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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Jan 06. 2025

연세대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만나다

<139호 편집위원 조약돌


Intro.

카지노 게임 사이트기록폐기심의회, 연세대학교 기록관

학교가 참 넓다. 오고 가는 이야기가 많다. 넘쳐난다. 이 이야기들은 140년 되어간다는 우리 학교의 어디에 남아서, ‘과거 한 때’가 아닌 ‘기록된 역사’로 남겨질까. 솔직히 이렇게 넓다면 비밀의 공간 하나쯤 있을 법하다.!그리고 진짜 있다!연세·삼성 학술정보관[1] 7층에는 도서관 층별 안내도에 나와 있지 않은 공간이 있는데, ‘728호’가 오늘 찾아가 볼 곳이다. 넓고 오래된 우리 학교에서 태어난 많은 이야기가 차곡히 모여 여전히 숨 쉬는 곳. ‘연세대학교 기록관’이다.

연세대의 이야기를 지면에 담아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지면에 담기기엔 녹록지 않았던 사람들을 여기에 조명한다. 연세대학교 기록관에서 편집위원을 따뜻하게 맞아준 분들이다.


*연세대학교 기록관리팀의 직원은 총 5명으로, 인터뷰에 전 직원이 참여해 주셨다.

이은경 팀장님:카지노 게임 사이트리팀 팀장

김명주 차장님:학교사 파트 담당

조다솔 선생님:카지노 게임 사이트 서비스 담당

이다은 선생님:행정 기록 담당

장아람 선생님:행정 기록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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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게임 사이트부서 실태 점검, 연세대학교 기록관

Q. 언제부터 기록관이 우리 학교에 있었던 걸까요? 학교 다니면서 잘 안 보였어요.

이은경 팀장님:잘 안 보였겠지만 오래 있었어요~!연세대학교가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 기록관이거든요.1998년 도서관 소속으로 시작해서 2000년에는 부속기관인 기록 보존소로 독립했었어요. 국내 대학에서는 최초의 독립 기관으로서 시작했었죠. 그러다 2010년에 박물관 학예팀으로 통합되면서 기록이란 이름이 없어졌다가 2021년에 박물관 기록관리팀으로 업무 단위가 분리되었고, 2022년 2학기에 학술문화처 기록관으로 다시 독립한 게 지금의 모습이죠.



연세대 기록관이 도서관 층별 안내도에 나와 있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현재 기록관은 도서관 소속이 아닌 학술문화처 소속[2]이기 때문이다. 연세대학교 학술문화처는 교내 학술 정보 및 문화예술 관련 부서를 통합하여 2022년 3월에 출범한 기구로, 우리나라의 문화체육관광부와 비슷한 개념이다. 도서관과 박물관도 학술문화처 소속이다. 즉 세 기관은 하나의 상위 기구를 공유하고 있는 별개의 기관인 것이다. 하지만 유독 기록관이 학교 곳곳을 옮겨 다니며 자리를 헤맨 것 같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 기록관이라는 역사적 가치를 지녔음에도 왜 이렇게 떠돌아야 했을까? 학교가 기록의 가치에 대해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거나, 기록관과 도서관, 박물관의 고유한 역할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 기관이 각자 서로 다른 역할 가치를 실현하며 학교의 정체성 확립에 기여하는 독립적인 기관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Q. 연세대학교 기록관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어떤 일을 하고 계세요?

이은경 팀장님: 학교사기록물을 다룹니다! ‘학교사’란 말 그대로 대학의 행정 기록물을 포함하여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고유한 기록물을 말해요. 그러니까 여기선 학교의행정 기록도 중요히 다루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역사, 행정 기록들에 대한 정보를 다루는 거죠.지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기록관들을 보면 정부 기관이 많아요. 기록 관련된 법[3]들이 생겨나면서 대통령 기록관같이 정부 기관들에서 행정 기록을 모으기 시작한 거거든요. 그러니 정부 기관은 정부 문서 다루고, 대학은 대학 문서 다루고 그런 차이가 있다고 보면 될 거 같아요.


