아니라 매캐하고 잡을 수조차 없는 먼지로서 삶의 곳곳에 침투해 있다. 그녀는 분노하거나 슬퍼하기보다 진절머리가 난 것 같다. 열 페이지짜리의 글을 읽고 한동안 나는 눈을 감으면 모래바람이 일렁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날 나는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모래알이 내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 아무리 비벼보아도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이 소설을 읽게 되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마다 라말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완전하게는 아니더라도 문학의 형식을 빌려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고 여겼다. 나는 ‘먼지’를 다른 친구들에게 읽어보라고 추천했다. 담담한 문장들이 무지 아름답고 표현의 깊이가 숨을 막히게 해요. 꼭 읽어보세요.


그런데 아름다움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숨 막힐 정도로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이라도 하듯이 쉬블리의 ‘먼지’에는 나를 또렷이 바라보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자칫하면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칠 수 있는 짧은 구절이다. “내가 느끼기로 오랜 친구인 피부과 의사는 내 앞에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솔직히 드러내지 않는다. 나를 믿지 못하나? 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연고를 달라고 해보지만, 그는 내 피부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나는 항복하고,우리는문학이야기나한다.” 우리는 문학 이야기 ‘나’ 한다. 이 문장이 나를 직시할 때, 나는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어떤 곳에서는, 땅을 빼앗긴 바람에 먼지가 자욱하고 지난한 기다림이 일상인 곳에서는, 누군가의 고통이 아름다울 수 없다. 시나 소설이 숭고한 것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가장 얕고 공허한 무언가로서 존재하기 쉽다. 내가 읽고 감응하는 행위는 그들의 삶에서 완전히 유리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날 잠에서 깨 시를 썼다. 나는 비슷하게 끔찍한 꿈들을 계속 꿨다. 그들 - 그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 의 고통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 견디기 어려워졌다. 내가 타인의 고통에서 비롯한 글을 읽으면서 아름답거나 숭고하다고 느끼는 것, 그리고 그것을 어딘가에 기록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는 것, 책을 골라 사거나 뉴스를 보는 자본화된 방식으로 타인의 고통을 열람하기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행위가 그들을 구경하고 대상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내가 책장을 덮으면 읽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서울에서 내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나를 괴롭혔다. 이런 시대에 시나 소설을 읽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문학적 언어만이 내 끊임없는 질문과 회의와 냉소, 이것들의 바보 같음을 담을 수 있는 언어였다.


그곳은 갓난아기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미지의 땅이었다


간혹 눈밖에 보이지않는 여인들이 말이 아닌 글로 내게 말을 걸었다


그녀들은 피가 엉겨붙은 머릿칼을 먹고있었다

손을 쓰지 못하니 입에서 입으로 서로에게 먹이며


눈가 주름 사이에는 남편들의 부러진

갈비뼈 조각들이 끼어 있었고


그녀들이 숨을 쉴 때마다 허연 포화가 일었다


나를 따라오세요


우리는 곧 자랑스러운 나의 도시에서 눈을 뜰 수 있을 것입니다

그곳의 아기들은 땅에서 자라나요 울지 않아요

그곳의 자유는 성글지 않아요

집밖으로 나가지만 않는다면


당신들은 다치지 않아요

내 보호 아래에 있어요

당신들의 딸과 그녀들의 딸 그리고 그녀들의 딸까지 모두요


그녀들은 붕대를 쥐고있던 손을 내 머리 위로 가져왔다

소매 속의 헝겊 조각들이 푸드덕 거리며 날아오르다 얼마 못 가 떨어졌다

카지노 가입 쿠폰 그것들을 주워 허벅지 사이로 흘러나오는 혈을 닦았다


하비비*, 우리에게는 딸이 없습니다

곧 곤봉에 맞아 쓰러질 아들들 뿐입니다

그 아이들이 살아 남는다면 우리를 곤봉으로 짓이겨서일 것입니다


엄마께 드리는 글


엄마

곤봉이라는 단어를 새로 익힌 저는 제 집에 감히

누구도 초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여인들의 사포같던 손을

느낄 수 있지만


그들의 전신을 칭칭 감고있던 것이

붕대인지 히잡인지 저는 여전히


알지 못합니다


*Habibi : 아랍어로 나의 사랑을 뜻한다.