Q. 도서관, 박물관과 기록관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 주세요.

카지노 게임 사이트연세대학교 기록관 내부 보존 서고, 연세대학교 기록관


기록수집, 연세대학교 기록관

*보존 박스에 박물관이라고 적혀 있지만, 이는 이전에 박물관 소속이었을 때 사용했던 것으로 그대로 유지 중이라고 한다.


이은경 팀장님:기록관은 크게 두 가지 자료를 다룹니다. 행정 기록과 학교사(史) 기록.학교사 관련은 기록관이 메인 부서예요. 반면 도서관은 주로 학술 자료 중심[4]입니다. 그리고 보통 대학교 박물관에서 추구하는 건 종합박물관이지만, 우리 학교는 자연사에 특화되어 있어요. 심지어 석장리 유적[5]을 우리 대학에서 발굴해서 관련 자료는 우리나라에서 연세대가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웃음) 제가 연세대학교 도서관에서 일하다가 기록관으로 넘어와서 일하고 있거든요. 저의 감상인데 도서관은 뭐든지 다 공개해요. 원문도 바로 집에서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자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죠. 하지만 기록관은 자료를 먼저 가공한 다음에 공개하는 차이점이 있는 거 같아요. 예를 들면 김대중 기록관[6]에서 최초 공개라며 기록자료를 온라인에 공개한다고 해 봅시다. 근데 사실 그 기관에서 자료를 갖고 있은 지는 20년이 넘었거든요. 그런 식으로 학예사들이나 기록연구사들이 연구해서 주제나 맥락을 만든 다음에, 전시나 출판, 혹은 언론 등을 통해서 홍보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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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이 계속 강조하셨던 ‘학교사’는 대체 왜 소중할까.교과서 안의 역사는 연혁까지 달달 외워야만 시험문제를 풀 수 있는 복잡하고 지루한 학문이었다. 그런데 시험도 없으니 외울 필요도 없는 역사, 그것도 졸업하면 그만인 우리 학교의 역사를 왜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는 것일까. 하지만 생각해 보면 학교가 지나온 역사는 우리가 받는 교육의 본질과 방향성을 결정한다. 학교에서 향유하는 문화와 전통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그 증거로 우리는 연세대학교가 기독교적 이념으로 시작한 학교라는 것을 인식하며, 축제 때마다 파란색 옷을 입고 사진을 찍는다. 가끔 펭귄을 닮은 굿즈가 나오지만 꿋꿋하게 독수리라고 불러준다. 사라지지 않고 매년 돌아오는 아카라카와 대동제, 연고전에서 한바탕 춤을 추고, 이렇게 즐거운 학교가 있기 이전 최루탄이 쏟아졌던 운동사를 어렴풋하게 기억한다. 그러니 우리 학교사는 연세대학교를 단순한 하나의 학업 공간이 아니라 문화적 기억을 만들어 가는 공간으로 확장해 준다. 하지만 이런 가치가 제대로 공유되지 못한 채 여전히 기록 관리에 대한 지원은 미비하다. 선생님들께 연세대학교에서 적용하고 있는 기록물 관리의 과정을 들어보고, 실제로 어떤 기록물이 남아있는지 보러 가자.


Q. 연세대 기록관에서는 자료의 보존을 위해 어떤 공간과 설비를 활용하고 계신가요?

보존 상자 내부의 시·청각류 자료들, 연세대학교 기록관

이민경 팀장님:사실 학교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국가기록보존소에 비해서 시설이 좋지 않아요. 그래도 온습도 조절이라든지 그런 서고[7]의 품질은 어느 정도 법적으로도 법제화가 돼 있어요.

기록물 전용 박스라든지 사진 같은 것도 특수 사진 앨범에 보관하거든요. 특수지를 사용하기도 하고요. 자료의 훼손이 되지 않도록 철심 같은 게 박혀 있으면 다 뺀다든지 그래서 자료의 보존이 영구적으로 될 수 있도록 많이 신경을 쓰고 있죠. 근데 이제기록한 자료가 크게는 유물도 있고 (아까 얘기했던 돌덩어리라든지, 펜싱 칼을 주신 분도 있고) 문서로 된 자료들로 크게 나뉘어요. 문제는기록관 전용의 보존서고나 보관 장소가 없어서 문서 자료들은 도서관 보존서고 공간을 빌려 쓰고 있고, 유물 종류는 박물관에 있는 수장고에 맡겨놓고 있다는 점이에요.서로 떨어져 있는게 좀 문제기는 하지만 또 온습도 같이 섬세한 환경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어서요. 언젠가 저희에게도 그런 전용 공간이 생겨야겠죠. 지금 학교는 공간이 많지 않아서 그게 제일 어려운 부분인 거 같아요.


Q. 연세대학교 기록관에서 폐기되는 자료들이 있다면 그 기준이 궁금합니다.

왼쪽부터 폐기 대상 기록 심사 - 이관 - 폐기

이은경 팀장님:행정 기록이랑 학교사 기록이 확실하게 다른데요. 행정 기록은 폐기 기준이 아예 법령으로 명확하게 정해져 있어요. 예를 들어 시험지는 10년, 회계 관련 자료는 5년간 보존해야 한다, 처럼요. 그럼 5년이 지나면 버려도 된다는 뜻이거든요. 근데학교사 관련해서는 폐기 기준이 딱히 없어요. 관련 기준이 따로 없어서 저희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관리하고 있습니다.예를 들어 간행물이라든지 어떤 자료가 똑같은 것으로 두 개 있으면, 하나만 보존하고 이제 나머지는 폐기하기도 하고요. 만약 행정 기록물이 행정 기록물 기준으로는 기간이 다 되었는데, 행정이 아니라 학교사 자료로 필요하다 싶으면 저희의 연구 보존 자료로 전환을 하기도 해요. 그러면 그건 학교사 기록이 되는 거죠. 이렇게 유동적이다 보니까 사실 기준이 생기기도 어렵죠.


Q. 어떤 게 연세대 기록관의 기록물이 되는 건가요? 기록관에서 기록물의 가치를 인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이은경 팀장님:일단 학교의 역사와 관련 있는 자료는 구분 없이 수집하려고 노력합니다. 모든 게 다 학교사로서의 가치가 있을 수 있다고 보는 거죠. 예를 들어 연세대학교 200년사 기념 전시를 기획한다고 했을 때, 전시할 수 있을 만한 모든 자료가 저희의 수집 대상이 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교수님들이 퇴직하실 때 기증을 많이 해 주시는데요. 솔직하게 말하면 그때마다 저희도 이게 어떤 가치가 있을지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하는 걱정과 고민을 하죠. 그래도골라서 받기보다는 일단 주시면 다 봅니다. 이런 게 역사가 될까 싶더라도 앞은 모르는 일이라는 걸 저희가 너무 잘 알거든요.옛날 학생증, 도서 대출증, 기타 카드들의 사진을 기록관 홈페이지에 올려두었는데, 그 당시엔 도서 대출증이 이렇게 신기하게 보일 줄 알았을까요? 요즘 학생들 입장에서는 모바일 학생증도 많이 쓰니까 도서 대출할 때 카드를 쓰는 것 자체가 신기할 수 있잖아요. 그런 것들도 다 학교사 관련해서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죠.


Q.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기록관에 소장 중인 자료 중 학생들에게 가장 소개(자랑)하고 싶은 자료나 컬렉션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General Plan Of Chosen Christian College(마스터플랜)_연희캠퍼스종합계획도, 연세대학교 기록관

이은경 팀장님:연희전문학교 캠퍼스 종합 계획도라는 게 있어요. 언더우드가 대학 건립을 준비하면서 신촌에 땅을 사두었는데, 1917년 에비슨 교장이 캠퍼스 조성을 위해 종합 계획을 수립하신 거예요.제가 보고 정말 놀랐던 건 1917년이면 신촌에 건물이 없을 때예요. 그냥 신촌 땅만 사 놓은 상태였던 거죠. 그런데 보면 현재 본관 쪽에 있는 오래된 석조 건물들이 다 그려져 있어요. 글자가 잘 안 보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지을 건물들에 대한 계획이 쭉 쓰여 있는걸 볼 수 있죠. 지금 캠퍼스랑 굉장히 비슷하지 않아요? 어떻게 하신 건지 모르겠어요. (웃음) 지금 그 원본을 저희가 갖고 있는 겁니다.