시의 제목은 ‘보호자’이다. 나는 늘 누군가를 보호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장진 감독의 영화 ‘아는 여자’에서 남자주인공 동치성을 좋아하는 소녀 한이연은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동치성씨 보호자 되시죠? 한이연은 대답한다. 네, 제가보호하고 있는데요. 나는 그 장면과 대사가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위험에 빠진 누군가를 자기 날개 안으로 피신할 수 있게 하는 커다란 새의 이미지를 동경한다. 멀리 있는 이들의 고통을 보며 그것에 동요하는 것이 가끔은 묘한 만족감을 준다. 내가 그들을 내 마음속에 살게 하므로, 그들이 적어도 나의 세계 안에서는 더는 아프지 않을 수 있다.


시를 쓰면서 이 터무니없이 폭력적인 욕망, 타인의 고통을 통해 나를 성스러운 존재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생생하게 마주했다. 나는 시 속에서 그들에게 ‘말이 아닌 글’로만 말을 걸 수 있고, 그들에게 독단적인 ‘보호자’로서 우리 집으로 오라는 초대장을 내민다. 초대는 거절이나 승낙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들에게 닿지 않는다. 애초에 이 초대는 내가 머릿속에 만들어낸 “그들”을 향한 것이니까. 여성으로서의 아픔과 민족으로서의 아픔을 동시에 겪으면서 살아가는 필라스티니야.[1]미지의 땅에서 알지도 못하는 언어로 대화하는 피 흘리는 여자들. 초대는 어긋나기 때문에 나는 선언을 한다. 내게 최초의 사랑을 전수해 준 엄마를 수신자로 상정해서, ‘감히’ 누군가의 몸을 나의 것과 동일시하지 않겠다고, 나의 엄마가 나를 사랑하거나 내가 나의 엄마를 사랑하듯이 내가 그녀들을 사랑할 수 없음을 인지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시를 노트 어딘가에 기록함으로써 나는 이날이 내 몸 어딘가에 각인된 것이라고 믿는다. 닫힌 노트 안에서 이 시는 선언문이자 편지이자 보고서처럼 작동했다. 일상적인 논리에서 벗어나 내 안에 고여있던 것을 산란하게 풀어놓으니, 발자국을 뗄 힘이 생겼다. 내가 상상 속 ‘그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인정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는 이 시를 타인들과 공유하는 것이, 그것을 위해 낯간지러운 자기 비평을 행하는 것이 시의 의미를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실질적으로 누구도 시를 읽지 않고 이 페이지를 넘긴다고 하더라도, 이 글을 지면에 싣고 해명하는 행위 자체가 이것을 나만의 것이 아닌 무언가로 위치시킨다. 이제 이 시는 “다루기 쉽고 안락한” [2] 무언가가 된다. 이 시는 내가 멀찍이 떨어져서 제삼자의 위치에서 바라봄으로써, 이제 상실된 것이다. 나는 이제 또 다른 이정표가 될 수 있는 다른 시를 쓰게 될 것이다. 아니, 써야만 할 것이다.


축구장에 간 날(9월 5일)


시를 쓰고 소설을 읽고 홀로 골머리를 썩히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현장에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동시에 집 밖으로 나갈 용기도 생겼다. 팔레스타인시민행동에서 9월 5일 대한민국과 팔레스타인의 축구 월드컵 예선 경기를 관람하고 팔레스타인을 응원할 서포터즈를 모집 중이라는 메일을 보내왔다. 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축구를 보고싶은 마음이 있었다기보다는, 한국과 수교를 하지 않고 분쟁지역으로 지정된 팔레스타인에서 축구 응원단이 거의 오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고[3], 그런 빈자리에 앉아 응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커다란 의미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소중한 동료 세 사람과 저녁을 먹고 8시쯤 상암 월드컵 경기장으로 향했다.


우리는 경기장 입구에서 받은 팔레스타인 응원 도구를 몸에 칭칭 감았다. 스카프를 매고, 아랍어로 쓰인 응원 문구를 얼굴에 붙이고, 국기로 만든 깃발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주변에 앉은 이들은 죄다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한국 사람들이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우리는 마치 카드섹션을 하는 아이들처럼, 양옆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를 때 가만히 탄식하고, 그들이 아쉬워할 때 큰 소리로 신나 하며 이상한 균형을 이뤘다.