연전타임스(창간호, 1935), 연세대학교 기록관

김명주 차장님:연세 춘추의 전신이 연전타임즈인 거 알고 계세요? 도서관 홈페이지 가면 1호를 볼 수 있는데요. 저희가 디지털화 해서 올려 둔 거랍니다.그게 아마 기증을 받은 걸로 알고 있어요. 워낙 원본 상태가 안 좋아서 저희가 하나하나 복제를 뜨고 ,복제본으로 전시도 하면서 쓰고 있는 거예요. 지금이야 이렇게 디지털로 많이 하지만 예전에는 출력 인쇄물로 제작해서 나눠줬었습니다.


연희대학교 설립의 건을 인가함. 194608015, 연세대학교 기록관

이은경 팀장님:지금은 되게 중요한 사료가 되는 그때 당시의 학생 생활 그리고 또 문교부 증서 같은 것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연희대학교로 인가한다’하는 연세대 이름 바꾸는 문교부 인가서 행정 문서 그런 것도 갖고 있고요. 학생들 학위 수여증도 있고.



총장실 일기 표지와 내용 일부

이은경 팀장님:아 이런 것도 있어요!총장실 일기라고. 김윤경 총장님이 쓰셨습니다. 한국전쟁 당시에 우리 학교 총장이셨던 분이에요. 그분이 개인 일기를 진짜 난중일기처럼 쓰셨어요.몇 월 며칠, 날씨

흐림, 오늘 무슨 회의를 했는데 누가 화를 냈음, 뭐 이런 거를 엄청 꼼꼼하게 쓰셨어요. 그중에 학교와 관련된 개인 일기도 좀 섞여 있거든요. 그래서 학교 관련 일기만 모아서 책을 냈습니다. 이런 총장이 있었던 학교는 우리 학교밖에 없을 거예요. 이 책은 연세대학교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보실 수 있어요.


"연세가 기록한 1960년 4월혁명-청년 학생의 힘" 표지 사진, 연세대학교 기록관

조다솔 선생님:학생 운동사 자료들을 저희가 많이 갖고 있어요. 사실 70~80년대 학생 운동사에서 연세대학교는 메카와 같은 장소였었거든요.당시에 선생님, 학생들 할 것 없이 찌라시나 대자보 같은 것들을 모아서 형성된 기록들이 많아요. 대부분의 자료가 우리리 기록관 자료를 가지고 그분들이 연구하신 자료거든요. 학생운동 초기부터 이한열까지 학생 운동사 자료도 많이 갖고 있어요.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선정된 자료도 있어요. 4·19혁명 기록 자료인데 "연세가 기록한 1960년 4월혁명-청년 학생의 힘"이라는 책 제목으로 출판됐어요.