나는 혼란스럽고 집에 가고 싶었다. 즐겁지 않았다. 왜 즐거울 수 없었지? 본국에서 매일 같이 벌어지는 공습에도 원정 경기를 하러 타국을 방문했을 선수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어서? 팔레스타인 선수가 과감한 태클을 시도할 때마다 뒷자리에서 내뱉던 공격적이고 날이 선 말들이 신경쓰여서? (ex. “심판도 전쟁터에서 데려왔냐?”, “‘동남아 변방국’(?)[4] 따리에게 지면 우리는 다 같이 죽어야 한다”…etc) 이것들이 동료 시민들에 대한 실망이나 분노의 감정을 일으키긴 했을지언정, 나의 총체적 경험에는 영향을 그리 주지 않았다. 나는 그곳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나에게 정신이 팔려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에서 ‘한국인’이면서 ‘한국인’이 아닌 어떤 이상한 존재로 자리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 흘끗흘끗 쳐다볼 정도로 - 한국인 관중들이 좌석에 관해 물어보려고 조심스레 영어로 말을 걸기도 했다 - 한국인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팔레스타인 사람인 것도 아니었다. 함께 간 친구들과 나는 정말 이상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난 정말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이 불편했고 초조했다. 내 용감하고 씩씩한 친구들과는 달리, 팔레스타인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의 골 시도를 선방해 내면 환호성을 쉽사리 지르지 못했다. 그곳은 생전 처음 앉는 곳이었다. 내가 아닌 무언가를 위해서 나인 무언가를 부정하고 있었다. 누군가 “왜 여기에 팔레스타인을 응원하러 오셨어요?”라고 물어본다면 마땅히 대답할 거리가 없었다.


존재가 다른 존재를 돌보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라도 마음을 쓰고 관심을 두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던 나는, 누군가의 고통과 연대하는 것이 사실은 아주 ‘휑한’ 것임을 깨달았다. 고통을 느끼는 이들과 나는 전혀 동일한 무언가가 아니며, 그들과 나는 아예 모르는 사이이고, 어쩌면 내가 괴로움을 참지 못해 하는 활동을 그들은 전혀 반기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늘 알고 있었지만, 회피하고 싶던 것이 피부로 따갑게 와닿았다.


전반전이 끝나고 나는 친구와 경기장 복도로 나왔다. 심장이 계속 쿵쿵 뛰어서 앉아 있기가 어려웠다. 조용하게 쉴 곳을 찾다가 마주한 것은 큰 북소리와 연이은 구호를 외는 사람들의 함성이었다. 팔레스타인 서포터즈로 보이는 사람들이 우리처럼 응원 도구를 온몸에 장착하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붉은 악마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흘끗거리고 신기하다는 듯이 영상을 찍어갔다. 나는 그곳에서 멋쩍은 웃음을 지으면서 서 있었다. 그곳에서 같은 무리인 것처럼 함께 어울리는 게 이상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에 아는 사람이 없었고, 온 마음을 다해 팔레스타인을 응원하고 있지 못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고개를 돌리니 내 옆에 붉은 악마 유니폼을 입은 청년 둘이 서 있었다. ‘얘네는 뭐 하는 거야?’ ‘나도 몰라, 좀 웃기다.’ 이런 말이 어렴풋이 들렸다. 나는 그들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시시덕 거리며 내 곁의 사람들을 조롱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들을 적대적인 시선으로 관찰했고 그들이 장난스럽게 아랍어 구호를 따라 하면서 춤을 추고 서로의 모습에 배를 잡고 웃는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무리 가장 중앙에서 춤을 열심히 추고 있던 활동가가 그 청년들에게 환히 웃으며 팔레스타인 응원 도구를 건넨 것이다. ‘감사합니다, 즐겁게-’ 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이 밀려듦과 동시에 나도 친구 옆에서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고 몸을 흔들 용기가 생겼다. 나는 청년들을 관찰하기를 멈추고 ‘가자가자 팔레스타인’을 외치면서 방방 뛰었다. 땀이 나고 심장이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지만, 어딘가로 숨고 싶다고 생각했던 전반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그곳에서 들리는 소리와 보이는 움직임은 오로지 그날의 축구 경기만을 향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감각할 수 있었다. 모두는 아니더라도, 그 자리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더 커다란 염원과 가치 - 한 민족의 해방, 죽은 자들에 대한 기억, 남은 자들의 투쟁 - 를 위해 서로의 몸에 부딪히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경기는 1:1로 끝났다. 후반전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경기가 끝나고 1층 좌석으로 내려가 팔레스타인 선수들에게 인사를 하는 시간도 빠르게 지나갔다.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하자 그제야 시간이 제 속도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멍하게 현실 감각을 되찾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 동안, y가 내가 잠깐 화장실에 갔을 때 일어난 일에 대해 말해주었다. 누군가 다가와서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왜 팔레스타인을 응원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는 것이다. 그 행인은 내가 전반전 내내 답할 수 없어 두려워하던 질문을 실제로 내 친구들에게 건넨 셈이다. 나는 내가 그 자리에 없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조금 긴장하며 무어라 답했는지 y에게 물어보았다.