Q. 연세대 기록관에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2023)되었다는 자료에 대해 더 설명해주세요!

사실조사서 표지, 연세대학교 기록관
1. 대강당 앞에 전교생 집결 2.시위하는 학생들 사진 2장, 연세대학교 기록관

이은경 팀장님:좋아요. (웃음) 사실 우리가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을 갖고 있다는 걸 학생들이 너무 몰라서 속상했거든요. 바로 작년 5월 19일에 정식적으로 등재됐어요.등재될 때 우리 기록관이 소장하고 있던 전체 기록물이 총 2,700여 건이었는데, 그중에서 4·19혁명 기록물 약 570건이 세계기록유산으로 인정받았어요.이 안에 혁명 참여자 조사기록이랑 계엄사령부 포고문이 있거든요. 2020년에 국가 등록문화재로도 등록됐습니다. 대단하죠? 1960년 당시 우리 학교 정치외교학과 4학년이었던 학생들이 “4월 혁명연구반”을 결성했어요. 그 학생들이 교비 지원 받아 가면서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그렇게 수집한 자료들이 굉장히 다양합니다. 간행물, 사진, 박물, 문서류 등등 많아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학술 활동 하면서 작성하고 수집한 기록물이라는 게 엄청 의미 있죠. 심지어 그때는 유신정권으로 탄압이 심했을 때예요.혹시라도 분실될까, 막 꽁꽁 묶어가지고 도서관 보존 창고에 숨겨서 겨우 가지고 있던 것들인데 그거를 정리해서 문화유산 신청을 한 거죠. 대통령상도 받았습니다.



세번째 step. 연세대 카지노 게임 사이트 사람들 마주하기

무엇이든 학교사 기록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학교사 기록물을 아무나 다룰 수 있는 건 아니다. 앞에서 살펴본 기록물들이 현재까지 잘 남아, 우리의 눈 안에 담길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누군가의 손이 닿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대학교 기록물의 가치를 알아보고, 분류하고, 좋은 온도와 습도를 신경 쓰며 지켜내고,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또다시 이야기를 묶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기록관 진입에 흥미가 있는 독자를 위해 그들이 걸어온 길, 기록관 안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직업을 준비하는 과정에 대해 들어 보았다.


Q. 선생님들은 어떻게 연세대 기록관에 들어오게 되셨나요?

김명주 차장님:저는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을 하다가 도서관에서 고서(古書) 쪽 일을 할 사람을 구한다고 해서 우연히 취직했어요. 지금은 연세대 도서관 국학 자료실이지만 그때는 고서실이었거든요. 거기에서 쭉 일을 하다가 기록관에 정년퇴직하시는 분이 계셔서 그 자리를 채우러 오게 됐었죠. 기록관이 예전에 도서관에서 시작된 부분이 있잖아요. 그래서 도서관에도 학교사 컬렉션이라고 해서 책자로 된 것들을 수집한 자료들이 있어요. 일제 강점기에 나왔던 책이나 잡지 같은 것들이 도서관에 좀 있거든요. 고서(古書)를 다룬 경험이 한몫했죠.


이은경 팀장님:진짜 학교사와 관련해서는 차장님이 전문가예요. 사실 여기 일하는 모두가 기록연구사는 아니거든요. 아, 조다솔 선생님은 기록연구사 선생님이세요. 그런데 저는 문헌정보학과 나와서 사서하다가 들어왔고, 이전에 계시던 선생님은 학예사 선생님이셨어요. 그러니까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여러 전문가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부산역사기록관 같은 국가기록원에 가보면 사서 선생님들도 굉장히 많이 근무하시고 학예사 선생님들도 많으시고 또 전산 전공하신 분들도 계시고 그래요.기록물을 다루는 데 필요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여러 직종들이 모여 있는 곳인 거죠.


Q. 기록연구사는 생소한 직업이네요.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요?

이다은 선생님:명칭이 기록물 관리사라고 혼용이 많이 되는데,‘기록연구사’ 아니면 ‘기록물 관리 전문 요원’이 정식 명칭입니다.공무원 사회에서는 학계 연구사처럼 기록연구사라고 다들 부르시고 공기업이나 이런 학교에서는 기록물 관리 전문요원으로 부르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기록물 관리 전문요원 자격이 있는 사람만 이 직렬들에 지원할 수 있고, 아까 말씀해 주신 것처럼 학부 과정에는 기록학이 없기 때문에 대학원을 나와야 해요. 저도 이제 대학원을 졸업해서 전문요원 자격을 취득한 케이스인데 대부분 문헌 정보학이나 사학을 전공하시는 거 같아요. 물론 다양하게들 오시지만 주류가 그 두 학과였어요. 학부에서도 많이 추천하셔서 오시는 경우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대학원 2년하고 졸업 논문을 쓰고 졸업하면 국가기록원으로부터 기록물 관리 전문요원 자격증을 발급받을 수가 있어요. 이게 아니면 교육원에서 1년 수업을 듣고 시험이 매년 1년마다 있는데 이게 합격률이 굉장히 낮은 걸로 알고 있어요. 20~30% 정도. 시험이 1년에 한 번 있다 보니까 웬만하면 이제는 거의 대학원에 가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대학 기록물의 관리와 보존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각기 다른 전문성을 지닌 사람들이 협력하며 이루어지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연세대학교 기록관도 다양한 배경과 경력을 지닌 전문가들이 각자의 역할을 맡아 기록물의 가치를 보존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데 기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모두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대학 기록관은 여전히 많은 대학교에서 필수적이지 않은 기관으로 여겨지거나, 예산과 인력 문제로 인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8]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세대학교 기록관은 학교사를 보존하고 기록의 중요성을 확산하기 위한 다양한 계획과 시도를 준비하고 있었다. 앞으로 이들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기록관을 발전시켜 나가고자 하는지에 들어보자.


Q.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서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창립 140주년 기념_숨은 연세 찾기 이벤트 포스터, 연세대학교 기록관

이은경 팀장님:저희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어요. 다음 주부터 아마 홈페이지 오픈이 될 거예요. ‘숨은 연세 찾기’라고.[9]사진, 유물, 동영상 등 학교사와 관련된 뭐든지 저희에게 연락을 주시도록 유도해 볼 생각이에요. 소정의 상품도 준비하려고 합니다.예를 들면 입학할 때 받았던 자료집이나 축제 때 썼던 자료집, 팸플릿 같은 것들도 좋겠어요. 이런 자료들에는 연세대학교에 관한 맞춤 정보가 아주 많으니까요. 그 정보가 저희한테는 없을 수도 있거든요. 학교에서는 늘 있는 일이라 별도로 수집하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죠. 그래서 그런 것들을 수집할 계획을 한두 달 정도 잡고 수집해 볼 예정입니다.


김명주 차장님: 전 교육에 신경 쓰고 싶어요.지금은 아직 학교 직원들도 특정 기록물을 어떻게 관리해야 되는지에 대한 기본 개념이 정착되지 않은 상황이라서요. 매달 내지는 정기적으로 직원 대상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기록물 관리가 복잡한 부분이 꽤 많아요. 행정 기록물은 웬만하면 전자 시스템을 통해서 생산되기 때문에 어떻게 분류하고 관리할지 등만 교육이 잘 되면 그 이후는 자연스럽게 흐름을 따라갈 수 있어요. 반면 비전자 형태의 기록물들은 어딘가 저장이 안 되기 때문에 잘 관리해 줘야 하거든요. 이것도 기록인가 싶은 것들도 나중에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기록물관리에 대한 교육의 깊이와 질을 좀 보완해서, 기록관 직원 대상뿐만이 아니라 기록물을 다루는 모든 학교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확대되어야 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이제 우리 학생들이 하는 동아리나 자치단체 같은 곳에서는 그 안에서 공식적으로 생산되는 기록물들이 또 있잖아요. 학생들도 본인들의 기록을 남기는 거니까 배워두면 좋을 것 같거든요.학생들을 위해서라도 가능하다면 교육 자료를 만들어서 배포하면 좋지 않을까, 숙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step. 우리도 우리의 ‘기록’을 이야기하기

기록은 무엇일까? ‘기록(記錄)’. ‘기록할 기’와 ‘기록할 록’이라는 한자부터 ‘記錄’은 그냥 ‘기록’이다. 문화유산 중에서도 특히 기록유산은 그 가치에 대한 인식 변화가 흥미롭다. 눈을 사로잡는 건물, 동상, 공예품 등과는 달리 문자의 가치는 생산국의 문화를 함께 형성하며 향유했던 사람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록물을 훔쳐 갔던 사람들은 기록물의 가치를 알아봤다기보다는 가져갔더니 나중에 좋게 얻어걸렸던 경우가 많았다. 우리의 조상은, 기록관 선생님들은, 기록을 하는 사람들은 왜 기록했을까? 왜 기록물을 지키려고 할까?