“그 나라와 아무런 연고도 없고, 그냥 응원하러 온 거라고 했는데?”


y의 대답을 듣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 시간 전 서포터즈의 응원을 우스워하는 청년들에게 팔레스타인 국기 깃발을 기꺼이 나눠주던 활동가를 목격한 순간과 비슷했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연고 없이, 아무 관련 없이 그 자리에서 팔레스타인의 국가를 더듬더듬 따라 불러도 된다. 붉은악마의 유니폼을 입고 있고, 심지어 팔레스타인이 어떤 나라인지 잘 모르더라도, 함께 노래 부를 수 있도록 환대 하고 환대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나를 더 움직이거나 소리 내지 못 하게 구속하던 절망 -내가 ‘나’이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할 수 없다는 절망 -이 점점 가시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나’로서 그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나’이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다. 내가 ‘나’인 것은 한계이자 가능성이다. 그래서 나는 원 안에서 열심히 춤을 추고 응원 구호를 외치던 기억이 선명하다. 각자 철저히 이질적인 ‘나’들이 덩어리로서 합쳐진 밤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내가 ‘나’임을 처절히 느꼈고, 그럼에도 내가 ‘나’임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동료들과 떠든 날(9월 12일)


나는 좋아하는 시집을 열어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친구에게 그곳에 실린 시를 읽어준 다음 ‘어때, 너 이 시랑 접속했어?’라고 물어보는 걸 즐긴다. 내게 의미 있는 텍스트를 다른 사람에게 읽히고 그자의 반응을 살피는 건 무척 근사한 취미이다. 이날도 비슷한 행동을 했다.


나는 이곳의 사람들에게 수잔 손탁의 ‘타인의 고통’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눌 세미나를 열어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그들은 흔쾌히, 기꺼이 세미나에 참여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평소에 친구의 시 취향을 알아보는 시간과 다르게, 이 세미나는 나의 오락을 위해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자꾸만 열린 공간에 가서 사람들에게 토로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답을 구하고 싶어졌다. 왜 나는 이렇게 힘이 드는 것 같나요? 당신들도 그런가요? 당신들이 보기에 내 문제는 무엇인가요? … 그들도 이 글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되겠지만, 난 실은 이들을 이용해 내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타인의 고통’은 내가 4년 전에 처음 읽은 책으로, 작가는 여기서 다른 이의 고통이 담긴 사진을 바라보는 우리가 이 사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나아가 사진을 찍도록 유도한 현실에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 질문한다. 그녀는 사진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절대 중립적일 수 없으며, 우리의 시선이 곧 폭력과 몰이해, 삭제의 칼날임을 짚어낸다. 왜냐하면 사진이 어떤 사건의 극히 일부를 보여줄지언정 절대 완전한 사실로서 존재할 수 없음에도, 사진을 바라보는 이들은 그 잔인함이 가져다주는 인상에 눈이 멀어 그 참상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진지해질 기회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이 책은 책장에서 꺼내면 언제든지 늘 나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세계에 존재하는 여러 고통을 어떻게 이렇게 무감한 태도로 관망할 수 있는가?


동료들은 제각기 다르게 반응했다. w는 내가 줄곧 외쳐온 동시대성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일상에서도 저 멀리 있는 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고통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평범한 사람에게 불가능하며, 그것은 오히려 ‘정신질환’의 일종이 아닐지 넌지시 물었다. 내가 성경처럼 생각하는 책의 구절 하나가 그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신성모독을 행한 거라고 농담하고 하하 웃었다. z는 자신이 언제부턴가 무감각을 넘어서 무관심해졌다고 말했다. 그런 자기 자신이 견디기 힘들다고 덧붙이며, 그 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h와 p는 자신들이 느끼는 연민의 감정조차 누군가에게 폭력일 수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흰머리가 날 것 같다고, 당신 때문에 생각이 너무 많아졌다고 장난스럽게 원망 섞인 말을 건넸다.