마지막 질문. 어려운 질문일 수는 있지만 기록은 왜 중요할까요?


이은경 팀장님:요즘엔 사진이라는 게 놀이의 영역이 됐죠. 다들 쉽게 찍을 수 있고, 그래서 또 쉽게 버리기도 하는 거 같아요. 하지만 그게 좀 지나고 나면 나의 20대를 기록한 거고, 나의 친구와의 기록이고, 어쩌면 그렇게 역사가 계속 반복되고.우리는 그때의 기록을 보면서 그 당시를 이해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어떤 역사는 그때처럼 반복되지 않도록 조심할 수도 있는 거고요.그리고 또 행정 기록이라는 건 책임행정이랑도 관련이 있어요. 내가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이 문서를 남겨야만 하는 책임감이 있죠. 어떤 일을 할 때 어떤 근거를 가지고 이 일을 했다는 증거 기록. 기록은 그냥 증거예요.


이다은 선생님:당장에 외우고 있거나 알고 있는 것들도 시간이 오래 지나고 나면 기억이 나질 않잖아요. 그래서 뭔가 나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도 많이 쓰이는 것 같아요. 팩트는 모두가 알고 있어도 그때의 감정이나 상황, 배경 같은 개인적인 것들은 나만 알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나조차도 옛날에 어떤 순간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나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죠. 하지만그 기록을 보면 그런 것들이 갑자기 떠오르거나 향수를 맡을 수 있어요. 따라서기록이라는 게 뭔가 ‘과거’의 일을 붙잡는 행위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저는 사실 ‘미래’의 우리를 위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사실 업무를 할 때도 지금은 이게 있어도 없어도 잘 모르지만, ‘나중에 내가 이게 필요하면 어떡하지’, ‘누군가 이걸 필요로 하면 그때 어떡하지’ 이런 걸 계속 떠올리면서 작업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기록이란 미래의 나를 위한 안전장치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수업을 들을 때도 기록을 잘해준 친구가 있으면 정말 고맙잖아요.


조다솔 선생님:어떻게 보면 알려진 기록들은 유명한 사건과 그런 것만 보통 알려지잖아요. 하지만기록이라는 건 유명한 것만 기록되는 게 아니라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있는 게 기록이라고 생각했어요.그런 게 많이 남겨졌을 때 비로소 우리가 집중해서 봤던 그 이외의 것들을 알 수 있게 되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또 기록이 중요하지 않나. 금 이렇게 뭔가 학교에 행사 같은 데나 외부 자료 요청이 들어오면 보통 다 큰 행사 관련된 게 들어온단 말이에요. 연고전 이런 경우는 자료가 너무 많아서 쉽게 제공도 해드릴 수 있고 찾기도 수월한데, 아까 말한 것처럼 학교적으로 큰 행사가 아니면 요청이 들어와도 저희 쪽에 남아 있지 않거나, 있더라도 정말 한두 건이에요. 그럴 때 아쉬움을 많이 느껴요. 우리가 큰 행사에만 포커스를 두는 게 아니라 작은 학교생활. 그냥 그런 거여도 돼요. 진짜 일상인 것 같은데, 나중에 보면 필요할 때가 있거든요. 큰 행사는 내가 안 해도 남기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는 놓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 부분에 좀 더 포커스를 두고 기록하고 수집하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지금까지 우리는 고지식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의 손에 붙들려 매정히 줄 세워지는 서류들의 이미지로 기록관을 상상해 왔다. 발 디디면 안 될 것 같은 엄숙함에 거리를 느꼈다. 하지만 우리의 학교생활이 대단하고 무거운 사건들로만 흘러가지 않는 것처럼 연세대학교 기록관 안에는 놀랍도록 무난하고 담담한 일상들이 있다. 연세대학교 사람들이 공유하고 공감하며, 이해하고 존중받는 이야기들이 천지다. 생각해 보건대 기록도 그냥 일상이다. 정확한 의미가 있다기보다 기록하는 사람들이 그 가치를 정의한다. 자신들이 같이 살아주지 못하는 불안한 미래를 준비해 주는 다정함이다. 우리도 기록할 수 있다. 지켜진 기록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고민해 보자. 그렇게 미래의 누군가에게 또다시 다정하게 말을 건네자.