나는 그런데 아무렴 좋았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일곱 명이 내가 제대로 언어화하지도 못하는 고통에 대해 온전히 집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기뻤다. 여기저기서 의문을 제기하고, 내가 설득을 해보려 하지만 실패하고 (아주 가끔은 성공하고), 누군가는 머리가 터질 거 같다고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다. 대체로는 침묵이 많았다. 다들 생각에 빠질 때면 우리가 앉아 있는 공간은 정말 조용해졌다. 나는 그 침묵이 정말 좋아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사람들을 훔쳐봤다. 그때 나는 알아차렸다. 아- 이 세미나, 친구한테 좋아하는 시집을 읽히는 거랑 다를 바 없는 시간이구나. 내가 좋아하는 걸 친구들이 좋아해 줬으면 하는 바람과 비슷하게, 내가 겪는 혼란을 그들도 겪었으면 하는 거구나. 동료들이 나와 비슷한 혼란을 겪고 고민하고 고통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


자리가 끝나갈 즈음 누군가 나에게 물어보았다.


“그래서 선우가 원하는 게 뭐예요? 할 수 카지노 가입 쿠폰 게 뭐예요? 몇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했을 것 같은데.”



카지노 가입 쿠폰 놀랍게도 고민을 거의 하지 않고 빠르게 대답했다. 몇 명이 안 듣더라도떠드는 일이 필요해요 끊임없이 쓰고 읽고 나누는 거요 그래서 그런 흐름에 개입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어요 제가 그 주체가 되어본 경험은 처음이고요 그래서 기뻐요

혼자서 끊임없이 되묻던 질문에 대한 답이 재채기처럼 튀어나온 것이다.

카지노 가입 쿠폰 나 자신의 대답에 깜짝 놀라서 잠시 쉰 후, 다들 고생했다는 말을 덧붙이며 세미나를 마무리했다. 의도치 않게 카지노 가입 쿠폰 나 자신과 동료들에게 커다란 선언을 했다. ‘계속 떠들 거다’라는 선언. 그리고 이 기록의 모음은 위협적이지도 않고 또렷하게 들리지도 않았을 그 선언과 함께 여기서 끝이 난다.나는 멀리 카지노 가입 쿠폰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과 공감하는 나 자신을 견디기 어려웠고, 무얼 해도 그들에게 닿지 못하니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했고,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다시 무기력해졌고, 나 자신을 ‘너덜너덜한 티백’처럼 느끼게 되었다. 카지노 가입 쿠폰 내 가족과 애인과 친구들에게 늘 카지노 가입 쿠폰 ‘똑같은 향과 맛의 차를너무 많이 우려내서 더 이상 나올 것도 없는 티백’에 지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슬퍼했다.


그런데 실은 카지노 가입 쿠폰 늘 이런 티백처럼 살아갈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확신하게되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내가 티백과 같다는 걸 만 자 이상의 글로옮기다 보니 이전과는 새로운 차원의 지긋지긋함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옛날의 그것과는 다르다. 내 안에만 고여있던 것이 어딘가로 흐르고 있다. 그리고그곳에서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더라도, 나는 새로운 무언가가 되고 있다. 멀리있는 이들과의 만남과 그것이 가져다주는 고통을 나의 언어로 전환해 내보이는과정이, 그리고 이 글을 읽은-읽는-읽을 누군가 지니는 의문이나 경험하는 공명이, 내게 ‘고통을 느껴도 괜찮다’고 속삭인다.이후에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커다란 충격이나 깨달음의 사건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삶을 나름 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끝없는 절망’과 ‘희망의 발견’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두 축을 왔다 갔다 하고 있지만, 적어도 나는 절망이 끊임없이 이어질 거라고 믿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고무적인 순간들이 내세계로 머리를 불쑥 들이밀고 다가오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이 자기 폐쇄적이고 창피하고 지난한 의식의 조각들을 모아 아주 구차하고 장황한 글을 완성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부끄럽고 초라한 악수이다. 멀리 있는 고통과 어떻게 살아갈지 골몰하던 나 자신과, 함께 기꺼이 고민을 해준 다정한 동료들과, 이 글을 읽을 낯선 사람들에게, 나는 손을 내미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꼭 맞지는 않더라도 이리저리 손을 돌리고 만지작거리다가 악수에 응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믿음이 있어서 나는 오늘도 용감하게 방의커튼과 창문을 열고 집 밖을 나갈 준비를 할 수 있다.




[1]팔레스타인여성을가리키는

[2]손탁은 '해석에반대한다에서작품의해석자는작품을내용으로환원시키고,다음에그것을해석함으로써길들인다말한다.물론나의시를광의의예술작품으로정의하려는의도는없지만,적어도나에게이것은낯설지않은것을낯선것으로만드는창작행위였다.

[3]그리고예상이맞았다

[4]팔레스타인은서아시아남부에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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