[각주]

[1] 연세대학교 도서관은 1915년 개관하여 1979년 건축된 중앙도서관과 2008년 신축으로 개관한 연세·삼성 학술정보관이 연결되어 있는 형태이다. 흔히 학생들 사이에서 설립 연도를 기준으로 ‘구중도(중앙도서관)’과 신중도(연세·삼성학술정보관)’라고 알려져 있으나, 정식 명칭이 아니다. 이 글에서는 건물의 구분을 명확히 할 때에만 정식 명칭(중앙도서관과 학술정보관)을 사용하며, 건물 구분 없이 도서관 전체를 지칭할 경우에 ‘도서관’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2] 4개의 기관(도서관, 기록관, 박물관, 출판문화원)과 1개의 센터(디자인센터)로 구성되어 있다.

[3] 1999년 [공공기관의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이 제정 공포되면서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가 법제화되었다. 이어 2000년에 기록관리학회가 출범하였으며, 2006년 ‘기록물관리법’이 개정되면서 기록물의 등록과 공개 절차가 강화되는 등 정부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전반에 걸쳐 기록물 관리 수준이 향상되었다.

[4] 학술적인 가치가 있는 정보. 학술커뮤니케이션에 의한 정보연구자의 연구성과에 의하여 생산되고, 연구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기록되어 전달된다.(한국도서관협회 문헌정보학용어사전)

[5] 충남 공주시 석장동에서 발견된 구석기 시대 유적. 1964년 5월, 연세대학교 손보기 교수와 미국의 고고학자 부부가 새로운 석기를 발견하였다. 이후 연세대 발굴팀이 구성되었고 11월 석장리 구석기 유적의 첫 번째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2010년까지 총 13차 발굴조사가 진행되었으며 연구 과정에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퇴적물의 낟알 크기 분석, 식물 유체 분석 등 자연과학과의 공동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구석기 고고학 뿐만 아니라 고고과학 자체의 연구에 대한 기초체계를 마련하였다. 유적 발굴 60주년을 맞아 25년 3월 31일까지 연세대학교 박물관에서 특별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6] 정식명칭은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이다. 우리학교 소속의 도서관으로, 명칭과는 달리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사료(史料)를 보존하고 관리하고 있어 사실상 기록관에 가깝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도서관 건물과 1만 6,000여 건의 자료, 1만여 권의 장서 그리고 노벨평화상 상금을 연세대학교에 기증하며 2011년 아시아 최초 대통령 도서관으로 개관했다.

[7] 도서 보관을 위해 열을 지어 서가를 배열해 놓은 구역. ‘서가’는 책꽂이를 조금 더 전문적으로 이르는 명칭이다. 보존을 위한 전문적인 책꽂이가 모여있는 공간으로 이해하자.

[8] . 2021년 기준으로 전국 국공립 및 사립대학 중 기록관 배치대상은 총 196기관이었다. 기록관리전문요원이 배치된 곳은 이 중 74군데에 불과하다. 특히 98%를 자랑하는 국립 대학교 기록관의 기록관리전문요원 배치 비율에 비해 연세대와 같은 사립 대학교는 배치 비율이 21% 밖에 되지 않는다.

[9] 인터뷰 일자는 11월 10일이다. ‘연세 찾기’는 현재 연세대학교 기록관 홈페이지 공지에 ‘창립 140주년 : 찾아라 연세_숨은 연세 찾기’라는 제목의 프로젝트로 업로드 되었다. 내년 연세대학교가 140주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며 11월 30일까지 연세대학교에서의 경험이 담긴 사진, 영상, 문서, 기념물 등을 수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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